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속의 태아도 낱말을 식별해 배울 수 있다"

핀란드 헬싱키대 연구팀, 태아-신생아 33명 대상 비교실험

“태아때 언어자극 기억, 신생아 음절 고저-장단-모음 식별”


00babywords.jpg » 신생아는 태아 시절에 경험한 언어 자극을 기억해서 변형된 낱말들의 차이를 식별해 다르게 반응하는 뇌파 신호를 보여주었다고 핀란드 연구팀이 보고했다. 출처/ Veikko Somerpuro, University of Helsinki


아가 엄마의 자궁속에서 듣는 엄마아빠의 목소리, 평온하고 밝은 음악은 태교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동안 여러 연구에서 인간의 태아는 임신 27주째 무렵부터 엄마 몸의 바깥 소리를 인지하며 청각 신경계의 성숙한 발달로 나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최근에는 태아가 낱말 소리를 구분해 배우는 능력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핀란드 헬싱키대학의 에이노 파르타넨(Eino Partanen) 연구팀은 태아가 자궁속에서 듣는 소리에 반응해 청각과 학습 능력과 관련한 신경 발달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태아와 신생아를 대상으로 연구해 과학저널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 온라인판에 논문을 냈다.


00babywords2.jpg » 낱말 소리를 구분하는 반응과 그렇지 않은 반응. 태아 시절에 낱말 소리의 자극을 받은 신생아들(왼쪽 그래프들)은 태어난 직후에 받은 뇌파 측정검사에서 낱말 중간음절의 고저(pitch), 모음변화(identity), 장단(duration), 세기(intensity)의 변화를 식별해 다른 반응(불일치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태아 시절에 그런 언어 자극을 받지 않은 신생아들(오른쪽 그래프들)은 낱말의 변형을 뚜렷하게 식별해 반응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 Eino Partanena et al., PNAS(2013)의 부록자료. 이 실험 연구에는 핀란드의 임산모 33명이 임산 29주 째부터 출산 직후까지 참여했다. 연구팀은 임산모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실험과 관찰의 결과를 비교했다. 절반인 임산모 17명한테는 출산 5일 전까지 임신 기간 내내 ‘타타타[tatata]’라는 의미 없이 임의로 만든 낱말 소리를 수백 번 되풀이하는 녹음을 1주일에 5~7차례씩 듣도록 했다. 뱃속의 태아도 들을 수 있도록 소리는 크게 했다. 기본음인 ‘타타타’ 소리를 되풀이하되, 간혹 중간음절(가운데 ‘타’ 음)을 변형해 들려주었다. 예컨대 ‘타토타[tatota]’처럼 ‘타’를 ‘토’로 바꾸기도 하고, 중간음절의 고저를 바꾸거나 장단 또는 세기를 바꾸기도 했다. 다른 절반의 집단인 16명 임산모들은 ‘타타타’라는 말 소리와 관련해 언어 학습 단계를 거치지 않도록 했다.


태아가 태어나고 5일째 쯤에, 태아기에 사용한 낱말 소리 녹음을 다시 들려주면서 신생아의 뇌에 나타나는 뇌파(뇌전도) 변화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두 집단의 신생아들은 낱말 자극에 대해 서로 다른 뇌파 반응을 나타냈다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연구팀의 실험 결과를 보면, 태아기에 ‘타타타’ 소리와 그 변형된 소리들을 반복해 듣고서 태어난 신생아들은, 그렇지 않은 신생아들과 달리 ‘타타타’ 소리와 변형된 낱말 소리를 구분해 다르게 반응하는 뇌파 신호를 보여주었다. 예컨대, ‘타타타’와 ‘타토타[tatota]’를 식별해 다르게 반응했으며, ‘타타타’와 ‘타타:타’(중간음절 장음, tata;ta)에 대해 다르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 이처럼 변형된 음절 소리에 다르게 반응하는 것은 흔히 어른이 외국어를 배울 때 보여주는 반응과 비슷하기에, 이런 신생아들의 반응은 낱말을 구분해 듣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태아 시절에 그런 언어 자극 훈련을 받지 않은 신생아들은 낱말 음절의 고저, 장단, 모음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뇌파 비교 그래프 참조). 이런 실험결과는 또한 출생 5일 전까지 받은 언어 자극이 출생 5일째에도 유지된다는 점에서, 태아와 신생아의 학습 기억 능력도 보여주는 것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번 연구는 태아기의 경험이 신생아 뇌의 청각 식별 정확도에 눈에 띌 정도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또한 태아기 경험이 초기 청각 발달을 뒷받침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이런 태아 경험이 유전적 언어장애를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논문 초록(번역)


“적응과 지능 행동의 토대인 학습은 신경집합들(neural assemblies)의 유연한 변화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것은 전기적 뇌 반응의 변조에서 나타난다. 유아기에 청각 학습은 신경의 장기기억 흔적(trace)이 형성되고 강화됨을 의미하며 특히나 말 소리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데 선결요건이 되는 식별의 기술을 향상한다. 이전의 행동 관찰 연구에서도 태아 시절에 노출됐던 낯익은 소리와 낯선 소리에 신생아들이 다르게 반응하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태아 학습의 신경적 기초는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 우리는 말과 유사한 청각 자극과 태아 학습의 직접적인 신경 상관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태아한테 여러 가지 단어를 제시했다. 이런 자극에 노출된 적 없는 태아들과 달리, 자극에 노출된 태아들은 태어난 뒤에도 태아 시절에 경험한 말의 변형과 음의 고저 변화에 반응해 증강된 뇌 활동(불일치 반응, mismatch response)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태아기의 노출량과 뇌 활동 간에는 유의미한 상관성이 존재했다. 태아기에 말 소리에 대한 노출량이 많을수록 뇌 활동은 더 크게 나타났다. 게다가 학습 효과는 훈련된 학습 재료에는 포함되지 않은 비슷한 말 소리의 다른 유형에도 일반적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우리 결과는 출생하고 기억 표상이 생기기 이전에 들은 말의 특징에 신경이 특별하게 맞춰져 있음(tune)을 보여준다.”(논문 초록에서)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알림] 사이언스온이 미래&과학으로 바뀝니다[알림] 사이언스온이 미래&과학으로 바뀝니다

    뉴스사이언스온 | 2017. 12. 11

    미래/과학/기술/환경 뉴스와 비평, 연재물 서비스사이언스온 옛 글들은 지금처럼 접근 가능합니다 독자님들께안녕하세요. 그동안 작은 도전이었던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의 필자들을 격려해주시고 또 웹진을 사랑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

  • “언어사용 패턴은, 몸의 스트레스 보여주는 지표”“언어사용 패턴은, 몸의 스트레스 보여주는 지표”

    뉴스오철우 | 2017. 11. 07

    특정 언어사용패턴과 스트레스 관련 유전자발현 사이에 ‘상관성’“무의식적 언어패턴이 의식적 자가보고보다 측정정확도 더 높아” 일상언어 사용의 패턴이 말하는 이 자신도 잘 모르는 몸의 스트레스 반응을 알려주는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연구결...

  • 정교해진 유전자가위…‘염기’ 하나만 바꾼다정교해진 유전자가위…‘염기’ 하나만 바꾼다

    뉴스오철우 | 2017. 11. 07

    ※ 이 글은 한겨레 11월6치 '미래&과학' 섹션 지면에 실렸습니다. 지면 편집 과정에서 분량을 줄이기 이전 원고를 사이언스온에 올립니다. 편집 과정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정교해진 유전자가위염기 하나만 바꿔치기[미래&과학] 주목받는...

  • ‘노화는 불가피하다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노화는 불가피하다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뉴스오철우 | 2017. 11. 03

    수학적 모형 분석 논문 ‘눈길’세포간 경쟁과 선택, 노화와 암의 ‘딜레마’ 같은 상호관계 다뤄‘노화는 불가피하다. 논리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수학적으로도 노화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노화를 일정 정도 늦출 순 있어도 멈출 순 없다는 ...

  • 염기 하나만 바꾸는 단일염기 수정기법의 '확장'염기 하나만 바꾸는 단일염기 수정기법의 '확장'

    뉴스오철우 | 2017. 10. 26

    시토신-구아닌 쌍을 티민-아데닌 쌍으로 ‘점 수정’ 이어아데닌-티민 쌍을 구아닌-시토닌 쌍으로 수정기법 개발하버드대학 리우 교수와 MIT 펑 장 교수 각각 성과 발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법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되 디엔에이(DNA) 두 가닥을 ...

자유게시판 너른마당

인기글

최근댓글

트위터 팔로우

sub2 untit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