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주 눈’ 남반구 세곳, 24시간 ‘제2 지구’ 찾는다
칠레 외계행성탐색관측소를 찾다
» 칠레 아카타마사막의 세로 톨롤로 범미주천문단지 (CTIO)에 세워진 한국외계행성탐색망원경(KMTnet)이 13일(현지시각) 오후 7시께 야간 관측을 위해 돔 문을 열고 있다.
우리나라와 거의 대척점에 있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세로 톨롤로 범미주천문단지(CTIO)’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각) 밤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았다. 우주에는 지구의 모래만큼 많은 천체가 있다. 그 천체들 속에서 지구를 닮은 행성이 있을 확률은 낮지 않다. 하지만 실제 그런 행성을 발견하기는 모래 속 바늘처럼 찾기 쉽지 않다.
이날 해발 2167m인 이곳의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KMTnet, http://kmtnet.kasi.re.kr) 돔 안에서는 관측사 김민준씨가 중력렌즈 망원경으로 이 어려운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돔은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이 외계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천문단지 35개 망원경 돔 가운데 맨 북쪽에 위치해 있다. 김씨는 고승원씨와 함께 교대로 매일 밤 망원경으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관측한다.
천문연은 이곳 칠레와 오스트레일리아 사이딩 스프링 천문대(SSO·해발 1143m),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천문대(SAAO, 해발 1762m) 등 남반구 세 곳에 외계행성 탐색용 망원경을 세우고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외계행성 탐사에 나섰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천문대를 확보한 셈이다. 미국은 2009년 케플러 관측위성 우주망원경을 쏘아 올려 우주에서 전천후로 외계행성을 탐색하고 있지만, 지상에 24시간 외계행성 관측 시스템이 갖춰지기는 처음이다.
» 천문연은 이곳 칠레와 오스트레일리아 사이딩 스프링 천문대(SSO·해발 1143m),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천문대(SAAO, 해발 1762m) 등 남반구 세 곳에 외계행성 탐색용 망원경을 세우고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외계행성 탐사에 나섰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 구축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은 지름 1.6m 반사거울과 4장의 보정렌즈로 구성된 광시야 망원경이다. 망원경에는 4장의 시시디(CCD)를 모자이크로 붙여 가로세로 크기가 20㎝인 3억4천만 화소의 시시디 카메라가 부착돼 있다. 이 망원경으로 보름달(0.5˚) 16개가 들어가는 면적인 2˚×2˚의 밤하늘을 한번에 찍을 수 있다. 한번 찍을 때마다 별 수천만개를 관측할 수 있는 현존 세계 최대급 탐색관측 장비다.
이 시스템은 중력렌즈를 이용해 외계행성을 찾는다.
중력렌즈는 멀리 있는 별의 빛이 질량이 큰 별 옆을 지날 때 중력 때문에 휘어져 밝기가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임범두 천문연 광학천문본부 연구원은 “이 별에 행성이 있으면 행성이 지나갈 때 밝기 신호가 달라지는데, 이를 포착해 행성을 찾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행성이 지구만하다면 신호가 몇 시간 지속되지 않는다. 3개의 한국외계행성탐색시스템으로 24시간 하늘을 감시하면 지구 크기와 비슷하거나 약간 큰 ‘슈퍼 지구’를 찾을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 칠레 세로 톨롤로 범미주천문단지에 세워져 지난달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간 한국외계행성탐색망원경.
연구자들은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이 현대 천문학의 최대 화두인 외계행성의 존재와 외계 생명체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풀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초신성 연구나 외부 은하 연구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외계행성을 관측하는 데는 미시중력렌즈 현상을 이용하는 방법, 행성에 의해 별빛이 흐려지는 것을 관측하는 방법, 행성에 의해 별빛이 흔들리는 현상을 관측하는 방법이 쓰인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행성이 별을 지나갈 때 빛이 흐려지는 식현상을 관측하는 방법을 주로 쓴다. 이것은 목성·해왕성처럼 큰 것을 관측할 수 있지만 지구처럼 작은 행성을 찾기에 적합하지 않다. 단독 별만 있을 때는 별빛 곧 시선 속도가 변하지 않지만 행성이 지나가면 도플러 효과 때문에 시선 속도가 달라지는 포착해 행성을 찾는 방법은 지름 1.8m의 보현산 망원경으로도 가능하지만 역시 태양계와 가까우면서 큰 행성만 관측할 수 있다. 외계행성 탐색을 위해, 미국은 케플러 우주망원경을 비롯해 하와이에 ‘팬스타스’(PanSTARRS)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폴란드와 미국의 ‘오글’(OGLE), 뉴질랜드와 일본의 ‘모아’(MOA) 등도 광시야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력렌즈 방법은 적은 경비로도 지구처럼 작은 질량을 가진 행성들을 검출할 수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 세 곳을 구축하는 데는 2009년부터 6년 동안 약 200억원이 투자됐다. 지난해 5월 망원경 돔 1호기를 칠레에 설치하고, 잇따라 남아공에 2호기, 오스트레일리아에 3호기를 잇따라 설치한 뒤 올해 5월까지 각 망원경마다 카메라를 설치해 시험관측을 했다. 천문연은 지난달 2일 대덕단지 연구원에서 남반구 세 관측소의 관측사들과 화상통화를 하며 한국외계행성탐색시스템 개소식을 열었다.
미국도 올해 4월 2021년 완공을 목표로 8.4m 망원경에 32억 화소의 시시디 카메라를 갖춘 중력렌즈 시스템인 대형 시놉틱 관측 망원경(LSST) 제작에 들어갔다.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세로 파촌 천문단지(해발 2700m)에 위치해 있다. 관측각도가 3˚×3˚로 보름달 36개가 들어가는 면적을 한번에 찍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예정이다. 시시디 카메라도 32억화소짜리가 설치돼 하루 테라바이트 규모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미국으로 전송된다. 이를 위해 세로 파촌과 미국 사이에 16기가짜리 광케이블 고속도로가 깔릴 예정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에너지국(DOE), 구글이 망원경, 카메라, 데이터 처리에 각각 예산의 3분의 1씩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연구그룹에 참여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한국 외계행성 시스템을 남반구에 설치한 것은 관측 여건이 좋기 때문이다. 우리 태양계는 우리 은하 중심부에서 보면 약간 북쪽으로 치우쳐 있어 은하 중심부인 궁수자리 근처는 북반구보다는 남반구에서 잘 관측된다. 여기에 있는 수억개의 별을 10분 간격으로 모니터링 하면 지구를 닮은 외계행성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칠레 북부 아타카마사막의 세로 토롤로 천문단지. 이곳에는 35개의 망원경이 집중 설치돼 있다. 맨 왼쪽이 1976년에 세워져 2000년까지 세계 최대 광학망원경(지름 4m) 자리를 지켜온 블랑코망원경이고, 맨 오른쪽이 한국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이다.
특히 이곳 칠레의 탐색시스템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어 우주에서 오는 전자기파를 수증기에 방해받지 않고 온전하게 관측할 수 있다. 아타카마 사막 고원에서는 천체 관측하기에 알맞은 맑은 날이 1년에 300일에 이른다. 다만, 한국외계행성시스템으로 궁수자리 근처에서 외계행성을 탐색할 수 있는 기간은 2월부터 10월까지이다. 궁수자리가 11월부터 1월까지는 태양 뒤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곳 칠레에는 1976년에 세워져 내년이면 40주면이 돼가는 블랑코망원경(지름 4m 광학망원경)이 있는 세로 토롤로천문단지를 비롯해 지름 8m의 제미니망원경이 있는 세로 파촌단지, 지름 6.5m짜리 쌍둥이 마젤란망원경이 있는 라스 캄파나스단지, 세계 최대 규모의 전파망원경 알마(ALMA)가 설치된 차이난토르단지 등 많은 천문단지들이 들어서 있다.
“해마다 100개 이상 새로운 행성 발견 기대”
지금까지 발견된 외계행성계는 1258개, 외계행성은 1978개이다.(http://exoplanet.eu/catalog/) 아직은 대부분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발견한 것이지만 케플러 망원경의 수명이 다 돼가 향후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이 가장 많은 외계행성을 발견해낼 가능성이 크다. 천문연은 이 가운데 중력렌즈 방법으로 발견한 외계행성은 39개이고, 이 가운데 32개를 한국 과학자들이 포함된 연구 그룹에서 발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천문연은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으로 해마다 100개 이상의 행성을 새로 발견하고, 이 가운데는 지구 질량 정도의 행성이 2개 정도 포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병곤 천문연 대형망원경사업단장은 “이 시스템으로 발견한 천체를 거대마젤란망원경(GMT)으로 집중 관측하는 등 상호보완적으로 운영하면 새로운 천문현상을 발견하는 등 우리나라가 국제 천문학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마젤란망원경은 지난 12일(현지시각) 칠레 라스 캄파나스 천문대에서 기공식을 한 지름 25.4m의 세계 최대 천체망원경이다.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이 숲을 보는 망원경이라면, 거대마젤란망원경은 이 시스템이 발견한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현미경인 셈이다.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 세 곳에서는 매일 밤 200기가바이트씩 모두 600기가바이트의 정보가 생산된다. 영화 600편이 매일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 데이터들은 실시간으로 한국의 천문연으로 전송돼 가공된 뒤 천문학 연구자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된다. 천문연은 외계행성이 발견되면 연도와 순번을 넣어 ‘KMT-20151b’식의 이름을 붙일 계획이다.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도민준의 고향별인 KMT184.05는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의 행성 명명법을 빌려쓴 것이다. 임범두 연구원은 “지난 1년 동안 시범 운영 기간에도 외계행성 후보들이 발견됐다. 이제 본격 관측을 시작해 내년부터는 KMT 이름을 단 외계행성이 쏟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력렌즈 현상 이용한 외계행성 찾기, 어떻게?
빛 휘는 현상 이용한 중력렌즈로
생명 거주 가능한 ‘골디락스 존’ 찾아
한국 외계행성 탐색시스템(KMTnet)은 중력렌즈 현상을 이용해 외계행성을 찾는다. 중력렌즈의 연원은 아인슈타인이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이다. 그는 빛도 태양처럼 중력이 큰 천체에 의해 휠 수 있다고 예견했다. 그의 가설은 영국 케임브리지천체연구소 소장인 아서 에딩턴이 1919년 개기일식 때 찍은 사진에 의해 증명됐다. 에딩턴이 밤에 찍은 사진과 비교해보니 별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별빛이 태양 옆을 지날 때 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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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렌즈는 이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어떤 별 A를 관측하고 있을 때 그 별과 관측자 사이에 다른 별 B가 있으면 처음에는 직진을 해 관측자한테 이르지 않던 A의 빛이 B의 중력에 의해 휘어 관측자한테 도달하면서 A의 밝기가 원래보다 밝아진다. A와 관측자 사이에 B가 렌즈 구실을 하는 셈이다. 이때 B 별 주변에 행성이 있으면 이 행성이 섭동(원래의 운동에서 벗어나는 것)을 일으켜 A의 밝기가 불연속적으로 변한다. 이 신호를 분석해 외계행성을 찾는 것이다.
외계행성 가운데는 지구와 마찬가지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거주 가능 영역이 있다. 이 생명 거주 가능 영역을 ‘골디락스 존’이라고 부른다. 행성 표면에 액체 상태의 물이 있다면 물이 화학반응의 용매가 돼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다. 영국의 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마리’에서 따온 말이다. 골디락스라는 금발소녀가 길을 잃고 헤매다 곰 집에 들어가니 수프가 세 그릇에 담겨 있었다. 아빠 곰 그릇은 커서 수프가 미처 식지 않았고, 엄마 것은 작아 너무 식어버렸다. 아기 수프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골디락스가 맛있게 먹었다.
태양계에서는 화성과 지구가 골디락스 존에 속한다. 2012년에는 지구에서 600광년 떨어진 ‘케플러-22b’라는 골디락스 행성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칠레 세로톨롤로 범미주천문단지/글·사진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 <한겨레> 16일치 23면에 실린 기획 기사를 좀 더 정보를 보태어 이곳에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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