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과학벨트, 꿈과 정치

과학벨트 지나온 길 2004-2011을 돌아보며


정치는 어떻게 과학을 이용했나?

과학은 어떻게 정치를 이용했나?



글의 순서

- 은하도시에서 과학도시, 과학벨트로

- ‘냉소반, 기대반의 반응’ 과학벨트 추진과정

- 은하도시와 과학벨트의 닮은꼴

- 수많은 우려 풀지 못한 채... 3조5000억원 ‘속도전’ 의결

- 정치를 이용한 과학, 과학을 이용한 정치




00LMBscience » 2007년 11월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열린 과학기술연합회 초청특강에서 이명박 후보가 특강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2대 핵심 프로젝트"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건설과 신에너지 기술개발로 에너지 자립국 실현이 제시되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결국에 이렇게 되는 건가요?” 지난 2009년 11월 말께 세종시의 행정도시 기능을 대체하는 대안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거론되기 시작했던 무렵에 대전 대덕특구 안 정부출연연구소의 한 연구자는 과학기자인 내게 물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공약으로 ‘행정복합도시와 오송·오창 단지를 연계하는 과학벨트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행정도시 대체용이 아니냐는 말들도 나왔는데 결국에 이렇게 현실이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이의 기억들을 더 더듬어봤다. 다른 연구소의 연구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이명박 후보는 대덕단지를 방문해 ‘과학비즈니스도시’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연구자들한테 이게 대덕단지와 중복된 투자가 아니냐는 물음을 받았고 그래서 ‘벨트’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구자도 “이 후보가 당시에 대전과학고에서 유권자들과 만남을 가졌고 대덕단지 중복투자 문제가 제기된 데 이어 이후에는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말이 쓰였다”고 기억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줄여 '과학벨트')가 머릿속의 구상에서 출발해, 선거 공약으로 자리잡고, 정부의 대형 정책으로 추진돼 이젠 특별법까지 마련됐으나, 격심했던 세종시 논란에 이어 또 다시 지역유치 경쟁과 정치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사실 세종시 논란과 요즘의 입지 논란에 휩싸이기 이전에도 과학벨트는 여러 토론회나 공청회가 열릴 때마다 말도 많고 논란도 많았던 정책이었다. 거대 실험장치인 가속기가 꼭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중이온 가속기를 먼저 건설해야 하나 방사광 가속기를 먼저 건설해야 하나, 과학벨트에 세워질 아시아기초과학연구원(ABSI)과 기존의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들의 기능은 중복되지 않는가, 출연연과 기초과학연구원의 관계는 무엇인가, 과학벨트의 입지는 어디가 적당한가, 기초과학 육성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기초과학계의 의견은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닌가 등등. 이런 과학계 내부의 논란에 더해 지금 과학벨트에는 ‘과학과 정치’의 관계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이 짙어지고 있다.


그동안 과학벨트와 관련해 나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취재했나? 나의 취재메모와 자료들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과학벨트의 역사 조각들을 짜깁기해 되돌아보았다.




은하도시에서 과학도시, 과학벨트로


과학도시 또는 과학벨트 구상의 뿌리는 ‘은하도시’에 닿아 있다. 현재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인 민동필 서울대 교수(물리학)를 중심으로 여러 명망 있는 과학자들은 2005년 무렵부터 기초과학과 문화, 예술이 어울리는 이상적인 도시로서 ‘은하도시’라는 구상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은하도시 구상은 2006년 12월 ‘은하도시포럼’이라는 이름의 사단법인 조직에 둥지를 틀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은하도시 구상과 조우한 것은 대통령 선거 전인 2007년 초였다. 이에 앞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006년 10월23일 대형 가속기가 있는 유럽핵물리학연구소(CERN)을 방문한 일은 이런 과학벨트 구상의 역사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민동필 이사장의 2008년 프레젠테이션 자료 “한국기초과학의 미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프로젝트”에서도 CERN 방문은 중요하게 언급됐다).

1825695501_cbf157bb_milkyway-logo » 은하도시포럼의 로고. www.milkyway.or.kr

 

milkywayforum » 은하도시포럼의 연혁. 이 표에선 2006년도까지만 나와 있다. 출처/ www.milkyway.or.kr

 

 

하지만 게을렀던 탓인지 과학기자인 내가 ‘은하도시’ 구상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통령 선가가 끝난 직후인 2008년 1월 무렵이었다. 이른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펨토과학’ 발언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대통령 당선인은 과학계 인사들을 만나 “과학 없는 비즈니스, 비즈니스 없는 과학으로는 미래가 없다” “나노(10억분의  1)를  뛰어넘는 펨토(1천조분의 1) 과학시대를 열어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과학계에선 ‘펨토과학’이란 말은 주로 시간 단위로, 즉 1천조분의 1초를 뜻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었기에 주로 크기 단위로 쓰이던 “나노”와 대칭을 이뤄 '포스트 나노시대'로 '펨토시대'를 이야기하는 데 대해 엉뚱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좀 더 알아보니 나의 오해였다. 또한 그 말에는 나름의 배경이 있었다. 은하도시포럼은 기초과학이 주도하는 시대를 “펨토과학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었다. 당시 은하도시포럼(http://www.milkyway.or.kr) 사이트에 올라 있던 일부 자료에선 이런 소개가 있었다. “펨토미터는 원자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핵의 크기를 측정하는 단위이다. 요컨대 펨토과학은 1천조분의 1미터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연구이다. 펨토 차원에서 우주의 근원, 물질의 탄생, 인체의 신비에 접근하면 그동안 과학이 풀지 못한 대부분의 수수께끼가 풀릴 것으로 전망된다.” 즉, 핵물리학 분야의 용어로서 펨토 단위가 쓰였으며, 이는 기초과학을 상징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그 연구거점은 가속기였는데 다음 글에서 그런 뜻을 읽을 수 있다. “펨토과학의 성공 여부는 고성능의 가속기 확보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속기는 전자나 양자 등 입자를 빠른 속도로 가속시키는 실험 장치이다. 가속기는 일반 환경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립자를 만들어내서 우주 탄생의 수수께끼와 물질의 궁극적인 구조를 밝히는 데 이용된다.”


은하도시포럼은 과학자들이면 누구나 꿈꿀만한 과학도시의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아무런 장애 없이 기초과학을 자유롭게 연구하며 우주와 생명의 근원을 탐구하는, 그것도 높은 문화와 예술과 교육의 품격을 갖춘 이상적인 도시의 건설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 꿈은 이렇다.


"은하도시를 꿈꾸며. 꿈이 모여 세상을 바꿉니다. [...] 이 꿈은 우리도 세계 최고의 연구 환경을 만들어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꿈은 누구나 창의적인 생각이 샘솟는 환경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을 건설하는 꿈입니다. 인류가 풀어야 할 문제를 풀고, 인류가 새로 고민해야 할 문제를 만들어 내는 곳에 대한 꿈입니다. 이 꿈이 바로 은하도시입니다. [...] 우리에게는 열정이 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도 있습니다. 아이디어도 있고 자신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기초과학이 'Quantum Jump'를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민동필, ‘은하도시포럼 설립 취지’. 2006.)


2007년 1월22일, 은하도시포럼이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연 "포스트 나노 시대를 준비하는 펨토과학 비즈니스 도시 국제포럼"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축사의 내용은 지금 확인할 길이 없으나, 당시 중앙일보사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그해 1월 보도기사를 보면 "이 전 시장은 은하도시포럼 측과 과학도시 건설을 위한 공동방향을 모색하기로 결정"다고 전해진다(기사 ).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 활동을 거친 이후인 2008년 5월 무렵에, 한 과학단체에서 행한 민 교수의 강연자료에서는 과학비즈니스, 기초연구, 응용연구, 연구개발과 더불어 인문학, 사회학,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과학벨트의 공간적 콘텐츠를 소개하고 있다(다음 페이지의 그림 참조). 인수위를 거치면서 과학벨트는 현실 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의 뼈대를 갖추게 되었다.


LMB20070122 » 은하도시포럼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출처/ www.milkyway.or.kr


이렇게 보면, 우주 탄생의 수수께끼와 물질의 궁극적 구조를 밝히는 데 쓰이는 입자가속기와 기초과학의 이상이 강조되던 분위기는 새정부 인수위(민동필 교수는 과학벨트 TFT팀장을 맡았다)를 거치면서 다소 손질된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와 응용연구, 연구개발 등이 더해지면서 초기의 순수기초 연구를 강조하던 분위기는 다소 무뎌진 느낌도 들게 했다. 이상적인 구상은 좀더 현실적인 구상으로 변모했다.




‘냉소반, 기대반의 반응’ 과학벨트 추진과정


한때 과학비즈니스벨트는 ‘과학기술계의 대운하사업’이라는 평판도 얻었지만, 점차 이명박 새정부의 대표적 과학정책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과학벨트의 추진과정은 여러 과학자들한테 기대도 주었지만 의구심도 낳았다. 정책제시나 추진과정이 돌출적이었던 데다 기초과학계 안에서 충분히 공유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이미 은하도시포럼 중심의, 특정 과학자 그룹 중심의 구상이 구현되는 과정으로 이해되었으므로, 특정 그룹에서 멀리 떨어진 과학자들의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권영길 의원(민주노동당)이 2009년 10월 교육과학기술부에 대한 국정감사 자리에서 밝힌 과학기술인 설문 조사결과는 정작 과학기술 주요 정책에 관여하는 과학기술인 상당수가 과학벨트의 추진 내용에 관해 잘 모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부 출연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을 주된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41.8%나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알고 있다’는 답변 58.2%는 ‘모른다’는 답변보다는 많아지만, 대형 국책사업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


과학벨트 정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상당한 수치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왜 과학벨트인가""라는 물음에 많은 연구자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과학벨트에 대한 견해를 묻는 물음에 ‘기존 연구기관과 산업클러스터를 집중 육성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54.1%)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기초과학 진흥을 위해 꼭 필요하므로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답변은 8.2%에 불과했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반영된 답변의 결과로 풀이되지만, 과학벨트 정책 자체가 국내 과학기술계의 주요한 한 축인 출연연 사회에서는 크나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과학벨트의 주요 연구기관이 될 기초과학연구원에 대한 견해에서도 ‘기존 연구기관과 학교에 대한 지원이 급선무이다’라는 답변이 66.7%를 나타냈으며, ‘기초과학 집중투자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답변은 19%에 불과했다.


기초과학자들이 과학벨트에 대해 냉소반, 기대반의 시선을 보내는 현실은 ‘기초과학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가 일선의 연구현장에서 제대로 실감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초과학의 기초과학으로 불리는 수학 분야의 한 대학 교수는 2009년 말 세종시 논란이 한창이던 때에 했던 전화통화에서 “기초과학연구원의 50개 연구과제에서 수학이 홀대를 받고 있다는 여론이 수학계에 있다”며 “과학벨트가 행정도시의 대안이라는 정치적 선택으로 세종시에 입지하면 더 큰 규모로 추진되면서 수학에 좀 더 많은 지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냉소적 기대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반응은 기초과학자들이 과학벨트 정책에서 과학 분야별로 제기되는 고유한 연구과제와 전통이 고려되기보다 정치적 전개 과정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내비치는 것이기도 했다. 서울시내 대학의 다른 교수는 “과학벨트가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공약으로 제시된 순간부터 정치적 사업이 됐다”며 “이젠 정치의 들러리가 된 꼴”이라고 비판했다.



은하도시와 과학벨트의 닮은꼴


은하도시에 관한 옛 자료들을 찾아서 과학벨트 종합계획과 비교해보니 흥미로운 점을 볼 수 있었다. 2006년 은하도시 구상과 비교할 때에 현 정부에서 각계 의견을 수렴해 만들었다는 과학벨트 종합계획에는 상당한 닮은꼴이 나타났다. 종합계획은 여러 의견수렴 절차와 여론조사를 거치면서 다듬어졌는데도, 중요한 부분에서는 ‘은하도시 구상’이 거의 그대로 관철되고 있었다. 이런 대목을 볼 때에는, 과연 의견수렴이 제대로 이뤄졌느냐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은하도시 구상의 뼈대가 원래 탄탄하고 탁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과학벨트의 뼈대는 의견수렴 절차 이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몇 가지 닮은꼴을 살펴보자.


중앙일보사가 발행하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6년 9월과 2007년 1월 은하도시 구상에 대해, 그리고 이명박 후보와 은하도시포럼의 만남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으니, 거기에서 은하도시 건설계획의 요지를 찾아 요약해보자. 아래는 2006년 9월 “꿈의 ‘과학+예술’ 연구 도시 생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 실린, 은하도시 구상을 정리한 표이다.


숫자로 본 은하도시


인구: 30만~50만 명 (국내 과학자 3000명 + 예술가, 기업인 1000명 + 엔지니어, 공학도 500명 + 알파 해외 과학자+예술가+가족)

도시 설립 초기 자본: 3조원 (대형 가속기 1조원 + 연구단지 등 기초 인프라 2조원)

설립 이후 투자 유치비: 연 1조원


은하도시란?


실험실

-국립기초과학연구소다

-중이온 복합가속기 중심이다

-생명, 건강, 환경 등을 포괄하는 글로벌 사이언스 콤플렉스다

-에너지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추구한다

-3000명의 과학자가 생각의 힘을 키우는 학교다

커뮤니티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연구공동체다

-과학과 예술의 대화가 있는 문화의 장이다

-기초과학 연구를 비즈니스화 한다

성장의 동력

-국가성장의 신형 엔진이다

-국토의 가치를 키운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생산한다



00milkyway1


00milkyway2

00milkyway3

(민동필, "한국기초과학의 미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프로젝트", 2008년 5월.)



이제, 다음은 2009년 1월13일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대통령) 본회의에서 의결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종합계획안’의 내용 일부이다. 국과위 사이트에도 공개돼 있다.



□ 주요내용


○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연구원 설립

- 국내 기초과학 역량의 획기적 진흥을 위해 국내외 석학급 연구자가 참여하는 기초과학연구원 설립

- 총 3,000명 규모로 본부에 50% 이상의 연구단을 구성하되, 국내외 대학, 연구기관에 Site-Lab을 갖는 Network형태로 운영


○ 대형연구시설로서 중이온가속기 우선 설치 추진

- 선진국 대형연구시설 로드맵 분석 및 과학기술계 의견수렴 등을 통해 가속기 건설 필요성 검토

- 전문위원회에서 중이온가속기 우선 투자 권고


○ 지속성장 도시조성을 위한 비즈니스기반 구축

- 기초과학과 중장기적으로 연계되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식기반 첨단기업 유치

- 입주기업의 기술혁신역량 제고, 벨트내 산업․기업간 융합 촉진 및 기초과학연구원의 연구성과 관리․이전․활용 강화


○ 과학과 문화예술이 융합된 국제적 도시환경 조성

- 우수한 교육환경, 문화예술, 글로벌 정주환경을 갖춘 유비쿼터스 도시 조성 및 녹색기술의 Test-Bed 기능 수행


○ 기초과학 거점 조성 및 지역연구거점과의 네트워크화

- 거점지역을 선정하여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고급두뇌가 모이는 과학비즈니스거점으로 육성

- 교육․연구․산업 기능을 갖춘 지역에 기초과학연구원  Site-Lab을 지원하여 기초과학 거점과 Network화


[...]


○ 소요 예산(추정)

- ‘09~’15년까지 7년간 총 3조 5,487억원


(* 설명: 이 글에서 Site-Lab(사이트랩)은 기초과학연구원 본부가 세워지는 '거점'과 구분되는 '연구단'의 개념으로, 본부 외에 다른 지역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에도 사이트랩이 설립될 수 있다. 지역 분산과 네트워크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글쓴이)



물론 세세한 내용이나 비용 계산에서는 당연히 차이가 나타나지만, 아시아를 대표하는 3000명 규모의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하고, 중이온 가속기 건설에 우선 투자를 하며, 외국의 우수 연구자를 대거 유치하고, 무엇보다도 과학과 비즈니스를 결합하며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이 어우러지는 도시를 건설한다는 큰 밑그림은 그대로 관철됐다. 3조5000천억  원 이상이 들어가는 대형사업에서 이처럼 민간포럼단체의 초기 구상(2006년)과 정부의 정책구상(2009년)이 닮은꼴을 이루게 된 것은 두고두고 음미해볼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우려 풀지 못한 채... 3조5000억원 ‘속도전’ 의결


과학벨트가 과학뉴스로 등장할 때마다 일선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묻는 취재를 하다보면 과학벨트 정책을 지지하는 학자들도 많고,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학자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과학벨트만큼 과학자들의 호불호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과학기술 정책도 드문 것 같다. 상당수 과학자들은 “문제가 많은 정책”이라고 말한다. 과학벨트 추진과정에 여러 쟁점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충분한 토론의 기회도 없이 정해진 일정에 따라 빠르게 추진되면서 반론을 제기하는 과학자들도 제풀에 지치거나 냉소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기록해둘 만한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대통령이 당연직 위원장으로서 회의를 주제하는,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과 관련한 최고의 의사결정 기구인 국과위에서 있었던 일이다. 과학벨트 특별법이 제출되기 이전에 당연히 이곳 국과위에서 먼저 사업이 의결되어야 했다. 2009년 1월13일 제29차 본회의에서 과학벨트 사업이 최종 의결됐다. 과학벨트 종합계획의 주요 내용은 바로 앞 부분에서 길게 인용했던 바대로 △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연구원 설립 △ 대형 연구시설로서 중이온가속기 우선 설치 추진 △ 지속성장 도시조성을 위한 비즈니스기반 구축 △ 과학과 문화예술이 융합된 국제적 도시환경 조성 △ 기초과학 거점 조성 및 지역연구거점과 네트워크 구축 등이다. 기초과학 연구공간을 지속가능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비즈니스 기능과 교육, 문화, 예술의 도시환경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었다. 도시 하나를 건설하는 거대한 기획사업이다.


사업이 커지면 사업의 타당성을 따지는 과정도 복잡해지고 신중해지기 마련인데, 이런 사업의 거대 규모에 비해 여러 이견들은 소홀하게 다뤄지고 말았다. 토론회나 공청회 때에 제기되었던 여러 의문과 우려들, 즉 과학과 비즈니스의 결합 모델의 성공 가능성이나 출연연과 기능 중복의 문제 등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그런 의문과 우려를 잠재우는 어떤 대책들이 만들어졌는지는 나중에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의문과 우려는 본회의 의결이 있기 보름 전에 열린 국과위 운영위원회(제36차, 2008년 12월29일)에서도 나왔다. 2009년 초 과학벨트를 취재할 때만 해도 국과위 운영위원회의 회의결과는 국과위 사이트에 아래아한글 문서로 공개됐으나, 최근에 다시 찾아보니 그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당시에 그 자료를 내려받아 내 컴퓨터에 저장해두었다. 국과위 자료실에서는 사려졌으나 역사 기록의 의미는 있다고 보여 ‘사이언스 온’에 과학벨트 관련된 내용 부분을 길기는 하지만 그대로 다시 올린다.)


(4) 4호 안건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종합추진계획

 

△△△ 위원

 

○ 과학기술계 원로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기초과학과 비즈니스벨트라는 이질적 계획의 통합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었음

- 안건 보완을 위해서 기존 계획(안)을 넘어선 새로운 개념과 아이디어 제시가 필요

 

△△△ 위원

 

○ 기초과학연구원은 사업화와 관계없는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곳이므로 연구분야에 녹색기술개발 연구를 포함해서는 안되며, 기술지주회사도 설립할 필요 없음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관련하여 ‘과학’의 의미를 명확히 정의하고, 이에 따른 주체간 역할분담을 정리해야만 사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음

○ 산업체가 원하는 타입과 과학계가 원하는 타입이 분리되어 있는데, 민간기업의 경우 기초과학의 사업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비즈니스 환경을 갖추어 주는 것이 중요함

⇒ [답변]  이 사업은 우리나라의 부족한 기초과학을 진흥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제안된 공약사업으로서 기초과학연구기능을 확충한 후 여기에 첨단산업 등을 유치하여 비즈니스가 함께하는 도시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시너지를 높이는 개념임

 

△△△ 위원

 

○ 인수위(안)과 달라진 내용은 사이트랩을 둔다는 것인데, 브랜치 개념의 사이트랩을 둔다면 방사광가속기도 포함시키는 것이 국가 장기발전을 위해 바람직

⇒ [답변]  방사광 가속기는 포항 가속기 성능향상 후 향후 해당분야에서 수요를 분석하여 별도로 검토할 사항임

 

△△△ 위원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미국의 실리콘 벨리와 같은 비즈니스 중심으로 과학을 지원하는 개념으로 선회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

- 우선 지경부와 국토부가 나서서 실리콘벨리 같은 것을 소규모로 빠른 시간안에 마련하고, 교과부는 시간을 두고 가속기 등 콘텐츠를 마련하여 연계

⇒ [답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당초 기초과학역량 강화를 위해 제안된 공약사업으로 기초과학연구원 설립과 대형연구시설 구축을 통한 우수한 고급두뇌 유치가 핵심 요소이므로 교육과학기술부 주관하에 지식경제부 및 국토해양부 협조로 추진해 나가는게 타당하다고 판단됨

○ 3000명의 연구원을 몇 년 사이에 확보하는 것은 매우 힘든 문제이며,  5~6000억원의 연구비 지원예산으로는 개인 연구비가 작아 최고 수준의 연구인력 확보는 불가능

⇒ [답변]  3,000명 연구인력중 기존 대학, 연구기관의 site-lab을 제외한 본원의 신규인력은 1,500여명의 연구인력 수준임. 동 인력 역시 단기적으로 동시에 확보한다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연구단을 선정할 계획이므로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확충해 나갈 것이며, 연구단 예산규모는 50명 내외 연구단(visiting scholar 등 포함)기준 직접비와 인건비가 100억원 수준으로 운영비, 장비비는 별도로 지원되는 점을 감안하여 적정한 수준으로 판단됨

○ 가속기의 경우 굉장히 많은 추가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추진에 신중을 기할 필요

⇒ [답변]  가속기는 대형연구시설로서 사업 착수에 신중을 기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향후 예비타당성 조사 및 개념설계(CDR) 등 심도 있는 검토를 거쳐 추진될 것임

 

△△△ 위원

 

○ 사실 이 문제는 인수위 때부터 시작해 1년 정도 토의를 한 사항으로, 그동안 결정된 사항은 국정기획 쪽하고 각 부처(3개 부처)가 많은 논의를 통해 마련하였으며

- 논의의 기본원칙은 (1) 기초과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2) 비즈니스하고 과학하고 연계되는 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차후에 단계적으로 첨단기업이나 첨단연구소를 유치해서 비즈니스 부분은 별도로 병행추진하자는 것이었음

○ 안건내용 중에 ‘과학사업화’ 부분이 있는데, 개념상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빼내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됨

⇒ [답변]  과학사업화단은 기초과학연구원에서 생성되는 지식재산권을 관리하고 라이센싱을 담당할 기관으로서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지재권전략센터로 명칭변경

○ 또한 기초과학의 업그레이드, 첨단기업?첨단연구소 유치 등도 결국 사람 유치와 관련된 것으로 사람이 올 수 있는 정주환경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함

⇒ [답변]  동 사업의 핵심요소는 국내외 우수인력의 확보인만큼 글로벌 정주환경 및 연구환경조성 등 다양한 사업내용을 포함하고 있음

 

△△△ 위원

 

○ 종합계획은 여러 부처의 안을 토대로 작성되는 것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 과학 부분이 지원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논의를 집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함

 

○ 실리콘벨리의 경우는 과학이 비즈니스로 옮겨가게 되는 마지막 단계의 형태임. 따라서 초기에는 막스프랑크나 쯔쿠바 사례를 연구해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

-  특히, 좋은 인력과 기업들이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작업이 매우 중요

⇒ [답변]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독일의 막스플랑크, 일본의 리켄 연구소 사례 등을 벤치마킹하여 도출된 내용임. 향후 우리 실정에 맞게 보완하여 설치·운영토록 하겠음.

 

△△△ 위원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투입되는 자금이 기존 R&D 펀드의 일부를 나눠 쓰는 것인지 아니면 별도의 추가 예산을 확보해 쓰는 것인지 궁금함

⇒ [답변]  기초연구비가 당초계획대로 확대?추진되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별도 예산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음.

○ 세계적 수준에 근접한 연구인력 3,000명 유치라는 부분은 국내 현실상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수치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됨

⇒ [답변]  3,000명 연구인력을 단기적으로 동시에 확보한다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연구단을 선정할 계획이므로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확충해 나갈 계획임

 

△△△ 위원

 

○ 기초과학, 비즈니스, 가속기 등 세 개의 각각 다른 영역을 모아 놓기 위해서는 시너지를 내기위한 전략이 매우 중요함 (원자력(연)의 양성자가속기 사업을 참조)

○ 기초과학을 위한 가속기 사업을 비즈니스와 연결하려면, 각 개발단계에서 추진가능한 비즈니스를 의도적으로 개발하는 전략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

* 예: 원자력(연)의 양성자가속기 사업은 1단계 10년 동안 1억 볼트짜리 양성자 발생을 목표로 하였으나, 중간과정인 3000만 볼트 및 6000만 볼트 단계에서도 기속기와 연계할 수 있는 비즈니스(10개)를 적극 발굴함으로써 사업 목표달성과 동시에 비즈니스도 성공적으로 수행

⇒ [답변]  제시해준 양성자 가속기 운영 예를 참조하여 가속기 설립을 위해 세부계획 추진시 반영토록 하겠음.

 

△△△ 위원

 

○ 종합기초과학연구소의 개념은 기존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출연연과의 중복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므로, 기존 연구소와의 관계도 고려하여 추진해야 함

⇒ [답변]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연구기관은 수리과학연구원과 고등과학원 정도이며 향후 site-lab등을 통해 중복기능을 사전 조정해 나갈 계획임

 

△△△ 위원

 

○ 기술거래소는 내년 해산대상이므로 선정에서 제외해야 함

⇒ [답변]  관계기관 의견 등을 거쳐 보완해 나가도록 하겠음

○ 과학기술성과를 기반으로 하는 미래성장잠재력이 큰 기업 대상의 전용펀드는 고위험 고수익 펀드로 운용사 및 민간 매칭자본을 구하기 어려울 것임(구 과기부의 위그선사업 사례를 참조)

⇒ [답변]  전용펀드 운영은 관련 전문가 등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여 신중히 추진해 나갈 계획임

 

△△△ 위원

 

○ 3조원이 넘는 재원에 대한 언급이 없어 과학계 일반에서 기초과학연구비 삭감을 우려하고 있으므로, 기초투자예산과 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예산을 구분할 필요

⇒ [답변] 기초연구비가 당초계획대로 확대?추진되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별도 예산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음.


(* 이날 운영위원회에서는 위와 같이 여러 의견들이 나왔으나 과학벨트 사업의 원안은 회의에서 접수됐다.  -글쓴이)



여기에서 '[답변]'은 운영위원들의 의견에 대해 정부 쪽이 답했던 발언의 요약이며 '△△△ 위원' 부분은 각각의 운영위원들이 했던 발언의 요약이다. 회의록에서 볼 수 있듯이, 국과위 운영위원들 사이에서 나온 의견들에는 여전히 근본적인 우려나 회의가 상당한 수준으로 나타나 있었다. 사실 이런 우려나 회의는 새로운 것도 아니며, 이미 여러 공청회와 토론회에서도 되풀이되었던 것이었다. 여전히 '기초과학'과 '비즈니스'의 결합 모델이 제대로 검토되었는지 묻고 있으며, 출연연과 기능 중복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담겨 있다. 물론 운영위원들의 의견에는 과학벨트 사업을 독려하는 것도 있다.


운영위원들의 이견은 사소한 문제의 지적이 아니라 과학벨트 사업 자체의 방향까지 언급하는 상당히 근본적인 문제의 지적이었다. 그러나 불과 보름 뒤인 2009년 1월13일에 국과위 본회의는 과학벨트 종합계획안을 의결했다. 다시 열흘 뒤인 1월23일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과학벨트 특별법안을 입법 에고했으며, 당시 설 연휴 기간을 빼고 사흘 뒤에 특별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열었으며, 곧이어 2월10일 국무회의에서 특별법안을 의결했다. 당연히 '속도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대형 국책사업은 이미 공식적으로 통과된 집행정책이 되었다.




정치를 이용한 과학, 과학을 이용한 정치


짧은 역사를 보더라도, 과학벨트 사업은 ‘정치와 과학’의 관계에 관해 많은 얘기를 해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연구도시를 그렸던 과학자 그룹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정치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홀대받던 기초과학자들이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사회에서 당연히 받을 만하다고 여겼던 보상 중 하나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기초과학 육성이야말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대통령 선거 공간에서 강조할 필요를 느껐을 수도 있다.(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축사를 하러 참석했던 2007년 1월22일 은하도시포럼의 '펨토과학 비즈니스 도시 국제포럼'에서는 전국 자연과학대학장 70여명이 작성한 '과학 발전을 위한 7개 어젠다'도 함께 공표됐는데, 이 어젠더가 은하도시 구상과 관련이 있지는 않았지만 당시 대통령 선거 공간에서 자연과학자들이 정치권에 하고 싶었던 목소리를 보여주고 있다. 7개 아젠더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과학은 산업경제를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보다는 미래 지식사회를 이끄는 개척자로서 그 위상이 올바르게 인식되어야 한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정부는 과학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과학계가 세계의 선두그룹에 속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 연구비 예산을 획기적으로 증액해야 하며 국가 연구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다양한 능력개발을 위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아무튼 은하도시 구상에 담긴 과학자들의 꿈을 실현해줄 수 있는 현실 권력은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 선거 공간의 정치세력이었을 것이다. 과학의 이상은 정치권력의 도움을 빌려 실현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이 과학의 이상을 위해 정치의 현실권력을 활용한 데 견줘, 정치인은 현실권력을 위해 과학의 꿈을 활용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거대한 과학 연구정책 사업을 지역개발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순간에 과학벨트는 정치와 무관한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이해관계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것이 되었다. 대통령 취임 이후 2009년 말에 이르러 격화되었던 세종시 논란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의 행정도시 기능을 대체하는 대안으로 과학벨트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세종시 논란이라는 매우 정치적인 문제에 끼어든 과학벨트는 이제 정치 논쟁의 한 복판에 서게 되었다.


다시, 최근인 설 연휴 직전에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과의 대화 -2011 대한민국은!'이라는 제목의 새해 방송좌담회에서 "선거 유세에서는 충청표를 얻으려고 제가 관심이 많았겠죠"라는 발언까지 했는데, 이는 기초과학 육성 의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어 논란을 빚었다. 더욱이 충청권 지역개발 공약으로 제시했던 자신의 공약을 사실상 백지화하듯이 "국가 백년대계니까 과학자 입장에서 (결정)하는 게 맞다'는 원칙을 표명했는데, 이는 그런 원칙의 형식논리는 타당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을지라도 2007년에 표를 의식해 충청권에 과학벨트를 건설하겠다고 했던 대통령 후보 공약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과학벨트의 역사 조각들을 되돌아보면 거기에는 몇 가지 시기의 단계들이 나타난다. 먼저 2004년 무렵에 처음 제안된 은하도시는 한 동안 기초과학자들의 순수한 염원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2007년 이후 현실정치의 권력과 랑데부한 은하도시 구상은 과학비즈니스벨트로 변모했고, 이제 순수한 이상에서 벗어나 현실정치에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진행되었다. 일부 과학자 그룹이 행했던 ‘정치의 활용’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과학과 정치가 만난 이후에 이제는 과학벨트의 무대에서 정치권력에 의한 ‘과학의 활용’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에서는 갖가지 기초과학계의 논란과 우려와 쟁점들이 쏟아졌다. 이 글의 앞쪽에서 정리했던 그런 종류의 논란과 우려와 쟁점은 되풀이되었다. 하지만 결국에 과학벨트 종합계획의 수립 과정은 은하도시 과학자그룹의 구상이 거의 그대로 관찰되는 과정이었다. 국과위 본회의 의결 이후에 논란과 우려와 쟁점은 블랙박스 안에 넣어졌다. 논쟁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다음 단계는 정치권이 과학벨트를 매우 정치적으로 사용한 사례들이 이어졌다. 세종시 논란에 끼어든 과학벨트라는 협상 카드는 극적인 사례가 됐다. 이제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국가 차원의 논란이 아니라 유치 경쟁이라는 지역들 간 힘 겨루기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기초과학의 획기적인 육성정책으로 출발한 과학벨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에서 기초과학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자. ‘기초과학의 잔치판’이라고 불릴 수도 있을만한 과학벨트 추진과정에서, 그리고 지금의 논란에서 그 잔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기초과학자들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자.


누가 정치를 이용했는가? 누가 과학을 이용했는가?


사실 과학과 정치는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과학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예산이 확보되어야 하며 그것은 여론을 수렴하는 정치의 이해와 협력 없이 이뤄질 수 없다.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정부는 그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과학을 키워야 하며 그것은 과학의 협력과 참여 없이 이뤄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과 정치’는 좋은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지 서로 관계 맺기를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볼 때에 조금 전에 했던 물음은 달라져야 한다.


누가 정치를 '어떻게' 이용했는가? 누가 과학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더 나아가 현 정부에서 추진된 과학벨트는 과학과 정치의 '좋은 관계'를 보여준 사례가 되었는가?


과학과 정치의 좋은 관계가 무엇인지는 모호하고 정답을 찾기 어려운 물음일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활발한 공론장에 바탕을 두며 과학과 정치가 서로 신뢰를 굳혀가는 과정은 그런 좋은 관계에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해보인다. 그런데 기초과학의 획기적 육성을 내걸고 출범한 과학벨트 사업이라는 화려한 무대의 지난 몇 년 간 역사에서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은하도시 과학자그룹만이 크게 도드러져 보이고 일선 기초과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은 잘 들리지 않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도 이런 것이 지금 과학벨트 정책이 정치 무대에 올려져 일을 꼬이게 만든 큰 배경일 수 있다.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창조과학’ 장관후보에, 과학기술계 ‘깊은 실망과 반대’‘창조과학’ 장관후보에, 과학기술계 ‘깊은 실망과 반대’

    취재수첩오철우 | 2017. 09. 05

     취재수첩 | 창조과학자 박성진 장관 후보 지명 논란  문 정부 지지층에서 비판 더 강해, ‘창조과학 비판’ 과학자들 자발적 연재뉴라이트 역사관, “창조공학 필요”, “대기업집중 불가피” 인식도 논란불씨 한 중견 과학자는 “여러 정...

  • 실험실의 지엠오, 시장에 나온 지엠오실험실의 지엠오, 시장에 나온 지엠오

    취재수첩오철우 | 2016. 07. 05

     …취 재 수 첩…  노벨상 수상 110명 “인도주의적 GMO, 반대운동 중단하라”미국과학아카데미 “지엠오와 전통작물 차이 증거 발견 못해”그린피스 “식량과 생태농업 현실적 대안 이미 있는데” 반박“표시제논란과 겹쳐 가열…과학논쟁,...

  • ‘전문연 제도’, 연구인력 정책 틀에서도 논의해야‘전문연 제도’, 연구인력 정책 틀에서도 논의해야

    취재수첩오철우 | 2016. 05. 25

    제도 시행 40여 년 거치며, 병역 정책은 이제 기초 과학기술 연구에도 영향국방 정책 울타리 넘어 연구인력 육성수급이라는 더 큰 관점에서 논의 필요 1973년 이래 시행된 ‘전문연구요원(‘전문연’)의 대체복무 제도’를 폐지할 계획이라고 밝힌 국...

  • 이런 상상: 우리가 인공지능 기자, 판사 만든다면…이런 상상: 우리가 인공지능 기자, 판사 만든다면…

    취재수첩오철우 | 2016. 03. 15

      취 · 재 · 수 · 첩   사람세상 경험의 데이터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어뷰징, 선정기사로 학습한 인공지능 기자는?불합리 논란 판결로 학습한 인공지능 판사는? 알파고의 학습형 인공지능이 그 어렵다는 바둑 게임에서 최고수를 5전...

  • 궁금한 인공지능과 ‘딥러닝’궁금한 인공지능과 ‘딥러닝’

    취재수첩오철우 | 2016. 03. 11

      취 · 재 · 수 · 첩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 바둑의 정상에 있는 프로기사를 5번기 제1, 2국에서 잇따라 이겼습니다.바둑을 둘 줄 모르다가 이번 ‘이세돌 대 알파고’ 대국을 계기로 이것저것 살펴보니,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은 ...

자유게시판 너른마당

인기글

최근댓글

트위터 팔로우

sub2 untit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