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광우병·방사선..공중보건 논란에 숨은 과학의 함정
[endo의 편지] (11)
대중의 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왜 과학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울까?
사람의 생명은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서 생명의 가치를 무한한 것으로 여겨 정책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비용-효과 분석 측면에서 무한한 생명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한한 비용 지출이 정당화되고 각종 건강 안전기준이나 정부의 규제도 상상하기 어려운 만큼 강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사람의 생명에 가격을 매기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피하면서도 통계적인 비용-효과 분석에 이용할 수 있는 이른바 ‘사망 위험 가치(value of mortality risk)’라는 개념을 도입해 생명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100만분의 1의 확률을 지니는 사소한 위험(micro-risk)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이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비용을 기준으로 개인의 생명 가치를 간접적으로 유도해 내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계산은 아니지만 지난해의 경우에 환경보호청의 계산법을 따랐을 때 생명의 가치는 약 800만 달러가 됩니다. 각종 안전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은 이런 비용-효과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암처럼 사망 위험이 높은 질병일수록 그런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비용도 높을 것이므로, 미국 환경보호청의 방법은 사람들이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주관적 위험’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적 분석에서 이런 방법론의 약점은 분석기관이나 분석방법 또는 분석목적 등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러므로 여기에서 나온 결과 자체에 논란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환경보호청이 클린턴 미국 대통령 정부 시절에 약 800만 달러로 추정한 가치를 부시(George W. Bush) 정부는 약 700만 달러로 하향 조정함으로써 과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규제 강화에 따라 정부나 민간 영리기업들이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생명의 가치를 낮춤으로써 규제 완화를 정당화했다는 것입니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가치는 다시 약 800만 달러로 환원해 상향 조정되었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안전 규정 강화에 따른 상업적 비용 지출 증가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과학적 근거 없는 정치적 판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과학은 자체의 불확실성 뿐만 아니라 과학적 분석이 지닌 한계로 인해 양면성을 지니면서 사회적 논란에 아무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고 여겨지는 생명에 일정한 가치를 매기는 모순에서 비롯한 위의 갈등과 마찬가지로,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다른 여러 사회적 논란이 과학적 논란으로 위장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광우병 논란이나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선 누출에 따른 저선량 이온화 방사선 논란에서 그런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대중의 건강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을 다룰 때, 정부와 여러 전문가, 그리고 많은 언론은 이런 논란이 지극히 과학적인 문제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과학적인 결론을 존중하자는 주장과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서 과학적인 측면 그 자체만을 놓고 보아도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과학 논쟁이 될 수 없는 부분까지도 마치 과학적인 논란의 대상인 것처럼 규정했을 때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리하여 사회적인 논란은 과학적인 논란에 의존해 끌려가지만, 실질적인 논란의 내면적 갈등은 과학 외적인 요인이 주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숨겨진 가치 실현을 위한 ‘함정’으로 사용된 과학
가치와 윤리 문제는 과학으로 다룰 영역이 아니지만, 사실 이것을 과학과 분리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에 객관적인 과학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중의 건강 문제라 할지라도 그런 사회적 논란에 존재하는 진정한 갈등은 가치나 윤리의 측면에서도 파악되어야 그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 연구자들은 흔히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할 때에 자신이나 해당 연구가 어떤 특정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지 아닌지를 함께 밝히는 관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상업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이해관계, 또는 개인 편견 같은 이유들 때문에 과학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정부나 정부기관, 여러 전문가 단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시민단체들까지도 공중보건의 문제를 다룰 때에 다른 여러 이해관계를 우선순위에 둘 여지를 지니고 있다면 이들도 또한 비판적 평가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과거 미국에서 핵무기 생산시설이 있었던 방사선 오염지역을 자연공원으로 만드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었을 때, 미국 에너지부(U.S. DOE)가 낸 저선량 방사선 연구 보고서는 이런 논란의 과정을 거치며 과학 연구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넓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기관과 대중의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반 대중과 정부 양측이 모두 과학적 사실만을 논란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일 때 치러야 하는 대가에 가치판단을 개입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 대중이나 정부는 각자가 중시하는 가치의 문제를 과학의 문제로 위장해 겉으로는 과학 논란임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과학적 사실만으로는 타협하기 어려운 가치 문제를 개입시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의 문제와 가치판단의 문제를 분리해 두 측면에 대한 논의가 각기 이루어지지 않는 한 사회적 논란에서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낙태 문제를 과학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역시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과학은 낙태에 대해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옳다, 그르다 하는 판단은 어떤 과학적 사실에 어떤 가치를 얼마나 두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논란을 과학 논란으로 제한해 규정하겠다는 시도는 사실상 과학 지식과 정보의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전문가 집단과 정부가 과학 지식과 정보의 측면에서 불리한 대중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유인하여 ‘함정’에 빠트리기 위한 수단이 되기 쉽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광우병 논란에서 대중이 우선하여 지키려던 가치와 정부가 우선하여 지키려던 가치가 단순히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사실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었음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논란이 발생하기 이전에 과학적 증거 기반의 공중보건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논란이 진행된 이후에도 역시 과학은 서로에게 함정 역할로서 이용되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런 함정을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또 다른 과학적 사실의 과대평가나 과소평가 또는 왜곡이 등장하기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목축업자단체의 대표인 빌 벌라드는 지난해 미국 의회에서 행한 프레젠테이션에서 한국 등 아시아 나라들에 쇠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미국이 행한 정치적 압력은 무책임하고 기본도 지키지 않은 일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예로서 그는 수출업자들이 스스로 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신뢰성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미국 농무성이 이를 금지한 일은 기본 단계에서 저질러진 잘못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프레젠테이션을 달리 해석하면, 미국이 내세운 ‘과학적 주장’은 정치적 압력으로 밀어넣기 위해 파놓은 함정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입국의 공중보건을 걱정하는 과학적인 접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입국에 자국의 공중보건 원칙과 대등한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2009년 미국 식약청(FDA)의 조슈아 샤프스타인(Joshua M. Sharfstein)이 자국민을 위해 지켜야 하는 것으로 제시한 공중보건 원칙을 봐도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시각으로 볼 때에, 한국 정부가 이런 과학적 주장을 뒤따라 내세우고 나선 것은 자국의 공중보건에 대한 자해 행위였으며 스스로 함정에 빠진 격이었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동조한 많은 전문가와 언론은 자신들만의 또 다른 가치를 숨긴 채 이런 자해 행위에 적극 가담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학자·언론·정부의 프로페셔널리즘 결핍
이렇듯이 과학의 대상이 아닌 가치와 윤리가 필연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논란에서, 프로페셔널리즘 [* ‘전문가 정신’ 정도로 풀이될 수 있다- 사이언스온]이 실종될 때에는 사회적 논란은 더욱 더 복잡하고 무분별한 논란이 되며 여론 형성이 곧 해법이라는 비과학적인 갈등 해소 방안에 의지하게 됩니다. 과학은 결코 정치적 민주주의의 절차를 따르지 않습니다. 다수의 여론에 의해 과학적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과학적 근거에 의해 입증되는가 아닌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과학계의 지배적 의견이라는 것은 지배적인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것이지 지배적인 여론만으로 형성된다는 뜻은 아닌 것입니다.
권력과 지위를 남용해 독선적이 되거나 오만, 허세, 무례, 멸시를 일삼는 거만성,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탐욕, 그리고 거짓과 기만이 포함된 허위진술 등은 프로페셔널리즘이 결핍된 전문가들한테서 나오는 것이며, 이러한 프로페셔널리즘이 결핍된 증상과 징후는 최근 저선량 방사선 논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가 있습니다.
과거에 간접흡연의 문제는 상당히 많은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그 유해성이 의사나 과학자들 사이에서 지적되었으나 담배제조회사들의 자금 지원을 받아 이뤄진 연구결과들로 인해 ‘과학적 논란’이라는 미명으로 연명되곤 했습니다. 2003년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에 담배회사의 자금 지원으로 간접흡연이 폐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학자들의 극렬한 논쟁이 있었는데 이는 그런 예의 하나였습니다. 이런 논란에 마침표를 찍는 구실을 한 것이 2006년 ’미국 보건복지부 공중위생 장관 보고서‘입니다.
“어린이와 어른에게 모두 조기사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어린이들이 노출되었을 경우에는 영아 급사 증후군, 급성 호흡기 감염, 귀 질환 그리고 심각한 천식 위험을 증가시킨다. 부모에 의한 노출은 어린이들의 호흡기 증상을 유발하고 폐 성장을 느리게 한다. 어른들이 노출되었을 경우 심장혈관계에 즉각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며, 관상동맥 심질환과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 과학적 증거는 노출에 ’위험이 없는 수준(risk-free level)‘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위에 인용한 대목은 최근에 ‘안전 수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기되는 방사선 위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간접흡연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한 미국 보건복지부 공중위생 장관 보고서의 결론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일찍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간접흡연에는 안전 수준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데 이어, 현재 과학계에서는 간접흡연의 노출량에 안전 수준이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 되었습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도 간접흡연에 대해 안전 수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수준도 유해하다는 것을 사실자료(fact sheet)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전 수준이 존재하지 않는 심각한 건강 위험 요인이라고 해서 거리를 걷다가 잠시 맡은 담배연기 때문에 당장 암에 걸릴 것이라고 걱정하거나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드물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사실상 암에 걸릴 확률은 0에 가까울 정도로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측입니다. 하지만 이런 측면을 내세워 간접흡연이 어느 수준까지는 안전하다거나, 흡연자들은 이미 위험을 지니고 있으므로 흡연자들한테는 사소한 양의 간접흡연은 무시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안전 수준이란 없다’는 말과 상반되므로 할 수 없는 말이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결코 과학적 사실을 올바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도 합니다. 오히려 세계보건기구는 공식 견해로 일터의 실내 공간이나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100% 금지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고, 그것은 간접흡연의 노출량에 안전 수준이 없음을 반영한 것입니다.
방사선 노출에 안전 수준이란 없으며 아직 저선량 방사선 위험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점이 많으므로 더 많은 연구결과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전예방 차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는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의 연구보고서에 반해 한국 정부나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측정된 양은 매우 낮은 수준이므로 안전하고 과잉반응일 뿐이라는 일방적인 입장을 반복해왔습니다.
과연 간접흡연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펼 수 있을까요? 정부가 안전한 수준이 있으니 어느 정도의 간접흡연은 괜찮다고 홍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일부 전문가들은 자신있게 간접흡연에 안전 수준이 있다고 반박하는 학회를 열고, 또 언론들은 편파적인 인터뷰를 해서 어느 정도 간접흡연은 괜찮다는 보도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대중은 궁금할 것입니다. 과학적 사실은 같은 조건에서 항상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재현성에 의존합니다. 같은 조건에서 다른 결과를 보여주려는 이중적인 입장과 태도는 프로페셔널리즘의 상실을 의미하며, 그런 이들의 주장이 논란의 해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킴은 당연합니다.
대중의 과잉반응은 과학에 무지해서?
오늘날 대중이 건강 위험 문제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과학 지식이 부족해 쉽게 감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되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과학자와 대중의 전문 지식 차이가 곧바로 위험 요인에 대한 평가 차이로 이어진다는 인과관계가 확실하게 입증된 적은 없습니다.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에서, 전문가들조차 위험 요인에 대해 뚜렷하게 다른 평가를 보였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사회적 논란이 의미 있는 여론수렴 과정이 되려면, 먼저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해 충분한 정보를 얻는 대중(informed public)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중을 탓한다는 것은 정부와 전문가의 책임 전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의학적 혜택, 부작용과 위험에 대한 투명하고도 충분한 설명 없이 수술동의서나 임상실험동의서를 받은 뒤에 뒤늦게 문제가 생겼을 때, 환자의 의학적 무지를 입증한다고 해서 문제의 책임이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낮을수록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는, 과학적 증거 기반의 실습 검증까지 거친 2005년 세계보건기구의 ‘위험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이 좀 더 정확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투명성과 신뢰성이 결여된 채 왜곡이 습성화된 곳에서 나오는 정보의 불신감은 크고, 이런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비록 검증되지 않았다 해도 다른 상반된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대중과 전문가가 위험 문제를 두고 소통할 때에 대중을 비합리적, 비현실적인 반응을 보이는 주체로 여기는 것은 가장 저급한 발상입니다. 과학적 불확실성 때문에 생기는 대중의 불안감은 과학 지식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감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반응이라기보다는 그런 불확실성에 관한 잘못된 정보와 왜곡에서 비롯하는 필연적 결과로 인식하는 것이 최근 위험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주요한 접근 방법입니다. 따라서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 중요합니다. 논쟁 중인 전문가들의 기술적 지식은 대중한테 충분한 식견을 주기 위한 정보 전달의 대상일 뿐이지 그 자체가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 대중이 받아들여야 하는 결론은 아닙니다. 전문가나 정부기관이 자신의 권위 자체를 신뢰의 기반으로 착각하고, 또한 대중은 무지하고 비합리적인 주체로 전제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하는 식의 시대착오적인 정보 전달을 행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이해와 타협을 통한 갈등 해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강압적 무마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사실에 대한 단순 오해는 흔히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지도 않지만 논란이 되더라도 간단하게 과학적 사실에 대한 설명과 재확인을 통해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가치가 개입되는 경우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불확실성이 많으며 낮은 확률이지만 실현되었을 때엔 치명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이 예상되는 위험 요인으로 인해 사회적 논란이 되는 경우입니다. 과학자들조차도 분명한 결론을 내리기 힘들고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회적 논란의 문제에 대해, 대중의 과학적 무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부나 전문가 집단이 사회적 갈등을 대중의 과학적 무지나 그 밖의 이유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적 태도를 대중에게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대중이 그런 모순을 간파할 때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신뢰성은 상실되고 인터넷에서는 불확실한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며 불안감은 더욱 증폭될 것입니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은 그런 증폭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책임 있는 이들은 본분을 망각하는 언행을 삼가야
공중보건과 관련한 방사선 논란에서 원자력공학자가 저선량 방사선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단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또 언론은 대중이 방사선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조차 자의로 해석해 과잉반응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본분을 망각하는 무절제한 평가가 주는 폐해는 과학적 불확실성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이 아니라 과학의 왜곡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많은 과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종합과 검토가 필요한데도, 자신의 전문성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도 부주의한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리는 학자나 정부, 언론도 역시 괴담 같은 잘못된 정보의 생산자들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는 모두 동등하게 나쁜 정보입니다.
대중의 불안감이 정치적으로는 나쁠지 모르지만 불안감 자체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대중의 불안감은 곧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주는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공중보건에서 대중의 위험 인식은 각종 질병에 대한 예방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하지 못하는 예방 활동을 개개인이 선택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관심의 증가와 과잉반응은 구별되어야 하며, 관심의 증가로 인한 예방적 행동의 비용-효과 차원과 더불어 위험-혜택 차원의 공정한 정보 제공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최근의 예로서, 세계보건기구의 휴대전화 발암가능성 판정이 설령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개별 사용자들이 그 위험을 인식하고 적절한 예방 행위를 할 때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은 거의 없는 반면에 예방의 잠재적인 혜택이 훨씬 큽니다. 마찬가지로 저선량 방사선의 문제도 아직 방사선의 혜택이 단 한 가지도 확실히 규명된 것이 없으므로 방사선량의 수준이 낮더라도 가능한 범위에서 예방적 행위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우리가 진단과 치료에서 의학적인 이유로 방사선 노출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혜택 분석의 관점에서 의학적 혜택이 훨씬 큰 것으로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이지, 그것이 전혀 무해한 것으로 입증이 되었기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의학적인 노출량과 비교해 안전하다는 말은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암을 둘러싼 중요한 이슈는 위험요인들에 대한 평가와 그것에 대한 대중의 위험 인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 요인에서 나오는 위험이나 임상치료 과정에서 생기는 위험까지 포함해, 이런 발암 요인의 이슈는 결국 그런 위험을 대중과 어떻게 소통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되며, 이는 공중보건과 의학 및 과학적 기초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많은 언론의 건강 뉴스는 심지어 검증되지도 않은 갖가지 질병 예방법이나 암 예방법을 수도 없이 소개합니다. 그들이 아직 의학적 혜택은 단 한 가지도 규명된 바가 없고 잠재적 위험이 있을 뿐인 요인들을 권장한다면 그들에게 과학은 상업적 이익이라는 자신의 가치를 우선하는 데 쓰는 과학잡담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들은 대중에 과학을 파는 장사꾼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 쇠고기를 싼값에 즐길 수 있는 혜택과 그것을 위해 포기하거나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결코 과학자들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과학적 논의만으로 해결되는 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더욱 더 복잡한 문제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일반 의약품의 약국외 판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도 편리함과 약물의 오남용 가능성 사이에 어떠한 것이 옳다는 과학적 기준은 나온 적이 없고 현재까지도 장점과 단점이 꾸준히 제기되는 터라, 이것 역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문제들입니다. 이렇게 ’위험-혜택 차원에서‘ 비교 평가 분석을 내놓아야 할 관련 정부나 전문가들이 위험-혜택 차원과는 동떨어진 ’비용-효과 차원으로만‘ 대답하는 것은 동문서답이며 본분을 잃은 무책임한 일이 됩니다. 비용-효과 평가는 위험-혜택 평가와 별도로 다뤄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위험에 과잉반응을 보일 수 있는 대중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현재 수준에서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고 위험 수준이 낮다 하더라도 적극적인 위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사전예방과 적극적인 위험관리의 원칙입니다. 안이하게 안전만을 강조해 위험관리를 소홀히 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위험 수준이 사소한 것으로 이해되더라도 한 사회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의 불안감으로 과잉공포를 느끼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란에서 프로페셔널리즘에 기반을 둔 최소한의 양심과 본분 그리고 원칙이 지켜질 때 논란의 무마가 아닌 이해와 타협이 달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곧 규범적인 가치와 정치적 선택 및 결정이 포함된 사회적 논란에서 과학이 보편타당한 과학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주요 참고 자료]
American Board of Internal Medicine, Project professionalism, 2001. Bill Bullard of R-Calf Contends Age Restrictions on US Beef Exports Are Our Own Fault, 2010. Edwards A, Elwyn G, Understanding risk and lessons for clinical risk communication about treatment preferences, BMJ 2001. EPA, Valuing Mortality Risk Reductions for Environmental Policy: A White Paper, 2010. James E Enstrom, Geoffrey C Kabat, Environmental tobacco smoke and tobacco related mortality in a prospective study of Californians, 1960-98, BMJ 2003. James E Enstrom, Geoffrey C Kabat, Environmental tobacco smoke and tobacco related mortality in a prospective study of Californians, 1960-98 [관련 논쟁] http://www.bmj.com/content/326/7398/1057/reply John D. Kraemer; Lawrence O. Gostin, Science, Politics, and Values: The Politicization of Professional Practice Guidelines, JAMA 2009. National Cancer Institute, Factsheet: Secondhand Smoke and Cancer. Terre Satterfield, et al., Risk Communication, Fugitive Values, and the Problem of Tradeoffs: Diagnosing the Breakdown of Deliberative Processes, 2002. Thomas Abrahama, Risk and outbreak communication: lessons from alternative paradigms, WHO 2009. The New York Times, As U.S. Agencies Put More Value on a Life, Businesses Fret, 2011. The Washington Post, Cosmic Markdown: EPA Says Life Is Worth Less, 2008. 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The Health Consequences of Involuntary Exposure to Tobacco Smoke: A Report of the Surgeon General—Executive Summary, 2006. WHO, Outbreak communication guideline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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