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민의 "추리과학소설 '해석기관'"

과학자를 동경했지만 수학 성적 때문에 문과로 진로를 튼 대학생 성여울, 그리고 과학자의 길을 걷던 중 불의의 사고로 꿈을 접고만 도나혜 석사. 서먹한 자취방 룸메이트인 그들에게 차례로 찾아오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 두 사람은 과학지식과 경험과 증거를 열쇠삼아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신호는 진실이다 -신호와 잡음 ②

◐ 전편 '신호와 잡음 ①'에서 이어집니다.
microphone-338481_640.jpg » 사진제공 / 박상민


제2화 신호와 잡음





“신호는 진실이다. 잡음은 우리가 진실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네이트 실버(미국의 통계학자)




혜 언니는 이런 상황에서도 놀랍도록 침착했다. 무서워서 덜덜 떠는 나를 꼭 껴안아 진정시키면서도 목소리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패닉에서 빠져나와 어떻게든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누가 협박전화를 건 거지? 어떻게 우리가 영상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거지? 도대체 그 희미한 영상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언니 역시도 이 의문에 확답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의문을 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바로 말해주었다.


“우리 둘을 제외하면, 우리가 영상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게시판 관리자뿐이야. 아마 협박전화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뭔가 알고 있겠지.”


그래서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게시판 관리자에게 다시 연락해 보았다. 답장이 오기까지는 몇 분 지나지 않았고, 내용은 이러했다. 그럴 줄 알았어. 시키는 대로 해. 경찰엔 연락하지 말아 줘. 다른 사람을 말려들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전부 두렵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지만 나혜 언니는 이 답장에서 공포가 아닌 다른 것을 읽어냈다.


00openclipart.org__signal2.jpg “하나는 확실해졌네. 관리자는 우리가 협박전화를 받았단 사실을 알고 있고, 영상에 대해서도 알아. 그 영상이 관리자가 보라고 업로드된 거라는 우리 가정이 옳았단 의미지.”


“하지만 여전히 협박전화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잖아요. 악성코드 같은 게 동영상에 있어서 해킹당한 거면, 아니면 카페 방문자 목록을 보고 제 신상을 알아내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그 정도 노력을 할 만한 사람이라면, 몇 년 동안 누구나 볼 수 있는 카페 게시판에 봐서는 안 될 동영상이 올라오는 걸 방치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오히려 범인이 게시판 관리자의 주변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우리가 관리자한테 메시지를 보낸 걸 보고 협박해온 거겠지.”


그러니까 다시 관리자한테 연락하지만 않는다면 영상을 더 조사해본다고 위험할 건 없을 거란 얘기지, 하고 내 룸메이트는 말을 끝맺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참으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단지 곧바로 흥분해서 위험천만한 수수께끼에 뛰어드는 대신에 나혜 언니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라도 정말 위험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만 해도 돼.”


“언니는요?”


“말했잖아. 궁금한 게 있으면 잠을 못 잔다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협박전화를 받았을 때의 두려움과 과학자 룸메이트의 설명을 마음속에서 저울질해가면서. 하지만 그 저울 한쪽에 내 호기심이 휙 올라가자 눈금은 순식간에 크게 기울었다.


“옆에서 영상 같이 본다고 위험해지진 않겠죠, 뭐.”


언니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의수가 까딱이며 문제의 흐릿한 영상을 클릭했다.



전히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노이즈가 가득한 영상이었다. 바람 소리, 알아듣기 힘든 말소리, 떨리는 카메라와 구분하기 힘든 형체들. 가로등 불빛 아래에 선 남학생의 나이는 대충 파악할 수 있었고, 영상이 처음 업로드된 시기 등을 고려하면 지금은 대략 내 나이-그러니까 게시판지기와도 같은 나이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게시판 관리자라고 일단 가정해 보죠.”


“나쁘지 않은 가정이네. 게시자는 관리자가 보길 바라면서 이 영상을 올렸을 테니, 관리자는 어떤 식으로든 영상과 연관되어 있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노이즈가 심한 영상을 올렸다는 건, 그 두 사람만큼은 이것만 보고도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고.”


00openclipart.org__signal1.jpg 이를테면 전문용어로 가득한 논문이나 암호로 쓴 비밀편지처럼,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도저히 뜻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발신자와 수신자 둘만큼은 그 뜻을 알 수 있는 영상. 과연 그런 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본다고 해서 우리가 그 이면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을까? 주의깊게 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잡음이 진실을 가려, 원래 신호가 어떤 형태였는지를 완전히 묻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이 과학자 언니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 비슷한 것인 모양이었다. 계속 옛날 연구실 일을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신호에 비해서 잡음이 너무 크면 데이터로서는 실패작인데 말이지. 진짜 신호가 뭔지, 우리가 이 데이터를 믿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되니까. 신호 대 잡음 비율-그걸 높이겠다고 실험실에 있을 때 별 노력을 다 한 거고.”


“음, 궁금한 게 있는데요. 데이터가 뭔가 크게 나온다고 해서 그게 진짜 신호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원하는 신호가 아니라, 그냥 잡음이 크게 나오는 걸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든 언니를 과거의 연구실에서 현실로 끄집어내기 위해 머릿속의 의문을 아무거나 붙잡아서 던진 질문이었다. 언니의 대답은 기계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자동으로 돌아왔다.


“신호에는 패턴이 있으니까.”


그러고서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이를테면 이 영상에서, 시끄러운 바람 소리랑 사람 말소리가 섞여 있지만 우리는 뭐가 말소리인지를 구분할 수 있잖아. 그건 우리가 목소리의 패턴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자신이 잡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그 신호만의 패턴이 필요한 거지.”


“아, 뭔가 알 거 같네요. SETI나 ‘WOW! 신호’ 같은 거죠?”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말했는데 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그때서야 나는 과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이 언니는 천문학을 공부한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한때나마 별과 행성들의 세계를 동경하며 이것저것 알아본 적이 있으니까. 아마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도 바로 이 카페, 이 게시판이었을 것이다.


00signal_wiki.jpg “SETI, 지구외 지적생명체 탐사계획. 외계에서 오는 전파 신호를 받아서 이게 지적생명체에 의한 것인지 분석하는 건데, 이 프로그램에서 일하던 사람이 전파망원경에서 이상한 신호를 잡은 걸 발견했대요. 그냥 우주의 잡음이 아니라 뭔가 의미 있는 패턴이 있어서, WOW! 라고 휘갈겨 썼다고 WOW! 신호라고 부르거든요. 뭐, 다시 포착되지도 않았고 실제로 외계인이 보냈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흥미로운 패턴이 있었다는 거지. 뭔가 생각날 것 같은데, 흥미로운 패턴, 그래, 이 영상에도 하나 있지 않았어?”


과학자한테 내 지식을 설명할 기회가 왔는데 주제를 이렇게 홱 돌려버리다니! 하지만 언니의 말대로 이 동영상에는, 정확히는 동영상이 업로드된 날짜와 시간에는 명백한 패턴이 있었다. 5년 동안 꼬박꼬박 2월 13일 밤 11시와 12시 사이에. 외계인이 보낸 신호를 단순한 잡음과 구분할 수 있는 이유는, 지적생명체라면 의도를 가지고 뭔가 의미가 있는 패턴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상을 올리는 수수께끼의 게시자 역시 지적생명체고, 매번 똑같은 날짜와 시간에 올린다는 것은 분명 어떤 의도가 개입된 것이겠지. 단지 그 의도가 무엇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가 않을 뿐.


“아니,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말하는 나혜 언니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었다. 내가 신나게 떠든 외계인 얘기에서 뭔가 영감을 얻은 걸까? 그래서 이 잡음으로 가득한 영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신호를 추출해낼 뭔가 신기한 방법을 떠올린 걸까?


“그런 건 없어. 적어도 이 영상의 잡음을 한 번에 없앨 방법은 없어. 하지만-외계인의 존재를 좇는 과학자한테는 외계인이 만든 신호가 진짜고, 나머지는 다 잡음이겠지. 하지만 다른 걸 연구하는 천문학자한테는 오히려 그 ‘잡음’이 신호일지도 몰라.”


“진정하고요, 언니.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예요?”


“영상을 반복재생하면서 우린 계속 이 목소리가 뭘 말하는 건지, 영상에 찍힌 게 정확히 뭔지 알아내려고 했어.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무시하려고 했던 잡음이 정보를 담고 있을지도 몰라. 왜 영상이 어둡고, 왜 바람이 이렇게 세지?”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이었다. 어두운 것은 밤에 찍은 영상이니까. 그리고 바람이 센 건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찍었을 테니까. 교복 위에 코트를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 겨울일 것이다. 정말로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나는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2월 13일 밤 11시와 12시 사이라면, 딱 겨울밤이네요.”


“이렇게 가정해 보자. 게시자는 일부러 자신이 영상을 찍은 시각에 맞춰서 게시글을 올리고 있는 거라고. 아마도 이 영상을 찍었던 순간을 게시판지기가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 가정에서 번뜩 하고 한 가지 더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나는 즉시 컴퓨터 앞으로 끼어들어서, 다시금 의아해하는 언니의 시선을 뒤로 하고 게시판지기가 지금까지 올린 글을 검색해 보았다. 글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동영상을 올린 사람이 게시판지기가 올린 글마다 댓글을 달고 있었고, 두 사람이 조금 사적인 이야기까지 나누기 시작하다가, 약 7년 전을 기점으로 대화가 멈춰버렸다는 패턴이 중요할 뿐.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정보에 미루어보아 이것은 아주 명백한 패턴이다.


“전부 설명이 되네. 영상도, 협박전화도.”


내 해석을 들은 과학자 룸메이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가설은 현실과 잘 맞았다. 이제는 정말로 이것이 사실인지 실험적으로 검증해 볼 때였다.



음날, 서울시내의 카페에서 빈둥거리고 있자니 중학교 때 친구이자 게시판지기인 남자가 곧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번에 연락했을 때는 남을 말려들게 해선 안 된다고 겁을 주었던 녀석이지만, 


“이렇게 하면 나올 줄 알고 있었지.”


모든 진상을 알고 나니 협박전화는 전혀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다. 의미 있는 신호가 아니라, 신호를 얻지 못하게 방해하려는 잡음에 불과했으니까.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영상에 대해 우리가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와 언니를 제외하면 게시판지기 한 명뿐. 그 주변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게시판 관리자 본인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자신의 과거가 찍혀 있는 영상에 대해 조사하려는 우리를 막고자 일부러 노이즈 섞인 목소리로 협박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잡음의 원인을 찾으면 걸러낼 수도 있는 법. “협박한 걸 경찰에 알리겠어” 한 마디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정말, 이런 일 가지고 옛날 친구를 협박까지 해야 했어?”


00openclipartorg__signal3.jpg 커피잔을 탕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하자 움츠러드는 녀석은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키는 멀대같이 컸지만, 후줄근한 옷차림에 뭔가 자신감이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불안하게 눈만 이리저리 돌리는 녀석을 앞에 앉혀두고 나는 천천히 추리를 말했다.


“2월 13일의 겨울밤에 누군가가 네가 약속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어. 심하게 떨리는 손으로 말이야. 2월 13일이면 밸런타인데이 전날이고, 영상이 찍힐 즈음에 넌 과학고 준비로 한창이었잖아? 그러면 영상의 내용이 뭔지는 추측할 수 있지.”


아마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이 녀석을 좋아했을 것이다. 카페에서 게시판지기로 활동하는 모습에 반해, 올리는 글마다 전부 댓글을 달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용기를 내서 직접 만나러 갈 정도로. 그리고 밸런타인데이 전날 밤에 로맨틱한 고백을 할 정도로. 하지만 두 사람은 당장 이어질 수가 없었다. 왜냐면, 돌이켜보면 그게 뭐라고 그렇게 다들 매달렸나 싶지만, 적어도 당시 과학 카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녀석에게 과학고등학교 입시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였으니까. 연애로 주의를 흐트러트리지 말라고 집에서 한 마디 들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상대를 싫어했던 건 아니었고, 사실은 사귀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약속한 걸 보면.


“‘몇 년만 기다려 줘.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 이렇게 약속할게.’ 네가 말한 게 이거 맞지?”


화들짝 놀라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정답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전후 사정이 어떠한지 역시도 명백해진다. 상대는 이 약속을 떨리는 손으로 찍어, 언젠가는 그가 돌아와서 고백에 응해줄 거라는 증거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몇 년을 기다려도, 카페가 방치되어 광고글만 계속 올라와도 이 녀석은 돌아와 주지 않았다. 그 이유를 녀석은 떨면서, 거의 흐느끼다시피 하며 말했다.


“완전히 망했단 말이야. 과학고도 못 가고, 고등학교 때도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대학도 제대로 못 가서 이제 삼수째야. 과학고 붙고 나서 당당하게 사귀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걔 얼굴을 어떻게 봐……. 그래서 그 카페에도 더 못 들어갔어. 네가 갑자기 연락해서 영상 얘기를 하기 전까진.”


“상대가 누군지는 전혀 모르지만, 그 정도도 모를 애는 아니지 싶은데. 아마 다 알고 있었을 걸?”


내 말에 녀석이 다시 한 번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당연한 소리잖아? 입시가 끝났을 텐데도 연락이 없고, 자신이 게시판 관리자로 활동하던 카페에도 들어오지 않으니 아마도 떨어졌겠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연락을 하더라도 받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은 뒤늦게나마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뿐. 아마도 매년 2월 13일 밤마다 약속장소에 나가서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와 주지 않으면 홀로 집으로 돌아와 약속의 영상을 카페에 업로드했다. 언젠가 우연히라도 이곳을 기억해내서 들러 준다면 자신이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말도 안 돼. 왜 나 같은 걸?”


“지금은 그런 의문을 가질 때가 아니지. 영상이 올라오고 있는 한 그 애는 계속 너를 기다리고 있는 거잖아. 널 사랑해 주는 사람을 지금까지 기다리게 했으면, 늦었더라도 답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5년 동안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어. 싫은지 좋은지, 사귈 건지 말 건지, 무슨 신호를 보내주든 간에 그건 네 자유야. 하지만 아무런 신호도 얻을 수 없다면 그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이렇게 쏘아붙였더니 녀석도 뭔가 결심한 눈치였다. 그렇다면 이 뒤의 일을 간섭하는 것은 멋없는 짓이겠지. 수수께끼는 풀렸고 잡음은 모두 걷혔다. 이제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신호를 그저 관측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서길준의 과학나라'의 지구/천문 게시판에 다시 들어가 본 것은 일주일 뒤였다. 여전히 게시판에는 광고와 헛소리가 가득했지만, 그 사이에서 신호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게시판지기가 자신의 ‘정말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새 공지로 올라와 있었으니까. 그 자신감 없던 녀석이 사진 속에서는 어찌나 행복해 보이는지 내가 다 실실 웃게 될 지경이었다.


00openclipartorg_valentine.jpg “정말 로맨틱하지 않아요? 중학교 때의 사랑을 7년 동안이나 기다린다는 거.”


“인터넷에서 만나서, 실제로는 겨우 한 번 봤을 뿐인데 말이지.”


“한 번 사랑에 빠지고 나니까, 그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그저 잡음으로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던 거예요. 잡음이 아무리 시끄럽든 중요한 건 신호잖아요?”


여전히 침착 무표정한 과학자 언니에게 나는 다시금 신이 나서 설명했다. 저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외계생명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느꼈을 때, 전파망원경 관측소에서 일하던 과학자는 WOW!라는 순수한 감격의 탄성을 기록했다고. 무수히 많은 잡음 속에서 단 하나의 신호를 골라내는 일-그것을 성공한다면 분명히 누구나 기쁨을 주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제2화 끝>



박상민 광주과학기술원 대학원생(화학전공)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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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민 광주과학기술원 석사과정 대학원생, 화학 전공
화학 전공 대학원생 겸 초보 작가. 과학이 좋은지 글쓰기가 좋은지 계속 갈팡질팡했지만, 지금은 죽을 때까지 갈팡질팡하기로 결심했다. 제대로 갈팡질팡하는 것도 어렵다는 사실을 매일 느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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