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연재] '스토리텔링' 새 과학교과서 기대되고 걱정되는 이유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11)




00textbook1 » 금성교과서의 융합형 과학 교과서, 표지.





고등학교의 과학 교육과정이 달라졌다.

기존의 주입식 교육이 창의성을 저해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과학자와 엔지니어 ‘양산’만이 교육의 옳은 방향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새로운 교육 과정은 낡은 태를 버리고 탐구와 '스토리텔링(이야기로 풀어나가는 형식의 교육 방법)'을 택했다. 긍정적인 변화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교육과정의 급진적인 변화에 갈피를 못 잡는 학생들도 수두룩하다. 현직 고교 교사들도 새 교육과정의 가이드라인에 대해 혼란스럽단다. 그러면 7차 교육과정으로 과학을 배운 이공학도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들이 기존의 교육과정을 겪으며 생각해온 점, 그리고 바뀐 과학 교육 과정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들어보았다.




이전의 과학 교과과정에 무엇이 문제였기에...


현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공학도들은 7차 교육과정에 따른 과학 교육을 받고 진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의 기초를 ‘과학’ 교과서 한 권에 구성한 교육 과정을 공부했다. 이어 2, 3학년 때에는 이를 토대로 자신의 특기나 성향, 진로 계획에 맞추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서 응시할 과목을 그 중에서 선택해 공부했다.


새 교육과정은 이런 칸막이를 없앴다. 기존 과학 교과에서는 고전역학의 ‘에너지와 힘’으로 시작한 데 비해 새 교과서의 이야기에서는  ‘우주의 탄생’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7차 교육과정에서는 2, 3학년 때의 분리된 과목들에서 배웠던 원자와 원자핵, 수소 스펙트럼과 전자의 에너지 준위, 물질의 구조 등이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우주의 기원과 진화’ 단원에서 한번에 개괄적으로 다뤄진다. 우주 탄생의 배경으로 입자, 이온, 대기를 통틀어 설명하는 형식, 즉 ‘융합형’이다. 단원 분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에 맞추어 새 교과서의 서술 형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의 교과서가 ‘원자는 전기적 중성을 띠며, 양성자 수와 전자 수는 같다’고 설명했던 데 비해, 새 교과서는 ‘우주가 탄생한 뒤 음전하를 띤 전자가 양전하의 원자핵과 결합한 형태의 중성 입자들이 우주에 가득 찼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신 기술 분야가 교과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현재의 과학과 기술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교육과정에서 배울 수 있다. 인문계열에 진학할 학생이 함께 배워야 하는 고교 1학년 <과학> 교과서의 특성에는 좀 더 적합하게 변한 듯하다. 이렇게 교육 과정이 획기적으로 변신을 꾀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대략 10년 동안 유지돼온 7차 교육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7차 교육과정을 배운 학생으로서 되돌아 보건대, 예전의 분리된 과학 교과가 지닌 장점은 아무래도 ‘선택과 집중’이겠지요. 원하는 분야의 과목을 손쉽게 선택해서 아주 기초가 되는 부분부터 수업을 들으면 밑그림을 그리기 쉽다는 겁니다. 블록 쌓기에 비유해볼까요? 넓은 공간에 듬성듬성 쌓으면 초반에는 전체 모습을 예상하기 어렵지만, 좁은 공간에 쌓으면 얼마 쌓지 않았더라도 손쉽게 전체 모습을 유추할 수 있죠. 물론 7차 교육 과정에 단점도 있습니다. 수능에 필요한 과목만 집중적으로 배우니 ‘과학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교육이나 ‘왜?‘라는 질문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단순히 주기율표나 암기하는 과목으로 남게 되는 거죠.”(김솔, 한양대 학생)

“기존의 교육 과정에서는 (예컨대 <물리1>과 <물리2>처럼) 한 과목을 둘로 나눈다고 하더라도 그 ‘분리’라는 게 어려웠어요. 1과 2로 나뉜 한 과목은 각각의 과목 간의 순서가 묘하게 뒤바뀌어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화학1> 과목에는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지만 관련 반응을 암기하도록 해요. 그런데 <화학2>를 배우면 <화학1>에서 배웠던 것들이 ‘왜’ 그런 지 알 수 있죠. 선행 학습을 하지 않으면 묘하게 순서가 바뀐 공부를 해야만 하니 잘못된 개념이 잡히기도 하고, 개념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죠.” (김희정, 한양대 학생)


00textbook4 » 한겨레 자료사진

 



새로운 융합형 스토리텔링 교과서에 대한 기대


얘기를 들어보면, 지난 교육과정의 장점과 단점은 모두 ‘분리된 교과’에서 비롯하는 것 같다. 분리해서 가르치니까 자연계열에 갈 학생들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빨리 깨닫고 더 깊은 내용을 선택할 수 있었던 데 비해, 그렇지 않을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과학을 일찍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문·이과를 분리해 입시에는 관련 과목만 배우게 하니, 인문계열로 진학할 학생들이 대학 입시와 직접 관련이 없는 과학 교과를 포기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런 포기가 국민 대다수로 이어질 경우다. 과학 지식에는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라 전문적인 전공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특정 분야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기에, 우리 삶에서 점점 더 많은 부분들에서 과학과 기술이 필요해지는 요즈음에는 개정 전의 분리식 과학 교과가 국민의 과학 교양 수준을 하향 평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언론 보도에서 상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고, 교양 과학 서적에서도 쉽게 설명해주니 관심을 갖는다면 비전공자도 쉽게 관련 지식을 습득할 수 있기야 하다. 그런데 과학 교과를 ‘무조건 암기’ 식의 학습으로 배운 비전공자들(이른바 ’과학 울렁증‘을 지닌 이들)은 차근차근한 과학적 설명을 보기만 해도 지레 난해하다며 고개를 돌리기가 부지기수라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인식은 달라진 교육과정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중점을 두었다는 ‘과학 교양 수준이 높은 인재 양성의 필요성’과 일맥상통한다. ‘스토리텔링’ 형식을 빌렸기에 과학 교양 지식에 문과와 이과 계열 구분 없이 더 많은 학생들이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고, 생활 기술과 최신 기술에 관한 정보도 많이 담겼으니 상식의 격차를 상당 부분 교육과정에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개정 교과서를 보고는 마치 잡지를 읽는 듯했어요. ‘융합’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과학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좀 더 거시적으로 과학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단순한 지식 습득 위주의 교육에서 크게, 멀리 보고 사고하도록 하는 교육으로 가는 변화인지라 변화 자체에 대해 긍정적입니다.”(김현미, 한양대 학생)


00textbook2 » 금성출판사의 융합형 과학 교과서, 목차 일부.

 



흥미로운 1학년 교양과학, 그 이후 난이도 도약엔 난감


그러나 이공학도들 사이에서는 달라진 교육과정의 순기능이 자연계열을 선택하지 않을 학생만을 위한 게 아니지 않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고1 개정 교육과정이 아주 개론적이고 '쉽게'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 데 비해, 자연계열로 진학할 학생들이 맞닥뜨릴 2, 3학년 때의 과학 교육과정은 상당히 고난이도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1학년 때는 모두가 함께 배우니 '스토리텔링', '쉽게', '교양 수준에서'를 강조하더니 자연계를 선택한 이후에 학생들은 갑자기 어려워진 물리1·2, 화학1·2, 생명과학 1·2, 지구과학 1·2를 배워야 한다.


<물리1>의 상대론, 물질의 구조 단원과 <물리2>의 양자물리는 물리학 전공자들도 학부에서 가장 어렵다고 손에 꼽는 과목이다. 물리뿐만 아니다. <화학1> 과목의 경우에도 ‘물’이라는 큰 단원의 마지막에 ‘생활 속의 수돗물’ 등이 포함되었던 7차와는 달리 처음부터 ‘화학결합’을 다룬다. 이는 7차 교육 과정 <화학2> 과목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대학교 학부 전공 기초 과목인 일반화학2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그러니 1학년 때 인문계 진학 예정인 학생들과 함께 ‘스토리텔링 교과서’로 쉽고 넓게 배운 이과 학생들에겐 갑작스런 난이도의 변화가 상당히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공학도들이 새 교과서를 펼쳐 보고 꼽은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러면서 수능에 응시할 선택과목은 기존 3개(또는 4개) 과목에서 2개 과목으로 줄어들었다. 2개 과목만 응시할 경우에, 대개 관심 있는 한 분야의 1, 2 과목을 고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생명과학> 1, 2 를 선택하거나 <물리> 1,2 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 번의 모순이 발생한다. 1학년 때는 거시적으로 '숲'을 보는 과학 공부를 하자더니, 자연계에 오고나니 나무만, 잎사귀만 열심히 보자는 식이다. 우려가 나올 만 하다.


“융합형 과학 교과 덕분에 과학에 흥미를 지녀 자연계열에 진학한 학생들이 완전히 ‘과학도 양성’을 위한 걸로 보이는 본격적인 자연계 과학 교과를 접하면 매우 힘들어할 것 같아요. 개정된 1, 2 과목의 목차를 보면 거시적 사고를 도모하는 고1 융합형 과학과는 목적이 완전히 달라요.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졌어요.” (김현미, 한양대 학생)

“고1의 융합형 과학 교과는 교과부의 취지대로 ‘교양’ 수준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잘 이끈다면 충분히 순기능이 발휘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 우려되는 건 그 이상을 공부해야 하는 ‘예비 이공학도들의 공부’입니다. 스토리텔링 형식을 빌렸다고 해서 개념만 훑고 넘어간다는 게 가능할까요? 예를 들어 물리의 경우, 개정된 교과에서는 상당한 수학적 지식을 필요로 해요. 수학을 빼고 가르친다면 ‘판타지 소설’에 가까워질지도 몰라요. 재미있게 목차는 만들어 두었지만, 사실 이 내용을 가르치려면 양이 상당해요. 교양처럼 끌고 가기엔 학문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많아 오개념을 심으면 위험해질 수도 있고요. 고1과 자연계 2, 3학년의 과학 교과를 보면 모순된 교육 과정을 같은 말로 포장한 것 같습니다.” (김아무개, 물리학·수학 학부생)



배우는 학생들의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방안은?


7차 교육과정을 거쳐 대학에 들어온 이공학도들은 대체로 고1 과학 교과서가 융합형으로 변화한 데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공부해야 하는 미래의 이과 후배들을 생각할 때, 답답하다는 의견도 많이 나온다. 제대로 배우자니 너무 어렵고, 교양 수준으로 여겨 넘어가자니 앞으로 해야 할 2, 3학년 시기의 공부를 생각하면 모래밭에 탑 쌓기가 될까봐 걱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현장의 교사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단다.


“융합이라는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과정이 따라간다면 좋은 방향이라고 봐야겠죠. 하지만 교사들은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새 교과서를 받아들여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역시 이론 위주로 진행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또한 과학 교사라 해도 세부 전공이 다르다 보니 같은 과정도 교사 나름으로 주관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과 정책이 바뀌어 고1 때 과학을 배우지 않고 ’과학 교과‘에 해당한 시수를 나중에 채우면 되기에 학교별 차이도 크게 나타날 수 있고요.”(성숙경, 경일고 교사, 한양대 강사)

“좋은 의도로 바꾼 새 교과서가 국내 교육 체계에 의해 또다시 주입식 교육으로 변질되진 않을까 하는 게 새 교육과정에 대한 우려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지식 범위와 수준에 따라 같은 교과서를 사용하더라도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문제점도 걱정스럽고요. 그래서 스토리텔링 방식의 새 교과목으로 과학 교양의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느 누가 보더라도 교과서의 수준이나 커리큘럼이 같은 흐름으로 학습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준비가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한 암기식 교양과목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려면 논리 전개와 각 분야 간의 인과관계 등을 적재적소에서 다룰 수 있게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솔, 한양대 학생)


개정 교과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벌써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바뀐 교과서를 펼쳐들고 새로운 교과과정과 동행을 시작했다. 이 개정 교과서를 두고서 또 다시 ’고치자, 말자‘ 하는 논란들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씁쓸하다. 한 번의 교육과정 변화로 인해 학생들이 겪을 혼란의 파장은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문제 풀이에는 정답이 있어도 가르침에는 답이 없기에 어렵고 어려운 게 교육이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이 좋다, 좋지 않다는 판단은 가르치는 이, 앞으로 가르칠 이, 배우는 이 누구도 혼자서 쉽게 내릴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찾는 과정은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해나가야 할 일이 아닐까. 달라진 교육과정의 효과는 그런 교육과정을 받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또 학문에 몸담게 될 시점 혹은 그 뒤에나 제대로 알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교육의 중요한 주체는 학생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변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잠재력을 최대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교육과 탐구를 뒷받침하는 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많은 생각과 물음표가 남은 주제였다.


[보 충설명] 기존의 7차 교육과정에서는 10학년(즉 고1) 과정까지는 국민 공통 교과이어서 계열 구분 없이 1학년 때 <과학>을 배우고, 계열이 나뉘는 2, 3학년 때는 △문과 : 사회탐구 11과목 중 3(4)과목, △이과: 과학탐구 8과목 중 3(4)과목을 선택하게 된다. 이와 비교해, 바뀐 교육과정에서는 9학년까지만 공통이므로, 사실 학교 재량에 의해 개정된 <과학> 교과를 1학년 때 배우지 않을 수도 있지만(그래도 고교 졸업을 위한 수업 시수는 이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고1 때 <과학>을 배운다. 그 이후에 계열이 나뉘면 이과 학생들은 과학탐구 8과목 중 2과목만 선택하면 돼 선택 과목의 수가 줄어들었다.

 


다음 주제는 "혜택받고 공부하는 이공학도", 국가 이공계 장학금 이외의 많은 이공계 전용 장학금을 받으며 꿈을 키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뤄보려합니다. 많은 분의 자유로운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체험 수기 혹은 추천 장학금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stella.pisces.lee@gmail.com 혹은 트위터 @stellalee0313으로 제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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