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새연재] 퀴즈, 과제, 실험 시달려도 남다른 '우린 이공계'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1) 

 

 

 

00study3 » 이 사진은 2008년, 제가 신입생이던 시절에 맞은 시험기간의 선배들입니다. 지금은 다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어요. 밤을 새고 시험 준비를 할 때 다같이 카메라 가지고 장난치며 찍은 사진입니다.

  

 

먼저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16살에는 과학고 진학을 고민하고 17살에는 처음으로 자연계 진학에 대해 고민했다. 입시 전형에서 수학 성적은 안 본지 오래라는 ‘언·외·’ 예체능계열과 ‘수학1’ 한 과목도 벅차다는 ‘수리 <나>형’ 인문계열, 그 사이에서 “그래도 수리 <가>형을 버릴 순 없다”며 수학1· 2에 심화 미분적분학까지 짊어지고 다녔다. 수시 입시철, 자연계 논술을 쓰려니 선택한 과학탐구 과목만으론 되지 않아 다른 과학탐구 과목도 여럿 건드려야 했다. 그렇게 입시전쟁을 치르고나서 드디어 20대를 맞아 눈을 떠보니, 아, 거기에는 꿈꿔오던 핑크빛 대학 생활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공대 아름이’는 커녕 남동생 취급 받는 ‘생물학적 여학우’가 되어 물리학과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 그게 바로 지금 나의 모습이다.

 

비단 나뿐만이랴. 내 주변을 돌아보니 성별 불문하고 모두가 그렇다. 산더미 같은 전공 공부와 진로 고민, 알 수 없는 커리큘럼과 선배 ‘그들’ 만의 용어들 사이에 이공학도 신입생은 정신이 없다. 정신을 차릴만하니 이제는 내가 그 ‘선배’의 모습이 되어 있다. 이렇게 고생을 하고서 오늘 나와 그들은 번듯한 이공학도가 되었으니, 어찌 되었건 그들은 참 자랑스러운 이공학도들이다.

 

공대생은 “과제했어?” “밥 먹었냐?” “저 여자 예쁘다” 세 마디로 압축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또 “이공계 대학생은 남들 다 하는 공부를 하면서 왜들 그리 생색을 내느냐”는 말, “이학(자연과학) 전공자는 취업이 잘 안 된다”는 소문을 대학가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그 말 지금 알고 하는 소리인가요? 나는 이학과 공학을 함께 공부하는 한 대학생으로서 이런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재미있게 털어놓고 싶다. 도대체 ‘왜 그렇게 생색을 내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 연재가 이공학도에 대한 편견을 풀고 이공학도의 정체성과 현주소를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고, 또 진로를 고민하는 입시생들한테 작은 조언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울 것 같다.

 

 

 

이공계 이구동성 “꿈꾸던 캠퍼스 낭만은 어디에?”

 

이공계 학생들이라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꿈꿔오던 나의 대학생활은 어디에 간 거지?” 대학교에 입학하면 학교도 조금 나가고 늦게 등교해서 일찍 하교할 수도 있다더니. 어른들의 당근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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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공계 대학 1년생 현실은 ‘고등학교 4학년’의 생활이다. 들어야 하는 수많은 필수과목들과 끝나지 않는 실험, 매주 이어지는 퀴즈(간단한 시험)와 과제는 고등학교 때보다 많은 것 같다. “이만큼 공부했으면 아이비리그도 갔을 거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필수 과목에는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대략 8과목을 수강해야만 했다. ‘1학점에 한 시간 수업’이 기준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1학점 기초 실험 과목은 두 시간을 가득 채우거나 넘기는 건 일쑤였다. 2학점인 일반물리학이나 일반화학은 두 시간씩 나누어 일 주일에 두 번, 즉 4학점에 해당하는 시간동안 수강해야 한다. 이러니 예를 들어 월목, 화금, 수금 조합으로 세 과목만 편성이 되어도 주 5일 수업을 들어야 한다. ‘주4파’의 꿈은 물거품이 된 것.

 

이공학도의 무미건조한, 닭 가슴살만큼이나 퍽퍽한 생활은 입학과 동시에 시작한 셈. 그래도 싫지만은 않다. 몇몇 이공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억울하진 않았을까?

 

“솔직히 억울한 일도 많았죠. 즐기고 싶은 것도 많은 데 할 건 많고. 그런데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 대학교에서 내가 학문적으로 무언가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뿌듯함이 못 노는 억울함보다 커서 좋아요. 대학의 주목적은 ‘공부’에 있으니까 공부를 함으로써 얻는 즐거움이 더 커야 맞는 거죠. 대체로 공부하는 분위기인 것도 좋고요.” (김민수 홍익대 학생)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인문계 친구와 한 방을 썼어요. 우리는 두 번씩 수업하는 걸 일 주일에 한 번 수업하고 리포트로 대신하는 것이 놀라웠어요. 나 공부할 때 노는 걸 보면 얄밉기도 하지만 난 이공계잖아요. 어쩔 수 없지요. 우린 다 이러니까.” (이유정 한양대 학생)

 

대부분의 친구들은 꿈 꿔오던 대학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는 이미 해탈한 듯 보였다. 축제 기간에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이공계 학생들은 초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생활 안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고 있었다. 학문적 즐거움을 좀 더 일찍 찾은 모습이랄까.

 

“억울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해요. 열심히 공부하는 만큼 학점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되기도 하구요.” (윤주환 한양대 학생)

 

“밤샘의 연속이고, 정말 바쁘지만 새로운 기술을 빨리 배워 적용시킬 수 있는 게 좋아요. 저 같은 IT 전공자들은 어플리케이션 개발 경진대회 등을 통해 학부 때 이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도 있구요. 여러모로 뜻 깊죠. 힘든 것 참을 가치가 있어요.” (조영욱 한양대 학생)

 

 

 

그 힘든 걸 알면서, 왜 선택한 건데?

 

사실 이공계는 대입을 준비할 때부터 만만치 않다. 수학을 두 권 더 봐야한다는 점이 그렇고, 신문 보며 논술을 준비하는 인문계와 달리 선택 탐구 과목을 더 공부해야 하는 점도 그렇다. 그래, 그렇게 힘들 걸 알면서 왜 선택한 건데? 그 이유를 이공계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트위터 사용자들에게 물었다.

 

“어릴 때부터 제가 만든 자동차를 타 보는 게 소원이었고, 기계공학이라는 단어가 너무 멋있어 보여서 선택했어요.” (이겨레 한양대 학생)

 

“생물이 재미 있더라구요.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현상들에는 이유가 있고,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어서 세포생물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트위터 사용자 @solidaqua) 

 

“그레이트 마징가가 자연계를 가게 했고, 키트가 공대를 가게 했고, 터미네이터가 전산(컴공)을 하게 만들었죠. 어릴 때부터의 흥미?“ (트위터 사용자 @tranxoh)

 

‘과학자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자연계열을 선택한 이들이 이렇듯 분명히 존재하지만, 인터뷰에 다 다루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내놓은 단답형 대답은 바로 “언어(국어, 영어, 한문, 제 2외국어 등)와 사회가 싫었어요.” 이런 경향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과학 할래, 사회 할래? 과학을 하면 수학을 좀 더 해야 하지만 언어는 좀 못해도 된단다‘라는 어른들 말씀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과학과 수학에 더 흥미가 있던 친구들이 이공계에 진학하니까, 이유는 비슷한 것 같아요.” (이한솔 세종대 학생)

 

“동의해요. 물론 과학과 수학이 더 좋아서 이공계를 오는 게 순서에 맞죠. 그렇지만 분명 선생님들이나 언론으로부터 ‘언어 잘하는 친구들은 많지만, 수학 잘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으니 자연계열이 대학가기 쉽다’고 들어온 게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요.” (김법신 한양대 학생)

 

 

 

독특한 ‘이공계 자부심'

 

이유가 어찌되었든, 눈을 떠보니 이공학도가 되어 있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이지만, 실컷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많은 이공학도들은 “우린 이공계”라는 놀라운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나도 나 자신의 ‘이 놀라운 이공학도 자부심’에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 “세상에 쉬운 공부가 어디 있냐“며 다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유난히 그 ‘힘든 공부’와 친구도 되고 연인도 되는 게 바로 이공학도들이다. 과제와 퀴즈 준비에 밤샘을 거듭하며 전공 선택에 회의를 느끼다가도 비(非)이공학도의 이공계 무시 발언에는 싸울 기세로 달려드는 ‘애증’을 가진 집단이다.

 

“화학 전공이에요. ‘자연과학 전공하면 취업은 되냐, 약학전문대학원이나 의학전문대학원 준비나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너무 화나요. 정말 공부가 좋아서 하는 친구들도 많고, 그렇게 자기 길 찾은 선배들도 많이 봐왔거든요. 더 화나는 건 이공계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얘길 한다는 거죠. 그래도 (과학기술)경진대회 등에 실험실에서 했던 프로젝트가 올라가면 정말 뿌듯해요. 공부한 것이 생활을 개선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생기구요.” (박한희 한양대 학생)

 

“어릴 때는 문과 친구들이 못 푸는 수학 문제를 풀 수 있어서 좋았어요.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아는 척 할 수 있다는 것도. 대학생이 된 지금은 내가 공부한 것이 아주 단순하더라도 하나의 장치를 이룰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죠. 이미 만들어진 걸 쓰기만 하는 것과 만들 수 있는 지식을 배우면서 써보는 것은 차이가 커요. 앞으로 내가 할 일을 먼저 만나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전재호 한양대 학생)

 

눈에 보이는 걸 배우고 빠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는 학문을 한다는 점에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는 이공학도들. 이공계 대학생 중심의 창의적 소규모 벤처 팀이 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는 요즘 이공학도들은 어플리케이션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을 적용시키고 소비자들과 소통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한다. ‘공부만 아는 애들’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바꾸고 있다.

 

확실히 조금은 ‘특이한’ 집단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기피할 필요도 없는 것이 바로 이공계다(아니, 많은 이공학도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공학도의 생활 보고서로 쓰는 이 글, 또 앞으로 쓸 글들에서 더 많은 이공학도들의 생활, 문화와 그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려고 한다. 이런 글들이 우리 사회에서 이공계를 좀 더 친숙하고 기특하게 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럼, 나는 다시 과제와 퀴즈 준비가 전부인 세계로…! 아, 여러분은? 과제는 마치고 이 글을 읽는 건가요? 식사는 하셨어요?

 

 

 다음 글은 '여자 공대생'을 주제로 삼아 준비 중입니다. 공대 여자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여학생분들, '여자와 여자 공대생'에 대해 남자의 시선을 들려주실 남학생분들,우리, 어디 한 번 솔직해져봅시다!  stella.pisces.lee@gmail.com으로 연락주세요.

 

 

 

[새연재] "이공학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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