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새연재] 오늘을 사는 모든 대학원생 청춘들, 힘냅시다!

배현진의 “연구실에서 만난 꿈, 고민, 미래” (1)


연재를 시작하며

00PhD2연구생들이 즐겨 보는 만화 <피에이치디 코믹스>의 한 장면. 출처/ Ph.D Comics



대학원생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나 그 친구 또는 친척 또는 지인 중에 적어도 대학원생이 한 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 이들 대학원생의 특징으로는 사계절 내내 대학교 연구실에 상주하며, 대학교 교양·전공 수업에 조교로 들어오기도 한다는 점이다. 특히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피곤하고 힘들다는 얘기를 자주 하며, 가끔 학회 같은 데 참가한다며 국내나 해외로 출장을 다니기도 한다.



대한민국 석박사 연구생의 인구학적 분포



런데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에 다니거나 다녀본 걸까? 2011년 통계청 발표 자료에 의하면, 2010년도 기준 석사학위 소지자는 약 100만 명이고, 박사학위 소지자는 약 20만 명에 이른다.1) 다시 말하면 우리 국민 중 2.5%는 석사학위 이상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2000~2005년에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25만 명이었으며 2005~2010년에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28만 명으로, 과거에 비해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또 다른 재미있는 분석을 해볼 수 있다. 석사학위를 받은 학생들이 박사학위를 받는 데에 대략 5년이 걸린다고 가정해보자 (보통 국내의 경우 이 정도는 걸린다). 2000~2005년에 석사학위를 받은 25만 명 중 일부는 박사과정에 진학했을 테고, 이들은 2005~2010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을 것이다. 이 숫자는 약 5만 정도이다. 다시 말해 25만 명이 석사학위를 받은 뒤 그 중에 5만 명이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소리다. 그러므로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의 수는 석사과정에 있는 학생 수의 5분의 1 정도라고 추산해볼 수 있다.


또 다른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5년 현재 국내에는 약 21만 명이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21만 명의 대학원생 중에 대략 6분의 5인 17만5천명은 석사과정, 나머지 6분의 1인 3만5천명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일 것이다. 이 추정은 2005년 기준이므로 2010년에는 좀 더 증가했을 테니 지금은 약 4만 명이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중에 자연과학, 즉 수학, 물리, 화학, 생물, 그리고 지구과학 분야에 속한 학생을 넉넉잡아 4분의 1 정도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대략 만 명의 학생들이 자연과학 분야에서 박사과정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 역시 이 ‘만 명’에 속한 대학원생이다. 우주가 마냥 신비롭기만 해서 학부 때부터 계속 천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이제 3년차 박사과정을 지나고 있다.


이 연재에서는 이처럼 자연과학에 빠져 사는 ‘만 명의 대학원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연재되는 과정에서 언급되는 ‘대학원생’은 특별한 언급이 없는 이상, 이런 ‘자연과학 분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을 의미할 것이다.


이들은 과학자가 되는 긴 여정의 시작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석사과정은 취업이 되지 않아서 또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배우거나 경험하기 위해 진학하는 경우가 있는 것과는 달리, 박사과정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사과정 진학은 연구자라는 커리어(경력)를 본격 시작하는 길이기 때문에(또는 그렇게 간주되기 때문에), 박사과정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도 해야 하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어야 한다. 이 때문에 가끔은 원한다고만 해서 시작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적어도 이들과 같은 대학원생은 진지하게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과학과 연구에 대한 무한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고민도 많고 갈등도 많은 그런 사람들인 것도 틀림없다. 물론, 이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연구생이 미드 ‘빅뱅이론’ 즐겨보는 이유



처음 <사이언스온>의 필자 모집 알림을 봤을 때, 전공에 맞게 천문학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에 관한 이야기에 더 욕심이 났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대학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도 대학원 선배들을 만나는 일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던 정보라고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원이라는 곳을 거쳐서 박사학위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뿐이었다. 대학원에 재학 중인 선배들을 만나면 보통은 대학원 생활이 아주 힘들다고 강조하는 이야기를 주로 들을 뿐이었다. 사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학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운 데다가, 학부에서도 상당히 치이며 살기 때문에 그렇게 ‘힘든’ 대학원 생활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도 했다.


나는 지금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선배들의 힘들었던 사정을 조금씩 이해해 간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원생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어떤 의미에서 대학원 생활이라는 것은 ‘정신력이 강해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아마도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만화 <피에이치디 코믹스(Ph. D Comics)>2)나 미국 시트콤 드라마 <빅뱅이론 (Big Bang Theory)>3) 같은, 대학원 생활에 대한 자조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콘텐츠가 인기 있는 것도 대학원 생활의 경험을 서로 공감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연구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대학원생만 겪는 게 절대 아니다. 대학원을 졸업한 독립 연구자들이 연구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실험제안서나 논문을 열심히 준비해서 제출했는데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을 때 기분이 좋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어떤 교수는 ‘거절당함(rejection)의 인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말을 할 정도로,4) 이런 상황은 과학자에겐 일상과 같다. 그런데 대학원생들은 연구에 대한 스트레스 외에 불안정한 신분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은 학생일까 연구자일까? 먼저 대학원생은 더 이상 학생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4학기 정도는 수업을 듣게 되지만 학부에서 듣는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학과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대체로 대학원생은 연구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수업을 듣고, 스스로 찾아서 공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대학원생을 독립된 연구자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점이 많다. 대부분의 대학원생은 지도교수를 선택해서 지도교수의 ‘지도’ 하에 연구를 수행하고 결과를 분석한다. 대학원생이 스스로 주도해 진행하는 연구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지도교수를 완전히 배재한 연구수행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이처럼 학생도 아니고 연구자도 아닌 신분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불안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내적인 스트레스와 (나중에 이야기하게 될) 외적인 스트레스는 여러 모로 대학원 생활을 힘들게 한다. 이렇게 과학을 좋아해서 대학원에 왔어도, 과학자 되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으니까.



‘나의 삶, 우리의 삶’ 공감의 울림을 위해



지만 대학원이라는 과정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인 것은 틀림없다. 지금 교수나 연구원을 직업으로 삼고 연구로 먹고사는 모든 분들도 역시 한때에는 대학원생이었다. 그런데도 대학원생의 연구실 생활과 고민 등에 대해서는 그동안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물론 10여년 쯤 전에 <카이스트>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유행한 적이 있긴 했지만, 주로 공과대학 그리고 공학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대학원 생활을 그냥 몸소 부딪혀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익히고 하기에는 한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적어도 이 연재를 통해 대학원 생활에서 내가 겪은 (또는 겪고 있는) 시행착오, 고민 등에 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연재가 미래 과학자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최종적으로 진로를 결정했던 고등학교 당시에도 연구자의 진로에 관해 도움을 준 분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물며 대학원 생활에 대해서 알았기는 만무하다. 지금은 아마도 그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보가 얼마나 정확할지는 다른 문제이지만, 이런 정보가 많을수록 미래 과학도들에게 여러 정보를 비교·분석해볼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대학원생을 친구로 두거나 가족으로 두고 있는 분들에게는 이 연재가 그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의 부모님도 대학원에서 내가 뭘 하고 살고 있는지 잘 모르실 것 같다. 소통이 부족했다는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렇게 장문의 글을 써본 지도 워낙 오래 됐고,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고민이 혹시 나 또는 내 주변의 지엽적인 것이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운 좋게도 여러 기회를 통해 다양한 대학원생들을 만나고 교류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생각을 하나둘씩 정리해볼 수 있었다. 다들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 고민과 생각들을 하고 사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그들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서 우리 대학원생들 사이에 공통적인 경험과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경험도 역시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글이 연재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도움이 컸기 때문임을 밝히고 싶다. 이번 연재는 비록 한 명의 대학원생이 써나가지만, 가능하면 일반적인 대학원생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이 글이 모든 대학원생들에게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밤늦게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모든 대학원생 청춘들,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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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진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천문학에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연구하고 싶은 천문학도. 현재는 주로 은하와 그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사이의 진화적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 며, 빛공해와 같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이메일 : hjbae.astro@gmail.com       트위터 : @gowithsky      
블로그 : http://firststar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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