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블랙홀의 생성' 보여주는 과학시나리오들은 지금

LIGO » 블랙홀 생성과정 연구에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는 중력파 검출기 LIGO. 미국 리빙스톤 소재. 출처: http://www.ligo.caltech.edu/
 

 

은하와 블랙홀의 공생 (2)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앞글] 은하와 블랙홀의 공생 (1)

  블랙홀 질량과 은하의 속도 분산

 

 

line » ■ 이 글은 고등과학원이 내는 간행물인 <과학의 지평>(41호, 2009년 8월)에 실렸던 이형목 교수의 글입니다. 천체물리학 전문가가 쓴 이 글을 고등과학원과 저자의 허락을 받아 웹진에 두 차례로 나누어 옮겨 싣습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주신 고등과학원과 저자한테 감사드립니다. -사이언스 온 편집자

가까운 은하의 중심부에 대한 정교한 분광 관측이 진행되면서 블랙홀의 질량은 모은하의 질량보다는 속도 분산과 더 좋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2000년에 발표되었다. 그림 3에는 블랙홀 질량이 비교적 정확히 관측된 은하들에 대한 속도 분산과 블랙홀 질량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블랙홀의 질량을 측정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대두된 것은 ‘반향 측량법 (reverberation mapping)’이다. 이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간단히 원리를 말하자면 활동성 은하핵의 아주 중심 부분에서 나오는 빛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영역에서 나오는 빛을 구분하여 중심에서 일어난 변화가 바깥 부분에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함으로써 바깥 부분의 크기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안쪽에서 나오는 빛은 주로 연속 복사이며 바깥 부분에서 나오는 빛은 방출선이기 때문에 속도 정보도 같이 가지고 있다.

 

만약 방출선을 내는 영역(바깥 부분)의 크기를 이 방법으로 추정할 수 있으면 대략적인 블랙홀의 질량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방법은 활동성 은하에만 적용된다는 단점이 있으나 거리에 상관없이 충분히 밝은 천체라면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반면 연속 복사와 선복사의 변광을 같이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블랙홀은하 » 그림3. 은하에 있는 별들의 속도 분산과 블랙홀 질량 사이의 상관관계.

 

이 방법을 통해서 구한 활동성 은하나 퀘이사의 블랙홀 질량 역시 은하의 속도 분산과 좋은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다만 반향 측정법의 경우 질량을 직접 측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근접 은하에 대한 역학적 질량 측정 결과와 비교함으로서 제거할 수 있다.

 

속도 분산은 대개 은하 중심부의 중력 포텐셜과 역시 비례한다. 결국 블랙홀의 질량은 중력장의 깊이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쉽사리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블랙홀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은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튼 블랙홀 질량-은하의 속도 분산 사이의 상관관계는 블랙홀의 생성과 성장 과정에서 은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말해주는 중요한 관측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관측 가능한 질량의 블랙홀이 있음직한 은하에 대한 관측을 해보면 거의 예외 없이 모두 그 증거가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은하 중심부 블랙홀은 이제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모든 은하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현상인 것이다.

 

 

블랙홀의 생성과 진화

 

불행히도 아직까지 거대질량 블랙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이론은 잘 정립되어 있지 않다. 은하 자체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은하 가운데에 있는 블랙홀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우주 모형에 의하면 질량이 작은 은하들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들이 뭉쳐져서 점점 큰 은하로 자라나게 된다. 실제로 먼 은하에 대한 관측 데이터를 보면 아주 먼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적색이동이 큰 천체들은 대개 그 크기가 작은 것들이 많다. 은하 중심부에는 대부분 하나의 블랙홀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작은 은하에 작은 블랙홀이 있었다면 은하 합병 과정에서 블랙홀 역시 합병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합병이 이루어지고 있는 은하의 중심부에는 두 개의 쌍 블랙홀이 일시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쌍 블랙홀이 발견된 예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은하가 합병을 통해 성장하면서 블랙홀 질량도 자랄 수 있다고 하지만, 개개 은하의 블랙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질량이 작은 은하라고 해도 중심 블랙홀의 질량은 적어도 태양 질량의 수십만~수백만 배는 되어야 한다. 이런 블랙홀이 한꺼번에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서서히 자라났는지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만약 밀도와 질량이 큰 가스 덩어리가 수축한다면 단번에 블랙홀을 만들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가스 덩어리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경우 각운동량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한다면 원심력이 가스의 수축을 막게 된다. 또 설사 회전이 너무 느려 원심력이 중요해지지 않는다 해도 가스 덩어리가 수축하는 과정에서 작은 덩어리로 쪼개진다. 질량이 아주 큰 가스 덩어리가 수축하더라도 실제로 만들어지는 것은 전체 질량보다 훨씬 작은 질량의 블랙홀이 되기 십상이다. 그나마 쪼개진 덩어리들이 블랙홀로 변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만약 블랙홀이 만들어진다면 그 질량은 태양 질량의 1,000~10,000배 정도일 것이다. 이런 정도의 블랙홀이 현재 관측되는 질량 정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주변 가스를 끌어들여야 한다. 만약 주변에 가스가 충분하다면 블랙홀은 에딩턴 광도 정도를 유지하면서 물질을 끌어들일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의 질량을 10배로 늘리는 데 약 1억년이 걸린다.

 

매우 큰 질량의 블랙홀로 자라기 전의 초기 블랙홀을 ‘씨앗’ 블랙홀이라 부른다. 위에서 설명한 것은 씨앗 블랙홀이 가스 덩어리의 수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시나리오이지만 훨씬 작은 질량의 블랙홀이 서로 뭉치면서 자랄 수도 있다. 무거운 별은 진화해 태양 질량의 10배 정도 되는 블랙홀을 남긴다. 은하 중심부는 별들이 아주 많이 밀집되어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런 블랙홀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주변 별들과의 역학적 상호 작용을 통해 중심 부분으로 몰려들고, 쌍 블랙홀을 만들 수 있다. 이들은 다시 주위에 있는 블랙홀들과 근접 충돌을 하면서 궤도 반지름이 점점 줄어들고 궁극적으로 중력파를 내면서 합병을 한다.

 

이런 합병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 수십~수백 개가 모여 하나의 블랙홀로 변할 수 있고, 이 블랙홀이 씨앗 역할을 한다. 씨앗 블랙홀이 자라나는 과정은 주변 가스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블랙홀은 막대한 에너지를 낸다.

 

지금까지 설명한 블랙홀의 생성과 성장 이론에는 수많은 허점이 있다. 만약 가스 덩어리가 분열하면서 씨앗 블랙홀이 만들어졌다면 아주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거대 질량 블랙홀로 성장한 것 이외의 다른 씨앗 블랙홀들은 어디로 갔을까? 은하 중심부에는 씨앗 블랙홀을 하나만 만들 수 있었을까? 과연 질량이 작은 씨앗 블랙홀로부터 현재 관측되는 것과 같은 태양 질량의 수십억 배를 가진 블랙홀로 성장시킬 수 있었을까? 은하마다 주위 환경이나 내부 구조가 모두 다른데 어떻게 질량-속도 분산 상관관계가 성립될 수 있었을까?

 

어느 질문 하나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블랙홀 생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수십 년간 은하의 생성과 진화에 관해 수많은 새로운 사실이 관측되고 발견되었으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질량 블랙홀의 생성 문제에 다가가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블랙홀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생성 과정을 직접 보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중력파를 직접 검출할 수 있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블랙홀

 

 

중력파 검출과 블랙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중력파의 존재를 예측하고 있다. 잔잔한 물에 돌이 떨어지면 물결이 퍼져 나가듯 중력장의 요동이 공간을 통해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것을 중력파라고 한다. 중력파는 미세하게 공간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임의의 두 점 사이의 거리를 측정함으로써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중력파의 파동 세기는 아주 미약하기 때문에 측정이 매우 어렵다.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실험이 행해졌지만 아직도 중력파를 검출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검출기의 감도를 꾸준히 높여 왔고 조만간 검출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가장 좋은 감도를 가지고 있는 중력파 검출기는 LIGO(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이다. LIGO는 미국의 워싱턴주의 핸퍼드(Hanford)와 루이지아나주의 리빙스톤(Livingston)에 거의 같은 관측 장치를 설치하여 동시에 가동시키고 있다. 두 개의 관측소가 필요한 이유는 잡음이나 가짜 신호를 걸러내고 중력파를 내는 천체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이다. 지역적으로 독립된 두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중력파 신호가 검출되면 실제 신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중력파원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는 두 검출기를 통과하는 신호의 시간 차이를 이용한다.

 

LIGO가 검출하게 될 중력파원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근접 쌍성을 구성하는 두 개의 중성자별의 충돌 현상이다. 이들은 은하 중심부의 거대질량 블랙홀과는 큰 관계가 없다. 다만 태양 질량의 10배 정도 되는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의 충돌 현상을 매우 자주 보게 될 것이다. 거대 질량 블랙홀과 더 깊은 관련을 가진 중력파 실험은 LISA(Laser Interferometer Space Antenna)로서 우주 공간에 세 개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한 변의 길이가 100만 km 이상인 정 삼각형을 이루도록 만들어 간섭계를 구성하고 각 변의 길이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주 아무리 먼 곳에서 일어나는 거대질량 블랙홀의 충돌도 모두 관측할 수 있다. 블랙홀 생성이나 성장 과정은 어떤 진동수의 중력파가 얼마나 자주 검출되는가를 분석함으로서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다.

 

중력파 검출이 지금은 꿈처럼 느껴지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이 될 것이다. 거대 질량 블랙홀의 생성이나 성장 과정은 이러한 중력파 검출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우주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이론과 관측이라는 양 날개를 통해서 발전해 왔다. 지금까지는 망원경을 이용한 정교한 관측을 통해 거대 질량 블랙홀의 존재와 그 특성에 대한 연구가 주로 이루어졌다. 이제 우리의 관심사는 그들이 왜 존재하고 은하의 진화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으며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하는 질문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런 질문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수단이 중력파 관측인 것이다.

 

한 가지 사족을 붙인다면 국내에서도 중력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점차 늘어나 LIGO를 운용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하며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대규모 그룹인 LSC(LIGO Scientific Collaboration)에 참여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거두고 있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2009년 9월 하순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LSC에 정식 참여를 하기 위한 제안이 이루어질 것이고 바로 회원들의 투표를 거쳐 회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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