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여전히 내 마음 속엔 아인슈타인이 있지만...

초보 물리학자의 두런두런 세상 이야기


[첫회] 어떻게 연구하며 살아가야 할까?

※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센터 연구원인 김민규 박사가 '청춘 스케치' 필진에 참여해 글을 씁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사이언스온

00KMK_ballet.jpg » 출처 / openclipart.org


사후연구원 생활을 하기 위해, 이곳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온 지도 어언 6개월이 되었습니다. 미혼으로서 외국에서 홀로 산다는 것이 외롭기는 하지만,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오히려 더 낫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해외에서 외국인과 일할 때는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부끄럽고 싶지 않아 책임감을 더욱 크게 느끼기도 하고, 다른 연구 토양에서 비롯한 다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나은 다음 걸음을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기도 한 법이겠지요. 운이 좋게도 제가 살고 있는 집 바로 근처에는 헝가리 국립 오페라 극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오페라, 클래식, 무용 공연 등을 주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가장 싼 티켓의 가격은 한국 돈으로 2500원. 헝가리의 물가가 한국보다 약간 낮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참 저렴한 가격이지요. 물론, 2500원짜리 티켓의 좌석은 맨 위층의 뒤편이거나 관람 환경이 떨어지지만, 적어도 비싼 가격이 부담돼 오페라 관람을 못하는 일은 없다는 이곳 상황이 부러웠습니다. 주중의 스트레스도 풀고 문화생활의 호사도 누릴 겸 해서 중간 정도 가격대의 티켓을 구매했고, 지난 주 토요일에는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제목의 발레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발레의 주연, 조연, 엑스트라의 조화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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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공연 1막 무대의 주 배경은 한 마을의 시장이었습니다. 물건 파는 사람들, 평범한 시민들 그리고 그 앞에 말을 타고 지나가는 귀족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다가가고…, 그렇게 둘은 서로 만나 대화를 하듯 춤사위를 선보였습니다. 공연 속 주인공들인 귀족 남자와 여자의 발레 테크닉이 단연 돋보였지만, 이상하게도 무대 뒤편의 엑스트라들에게 관심이 갔습니다.


스트라들은 주인공들과 그 주위 사람들의 사건을 계단, 발코니 등에서 지켜보는 이들이었는데, 따로 춤을 추지도 않았고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오케스트라 반주 음악의 적절한 지점에서 놀라는 표정을 짓거나 손가락으로 주인공들을 가리키며 호들갑을 떠는 정도였지요. 참 보잘 것 없는 역할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눈짓, 몸짓, 손짓 등은 분명 무대를 더 활기차고 분주하게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공연에서 본 것처럼 세상의 많은 “무대“는 소수의 주인공들과 그들을 빛내주는 조연들, 그리고 무대장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많은 작은 역할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달리 말하면, 1인극이 아닌 이상 주연들로만 구성된 무대라는 것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물리학을 한다는 것, 연구를 하는 것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학계를 이끌어가는 대가들도 있지만, 대가들을 뒤따라가는 학자들도 있으며, 그들이 성큼성큼 나아간 길의 주변을 꾸미거나 보수하는 정도의 성과를 남기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학문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고요, 경제적 기대 효과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이렇듯 복잡한 층위 속에서 묵묵히 중심을 잡고 연구를 해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00peopleinscience.jpg » ‘과학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여길까’를 표현한 그림. 출처/ http://sotak.info/sci.jpg


‘주야장천 하는 일’을 즐길 줄 아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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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유행하던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위 그림). 학문의 길에 처음 발을 내딛는다고 볼 수 있는 학부생부터, 더 나아가 대학원생, 그리고 교수, 테크니션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서로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풍자해 표현한 그림입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씁쓸한 미소로 공감하는 것을 보았고 저도 역시 꽤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림에서는 먼저 대각선 방향에 놓인 부분이 제 눈에 띄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이 바로 각 층위의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를 표현한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에서 나타나듯이 많은 대학생들은 아인슈타인을 꿈꾸며 공부를 시작하곤 하지요. 저도 중고교 시절에는 파인만, 하이젠베르크, 호킹 등이 쓴 자서전 및 대중 과학 서적을 읽으며 물리학자의 꿈을 키웠고 그들을 역할 모델로 삼아 물리학과를 선택했습니다. 풋내기일지 모르지만 야망이 가득한 그런 모습이 젊음의 특권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재미있는 또 다른 장면은 박사학위를 받고 난 뒤 박사후연구원이 되면 자신을 주야장천 일만 하는 가축으로 생각한다는 풍자입니다. 그 옛날 아인슈타인처럼 과학계의 혁명을 일으킬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 꿈꾸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주야장천 하는 일“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성취를 꿈꾸며 주인공이 되고자 하겠지요. 하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시절부터 오로지 학계를 뒤흔들 혁명만을 꿈꾸는 것은 마치 엑스트라, 조연 시절 없이 오로지 주연만을 꿈꾸는 연기자 지망생이 아닐까요?


물론 일 자체를 즐기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입니다. 역량 있는 최고경영자라 하더라도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듯, 책과 논문을 구하는 것이 더 이상 어렵지 않은 일이 된 현대 사회라 하더라도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겪는 시행착오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은 반드시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그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지면 엄청나게 힘들어 한다는 것입니다.



모름을 인정할 때 앎을 위한 준비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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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천재이고, 한 분야를 창시한 대가라고 하더라도 분명 풋내기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절에는 잘 모르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런데도 교수님이 던져준 논문을 아무리 쳐다보고 참고문헌을 뒤져봐도 잘 이해되지 않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정체되며 혼자서 해보려고만 하고 나중에는 교수님을 피하게 되고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런 악순환을 지독하게 경험하였기에 이제 와서 그 때를 돌아보며 추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을 만나기도 어려운 타지에 와서 혼자서 이런저런 사색을 하다 보니 더욱 예전의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제대로 알기 위한 준비가 되는 것이고 그 때서야 비로소 일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여기에서 생각의 정리가 끝나면 참 훈훈하겠지만, 연구를 하다 보면 위에서 말한 평범한 인간의 배움과는 다른 비범한 천재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내 또래의 학자인데도 학문의 깊이가 대단한 그런 사람의 논문을 읽다 보면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는 있는 건가?’ 하고 스스로 되묻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거나 그들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누구나 자신과 비교하며 위축되기도 하고 부러움을 느끼기도 할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비범한 천재들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할 뿐더러 그들이 현재에 이르기 이전에 기울인 노력을 폄하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천재들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결과를 얻지는 못하는 것이 자명할 테니 말이지요.



원리적인 불가능, 기술적인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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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이른바 ‘불가능’에 대해 얘기할 때, ‘원리적인 불가능’과 ‘기술적인 불가능’을 구분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적으로 반증된 명제라든지 물리 법칙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은 원리적인 불가능이고, 현재 존재하는 제 아무리 빠른 슈퍼컴퓨터를 이용한다 해도 몇 백만 년이 걸려 풀릴 만한 문제라면 기술적인 불가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기술적 불가능성이란 현재는 해결하기가 아주 어렵지만, 언젠가는 해결할 가능성이 얼려 있는 경우이지요.


00KMK_einstein.jpg » 출처 / openclipart.org 제가 생각하기엔 남들과 비교하기는 대체적으로 원리적인 불가능에 대한 스트레스를 야기합니다. 예컨대, 제 나이에 이미 대단한 학문적 깊이를 갖고 있는 어떤 학자와 저를 비교하며 자괴감을 갖는다고 가정해보지요. 그런데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즉, 시간을 거꾸로 가서 인생을 다시 살고 그 세월 동안의 노력과 성취 등을 얻는다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비슷한 상황으로는 태어나 보니 부모님의 재산이 그리 많지 않다거나, 성장해보니 내 키가 참 작다거나 이런 문제들입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서 과연 우리가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요? 차라리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편이 연구를, 더 나아가 인생을 즐기는 데 유익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현재의 문제는 아무리 불가능해보여도 미래의 가능성 때문에 기술적 불가능일 테니까요.


래서 다시 스스로 묻습니다. ‘내가 연구할 때 받는 스트레스는 과연 어떤 불가능과 벌이는 싸움 때문일까?’라고. 여전히 제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인슈타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 모습이 마음 속 동경의 대상과 멀리 떨어진 괴리가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연구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지금 하고 있는 물리학 연구에서 계산 작업의 답이 빨리 나온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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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센터 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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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끈과 장 이론에서 나타나는 이중성과 정확하게 풀리는 모형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인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메일 : minkyoo.kim@wigner.mta.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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