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영국과학자 놀래킨 북한의 백두산 화산관측 분투

과학저널 ‘사이언스’ 기자, 북한 화산 연구 방문취재기
내년 북한-중국 협력연구 시작, 외국연구자 참여 기대


"마그마 거동 알려면 중국-북한쪽 협력연구 입체 관측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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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002~2005년 중국 과학자들이 백두산에서 관측된 이상 징후들이 화산 대폭발의 전조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이제는 백두산의 화산 분출 가능성이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큰 관심사가 됐다. 1천 년 주기설이 다시 조명을 받았으며, 백두산 천지에 있는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내리고 화산 분출 물질이 퍼지면서 생길 수 있는 재앙에 대한 우려들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이 1990년대 이래 중국은 백두산의 중국 쪽 영토 지역(중국 이름은 ‘장백산’이다. 백두산의 3분의 2는 중국 영토에 속해 있다)에 11개의 디지털 지진관측소, 16곳의 지피에스 관측소를 두어 운영할 정도로 촘촘한 관측 네트워크를 갖추면서 백두산 화산 연구를 주도해왔다. 그러면 백두산의 북한 쪽 영토에서는 관측 활동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최신호(11월4일치)에서 서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백두산 관측 설비와 연구자들을 직접 취재한 리처드 스톤 기자의 북한 방문취재기를 “북한 운명의 산에서 벌이는 경계 보초”라는 제목의 초점 뉴스로 5쪽에 걸쳐 집중 보도했다. 이번 방북 취재에는 영국 지질학자 제임스 해몬드(James Hammond) 임페리얼대 교수와 클리브 오펜하이머(Clive Oppenheimer)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동행했다.


사이언스의 보도를 보면, 중국 과학자뿐 아니라 북한 과학자들도 백두산의 화산 활동 동향에 대해 민감하게 경계하고 있으며, 턱없이 부족한 장비와 시설을 갖추고도 연구자의 열정을 지니고서 ‘악전고투’의 관측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소개됐다. 평양에 있는 지진국 화산연구소의 김항명(Kim Hang Myong) 전 소장은 “(백두산 대폭발이 일어나면) 피해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클 것”이라며 우려했다.


중국이 장백산 둘레를 촘촘한 관측 네트워크로 채운 데 비해, 북한은 백두산에 여섯 대의 지진계를 설치했으며 그나마 하나만이 디지털이고 나머지는 중국제 아날로그 지진계 개조품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양광이나 축전지를 이용하며, 관측 데이터는 관측 지점에서 평양의 연구소로 전송된다. 겨울에는 눈이 태양광 패널에 덮혀 이마저 작동하지 않는 일도 많다고 한다.


방북 일행을 놀라게 한 것은 백두산 천지에 있는 북한 관측소의 악전고투였다. 수백 미터의 지그재그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백두산 천지 호수의 연안에 현장 관측소가 있다(위 사진). 동행한 영국 과학자 오펜하이머는 이 관측소를 보고는 “믿기 힘들다”며 놀랐다고 사이언스는 전했다. 그는 “화산 분화구 안에 사람이 거주하는 관측소가 있는 곳을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만약에 화산 활동에 이상 조짐이 생기면 관측 기술자들은 얼어붙은 돌계단으로 탈출하기도 쉽잖은 지형이기 때문이다. 돌계단 외의 교통수단인 곤돌라는 겨울철에는 가동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겨울에 4명이 숙식하며 분화구 380여 미터 아래의 구멍과 2곳의 온천수에서 스며나오는 가스를 관측하며, 천지 호수에 배를 타고나가거나 한겨울엔 얼음 구멍을 뚫어 시료를 채취한 뒤에 염화물과 산도(pH)를 측정하는 일을 한다. 이런 물질의 농도 변화를 측정하면 마그마 거동의 이상동향과 화산 분출의 전조를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한다. 가스 감지기 몇 대는 사용불능 상태라고 한다.


사이언스 기자는 최신 장비를 갖추고서 “세계 최고의 화산 관측소 건설”을 꿈꾸는 중국의 상황과 달리, 최신 장비조차 없는 북한의 상황을 대비해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백두산 관측 능력의 향상과 외국 연구자와의 협력 연구를 바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전했다. 북한 지진국의 윤용군(Yun Yong Kun) 사무차장은 “화산을 모니터링 하고 분출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능력을 확보하기를 희망한다”며 “(이를 위해 외국 과학자의 참여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고 말했으며, 화산연구소의 지진학자인 김경송(Kim Gyong Song) 박사는 영국 과학자들이 이번 방북 때 들고간 광대역 지진계를 보고서 “이런 지진계가 긴급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대역 지진계는 정밀 관측에 필요한 현대식 장비다.


사이언스는 중국 쪽에서 활발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백두산 내부의 마그마 동향과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백두산의 중국 쪽 영역뿐 아니라 북한 쪽 영역에서도 관측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연구자들의 지적을 전했다. 자기공명영상(MRI)로 몸 내부를 들여다보듯이, 지진파나 전자파 신호를 이용해 백두산 내부의 마그마 동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그 정확한 자료를 얻으려면 백두산 전체에 두루 관측소를 배치해 입체적인 관측 데이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언스는 중국과 북한이 동맹 관계에 있지만 지난 핵실험 때에 북한이 중국 쪽에 핵실험 기간에 국경 부근의 지진계를 꺼줄 것을 요청할 정도로 지진과 화산 연구는 민감한 분야이기 때문에 그동안 두 나라의 협력 연구가 잘 이뤄지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이런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사이언스는 전망했다. 지난 7월 북한은 지진국의 허락을 받고 북한 과학자가 현장에서 동행하는 조건에서 외국인이 북한에서 화산이나 지진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법률을 제정했으며, 또한 내년부터는 중국 연구자들이 북한에서 북한 연구자들과 협력 연구를 벌일 계획이다. 이번에 방북했던 해몬드 교수와 오펜하이머 교수도 내년 여름에 다시 북한을 방문해 이르면 2013년까지 북한-중국 국경을 넘어서는 관측 프로젝트를 시도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런 연구 프로젝트가 제대로 가동된다면 내년 이후부터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북한 과학자들의 국제 협력 연구가 훨씬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이언스 보도 내용과는 별개로 한국 지질자원연구원을 중심으로 국제대륙과학시추프로그램(ICDP)을 통한 백두산 시추 프로그램이 제안되고 있으며, 교육과학기술부는 남북한 과학자들의 백두산 공동 관측 프로그램의 추진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에 세계 과학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큰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방북 취재 보도로 인해 "백두산 화산 관측과 연구는 국제 사회에서도 관심사로 떠오를 것"으로 국내 지질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 관련 기사로,  '백두산의 주요 이상징후 어떤게 있나? 어떻게 봐야 하나?' 주제의 글을 뒤이어 오후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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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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