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초고체'의 존재 이유 실마리를 풀다

2004년 초고체 발견 김은성 교수, 헬륨에서 ‘숨겨진 상’ 규명

“초고체 생성 원리 실마리 찾아”…'네이처 피직스'에 논문 발표

   

supersolid

 

2004년 ‘초고체’를 찾아내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보고했던 김은성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는 4일 “비틀림진동자라는 초정밀 분석장치를 이용해 초고체 상태에 숨겨진 상(phase)을 발견해 초고체 생성 원리의 실마리를 풀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 연구팀의 논문은 <네이처 피직스> 온라인판 5일치에 게재됐다.     중학교 1학년 과학 교과서에는 ‘물질의 세가지 상태’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고체, 액체, 기체를 모양과 부피로 구분한다. 고체는 담는 그릇에 상관 없이 모양과 부피가 변하지 않고, 액체는 모양은 변하나 부피는 일정하고, 기체는 모양과 부피를 정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기체가 고온에서 고도로 이온화한 상태, 곧 플라스마는 고체·액체·기체와는 완연히 성질이 달라 ‘제4의 상태’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이 세가지로 설명이 되지 않는, 초전도체, 초유체 등의 물질 상태가 존재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인도의 물리학자 사첸드라 내스 보스는 1924~1925년에 이를 예견했다. 양자역학적 계산으로는, 원자들의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되고 가까워지면 수많은 원자들이 마치 하나의 집단인 것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BEC) 현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지난 세기 동안 여러 과학자들이 기체와 액체에서 실제 이런 현상이 존재함을 증명했다.   1938년 옛 소련 물리학자 표트르 카피차는 헬륨(4He)을 절대온도 2.176도 이하로 냉각시켰을 때 액체 헬륨이 아무런 점성도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초유체(Superfluid)'로 변하는 것을 확인했다. 카피차는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유체의 기본 성질인 점성(viscosity)이 제로인 상태를 빗대 ‘초’(super)라는 접두어가 붙여졌다. 1995년에는 기체에서도 이런 현상이 관찰됐다.    유체가 점성을 잃으면 컵에 담아 놓아도 아무 저항 없이 저절로 밖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초유체를 레코드판처럼 회전판에 올려 놓고 돌린다면 동전을 올려놓고 돌렸을 때와는 다른 현상을 볼 수 있다. 동전은 회전판을 느리게 돌리면 마찰력 때문에 판에 들러붙은 상태로 함께 돈다. 그러나 초유체는 회전판의 회전에 상관없이 그대로 정지해 있게 된다. 이를 ‘비고전적 회전 관성’(Nonclassical Rotational Inertia·NCRI)이라 부른다.   김은성 교수는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물리학과에서 박사과정 중이던 2004년 지도교수인 모제스 찬 교수와 함께 고체에서도 이런 ‘비고전적 회전 관성’ 현상이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김 교수는 헬륨-4(4He·양성자와 중성자가 각각 두개인 헬륨)를 유리그릇에 놓고 대기압의 62배인 고압 상태에서 냉각시켜 고체로 만들었다. 이 유리그릇을 온도를 낮춰가며 회전시켰더니 절대온도 0.175도에서 일부 원자들이 마치 점성이 사라진 초유체처럼 아무 저항 없이 다른 원자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 결과 유리그릇의 질량이 줄어들어 회전 속도가 빨라졌다.   김 교수는 이를 초유체에 빗대 ‘초고체’(Supersolid)라 불렀다. 고체보다 단단하다는 뜻이 아니라, 초유체적 고체, 고체형 초유체라는 의미다. 김 교수팀의 논문은 2004년 1월 <네이처>에 발표됐고, 실험의 제한 조건들을 없애 일반적인 고체 상태에서도 초유동성이 존재함을 증명해 같은해 9월 <사이언스>에 추가 논문이 게재됐다.   김은성교수 » 김은성 카이스트 교수 김 교수는 2006년 한국과학기술원으로 부임해온 뒤 초고체의 특성을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초고체의 존재는 밝혀냈지만, 과학자는 ‘존재의 이유’까지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 장치였다. 교육과학기술부 창의적연구진흥사업단으로 선정돼 희석식 냉각장치와 정밀분석장치 등을 토대로 실험설계를 마무리하고 본격 연구에 들어가 이번에 첫 결실을 맺은 것이다.   연구팀은 초고체를 특정 온도에서 약하게 진동시키다가 갑자기 강하게 진동시킬 때 나오는 반응으로 초고체의 동역학을 실시간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시간에 따른 초고체의 반응이 온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진동 세기를 변화시켰을 때 바뀌기 이전 상태의 특성이 어느 정도 지속되는 ‘이력현상’을 발견했다. 이력현상(히스테리시스)이란 어떤 상태가 변화를 겪었을 때 그 변화를 이끈 조건이 사라졌을 때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가령 쇠붙이에  강한 자석을 붙여 자계가 걸리도록 하고나서 자석을 떼어놓아도 자성력이 없던 초기상태로 돌아가지 않고 자석이 되는 원리다. 김 교수는 “이는 초고체 상태에도 여러 단계의 서로 다른 안정한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며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이겠지만, 이 숨겨진 상(phase)의 발견은 초고체가 왜 생기는지 근본원인을 밝힐 수 있는 단서가 된다”고 말했다.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이근영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선임기자
때론 현미경으로 과학, 과학자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때론 멀리서 망원경으로 방관하는 문과 출신 과학기자. 과학과 대중의 소통과 과학기자의 역할에 관해 연구 중.
이메일 : kylee@hani.co.kr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알림] 사이언스온이 미래&과학으로 바뀝니다[알림] 사이언스온이 미래&과학으로 바뀝니다

    뉴스사이언스온 | 2017. 12. 11

    미래/과학/기술/환경 뉴스와 비평, 연재물 서비스사이언스온 옛 글들은 지금처럼 접근 가능합니다 독자님들께안녕하세요. 그동안 작은 도전이었던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의 필자들을 격려해주시고 또 웹진을 사랑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

  • “언어사용 패턴은, 몸의 스트레스 보여주는 지표”“언어사용 패턴은, 몸의 스트레스 보여주는 지표”

    뉴스오철우 | 2017. 11. 07

    특정 언어사용패턴과 스트레스 관련 유전자발현 사이에 ‘상관성’“무의식적 언어패턴이 의식적 자가보고보다 측정정확도 더 높아” 일상언어 사용의 패턴이 말하는 이 자신도 잘 모르는 몸의 스트레스 반응을 알려주는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연구결...

  • 정교해진 유전자가위…‘염기’ 하나만 바꾼다정교해진 유전자가위…‘염기’ 하나만 바꾼다

    뉴스오철우 | 2017. 11. 07

    ※ 이 글은 한겨레 11월6치 '미래&과학' 섹션 지면에 실렸습니다. 지면 편집 과정에서 분량을 줄이기 이전 원고를 사이언스온에 올립니다. 편집 과정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정교해진 유전자가위염기 하나만 바꿔치기[미래&과학] 주목받는...

  • ‘노화는 불가피하다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노화는 불가피하다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뉴스오철우 | 2017. 11. 03

    수학적 모형 분석 논문 ‘눈길’세포간 경쟁과 선택, 노화와 암의 ‘딜레마’ 같은 상호관계 다뤄‘노화는 불가피하다. 논리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수학적으로도 노화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노화를 일정 정도 늦출 순 있어도 멈출 순 없다는 ...

  • 염기 하나만 바꾸는 단일염기 수정기법의 '확장'염기 하나만 바꾸는 단일염기 수정기법의 '확장'

    뉴스오철우 | 2017. 10. 26

    시토신-구아닌 쌍을 티민-아데닌 쌍으로 ‘점 수정’ 이어아데닌-티민 쌍을 구아닌-시토닌 쌍으로 수정기법 개발하버드대학 리우 교수와 MIT 펑 장 교수 각각 성과 발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법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되 디엔에이(DNA) 두 가닥을 ...

자유게시판 너른마당

인기글

최근댓글

트위터 팔로우

sub2 untit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