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사막에서 경험하는 '오래된 새로움'

김상규의 ‘사막 위의 식물학자’
[1] 이야기를 시작하며

00desert.jpg » 미국의 그레이트 베이슨 사막에 있는 야외 연구소. 사막인데 푸른 나무들이 많이 자라는 이유는 지난 겨울 동안 내렸던 눈이 봄이 오면 녹는데 그 물이 이곳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주변의 산을 보면 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있다.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태양전지판, 그리고 간이숙소와 연구실로 쓰고 있는 트레일러도 보인다. 사진/ 김상규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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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 그늘의 온도도 섭씨 40도 가까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일하러 나가는 이유도 가장 뜨거운 시간대에 일하는 것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름대로는 햇빛을 피하겠다고 커다란 우산을 쓴 적도 있는데 가끔 엄청나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포기했다. 몸에서 나는 땀은 끈적거릴 틈도 없이 말라서 계속 물을 마시지 않으면 쉽게 두통이 오기 때문에 항상 물통은 챙겨서 다닌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이어폰을 쓰는 것도, 또 햇빛을 피하기 위해 선글래스를 쓰는 것도 금지돼 있는데 근처에 있는 뱀을 모르고 밟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 되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간이숙소로 쓰는 트레일러는 밤에도 그 열기가 쉽사리 식지 않아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 일인용 텐트(모기장)에서 잠을 잔다. 물론 그 텐트 안에는 낮 동안 쌓인 모래들이 수북하지만 뭐 크게 상관하지 않고 잘 수 있다. 낮의 '밭일'로 인해서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여기는 미국 유타주의 그레이트 베이슨 사막(Great Basin Desert)에 있는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Chemical Ecology)의 야외 실험실이고, 나는 그곳에 자생하는 야생 담배인 니코티아나 아테뉴아타(Nicotiana attenuata)라는 식물을 연구하는 박사후연구원(포스트닥터)이다.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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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곳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박사과정 중 참석한 해외 학회에서 이언 볼드윈(Ian T. Baldwin) 교수님의 발표를 들었을 때였다. 대학교 때 화학을 전공했지만 식물을 공부하고 싶어 식물 방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분자생물학이 열어 놓은 ‘앎의 가능성’에 푹 빠져 있을 때였다. 당시 형편 없던 영어 듣기 실력으로 인해 그림과 글자만 열심히 보았지만 발표를 들으면서 느꼈던 뭔가 새로움이 결국 볼드윈 교수님의 실험실에서 포스트닥터 생활을 시작하게 해주었다.


00desert2.jpg »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 안에 있는 볼드윈 그룹의 모델 식물이다. 야생 담배 중의 하나로, 건조한 미국 중서부 지역에 자생하는 일년생 식물이다. 이 식물이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 글을 쓰기로 한 이유도 여기에 온 지 만 4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느끼고 있는 이 새로움 때문일 것이다. 한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서 그 식물이 자생하는 곳에 가서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한다는 교과서적인 실험 방식이 왜 그렇게 새롭게 다가왔는지 그리고 왜 지금도 나에겐 새로운지 모르겠다.


옛동독 지역이었던 예나(Jena)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에서 2009년 5월부터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외국에서 사는 것도 처음이라, 독일 도착 첫 날에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기차를 타러 이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 아내, 그리고 돌이 갓 지난 아기와 함께 엄청난 양의 짐을 들고 헤매다가 예약된 기차를 놓치고 그날 마지막 기차로 예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 있었던 우여곡절도 생각난다. 그날 중간에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려고 겨우 어렵게 물을 사서 분유를 타서 주었는데, 평소와 달리 자꾸 인상을 쓰며 먹는 아기의 표정을 보다가 그게 탄산가스가 든 물이라는것을 알았다. 단물 빠진 사이다 같은 탄산가스 물에 적응한 것은 훨씬 더 나중의 일이다.


이후에는 다행히도 연구소에 먼저 와서 공부하고 계셨던 안승준 박사님(이 분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더 얘기하겠다)과 여러 한국인 분들의 도움으로 독일어 한 마디도 못했던 초기 생활을 (물론 지금도 잘 못하지만) 무사히 보냈다.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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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1년 정도 살았을 때에는 독일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말하다가 5년이 넘어가면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여기서 생활한 지 만 4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들이 가끔 독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그냥 웃으면서 듣는 걸 보니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물론 내가 가끔 독일에 대해 불평하거나 부러워할 때 옆에서 그냥 웃으면서 듣는 10년 이상 사신 분들도 계신다. 여기에 이 연재에서 굳이 독일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나는 독일에 아직 한참 덜 살았나 보다.


나는 연구소에 가기 위해 주로 자전거를 탄다. 한국에서도 중학교와 대학교의 등하교, 그리고 소방서(공익근무요원!)의 출퇴근을 주로 자전거로 했기에 독일의 자전거 문화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당당하게 도로에서도 달리는 자전거, 그리고 방향지시등 대신에 왼손이나 오른손을 올리며 자동차 앞에서 자연스럽게 좌회전과 우회전, 심지어는 끼어들기까지 하는 자전거가 여기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물론 엄청 불평을 하는 자동차 운전자들은 여기에도 있다.


연구소에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가고 있을 때 아무렇지 않게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지나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가끔씩 만날 때마다 아침부터 큰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신기한 것은 굉장히 다양한 연식(?)의 자전거를 볼 수 있다는 점인데 기어도 물받이도 없는 녹슨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젊은 학생을 종종 볼 수 있다. 지금 첫째 아이가 타고 다니는 스쿠터도 누군가가 준 10년 넘은 중고다. 여전히 동네마다 중고 상점들이 장사를 하고 있고 가끔 주말마다 시내에 중고시장이 서면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오래 쓰는 것,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가끔 생각한다.



새로움, 오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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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도 다양한 연식의 장비들이 있는데 여기에 처음 도착한 해에는 개인용 책상에서 브라운관 모니터도 볼 수 있었다. 컴퓨터도 속도가 느려지면 램(RAM) 하나 더 끼우고 용량이 부족하면 하드디스크 하나 더 끼우는 식으로 유지·보수를 하고 있다. 다른 실험장비도 마찬가지인데, 만들어진 지 10년이 훌쩍 지난 분석장비들도 이렇게저렇게 잘 고쳐서 쓰고 있다. 항상 최신의 장비만을 사용하고 있을 것 같은 연구소의 이미지는 여기 와서 금방 수정되었다. 물론 이 분야의 첨단 장비들도 연구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빠른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여기에서는 대부분이 느림이다. 한국에서는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일이, 또 인터넷 클릭 한 번이면 가능할 일이, 종이 형태로 전달되어야만 일이 진행되곤 한다. 은행에서 현금카드 발급을 신청했을 때 바로 만들어주지 않고 우편으로 보내준다는 사실에 놀랐고 비밀번호를 임의로 은행에서 지정한 다음에 다른 우편으로 또 보내준다고 해서 한 번 더 놀랐다. 물론 은행에 통장을 개설하러 갈 때도 예약을 해야 했다. 그밖의 중요한 알림도 우편으로 날아오기 때문에 중요해 보이는 편지가 오면 꼭 독일어를 잘 하는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한다.


각종 서비스의 변경과 해지도 우편으로만 가능한 경우들이 있다. 그것도 대부분 석달 전에 신청을 해야 하는데 그 기간을 놓치면 자동으로 연장이 된다. 이것 때문에 곤란을 겪는 한국인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건물을 짓거나 도로 공사를 할 때는 현장에 이야기를 하려고 모여 있는 건지 일을 하려고 하는 건지 잘 구별이 안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당연히 일의 진행 속도가 느리다. 독일에 있으면서 답답하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가끔은 느리게 일한다고 느린 게 아니고 빠르게 달린다고 빠르게 가는 게 아닌 것을 배운다.

00museum.jpg »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 입구의 오른쪽에 있는 동상은 19세기 독일 생리학자인 요하네스 뮐러(Johannes Müller), 그리고 왼쪽에는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지질학자인 레오폴드 폰 부흐(Leopold von Buch)의 동상이 서 있다. 사진/김상규

어쩌면 이런 옛것을 여전히 소중히 여기고 기록으로 남기고 느리게(여유있게) 생활하는 독일에 박물관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독일에 금속을 배우러 온 학생에게 어떤 점이 독일 금속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엄청난 실패의 기록을 고스란히 남겨둔 점, 그런 기록들 때문에 새로운 성질의 합금을 만들 때 이전 사람들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굉장히 기본적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는 그 학생의 대답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베를린에 있는 자연사박물관(Museum fur Naturkunde Berlin)에 다녀온 적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브라키오사우루스(Brachiosaurus)도 있었고 육상 공룡에서 새로 진화하는 중간 과정의 동물로 여겨지는 화석(Archaeopteryx lithographica)도 있었지만 지금도 과거의 것들을 모아서 현재를 연구하는 박물관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20세기의 유명한 진화생물학자인 에른스트 마이어도 이 박물관의 지원으로 새의 종 분화를 연구했다. 베를린에 있는 달렘식물원에서 진행한 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전시 쪽으로만 본다면 잘 꾸며진 곳이 아니지만 그 안에 있는 식물을 대학 등과 공동으로 연구하는 식물원이었다. 그때 참석한 학회도 마이크로 아르엔에이(RNA)를 주제로 하는 분자생물학학회였다.


여기 예나에도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의 이름을 딴 조그마한 박물관이 있다. 헤켈 교수는 예나대학에서 비교해부학을 가르쳤으며 다윈 진화론을 유럽에 전파한 사람이고 생태학(Okologi, ecology)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이다. 막스플랑크 생태학연구소를 이곳 예나에 만든 것은 어쩌면 그런 전통과 맞닿으려는 독일 사람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연히도 화학생태학이라는 학문도 이곳 예나대학의 교수였던 에른스트 슈탈(Ernst Stahl, 1848-1919)의 연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알려졌는데 이것은 연구소 설립 이후의 일이다. 슈탈 교수를 기념하기 위해서 매주 연구소에서 진행되는 초청 세미나의 이름을 에른스트 슈탈 세미나라고 붙인 것도 그래서 최근 일이다. 의도적으로 그리고 우연히 연구주제와 가장 어울리는 장소에 연구소가 들어선 것이다.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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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 코너의 제목과는 달리 '사막 위의 연구' 이야기는 이번 글에서 하지 못하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아마 다음 편에서도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해마다 미국 사막에 나가 실험하기 위해서 독일에 있는 연구소에서 많은 준비를 하는데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식물이 만들어내는 ‘무언가’에 이끌려 날라오는 곤충을 사막에서 관찰한 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박사과정 전체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그 '무언가'를 만들지 못하는 식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또 몇 년의 과정이 걸리기도 한다. 그곳에서 필요한 실험 장비는 대부분 독일에서 공수해야 하는데 공항 검색대에 긴 설명을 해야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글을 통해서 사막으로 나가기 위해서도 비슷한 과정이 필요한 듯하다. 내가 독일인의 생활을, 그리고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하나씩 알아가면서 어떻게 독일에 이런 독특한 형태의 연구소가 운영되고 있는지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을 먼저 하고 사막에 들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 5월에 다시 사막에 들어가게 되는데 사막 이야기는 그래도 사막에서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약간의 뜸을 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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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규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 프로젝트그룹 리더, 식물분자생태학
하얀 실험복보다 밀집모자가 더 편하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 언젠가는 농사 짓는 분들한테서 그들의 식물 이야기를 듣고 그분들과 함께 연구하고 싶다.
이메일 : skim@ice.mpg.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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