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우리와 저들'일 뿐인가: 구제역과 생명의 계급화

 

 

00FMD2 » 1월 초 경기 용인지역 구제역 차단 방역을 위해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일대에서 방역당국의 항공기가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종근 기자

 

 

 

1889년에 아프리카에서는 요 근래 십여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구제역 유행에 비견할 만한 재앙이 일어났다. 본래 아시아 지역 가축에서 유행하던 ‘모빌리 바이러스(mobillivirus)’가 이곳에 등장한 것이었다. 아프리카 식민지 확장을 위해 본격적으로 유럽 열강들이 내륙으로 진출하면서 대륙간 물자 이동이 증가했고, 바이러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질병은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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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팽창 시대의 시선:

‘신의 백성과 이교도, 우리와 저들’



중·북부 아프리카에 처음 유입된 바이러스는 10년도 채 되지 않는 동안에 5000km 이상을 종단해 1897년에는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도달했다. 이 과정에서 케냐 사바나 지역에 서식하던 버팔로는 개체수가 90% 가까이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포식자의 개체수도 뒤따라 급감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유행이 야생 생태계의 붕괴만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 바이러스의 유입으로 일어난 가장 큰 영향은 버팔로의 피에 의지해 번식하던 체체파리의 개체수가 급감했다는 점이다.

 

바이러스 유행기간 동안 체체파리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체체파리가 옮기는 수면병의 유행도 따라 줄어들었다. 본래 수단 이남부터 잠비아 북부까지 걸친 광대한 중부와 서부 아프리카 지역은 이른바 ‘체체파리 벨트’라 불리던 지역이었다. 체체파리가 옮기는 수면병은 소나 염소 같은 동물들 뿐만 아니라 사람한테도 치명적인 질병이며, 지금도 치료하기 힘들 정도로 위험한 질병이다. 특히 체체파리는 주로 사바나 잡목 숲이나 강변 지역에 있는 가장 비옥한 땅에서 서식하는데, 이런 체체파리 벨트 지역은 질병의 우려 때문에 목축업은 물론이고 개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땅이었다.

 

14~15세기 당시 이슬람 제국의 팽창이 수단 북부에서 멈추고, 17세기 대항해시대에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내륙을 불모의 땅이라 생각하고 식민지 개발을 포기한 데에는 수면병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수면병은 아프리카인의 삶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병이었지만, 동시에 외세의 압력을 막아주는 거대한 생태적 장애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유입과 수면병 유병률의 감소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제 막 진화론이 자리 잡아가고 자연발생설이 부정되고 질병이 기생충 같은 병원체에서 비롯한다는 자연과학의 혁명이 이뤄지던 19세기 말까지도 사람들은 여전히 수면병 유병률의 감소나 야생동물의 몰살이 바이러스를 옮긴 자신들의 행위에 의해 일어난 결과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유럽인들은 이런 생태계의 변화를 이렇게 이해했다. ‘신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땅을 선물하기 위해 이교도들을 몰아내셨다.’

 

15~16세기 아메리카에 진출한 유럽인들도 똑같이 생각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진출하면서 데려간 천연두, 홍역, 말라리아라는 세 재앙은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를 거의 몰살 직전까지 몰고갔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 질병에 노출된 적이 없어 면역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어린시절에 이미 이런 질병에 자주 노출되었던 유럽인들에게는 그리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었다. 15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미시시피강 같은 북아메리카 대형 강 근방에는 인구 수십만에 달하는 거대한 문명사회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유럽인들이 여기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이미 질병이 휩쓸고간 유령도시들만이 을씨년스레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역시 유럽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신이 우리에게 새로운 땅을 선물하기 위해 이교도들을 몰아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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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를 바라보는 같은 시선:

‘고등 인간과 하등 생태, 우리와 저들’

 

 

그리고 새로운 세기가 밝았다. 20세기 초반, 자연과학은 급속히 발달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의 틀은 바뀌지 않았다. 자연과학은 원주민의 몰살과 유럽인의 진출이 ‘신의 선물’일 뿐이라는 생각을 부정하기는커녕 생태 변화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유럽인의 우월성을 더욱 공고히하는 데 사용하게 된다.

 

우리가 초중학교 시절 과학시간에 배웠던 생태계의 피라미드를 한번 떠올려 보자.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인간이나 육식동물 같은 최종소비자들이 있고, 아래에는 새나 물고기 같은 중간소비자들, 그 아래에는 사슴이나 토끼 같은 초식의 일차소비자들, 그리고 바닥에는 광합성을 하는 식물, 즉 생산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잘 보이지 않는 옆자리에는 박테리아나 균류 같은 분해자들이 있다. 생산자는 일차소비자를 위해 존재하며, 일차소비자는 그 위쪽의 중간소비자를 위해, 그리고 나머지들은 모두 최종소비자를 위해 존재하는 구조다. 즉 생명에 계층을 두는 이런 구조는 인간 사회에도 계급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과학적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용되었다.

 

또 하나 교과서에서 기억을 떠올려 보자. 인간은 신경망이나 기능이 고도로 발달한 ‘고등’한 생물이며, 박테리아나 기생충 따위는 대부분의 기능이나 조직이 단순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하등한’ 생물이라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미 현실 사회에서 계급 구조를 얘기하며 생명을 ‘고등한 것’과 ‘하등한 것’으로 나누는 과정에서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지 지겹도록 겪어 왔다. 생태적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던 당시의 유럽인은 원주민이 질병으로 모조리 몰살당하고 자신들만 살아남은 상황을 종족의 우월성을 지지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리고 종족적 우월성이라는 망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차별을 겪어야 했으며, 심지어는 집단 학살을 겪어왔던가.

 

한 세기가 흘렀지만, 생태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전반적인 관점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생명을 고등한 것과 하등한 것으로 차별을 두고 생태계를 계급 사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개발과 ‘하등한’ 타인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간 자신은 마치 생태계 밖에 존재하는 듯이 바라보는 관점도 이런 생태적 관점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생태계는 인간과 동떨어진 모호한 야생의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역시 생태계의 일부분이며, 가축이나 농업, 도시화 등은 인간이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가장 대표적인 예다.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말은 분명 진실이지만, 동시에 이 말은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부 요인일 뿐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즉 인간을 생태계의 일부로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에 가깝다. 또한 생태계는 인간을 뺀 다른 생물들의 관계만을 논하는 분야가 아니다. 인간이 속해 있는 생태계는 사회 경제적 요인이나 인위적 환경에 큰 영향을 받으며 생태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원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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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선의 제안;

피라미드 아닌 수평적 네트워크의 관계

 

 

지난 20여 년 동안 생태학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생태계는 피라미드형의 단선적인 구조가 아니라 수평적인 구조에서 다수의 생물이 여러 층위의 관계를 맺는 네트워크 구조에 가깝다는 관점의 등장은 생태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이 되었다. 또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은 단순히 야생생물만이 아니라 인간도 거기에 포함돼 있으며 인간 활동이나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생태계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 간의 관계, 기생충과 병원균을 포함한 생태적 다양성, 그리고 인간 활동을 포괄하는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어야만 했다. 생태학은 이제 생물학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학문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날에 생태계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계급 구조를 강화하고 열강들의 식민지 착취를 정당화하는 ‘과학적’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세기가 흐른 지금, 여전히 우리는 이런 패러다임에 묶여서 사고하고 있다. 생명의 계급화는 인간의 계급화를 불러왔다.

 

지금 구제역 사태는 어떤가? 국가는 지역을 소외시키고, 소외된 축산농가를 유통업체들이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축산농가는 가축을 착취하는 구조다. 생태적 구조를 이해하는 생각의 틀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러한 착취 구조는 영속될 것이 분명하다. 구제역으로 살처분 당하는 가축이 어떤 생태에 살고 있는지, 그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생태적으로’ 생각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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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 애호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 석사학위를 받았다(2008).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간 기생충 관리 사업과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으며(2010-2011), 다시 1년 간 굿네이버스 탄자니아에서 주혈흡충 관리사업 책임자로 있었다(2013-2014). 지은 책으로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2011)가 있으며,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말라리아의 씨앗>(2014), <바이러스 사냥꾼>(2015)이 있다. 2016년 현재는 소속 없이 독립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 : byontae@gmail.com       트위터 : @byo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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