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미생물과 약초 뒤져 찾은 기생충질환 약물열쇠
그림으로 보는 노벨상 2015
캠벨과 오무라, 투유유의 기생충 감염질환 약물 개발 업적,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 2015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윌리엄 캠벨, 오무라 사토시, 투유유(왼쪽부터). 출처/ 노벨상 공식 사이트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대표적인 기생충 감염 질환의 치료 약물을 개발하는 데 크게 공헌한 연구자들한테 돌아갔다. 윌리엄 캠벨(85, William C. Campbell) 미국 매디슨 드루대학 교수, 오무라 사토시(80, Satoshi Ōmura) 일본 기타사토대 교수, 그리고 투유유(85, Youyou Tu)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2015 노벨생리의학상 공동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인류를 괴롭혀온 질환의 치료 약물을 개발해온 연구자들한테 노벨상을 자주 수여했는데, 이번 수상 업적도 이런 전통적인 노벨상의 정신을 따르는 선정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오무라와 캠벨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 기생충 감염 질환으로 각막의 만성염증이 실명으로 이어지는 강변실명증(River Blindness)과 만성 부종을 일으키는 림프부종(Lymphatic Filariasis)의 치료에 효과적인 항균 물질을 찾아 개발했으며, 투유유는 1980년대에 고질적인 말라리아 질환의 치료 물질을 식물에서 찾아내어 약물로 개발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 선정과 함께 수상 업적을 정리한 자세한 설명자료를 발표하는데, 대체로 그 자료는 수상 업적을 부각하고자 수상자 중심의 시각에서 연구자의 고군분투와 성공적 발견의 스토리로 구성되곤 한다. 그렇더라도 이런 성공 스토리의 특성을 미리 감안하면서 설명 자료를 읽는다면, 수상자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벌여온 지난한 연구 활동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아래는 노벨위원회 설명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의 수상 업적에 관한 이야기다.
지구촌 건강 위협하는 기생충 감염 질병
» 그림1. 출처/ 노벨위원회 설명자료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이 주목한 기생충 감염 질환은 지구촌의 넓은 영역에서 많은 이들을 괴롭혀온 강변실명증, 림프부종, 그리고 말라리아이다. 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남아시아, 중미와 남미 지역에서는 심각한 위협이 되는 지구촌의 대표적인 감염 질환인 것이다. 위 그림1에서 지도의 파란색 지역은 이런 기생충 감염 질환이 주로 발병하는 곳을 나타내는데, 이 질병들이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생충 감염질환의 치료물질, 박테리아에서 찾다
» 그림 2. 오무라는 대량의 배양 균주를 다루는 비범한 기술을 바탕으로, 수천 개의 배양 균주 중에서 유력한 치료약물을 분비하는 균주를 찾아냈다. 출처/ 노벨위원회 설명자료
노벨위원회가 공개한 수상 업적 설명자료를 보면, 장내 선충류 기생충들에 맞서는 항균 활성 물질의 발굴 이야기는 오무라에서 시작한다. 미생물 연구자인 오무라는 항균 작용 물질을 분비하는 스트렙토마이세스(Streptomyces)라는 박테리아에서 질환 치료 물질을 찾는 데 주목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효과가 뛰어난 항균 물질을 분비하는 형질의 스트렙토마이세스 계통을 찾아내어 실험실에서 계통균주로 배양하는 기술이 관건이었다. 대량으로 박테리아의 계통균주를 배양하고 특성을 손쉽게 파악하는 실험실 기술은 매우 중요했다.
오무라의 업적은 여기에 있었다(그림 2).
“대량의 박테리아(스트렙토마이세스) 배양과 특성 규명을 발전시키는 데에 비범한 기술을 갖춘, 오무라는 토양 시료에서 스트렙토마이세스의 새로운 계통균주를 분리해 그 특성을 규명하고서, 실험실에서 그 계통균주를 성공적으로 배양해냈다. 처음에 수천 개에 달한 배양 균주 가운데에서, 그는 항균성 활성 물질을 심층분석 하기 위해서 진귀한 2차 대사물질을 분비할 만한 가장 유망한 50개가량을 선별했다. 새로운 스트렙토마이세스 계통균주 중 하나는 이토 지역 골프장 부근의 토양 시료에서 나온 것인데 그것이 아베르멕틴(Avermectin)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 계통균주(Streptomyces avermitilis)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균주는 나중에 스트렙토마이세스 아베르멕티니우스(Streptomyces avermectinius)로도 불리게 되었다.”
» 그림 3. 출처/ 노벨위원회 설명자료
오무라의 발견을 이어받아, 훨씬 더욱 효과적인 치료 약물인 이베르멕틴(Ivermectin)을 개발한 이는 캠벨 연구진이었다 (그림3).
“뒤이어 캠벨은 머크연구소 동료들과 함께 아베르멕틴을 화학적으로 변형해 이베르멕틴이라 불리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었다. 그것은 기생충 감염을 막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됐다. 이베르멕틴은 두 개의 수소 결합 변형을 지닌 '아베르멕틴 비(B)1' 물질을 반(半)합성 해 만든 물질이었다. 이후에 캠벨 연구진은 이베르멕틴 분자가 뛰어난 잠재력을 지니며 다양한 숙주 생물종 안에서 여러 장내 선충들을 억제하는 데 활성을 띤다는 점 등을 입증하고자 노력했다.”
아베르멕틴을 순수하게 정제하고서 약간의 화학적 변형을 가해 만든 이베르멕틴의 효과는 뛰어났다.사람은 물론이고 동물에서도 선충류 기생충을 억제하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 노벨위원회는 머크사가 이베르멕틴 보급에 적극 나서면서 복용 기간이 1~25년인 인구는 모두 2억 명 이상에 달해 기생충 감염 질환인 강변실명증과 림프부종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2020~25년 무렵에 두 감염 질환은 종식 선언을 앞두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말라리아 질환의 치료물질, 한방 약초에서 찾다
» 그림 3. 투유유는 고대 한의학 문헌을 연구해 말라리아 퇴치 항균 물질을 분비할 만한 약초를 선별했으며, 다시 한의학 문헌을 통해 항균 물질을 효과적으로 추출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출처/ 노벨위원회 설명자료
말라리아는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고질적인 감염 질환이었다. 노벨위원회는 이 때문에 말라리아 질병과 관련한 노벨생리학상 수상자가 그동안 여럿 배출됐다고 전했다. 말라리아 질환이 모기를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의 발견(1902), 말라리아 기생충 존재의 발견(1907), 모기를 비롯해 해충 퇴치에 효과를 발휘한 화학물질 디디티(DDT)의 발명(1948)이 그런 말라리아 관련 수상 업적들로 꼽혔다. 투유유의 업적은 이런 말라리아 관련 노벨상의 역사 가운데에서 말라리아 질환의 치료 약물을 개발한 데 있었다. 그의 오랜 연구는 치료약물의 단서를 전통적인 한의학 의서에서 찾는 데에서 시작했다 (그림4).
“말라리아 발병이 늘어나자, 투유유와 연구진은 대형 국가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법의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를 위해 그는 전통 중의학에 눈을 돌려 수천 년 동안 고열을 치료하는 데 쓰인 처방들을 탐색했다. 투 연구진은 식물 개사철쑥(Artemisia annua)이 수백 가지 처방에 등장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다른 식물들과 차별되는 이 다북쑥속 식물에 주목했다.”
투유유는 이 식물에서 뽑은 추출물이 말라리아 기생충을 방어하는 데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지만 효과가 둘쭉날쭉해 안정적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고대의 한의학 문헌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투유유는 다시 고대 문헌에 눈을 돌려 기원후 340년 경 갈홍(葛洪, 진나라의 한의학자)의 처방들을 연구했다. 거기에서 그는 개사철쑥 잎사귀에서 즙을 얻는 방법을 자세하게 밝힌 대목을 찾아냈다. 그것은 전통적인 탕재 방법 대신에 찬물을 사용하는 벙밥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이전에 쓰던 에탄올 추출법 대신에 에테르를 이용한 저온 추출법을 사용했다. 투유유는 안정적인 결과를 얻어냈다.”
투유유 연구진은 개사철쑥 추출액에서 활성 물질만을 분리해 이를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으로 명명했으며, 이 물질은 후속 연구와 임상시험 등을 거쳐 적혈구 감염 초기단계일 때 말라리아 기생충을 파괴하는 능력을 지닌 항균물질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현재 아르테미시닌과 다른 약물을 섞은 혼합치료제가 사용되며, 이 약물 발견 덕분에 2000~2013년 기간에 말라리아 사망율은 47%가량이나 떨어졌다고 노벨위원회는 전했다.
노벨위원회는 아베르멕틴/이베르멕틴과 아르테미시닌이 어떻게 몸 안에서 항균 작용을 하는지, 그 작용 메커니즘은 아직까지도 자세하게 규명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작용 메커니즘은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자연계에서 치료 물질을 분비하는 박테리아 균주와 식물종을 찾아내고 이어 실험실에서 지난한 과정을 거쳐 치료 효과를 규명함으로써 치료 약물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은 두 수상 업적의 공통점이다. 노벨위원회의 설명자료가 수상 업적을 중심으로 구성한 성공 스토리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마도 연구 당시에는 화려하거나 주목받지 않았을 기초 연구 분야에서 의미 있는 발견을 향해 한발짝씩 나아가며 이룬 수상자의 업적은 울림을 줄 만하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cienceon
트위터 https://twitter.com/SciON_hani
한겨레 스페셜 http://special.hani.co.kr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