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뮤즈를 만났다
#12. 창의력
창의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의 탄생>[1]이란 책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한 13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관찰, 추상화, 감정이입, 모형 만들기, 변형, 통합 등등.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창의적인 생각들의 13가지 분류일 뿐이다. 예를 들면, 아이폰은 컴퓨터(정확히는 아이팟)와 전화기를 합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다. ‘통합’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와 ‘전화기’를 통합한 것이 핵심이다. 아무거나 통합한다고 해서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현대 무용가 트와일라 타프도 책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했다.[2] 창의력이야말로 규칙과 습관의 산물이라고 하기도 하고, 먼저 기술과 테크닉을 가져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도 한다. 아이디어는 공기처럼 도처에 널려 있다고 하면서 또한 행운이 필요하다고도 한다. 세 줄 요약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기술을 익혀라. 아무 거나 마구, 계속 시도해봐라. 새로운 게 하나쯤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은 언제 나오는 것인가?
카이스트 한동수 교수는 ‘느긋한 몰입’을 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고 강조한다.[3] 하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바쁘게 일을 하거나, 게임에 열중할 때 뭔가가 생각날 리는 없지 않은가.
공식을 만드는 데 공식은 없다. 새로운 것이 나오는 데 정해진 방법은 있을 수 없다. 공식을 대입해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창의적 활동은 아니지 않은가. 정해진 방법대로 생각해서 나온 것을 새롭다고 보는 것도 좀 이상하다. 물론, 위에 언급한 책에서도 그랬듯이, 새로운 생각들을 정해진 방법으로 분류해 볼 수는 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발명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4]거나 ‘창의력도 노력하면 키워지고 올바른 방법으로 연습하면 더 많이 커진다.’[5]고 하는 사람도 있다. 창의력을 훈련할 수 있다는 책도 나온다.[6] 다분히 신자유주의적인 메시지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이룰 수 있다.’ 물론, 누구나 새로운 생각은 해보았을 것이다. 쓸모가 없었을 뿐이지. 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더 새로운 생각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더욱 기괴했을 뿐이지.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마음먹을 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수많은 예술가들이 슬럼프를 겪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라면, 창의력에 대한 수많은 책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주제의 책이 나오고, 계속해서 팔리기까지 한다는 것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라는 데 대한 명백한 증거다.
따라서, 과학자에게도 뮤즈[7]가 필요하다. 뮤즈를 향한 기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카페에서 우아하게 생각에 잠겨도,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느긋한 몰입을 해도, 산책하며 찬바람에 머리를 식혀도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다 어느 순간 뮤즈가 속삭이고 떠난다. 그 순간, 누가 더 귀를 기울이고 누가 더 재빠르게 받아 적어내려 갔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뮤즈는 원래 학문과 예술의 신이라고 한다. 예술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신과 거리가 먼 ‘과학’이란 분야에서 그리스 신화를 끌고 들어온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세계 70억 인구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실험으로 증명해내는 것이, 결코 나만의 능력으론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밤하늘을 보며 우주 끝을 상상할 때 같은, 영화 <그래비티(Gravity)>에서 그려낸 그런 막막함이 나를 짓누른다. 기도할 대상이라도 필요하다.
지도교수님께서 도와주지 않느냐고? 물론 도와주시긴 하지. 하지만 교수님이 명확하게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이미 연구가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을 밝혀내야 연구다.
그리고 난 마침내, 화장실에서 뮤즈를 만났다.
침대를 뒹굴며 논문을 읽던 중이었다. 공유캐시메모리, 그러니까 탕수육 나눠 먹기에 대한 논문이었다. 지난번에 발표했던 논문[8]은 한 접시의 탕수육을 정해진 비율대로 미리 나누어 놓고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기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한 접시의 탕수육을 어떤 비율로 나누어 먹어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풀었다. 반면, 지금 읽고 있는 논문[9]은 한 접시의 탕수육을 미리 나누어 놓고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정했다. 현실적인 가정이다. 요즘 팔고 있는 컴퓨터의 대부분에도 공유캐시메모리를 지정한 비율대로 나누어 놓고 사용하는 기능이 없으니까. 대신, ‘식탁이 두 개 이상이고 각각 한 접시의 탕수육이 놓였을 때, 사람들을 어떻게 앉혀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룰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푼다. 결론은, 한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먹는 양 평균을 비슷하게 맞출수록 좋다는 것이다. 많이 먹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 있으면, 한 곳엔 탕수육이 모자라고 한 곳엔 탕수육이 남아도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이제 실험 부분을 읽어볼까 하는데,[10] 문득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로 향했다. 몸의 노폐물을 내보냈다. 그 순간, 뮤즈가 내게 찾아왔다. 몸이 더 정결해졌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화장실에서 뮤즈를 만난 적이 있다.
잠시간 가만히 뮤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들은 것을 까먹지 않으려 급히 손을 씻고 와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물기는 웃옷에 대충 비빈 뒤 메모장 프로그램을 켜서 메모를 시작했다.
‘cache 파시텬이 있으먄 cache thrashing하는 프로그램과 cpu ㅑㅤㅜㅅ두퍛ㄷdin 프로그램을 똑같이 취급할 수 이싸.’
오타를 바로잡고, 다시 한 번 탕수육으로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탕수육을 미리 나누어 놓고 먹는다고 하자. 그러면 사람을 식탁에 앉힐 때,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사람과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 사람을 똑같이 취급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라도 조금만 주는 것이 가능하니까. 따라서 이 경우엔 사람을 식탁에 앉히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내가 요즘 연구해보려고 했던 것은 cache partitioning (탕수육을 미리 나누어 놓고 먹는 방법)이 있을 때 스케줄러(사람을 식탁에 배정하는 방법)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지에 대한 것이었다.[11] 그런데 이번엔 반대로 생각해본 것이다. 스케줄러를 cache partitioning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 아직 뮤즈의 속삭임을 끝나지 않았다. 계속 적어내려 갔다.
1. 독립적으로 연구되어 온 cache paritioning & cache-aware scheduling
2. 여러 가지 프로그램 조합에 대해서, 최고의 cache-aware schedule과, partitionig이 있을 때 schedule 비교. 그리고 두 개의 성능 비교.
3. 아이디어: cpu intensive와 cache thrashing을 대충 나누어 놓고, 나머지 cache fitting을 분산시키면 됨. (cache-aware scheduling과 차이를 보임. 프로그램 특성 파악은 대충 cache miss ratio로 하면 될 듯)
4. simics+gems 써서 실험. quad-core? intel nehalem like?
그럴듯하다. 연구 동기 부분의 실험도 있고, 아이디어도 간단하지만 기존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실험도 가능할 것 같다. 당장에라도 논문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빨리만 하면 여느 저널에 출판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나마 상상의 나래가 행복하다.
사실 그리 대단한 생각은 아니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도 아니고, 하다못해 상품으로 팔릴만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잘하면 논문은 되겠다.’ 정도다. 논문이 된다 한들 우리가 사용하는 중앙처리장치(CPU)나 운영체제가 바뀔 가능성도 거의 없으니까. 물론, 현대의 모든 발전은 논문에서 시작한다. 단지, 그 모든 발전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논문이 나오는 것이 문제다. 지금 내 아이디어는 그 발전에 기여할만한 것까진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내 아이디어는 아직 증명된 바가 없다. 물론 사고실험[12] 결과로는 잘 될 것만 같다. 그렇지만, 석사 2년, 박사 4년 해서, 약 6년 동안 해봤는데, 사고실험은 대부분 틀렸다.
하지만 가슴이 뛴다. 왠지 이번에는 논문이 될 것만 같다. 이제껏 수많은 실패를 했으니, 왠지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않을 것만 같다. 도전해보고 싶다. 졸업하고 싶으니까. 아직은 박사를 꿈꾸니까.
월요일, 점심때쯤 연구실에 갔다. 복도에서 교수님을 마주쳤다.
“잠깐 시간 돼? 연구하던 거 얘기 좀 할 수 있어?”
평일 일과 시간에도 시간이 되냐고 물어봐주시는, 참 좋은 교수님. 대학원생이 교수님의 부름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간 시간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할 말이 없어서. 하지만 오늘은 할 말이 있다. 당당하게 교수님 방에 따라 들어갔다.
(여기부터 전문용어 압박 주의. 늘 그렇듯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cache partitioning이랑 scheduling이랑 엮어보겠다고 한 거, 좀 생각해봤어?”
“생각을 해봤는데요, cache partitioning이 있으면, cpu intensive 프로그램과 memory intensive 프로그램을 똑같이 취급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차피 partitioning에 의해서 cache를 얼마 못 받게 될 것이니까요. 그러면 cache-aware scheduling과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최대한 cache-aware scheduling과 다른 점을 부각시킬 수 있게 해야겠네. 얼마나 달라지는 지가 중요해.”
“그래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 조합에 대해서 모든 가능한 scheduling에 대해서 cache partitioning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최대 성능을 조사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해보고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하자.”
“네.”
“이번 이스카(ISCA)[13]에 cache partitioning 관련 논문 나왔던데, 그거 읽어보고, 아스플로스(ASPLOS)[14]에 Varofedo가 쓴 논문 알지? 그거 다시 한 번 읽어봐.”
“네.”
“시뮬레이터는 뭐 쓸 건데?”
“Simics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거 말고 Gem5도 괜찮은지 한 번 알아봐. 준상이가 좀 만져봤으니까, 물어보고.”
“네.”
“그럼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하지.”
“네.”
그리고 교수님 방을 나왔다. 요약하자면, 나쁘진 않으니 해보라는 것이고, 시뮬레이터는 준상이가 쓰고 있는 것을 가져다가 사용하라는 것이다.
연구실에 돌아와 앉았다. 힘이 빠진다.
먼저, 아이디어가 너무도 평이하게 취급받은 까닭이다. 계속 해 보라셨으니 무시당한 건 아니지만, 그제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아이디어가 아무 칭찬도 못 들으니 힘이 빠졌다.
또, 여전히 머나먼 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논문에서 일부를 바꾼, 어찌 보면 간단한 아이디어이지만, 이것을 구현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또 실험을 통해 내 아이디어가 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통해, 내 아이디어가 쓸모없다는 것만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나는 9999번의 실패를 한 게 아니고, 다만 전구를 만들 수 없는 9999가지의 이치를 발견했을 뿐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9999번의 실패를 하게 되면, 나는 재학 연한 초과로 인해 박사를 받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박사 4년차, 실패는 너무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한 발짝도 떼지 않는다면 영영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틀린 길로 가보는 것이 가만있는 것보다는 빠르다. 검색창에 ‘Gem5’를 입력했다. 연구를 시작하려고.◑
[1]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 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 <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에코의 서재 출판, 2007년
[2] 트와일라 타프 지음, 노진선 옮김,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 문예출판사, 2005년
[3] 한동수, <카이스트 한동수 교수의 특허 무한도전>, 흐름 출판, 2013년
[4] 같은 책, 9쪽
[5] 노원경, <생각 3.0 ? 스마트를 뛰어넘어 크리에이티브로 가는 생각의 도구>, 엘도라도 출판, 2010년, 31쪽
[6] 케리 스미스 지음, 신현림 옮김, <예술가들에게 슬쩍한 크리에이티브 킷 59>, 갤리온 출판, 2010년
[7] 뮤즈(Muse):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많이 알려져 있다. 본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9명의 여신으로, 학문과 예술의 신이다. 영어 표기가 Muse이며, 그리스어 표기는 '무사'라 읽는다. https://mirror.enha.kr/wiki/%EB%AC%B4%EC%82%AC#s-3
[8] Moinuddin K. Qureshi and Yale N. Patt. 2006. Utility-Based Cache Partitioning: A Low-Overhead, High-Performance, Runtime Mechanism to Partition Shared Caches. In Proceedings of the 39th Annual IEEE/ACM International Symposium on Microarchitecture (MICRO 39). IEEE Computer Society, Washington, DC, USA, 423-432. 11화 <질문 ? 제가 쓴 논문이 아니라서요> 참고. http://scienceon.hani.co.kr/179949
[9] Sergey Zhuravlev, Sergey Blagodurov, and Alexandra Fedorova. 2010. Addressing shared resource contention in multicore processors via scheduling. In Proceedings of the fifteenth edition of ASPLOS on Architectural support for programming languages and operating systems (ASPLOS XV). ACM, New York, NY, USA, 129-142.
[10] 논문은 보통 초록, 서론, 관련 연구 소개, 제안하는 아이디어에 대한 설명, 실험 방법 및 결과 분석, 결론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련 연구 소개가 결론 바로 앞에 위치하기도 한다.) 실험 방법 및 결과 분석 전까지 읽었다는 것은 2/3쯤 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1] 8화 <또 하나의 입시 - 연구실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요?> 참고. http://scienceon.hani.co.kr/media/173132
[12] 사고실험: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만들 때 했던 것으로 알려져 유명한 실험 방법. 사고(思考)를 통해 하는 실험, 즉, 상상을 통해 결과를 추측해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가들이 해야 유용한 방법이다. 하지만, 구현과 실험에는 많은 노력이 들어가므로, 그전에 사고실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허투르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면.
[13] 이스카(ISCA, International Symposium on Computer Architecture): 매해 열리는 컴퓨터 관련 국제학회로, 주로 컴퓨터 하드웨어에 관련한 분야를 다룬다.
[14] 아스플로스(ASPLOS, Architectural Support for Programming Languages and Operating Systems): 매해 열리는 컴퓨터 관련 국제학회로, 중앙처리장치 등의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등을 폭넓게 다룬다.
■ 작가의 말
소설을 쓰는 데도 창의력이, 그러니까 뮤즈가 필요하죠. 물론 어느 정도 집필 계획과 대강의 소개는 잡아 놓고 쓰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어떤 말로 이어나가야 할까를 고민하다 보면, 치킨이 간절하게 먹고 싶어져요. 머리를 잡아뜯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해야 하고요.
그래도 논문보다야 소설 쓰기가 훨씬 훨씬 편해요. 소설엔 거짓말이 나와도 되거든요. 다른 사람과 비슷한 내용을 쓰더라도, 표현이나 관점만 달라져도 의미가 있거든요. 논문은, 철저히 검증된 참말만 나와야 하는데다가, 다른 사람과 다른 내용을 써야만 하죠. 휴우. 우리 존재 파이팅입니다!
P.S. 삽화에 들어간 악동뮤지션의 인터뷰 전체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다음 링크로 가시면 됩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335499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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