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케이-알파맨’
알파고 쇼크 또는 열풍이 한국사회에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아니 여전히 많은 담론과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사이언스온의 연재소설 작가이자 카이스트 전산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김창대 님이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2'의 연재를 한 차례 쉬고서, 그 대신에 이번 주엔 알파고 쇼크를 계기로 한번쯤 되돌아볼 만한 우리사회 모습에 관한 풍자 성격의 단편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 사회의 씁쓸한 한 단면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사이언스온
» 삽화는 이도연 님이 그려주셨습니다.
케이-알파맨
드디어 오늘, 한국형 사무원 로봇 케이-알파맨의 시연회가 열린다. 세계선도연구, 창의연구, 융합연구를 표방하며 태극기업과 한국공대가 산학협력을 통해 만든 로봇이다. 성진은 찬우와 함께 케이-알파맨을 차로 모셔가고 있다. 둘은 대학원생이다. 케이-알파맨 때문에 졸업이 늦어지고 있는.
“근데, 형. 이거 잘 되겠죠?”
“잘 돼야지. 안 되면 어쩔 건데?”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큰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알려오면서 모든 게 뒤집어졌다. 학교 대형 강의실에서 태극기업 임원 몇 명과 함께 진행하려던 시연회는, 대한민국인공지능컨트롤타워 대강당에서 태극기업 회장은 물론이고 국회의원, 장관들도 대규모로 참석하는 행사로 바뀌었다.
하지만 시연 담당자는 여전히 성진이다. 제아무리 교수라도 하루 만에 로봇에 능숙해질 수는 없으니까. 성진은 운전대를 꽉 잡았다. ‘잘 해야만 한다.’ 이 생각뿐이었다.
“저 지겨운 거. 내일부턴 안 봐도 되는 거죠?”
찬우가 다시 말을 걸었다.
“무슨 소리야. 최종보고서가 3주 남았구만.”
“아, 맞다. 아씨. 진짜 누굴 인공지능으로 아나….”
3년만의 산물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걸 3년 만에 만들어 내다니. 언론에서는 한국인의 근성이라고 칭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미국에서 알파맨이 나왔을 당시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케이-알파고 이후로 예산 따오는 게 변변치 못 했던 대한민국인공지능컨트롤타워의 절박함도 있었다. 대한민국인공지능컨트롤타워에서는 아예 ‘속행연구’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다. 연구 기간을 3년 이상으로 잡는 모든 제안서를 떨어뜨려 버렸다.
덕분에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던 성진은 어느덧 박사과정 6년차가 되었다. 찬우는 5년차가 되었다. 둘은 친구들 결혼식에 가본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리가 결혼한다면 본인 결혼식엔 갈 수 있을까 하며 농담도 했다. 일단 연애를 할 시간부터 없긴 했지만.
하루 새에 그렇게 소문이 난 걸까? 대한민국인공지능컨트롤타워 앞에는 시위대마저 포진해 있었다.
“최저 임금! 아깝더냐! 로봇 직원! 웬말이냐!”
“로봇 취직! 인간 거지! 대통령이! 책임져라!”
시위가 험하지는 않았다. 가만히 서서 피켓을 들고 외칠 뿐이었다. 하지만 성진은 저들의 표적인 케이-알파맨을 모시고 있다. 신경이 쓰였다. 뒷문 쪽으로 차를 돌렸다.
“로봇 한 대 가지고 지랄들 하네.”
“형, 근데 진짜로, 로봇들이 일을 다 해서 우리가 할 일이 없어지면 어떡하죠?”
“로봇 때문에 지난 3년간 개고생하고 월급 받아먹은 우리가 할 말은 아닌 거 같다.”
“이거 땜에 돈 받는 것도 이번 달이 마지막일 거 아니에요.”
“야, 이거 한 대 돌리려면 서버가 300대가 같이 돌아가야 돼. 그 전기세보다 인간이 훨씬 싸게 먹힐 걸?”
“그래도요, 컴퓨터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잖아요.”
“그래,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근데, 로봇이 다 해주고 인간은 띵까띵까 놀기만 하는 게 인간들의 로망 아니었냐?”
시연회 1시간 전. 대강당에 도착했다. 어마어마했다.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의자를 깔고 있었다. 성진과 찬우는 케이-알파맨을 조심스럽게 들고 단상 쪽으로 향했다. 단상 바로 아래에 교수님이 있었다. 다른 분들과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교수님, 저희 왔습니다.”
“어, 그래, 왔어? 잘 되지?”
“어제 테스트해본 건 잘 되는데요….”
“그래. 오늘 핵심은 자유시연 시간이야. 자신 있지?”
“네? 자유시연이요? 그거 빼기로 했었잖아요.”
“대통령님이 보고 싶으시다잖아. 되는 거 맞지?”
뻔히 잘 되던 것도 안 되는 게 시연이다. 컴퓨터 분야가 특히 그렇다. 아무리 인공지능이라지만 자유시연을 한다고? 성진과 찬우는 막막하다 못해 먹먹해졌다.
“교수님, 좀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이미 순서지 다 나왔어! 그게 로봇이 하는 거지, 너희가 하는 거야? 위험하면 어쩔 건데! 여기 들어간 세금이 얼만지 알아? 너희 부모님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이 들어간 거라고. 그럼 잘 해야 할 거 아냐!”
저 놈의 세금타령. 성진은 우리 부모님 세금도 들어갔는데, 우리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냐고 묻고 싶었다. 성진의 부모님은 성진이 너무 무리하는 걸 원치는 않으실 테니까. 하지만 그런 말이 통할 리는 없다.
“인터넷 연결은 확인했어? 안 불안하게 서버 좀 이 건물로 옮겨놓으라니까 그것도 안 된다고 하던 놈들이,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대체 뭐가 된다는 거야? 박사 5년, 6년씩이나 한 놈들이 그래도 돼?”
“죄송합니다.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이래서 사람이 졸업을 해야 하는 거다. 성진은 십이지장께가 꿈틀거리는 걸 억눌렀다. 서버 이야기를 또 꺼내시다니. 하루 전날 300대나 되는 서버들을 어떻게 옮긴단 말인가.
어쨌거나 로봇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서버에서 돌아간다. 로봇의 몸체는 서버에서 명령을 하달 받아 움직일 뿐이다. 그러니 인터넷 연결은 필수다.
찬우는 자신의 핸드폰을 와이파이에 연결해 보았다.
“형, 근데 이거 어째 좀 불안한데요?”
“왜, 잘 안 돼?”
“이거 벌써부터 속도가, 아무래도 이따 사람 몰리면 잘 안 될 거 같은데….”
“아이씨, 왜 이걸 생각 안 했지. 야, 넌 일단 여기 유선 연결할 수 있는 데부터 찾아.”
“로봇에다 랜선을 꼽을 순 없잖아요.”
“내가 지금 무선공유기 사올 테니까, 빨리 찾아봐.”
“근데 테스트 한 번 더 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씨, 태극기업 직원들 안 왔어?”
“아직 못 봤는데….”
“그럼 일단 유선 연결할 수 있는 데만 찾아두고 빨리 테스트해봐. 인터넷 좀 느려도 되긴 될 거 아냐.”
성진은 뛰어나갔다.
50분 전. 찬우가 유선 인터넷 단자를 찾아냈다. 단상과는 거리가 좀 있는 곳이었다.
40분전. 온 건물을 뛰어다녀 겨우 랜선을 구했다.
35분전. 찬우가 단상으로 돌아왔다.
30분 전. 성진이 무선공유기를 사서 시연회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이동이 힘들었다.
20분 전. 성진이 단상에 도착했다. 18분 전. 무선공유기에 인터넷 회선을 연결했다.
15분 전. 무선공유기를 케이-알파맨만 독점하도록 설정했다. 그리고 로봇이 인터넷을 통해 서버와 통신하도록 설정했다. 찬우가 긴장했는지 자꾸 오타를 낸다.
10분 전, 연결에 성공한다. 빠르다. 다행이다.
더 다행스러운 건 교수님은 국회의원, 장관들과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거다. 성진은 재빨리 로봇을 점검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교수님이 대통령과 함께 다가왔다. 성진과 찬우가 동시에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둘을 케이-알파맨만 쳐다봤다. 제발. 제발.
-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와! 말을 했다! 휴우. 성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잘 동작하는 구나. 어제 급하게 테스트한 기능이 이것이었다. 대통령 얼굴 식별과 인사 기능.
“아, 이게 케이…”
“케이-알파맨입니다. 대통령님.”
교수님이 얼른 말을 이어주었다.
“그래요. 이 친구도 바둑을 잘 두나요?”
큰일이다! 모르는 내용을 질문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성진의 방광이 초당 1000회의 속도로 진동했다.
- 바둑 실력은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대답했다. 적절하다. 휴우.
교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하하하, 아직 연습을 안 해서 그렇지, 딥러닝 기반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만 가르치면 금방 잘 둘 겁니다. 어떻게, 나중에 바둑 한 번 같이 둬보시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조금만’이라니. 우리가 구글도 아니고.
“알파고 때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많이 관심을 가졌다는데, 난 바둑이 또 끌리더라고.”
“그렇습니까, 대통령님. 저도 그 때 바둑을 시작했습니다. 참 매력적이더라고요.”
다행히 대통령 비서가 와서 대통령에게 시계를 보여준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요? 가서 자리에 앉읍시다. 허 교수, 수고 많았어요.”
교수님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대통령과 교수가 돌아갔다.
“와씨, 10년 감수했다.”
“아니, 좀, 사무원 로봇을 만들었으면 사무를 시키라고, 왜 바둑을 물어보고 그래.”
“아, 그걸 대답해내다니. 우리가 잘 만들었긴 잘 만들었나 봐요.”
그 때 찬우 귀에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렸다. 탁상 위에 놓인 성진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형, 전화 왔는데요, 선영이? 선영이 지금 서버실에 있지 않아요?”
시연회 시작 5분 전. 서버실에서 온 전화.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성진은 급히 전화를 받았다.
“성진 오빠,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서버 중에 200대 정도가 과부하 걸려서 멈췄어요. 요즘엔 이런 적 없었는데….”
제기랄, 바둑에 대한 걸 찾다가 그랬나 보다. 역시 무리였어. 성진은 그런 조건 속에서도 대답을 잘 뱉어준 케이-알파맨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하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상황은 상황이다.
“요즘 재부팅 얼마나 걸려?”
“근데 이거 왜 이런 거예요? 갑자기….”
“방금 모르는 걸 물어봐서 그런 거 같아, 그런 건 좀 이따가 얘기하자. 부팅 얼마나 걸리냐고.”
“최근에 부팅 때 검사하는 항목을 막 추가해서, 20분쯤 걸려요.”
“20분? 하, 이제 5분 남았단 말이야! 검사하는 거 다 빼버려.”
“그게… 정확히 꺼진 서버들만 골라서 다시 설정하려면, 20분 보다 훨씬 더 걸릴 거 같아요.”
성진은 재부팅을 핑계 삼아 예능도 보고 간식도 먹던 지난날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진즉에 여러 옵션을 더 만들었어야 했다.
옆에서 통화를 엿듣던 찬우가 끼어들었다.
“형, 개회사랑 대통령 축사가 있으니까, 얼마간은 괜찮지 않을까요?”
“대통령 축사가 얼마나 길까? 20분인데, 20분….”
성진은 자기 두뇌가 자기 인생을 통틀어 가장 빠르게 회전하고 있음을 느꼈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아!
“야! 선영아! 남은 서버만 사용해서도 일단 돌아가게 만들 수 있지?”
“네, 그거 전에 찬우가 만들어 놨잖아요.”
성진은 찬우를 껴안고 뽀뽀라도 하고 싶었다.
“좋아, 그럼 일단 과부하 걸린 서버들 빼고 나머지로 돌려, 자유시연 전까지는 서버 기능 많이 필요 없을 거야.”
“자유시연을 한다구요?”
“대통령이 하자고 했나봐. 이런 얘긴 쫌 나중에 하고! 일단 찬우가 만든 그거부터 돌려서 설정해놓고 바로 재부팅 들어가. 빨리!”
“오빠, 그럼 25분은 걸려요.”
“알았어. 일단 끊고, 빨리 움직여줘.”
시연회는 3분밖에 안 남았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 때, 태극기업 담당직원들이 도착했다.
“로봇 몸체는 이상 없죠?”
이번 프로젝트에서 태극기업은 로봇의 몸체, 한국대학은 두뇌를 맡았다. 기업에서 몸체를 만들어서 보내주면 학교에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아무리 한 달 전에 최종 버전의 몸체를 보내주었다지만, 당연히 함께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성진과 찬우의 눈빛이 싸한 걸 느꼈는지, 직원들이 이어서 말했다.
“저희가 일찍 오려고 했는데 차가 너무 막혀가지고.”
“그 사람들 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었나 봐. 사람 많은 거 봐. 대통령이 대단하긴 해, 그치?”
성진과 찬우는 욕을 삼키느라 말을 못 했다.
“아, 여기 인터넷 환경은 괜찮아요? 필요할까 싶어서 무선공유기 챙겨왔는데.”
심했다. 저거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제야…. 성진은 쓸개즙이 넘어오는 것만 같았다.
“인터넷 연결은 이상 없습니다.”
성진은 딱딱하게 답했다. 서버 걱정으로도 충분히 복잡한데, 더 이상 감정 소모하기 싫었다.
“아, 아, 잠시 뒤에 케이-알파맨 시연회가 시작되오니, 내빈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곧 시작이다. 겉으로는 어떻게든 시작된다. 성진은 자꾸 시계만 쳐다봤다. 다리를 떨었다. 선영에게 연락해볼까 하다가 말았다. 답장을 할 시간에 작업을 하는 게 나았다. 얼마나 남았을까.
“그럼, 지금부터, 시연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태극기업 전호준 회장님께서 개회사를 하시겠습니다.”
사회자가 말했다. 회장이 단상 가운데로 올라왔다. 회장은 뒤를 돌아 대통령님께 허리를 한 번 숙인 뒤, 마이크 앞으로 섰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도 나라를 위해 애쓰고 헌신하시는 대통령님, 새로운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해 늘 관심 가져 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장관님, 국회의원님 여러분, 또한 이 역사적 순간에 함께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오신 귀한 내빈 여러분,”
곧 정치라도 시작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 때, 성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남은 서버로 구동 중. 정지된 서버 재부팅 시작.’
‘13:00:30쯤 시작한 거 같아요.’
‘생각보다 빨리 시작했네요.’
선영이 보낸 메시지가 연달아 왔다. 그렇다면 13:20:30까지 버텨야 한다. 성진은 찬우에게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둘은 눈빛을 교환했다.
개회사는 인사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갑자기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초과학에 아낌없는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는 말로 넘어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찬우가 성진에게 속삭였다.
“형, 저 사람 과학자 출신이었어요?”
“아닐 걸? 그냥 엠비에이(MBA) 뭐 이런 거 공부했을 텐데. 아버지 회사 물려받은 거잖아.”
“말 잘 하시네.”
“누가 써줬겠지. 무슨 말이든 길게만 쭉쭉 뽑아줬으면 좋겠다.
개회사는 10분간 이어졌다. 모두가 지루함을 참는 표정이다. 회장을 응원하는 사람은 성진과 찬우뿐이었다. 이어서 국민의례가 이어졌다. 이제 13시 13분. 7분여만 더 있으면 된다. 아직 대통령 축사가 남아있다. 성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찬우야, 대통령 축사가 그래도 7분은 버티겠지?”
“그렇겠죠?”
“어차피 시연 첫 부분은 서버 100대로도 충분할 테니까, 시간은 충분할 것 같아. 저 회장님 최초로 존경스럽다.”
대통령이 단상에 올랐다. 그런데 아무 것도 꺼내놓지 않고 말을 시작한다.
“오늘은 참 역사적인 날입니다. 만년 2등에 머무르던 우리 과학이 세계를 선도하기 시작한 날입니다.”
이번에도 찬우가 말을 걸었다.
“형, 근데 우리 이거가지고 세계 선도하는 거 맞아요? 미국 꺼 그냥 따라 하긴 뭐하니까 몇 가지 기능 덧붙인 거잖아요.”
“너 말고도 그런 기사 써줄 사람 많으니까, 넌 졸업이나 해라.”
둘은 다시 대통령의 입에 주목했다. 저 입에 둘의 목숨이 달렸다. 제발. 길게만.
“그래서 참 좋은 연설문을 준비해왔습니다. 비서실에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저런 멘트는 뭐지? 성진의 뒷골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앞서 우리 회장님께서 너무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그 말씀은 현장에 있는 사람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기에 더 의미가 있습니다. 저도 백 퍼센트 동의합니다. 그러니 저는 여기서 말을 줄이겠습니다. 제가 말을 덧붙이면 회장님 말씀이 묻힐 것 같습니다. 여기 와주신 기자님들께서는 우리 회장님 말씀 가지고 기사 많이 써주십시오. 그래도 딱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시연회를 준비하느라 고생하신 모든 분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 나라를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대통령은 고개를 한 번 숙여 인사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순간, 성진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6분이 남았다. 6분이.
멈춘 시간 속에서 성진의 머리에 한 단어가 스쳤다. 음성인식! 자유시연을 하기 전이라도 음성인식 서버들은 반드시 다 켜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 말을 알아듣고 동작을 한다. 음성인식 서버들은 몇 대가 재부팅 중일까?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연설에 박수를 치고 있었다. 오래도록 치고 있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면 시연 순서다. 시연 순서는 1분 정도의 동영상 상영으로 시작한다. 그 사이 케이-알파맨을 무대 가운데로 위치시켜야 한다. 그리고 시연이 시작된다.
“찬우야, 니가 로봇 좀 옮겨.”
성진은 가방에서 재빨리 프리젠테이션용 리모컨을 꺼냈다.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컴퓨터로 달려가서 꽂았다. 주머니에서 유에스비(USB) 메모리도 꺼냈다. 일단 꽂았다. 동영상이 잘못되면 안 되는데. 원래 이런 자리에서는 컴퓨터를 최대한 안 건드리는 게 답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답 따위 이미 물 건너갔다. 유에스비 메모리에서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하나 열었다. 연구실 신입생들에게 설명하려고 만들었던 자료다. 뒤를 돌아봤다. 찬우가 로봇을 옮기고 있다. 둘이 옮기면 쉬운데. 시간이 없다. 다시 컴퓨터를 봤다. 프리젠테이션 파일에서 복잡한 수식이 나오는 페이지들을 지웠다. 동영상이 끝나간다. 다섯 페이지가 남아 있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찬우가 로봇을 위치시키고 돌아가려고 한다. 동영상이 끝났다. 성진은 바로 슬라이드쇼를 시작시켰다. 그리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케이-알파맨의 시연을 담당한 김성진입니다. 방금 전에 영상에서 보셨듯이 케이-알파맨은 딥러닝과 강화학습 알고리즘이 정밀한 기계공학과 만나 탄생한 세계 최고 기술의 집약체입니다.”
예정에 없던 순서다. 성진의 등 뒤에서 교수님의 서늘한 눈빛이 느껴진다. 하지만 성진이 신경 쓰는 건 선영이뿐이다. 어차피 발표를 길게 할 수는 없다. 그 안에 서버들이 다 켜져야 한다. 켜지자마자 연결도 시켜야 한다. 제발. 제발.
“보아하니 이 자리에는 여러 연구자분들과 대학원생들도 와계신 것 같습니다. 그 중에는 인공지능 전공이 아닌데도 오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케이-알파맨의 이론적 배경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성진은 말을 이어갔다. ‘5분’ 한 단어만 생각하면서 딥러닝과 강화학습에 대해 설명했다. 아무리 지루해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해도 상관없다.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에야, 성진은 뒤쪽 벽에 걸린 시계를 발견했다. 현재 시간 13:19:42였다. 마지막 페이지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13:20:31. 됐을까? 계획대로 됐을까? 선영이가 모든 서버를 다시 연결했을까?
이젠 긴장하기도 지친다. 될 대로 되라지. 그 순간 허리춤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선영의 메시지였으면 좋겠다. ‘오빠! 재부팅 끝!’이라는 내용이었으면 좋겠다. 성진은 쾌활한 척하며 케이-알파맨을 불렀다.
“케이-알파맨, 자기 소개를 해줄래?”
- 안녕하세요. 저는 케이-알파맨입니다. 한국형 사무원 로봇입니다.
헉. 대답했다. 대답했어! 서버가 켜졌구나! 켜졌어! 성진은 정말 새신을 신고 뛰어올라 머리가 하늘까지 닿고 싶은 기분이었다. 세상에, 대답을 하다니. 대답을! 하지만 사람들은 가만히 박수만 쳤다. 기계가 하는 인사말 정도에 놀랄 시대는 지났으니까.
기본적인 시연이 이어졌다. 케이-알파맨은 서류철 정리를 할 줄 알았다. 흩어진 종이들을 내용상으로 정리하고 페이지 순서도 다시 맞춰줬다. 로봇은 종이문서보다는 전자문서가 더 어울리는 게 아닌가는 싶지만. 청소도 할 줄 알았다. 발을 통해 먼지를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물론 최저시급의 청소부가 훨씬 싸게 먹힌다. 기본 시연의 백미는 타자치기였다. 케이-알파맨은 분당 1000타의 속도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오타도 없었다. 사람들이 놀랐다. 탄성을 질렀다. 왜 로봇씩이나 돼가지고 직접 데이터 전송을 하지 않고 굳이 키보드를 두드리는지, 여기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드디어 자유시연 시간이다. 성진은 두려움 앞에 겸허해졌다. 잘못하다 아까처럼 서버들이 고장 나면, 자기가 직접 로봇 안에 들어가서라도 시연을 마쳐야 한다. 방법이 없다. 잘 돼야만 한다.
“이제 자유시연 순서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사전에 무언가를 듣지를 못 했습니다. 케이-알파맨에게 무엇을 시켜볼까요?”
성진은 모두가 쑥스러워 해서 손을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수십 명인지 수백 명인지 모를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대체 어떡해야 좋을지 고민하는데 찬우와 눈이 마주쳤다. 찬우가 뭔가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뒤를 보라는 것 같다. 뒤를 돌아봤다. 대통령이 손을 들고 있었다. 아까 바둑 이야기를 꺼내 서버 200대를 정지시킨 그 대통령이.
“아, 대통령님, 말씀하시죠.”
대통령이 천천히 일어나서 말했다.
“요즘 한국 경제가 많이 어렵지 않습니까? 케이-알파맨에게 한국 경제를 살릴 복안을 좀 물어보고 싶은데요.”
성진은 머리가 쭈뼛 섰다. 서버들은 재부팅을 시켰을 뿐, 개선한 것은 없다. 저 질문이 그대로 들어가면 안 된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면 껌뻑 죽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자리에서, 성진은 반항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님, 정말 죄송한데요, 로봇은 본능이란 게 있습니다. 예전에 케이-알파고는 바둑을 이기는 것 하나만을 목표로 학습을 하고 바둑을 두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처럼 케이-알파맨을 회사의 이익만을 목표로 해서 학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질문을 살짝 바꿔서 태극기업을 번창하게 할 방안을 물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내가 실수를 했네요. 그렇게 하세요.”
당장은 다행이다. 이따가는 버릇없다며 혼나겠지만.
“케이-알파맨, 태극기업이 돈을 더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하면 돼? 보고서를 작성해줘.”
-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30초쯤 흘렀을까? 성진이 뭐라도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케이-알파맨이 말을 이었다.
- 보고서를 메일로 전송하였습니다.
그 때, 회장이 나섰다.
“저, 그 보고서 저한테 갖다 주시죠. 제가 받아봐야 할 보고서 같은데요.”
모두가 웃었다. 회장은 무대 가운데로 나왔다. 성진은 컴퓨터쪽으로 걸어갔다. 찬우가 이미 보고서를 받아서 인쇄하고 있다. 성진이 인쇄된 보고서를 받았다. 다시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보고서를 훑어봤다.
앗. 망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성진은 일단 회장에게 보고서를 줬다. 보고서 첫 장을 보게 된 회장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바로 미소를 되찾았다. 그리고 보고서를 찬찬히 넘겨보기 시작했다.
성진은 재빨리 컴퓨터쪽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회장만 쳐다보고 있다. 성진은 다시 유에스비 메모리를 열었다. 태극기업에서 발표했던 자료를 찾았다. 재빨리 수정하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끝까지 훑은 뒤, 회장이 말했다.
“아주 훌륭한 보고서입니다. 생각보다 더 훌륭하네요. 여러분께 보여드리면서 자랑하고도 싶은데요, 이 방안들은 우리 회사의 비책이 될 것 같아서 차마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허허허,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성진은 발표자료에 재빨리 ‘[공개용]’이라고 써 넣었다. 그리고 바로 화면에 띄워버렸다. 그리고 회장에게 손짓을 했다.
회장이 성진의 손짓을 보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원래 그러기로 되어 있었다는 듯 태연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케이-알파맨이 보고서 공개를 못 한다니까 삐쳤나 봅니다. 공개용 발표 자료를 따로 준비했네요.”
사람들이 웃었다.
“케이-알파맨은 태극기업이 앞으로 인공지능에 중점을 두고 매진해야만 한다고 봤네요. 자기에 대한 투자를 더 늘려달라는 건가요? 그리고 우리 회사가 더 발전하려면 꼭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건비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네요. 이 노동법 개정안이 바로 대통령님의 작품 아닙니까. 역시, 케이-알파맨도 대통령님의 탁월한 안목을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회장은 마이크에서 입을 뗐다. 여전히 미소를 띄고 있었다. 성진은 다시 무대 중앙으로 갔다. 회장은 성진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끝내.”
보고서엔 두 가지 내용이 있었다. 첫째, 임원들 중에 저성과자가 많으니 해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고대상자 목록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전’씨였다. 회장님처럼. 둘째,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월급을 적정선으로 올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능률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여러 경제학, 심리학 논문들이 인용되어 있었다. 대통령의 노동법 개정안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였다.
성진은 로봇을 쓰다듬는 척, 자연스럽게 로봇의 스피커를 껐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분, 정말 죄송하지만, 케이-알파맨이 방금 너무도 훌륭한 보고서를 쓰느라 서버에 과부하가 걸렸습니다. 아직 시연을 하는 수준이라 안정성이 좀 부족하거든요.”
케이-알파맨의 고개가 좌우로 돌아갔다.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음소거 상태다.
“그래서 오늘 시연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훌륭한 시연을 보여준 케이-알파맨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회장이 다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케이-알파맨을 개발하느라 수고한 모든 사람들에게도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정말 수고 많았어요.”
회장은 정말 기분이 좋다는 듯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사람들도 다시 한 번 박수를 쳤다. 대통령이 일어나 나갔다. 사람들도 뒤따라 나가기 시작했다.
끝났다. 끝이 나긴 났다. 성진은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새로 산 무선공유기를 챙겼다. 컴퓨터에 꽂아놓은 프리젠테이션용 리모콘과 유에스비 메모리도 챙겼다. 케이-알파맨은 찬우가 챙겼다. 같이 차로 옮겼다.
성진은 운전석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리가 안 된다.
“찬우야, 우리 좀 쉬었다 가자.”
성진은 의자를 한껏 뒤로 젖혔다. 심호흡을 했다. 청소년 시절 좋아하던 노래를 떠올렸다.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형, 근데 아까 진짜 대단했어요. 앞에 나가서 발표할 생각을 어떻게 했어요? 말도 진짜 잘하던데요, 그 때 신입생들한테 했던 것보다 100배는 잘 했던 거 같아요.”
“그래, 그러게. 내가 어떻게 한 걸까?”
성진은 뿌듯하기도 싫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 지나갔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싶었다.
찬우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나서, 물어봤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발표자료는 왜 만든 거예요?”
“찬우야, 너 그 보고서 봤니?”
“네, 발표자료랑은 완전 다르던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찬우야. 로봇의 본능은 회사의 이익이잖아.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설정한 거잖아.”
“그쵸.”
“그런데, 인간의 본능은 생존이야.”
성진의 본능은 오늘 참 많은 일을 했다. 순식간에 준비해서 5분짜리 발표를 했다. 서버를 재부팅했다는 사실을 끝내 숨겼다. 보고서 내용을 뒤엎는 발표 자료를 순식간에 만들었다. 서버가 과부하 걸렸다는 거짓말을 했다.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그 결과, 성진은 살아 있다.
그런데 성진은 케이-알파맨이 부러웠다. 미리 준비되지 않은 것은 대답하지 않는 그가 부러웠다. 자신의 가치관과 소신에 따라 직언할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아부도, 거짓말도 필요 없는 그가, 정말 부러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케이-알파맨은 절대 취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부럽지 않았다.◑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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