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실험실의 노동과 결혼

 

00research한겨레 자료사진



난주에 미국 과학잡지에 실린 “대학원생 조합(노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길에 들었다. 미시간대학에서 대학원 연구생들이 조합을 결성하겠다고 나섰고 대학 쪽은 연구생이 조합 결성 권리를 지니는지를 두고 논의 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었다. 기사를 트위터에 소개했더니 뜻밖에 여러 연구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미국에 거주하는 연구자 트친(트위터 친구)들은 “이미 연구생 노조가 있는 대학들도 있다”거나 “한국에선 꿈도 못 꾸는 박사후연구원 노조도 있다”는 현지 소식을 전해주었다.


미시간대학 소식을 전한 기사에서, 연구생들은 “이 대학에서 연구 활동의 성격은 지난 30년 동안 근본적으로 변했으며 이제는 피고용자로서 임금과 처우 개선을 위해 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대학 쪽은 “연구생 조합이 생기면 대학 경쟁력이 떨어지고 창의적이어야 할 연구 활동이 평범한 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사실 실험 연구를 주로 하는 대학원생, 특히 생명과학 같은 분야의 연구생들은 스스로 “출·퇴근한다”고 말할 정도로 나날이 꽉 짜인 실험실 생활을 하느라 바쁘다. 학위논문과 관련한 실험뿐 아니라 다른 과제연구를 위한 실험도 더러 한다. “월급”으로 과제연구의 인건비도 받는다. 그러니 미시간대학 연구생들이 “대학 재정의 상당 부분이 과제연구 기금에서 나오고 연구생은 연구 기금을 위해 일하는 피고용자”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실험실은 새로운 발견과 지식이 솟아나는 샘물이다. 하지만 발견의 희열이 큰 만큼이나 그 과정은 고달픈 길이기도 하다. 경험과학에서 지식의 진보는 수많은 실험 준비와 실행, 결과 정제, 분석의 연속이며 손과 땀의 노동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떤 트친은 실험실 연구자의 결혼 고민을 털어놓았다. 주말과 밤낮없이 돌아가는 실험실에선 실험 일정에다 연구자의 생활을 맞춰야 하니, 달콤한 가정은 더러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여자 연구자한테 큰 고민거리라 결혼 결심은 종종 과학이냐 가정이냐의 선택이며, 실제로 결혼과 함께 실험실을 잠시 또는 영원히 떠나는 일도 적잖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브릭)의 온라인 게시판에도 가끔 올라오는 결혼 고민의 넋두리는 늘 높은 조회수와 많은 댓글 기록을 남기며 화제가 된다. “여친이 생겨 결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네요” “박사과정생끼리 결혼, 너무 무리인가요?” 등등. 결혼 적령기를 실험실에서 살아야 하는 연구생과 박사후연구원들은 오늘도 게시판에서, 트위터에서 삶의 고충을 토해내고 있다.


실제로 실험실과 가정생활은 연관돼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 8월 과학저널 <플로스 원>에 실린 논문에서는, 젊은 연구자 상당수가 과학 경력을 쌓다보면 가정을 꾸리기 힘들잖을까 걱정하고 있으며 그렇게 응답한 여자 대학원생(28.5%)은 남자의 7배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학 경력을 위해 아이를 적게 낳아야 한다고 걱정하는 연구자 중에서 과학계를 떠나 이직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상당히 높았다. 논문은 ‘가정과 연구 만족도는 상당한 관련이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론 어떤 일에나 열매는 달고 인내는 쓴 법이지만 우리는 흔히 과학이란 말에서 달콤한 열매만을 떠올린다. 발견의 희열, 그리고 영광스런 노벨상…. 그러나 현실 과학은 지난한 과정을 견디는 열정으로 지속된다. 열정을 지탱하려면 생활의 에너지도 필요하다. 실험실 연구자가 연구를 단지 노동으로 느끼지 않도록, 또 결혼 적령기의 인간적인 고민을 덜 수 있도록 실험실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는 조금 더 떳떳하게 노벨상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오철우 기자 / <한겨레> 12월21일치  칼럼 '한겨레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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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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