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급팽창 입증 첫 단추…검증·후속 연구 주목

원시 중력파 관측결과 발표, 의미와 과제


기고: 이석천 고등과학원 연구원

00gravitationwave1.jpg » 우주에서 날아오는 우주배경복사의 빛에서, 원시 중력파의 효과로 생기는 특정한 편광의 패턴을 찾아낸 그림. 출처/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CfA)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 성경 창세기 1장 3절


난 3월 18일, 우주론 연구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가 발표됐다. 우주 태초에 빛보다 빠르게 공간이 팽창한 이른바 ‘급팽창(인플레이션)’의 순간이 우주 대폭발(빅뱅) 직후 있었기에 지금 우주의 구조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현대 우주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우주 관측 결과였다. 이번에 분석된 관측 데이터는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연구진이 중심이 되어 ‘바이셉2(BICEP2: Background Imaging of Cosmic Extragalactic Polarization 2)’라는 이름으로 남극 지역의 전파망원경 시설에서 오랜 동안 수행해 얻은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와 관련해, 대중매체에 실린 관련 기사들의 제목을 보면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 증거를 찾았다”와 같은 자극적인 문구도 자주 눈에 띈다. 어느 과학 연구성과에 대한 매체의 반응과 실제 연구 분야 종사자 사이의 반응에는 엄청난 괴리가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급팽창 가설을 지지하는 간접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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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바이셉2의 연구성과는 (만약 이 연구 결과가 올바르다고 가정하면) 현재 우주론이 우주 급팽창(cosmic inflation) 모델로 받아들이던 한 갈래의 가설을 지지하는 간접적인 증명이며, 그 성과는 간과할 수 없는 업적인 것이 틀림없다.


번 바이셉2 실험의 업적은 우주에서 오는 빛의 편광 상태 측정을 통해서 우주 급팽창 당시에 생성된 중력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즉, 빛은 항상 거기에 있었지만, 중력파의 영향으로 생기는 시공간의 미세한 변화가 그 빛을 특정한 편광 상태를 지니도록 바꾸고, 그렇게 바뀐 빛의 특정 편광 상태를 관측함으로써 중력파의 존재를 추적하는 관측 실험이다. 사실, 과학이 갈 수 있는 영역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빛이 왜 거기에 있었고 우주는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토대를 둔 현재 우주론은 해답을 줄 수 없다. 우주론은 신의 영역에 관한 답을 할 수 없으니, 단지 어떤 일이 벌어졌고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현 시점의 우주론 학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에 의하면 우주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팽창하고 있다. 즉, 초기 우주는 지금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존재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의 거대 구조를 지닌 우주로 진화한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에서는 우주 탄생 직후를 빅뱅(Big Bang)이라 명명하고 우주가 어떤 한 순간에 존재하기 시작해 그 크기가 팽창하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발견한 사실, 즉 “우주에서 두 지점(천체) 사이 공간의 팽창 속도는 지상에서 그곳까지 거리에 비례한다”라는 사실을 잘 설명할 수 있다.



왜 인플레이션, 인플라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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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빅뱅이론으로는 지금 우리가 보는 우주가 평균적으로 균등하고 등방하다는 사실(우주의 평균 온도는 어느 곳, 어느 방향에서나 2.7K, 즉 섭씨 영하 270도 가량으로 동일하다)을 설명할 수 없으며, 우주의 나이가 왜 138억 년인지, 우주 공간이 왜 편평한지를 설명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푸는 데 도입된 가설이 바로 ‘급팽창 가설’인 것이다.


팽창 가설은 앞에서 언급한 빅뱅 이론의 세 가지 문제점을 우주 크기가 어느 순간에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해(물질의 이동 속도와 달리 공간의 팽창 속도는 빛보다 빠를 수 있다) 그 당시 빛이 도달할 수 있는 공간보다 훨씬 큰 우주를 생성함으로써 우주의 균등. 등방. 나이, 편평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우주 급팽창이 빅뱅의 문제점을 해결해준다. 그러나 급팽창을 일으키는 원인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


급팽창을 일으키는 방법 중 하나로 ‘인플라톤(inflaton)’이라는 입자가 우주 초기에 존재해 우주 급팽창을 일으켰다는 가설이 앨런 구스에 의해 1980년 처음 대두했다. 그리고 이 가설은 안드레이 린데에 의해 지금 우주론에서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수정되고 발전했다. 이 모델은 인플라톤 입자가 중력 위치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그 중력 에너지의 감소가 우주에 필요한 급팽창의 근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의 장점은 앞에서 언급한 빅뱅 이론을 보완하면서도 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행성, 은하, 은하단등의 거시 구조를 생성하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주의 거시 구조에는 중력만이 존재하는데 이 작은 씨앗 중 조금 더 무거운 지점이 덜 무거운 부분보다 중력이 강해 이 작은 씨앗들이 점점 뭉쳐져 지금의 거시 구조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또한 빛의 섭동량도 결국 물질의 섭동량에 근원을 두는데 그 씨앗이 바로 인플라톤 입자인 것이다. 즉, 일석이조의 모델인 것이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인플라톤이라는 입자들이 물질로 변하고 다시 이 물질의 섭동량이 우주가 진화하면서 커져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거시 구조를 구성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현재 우주론의 예측이다.



가설을 뒷받침한 관측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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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런 가설을 뒷받침했다는 바이셉2의 연구성과에서 실제로 관측된 것은 무엇인가?

초에 존재했던 빛(우주배경복사)은 지금 절대온도 2.7K의 온도로 우주 모든 곳에 균일하게 퍼져 있다. 그런데 빛의 파동은 (진동방향과 진행방향이 일치하는) 물결 파동과는 달리 진동방향과 진행방향이 직각을 이루는 ‘편광’ 특성을 지니는데, 특히 특정한 편광 패턴(원형 편광)은 중력파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우주배경복사에서 편광 패턴을 관측한 것은 곧 원시 중력파의 흔적을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편광 패턴의 신호는 우주에서 오는 빛(우주배경복사)의 온도보다 100만 분의 1도 정도로 작은 값을 지녀, 그것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매우 정밀한 실험 장치와 안정된 대기 환경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바이셉2는 안정된 환경 조건을 갖춘 남극 지역에서 잠자리 눈 모양의 512개 검출기 관측 시설을 갖추고서 지상에서 볼 때 보름달 1900여 개가 들어갈 만한 넓이의 하늘을 관측했다. 150기가헤르츠(GHz) 주파수 대역의 신호를 600여 일에 걸쳐 관측하면서 우주에서 날아오는 빛의 특정한 편광 성분(원형 편광)을 걸러냈다. 연구팀은 이런 편광의 우주 분포와 패턴을 관측하고 분석해 원시 중력파의 흔적을 찾아내 이를 급팽창의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주의 급팽창은 약 10-37 초에 일어났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학계에 주는 의미… 후속 연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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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구성과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도입했던 가설인 ‘인플라톤의 인플레이션 모델’이 확인될 수 있는 중요한 결과이다. 다른 갈래의 복잡한 가설을 제외한 상태에서 가장 단순한 모델이 실험치를 가장 잘 맞힐 수 있음을 보여준 점도 흥미롭다. 그동안 원형 편광에 대한 관측은 그 신호가 매우 약해 검출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바이셉2 연구단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채 남극에서 꿋꿋하게 도전해온 과정도 학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번에 검출된 것으로 보이는 원형 편광은 바이셉2에서 관측된 영역보다 더 작은 영역에서도 검출될 수 있다. 다른 원형 편광을 측정하는 실험들의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또한 중력파 자체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한국중력파연구단도 참여한 국제 수준의 중력파 검출 연구도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연구 성과로 인해 초끈 이론 등에서 도출되는 급팽창 모델들은 퇴장하게 되었다고 평가하기에는 현재로선 성급한 면이 있다.


현재 우주론을 정의하자면 거시 구조를 관측하는 천문학 관측과 미시 구조를 설명하는 소립자론의 접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우주론이 거시 구조 관측을 통한 입증의 단계였다면 이번 바이셉2의 관측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의 예측을 우주론을 통해 입증한 첫 단추인 것이다. 가시적인 것만이 가치 있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인간의 상상에나 등장할 법한 비정형화된 것들이 우리 삶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 준 연구성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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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석천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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