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을 쏟아야 깨달을 연구생활의 참맛
배현진의 “연구실에서 만난 꿈, 고민, 미래” (5)
대학원생에게 연구란 무엇인가?
» 학부 시절에는 전공 교과서를 공부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었다. 대학원에 올라온 이후에 연구라는 것은 전공 공부와는 다른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연구도 역시 어렵기는 하지만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더 많다. 사진/ 배현진
연구란 무엇일까?
![]()
연구자들은 당연히 연구를 한다. 언제나 좋은 연구자가 되고 싶은 대학원생들도 역시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를 하며 살고 있다. 많은 대학원생들은 밤 늦게까지 실험하기도 하고, 논문을 읽으며 머리를 부여잡기도 하고, 심지어는 휴식마저도 연구의 일부라고 생각할 정도다. 밤늦게 대학 건물을 바라봤을 때 불이 켜져 있는 방이 있다면 대체로 그곳에선 대학원생들이 악전고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도대체 연구가 뭐길래 이렇게 우리들을 울고 웃게 만드는걸까?
좀 진부하긴 하지만 나 역시 궁금하기도 하니까 한번 ‘연구’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봤다. ‘연구’라는 단어에는 정말 놀랄만큼 다양한 정의가 있었지만, 위키피디아에 적혀 있는 정의를 그대로 옮겨보겠다.
“연구(硏究, 영어: research)는 지식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한 인간의 활동이며 세상의 여러 측면에 대하여 인간이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 이미 존재하던 지식의 발견, 해석, 정정, 재확인 등에 초점을 맞추는 체계적인 조사를 일컫는 말이다.”
뭐랄까…, 나에겐 이런 정의가 정말 멋지게 다가온다. 지식에 대한 탐구. 새로운 혹은 존재하던 지식의 발견과 해석, 정정, 그리고 재확인. 만약 누군가가 지식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이런 정의가 역시나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사람들은 연구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물며 남들이 발견한 지식을 내가 보충할 수도, 심지어는 뒤집어 버릴 수도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연구자는 인류의 대백과사전을 함께 작성하는 일이며, 연구를 배우고, 또 수행하고 있는 대학원생은 일종의 견습편집자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누구든지 수정하거나 추가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인류 대백과사전도 누구든지 새로운 내용을 쓰거나 고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수 많은 다른 ‘편집자’들에 의해 역시 고쳐지거나, 폐기되거나, 혹은 살아남게 된다.
이렇게 거창하게 쓰긴 했지만, 박사과정 3년차 대학원생인 나에게도 아직 연구는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평생 가도 쉬워지지 않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평범한’ 직장 생활이 더 쉬운 길이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 걸 보면, 이러다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해서 더 두렵다. 대학원 생활에서는 지치지 않는 것이 역시 중요한 일이다. 앗, 잠시 글이 다른 곳으로 새는 것 같은데(흠흠..), 여하튼 대학원에 들어오고 나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연구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학부 시절에 해온 ‘공부’와는 전혀 다른 행위라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 이유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부분 학생들은 수동적인 공부를 하지만, 연구는 능동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꼭 그만큼 연구를 잘할꺼라는 보장은 없다. 아마도 대학원 초기에 겪는 시행착오들 중 일부는 이런 ‘모드 전환’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닐런지.
내 경우엔 이랬다. 이미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천문학이 너무 좋은 나머지,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선물로 받아낸 작은 굴절망원경을 들고 한참 동안이나 아파트 옥상에 혼자 올라가서 밤하늘을 바라봤다. 그때는 헤일-밥 혜성 같은 멋진 천체들이 자주 보이던 때여서 그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뭐 공부는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수학에는 특히 약했다. 고등학교에 와서도 천문학이 속한 지구과학은 정말 좋았지만 다른 과학분야나 수학에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많이 후회되는 건 수학 공부를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대학교에 와서야 과학에서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고, 그렇게 늦게서야 깨달은 덕분에 기초과목들의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지금 와서 성적표를 살펴보면 1, 2학년 때 수강한 과목들은 대부분 재수강을 한 나머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과목이 별로 없다(한번 수강한 과목을 이후에 재수강을 하면 본래 들었던 수업의 기록이 이후 수업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기록에서 사라짐). 분명 나보다 학점이 더 좋고 공부를 더 잘하던 학생들이 있었지만, 꼭 그 학생들이 연구에 몸담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연구를 누군가 시켰다면 잘 했을지도 모르는 학생들이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능동적이지 않은 연구라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수학을 잘 못했지만 이렇게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대학원에 와 있는 것을 보면, 지난 시절의 학업 성적보다는 역시 개인의 의지가 더 중요한게 아닌가 싶다.
박사라는 호칭의 무게
![]()
박사과정 주제를 선택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지도교수는 학생의 흥미와 동기를 파악한 뒤에, 자신의 큰 그림 속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도록 한다. 이런 과정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제시될 수 있는데 이 중에서 학생은 스스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게 된다. 내 경우에는 석사과정에 들어와 외부 은하 연구를 하던 중에 풀고 싶은 문제가 생긴 나머지, 박사과정에서도 그와 관련된 일을 계속 해올 수 있었다. 이처럼 본인이 선택한 연구 주제는 적어도 그 연구실에서는 자신만이 푸는 문제가 되고, 세계를 뒤져봐도 그 연구 주제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없거나 손에 꼽을 정도가 된다. 자신의 연구 주제가 속한 더 큰 주제가 같은 연구자들은 많을 수도 있겠지만, 그 문제를 푸는 접근 방법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이 하는 일은 유일한 일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는 어려운 일이 되는 게 당연하다.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 연구 주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결론이 나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연구의 진행 스케줄은 정해져 있을 수 있지만, 연구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변수들로 인해서 그 스케줄은 다시 쓰여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박사과정에서 지도교수는 다양한 조언을 해줄 수 있지만, 그 연구를 직접 수행하는 사람은 본인 자신밖에 없다.
학위 기간에 대학원생은 이처럼 자신만이 푸는 문제를 붙잡고 살게 된다. 이 기간은 어려운 기간이지만,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종종 과학이라는 학문을 직소퍼즐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박사과정 학생 한 명 한 명은 이를 테면 1000조각짜리 직소퍼즐을 맞추는 일이다. 퍼즐을 맞춰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처음에는 어려워도 하나하나 맞춰갈수록 재미를 느끼게 된다. 마침내 모든 조각을 다 맞췄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맞춘 1000조각짜리 퍼즐은 더 큰 퍼즐의 한 부분으로 완성되고, 그 퍼즐 조각 옆에서 또 다른 연구자들이 퍼즐을 맞춰나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퍼즐을 맞추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느끼지만 즐거움도 느끼며 사는 게 대부분의 대학원생이 아닐까 한다. 약 5년이라는 박사과정의 기간은 학생에겐 짧게 느껴지지만 정말 긴 시간인 것도 사실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용어를 아마도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것 같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1만 시간을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달인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법칙’을 박사과정 학생에게 적용해보자. 만약 대학원생이 하루에 8시간, 일주일에 40시간을 오롯이 연구에만 쏟아붓는다고 할 때, 5년이란 시간은 무려 1만 하고도 400 시간이다! 이 정도라면 박사라는 호칭을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게 아닐까?
주제와 약간 벗어나긴 하지만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짧게 덧붙이고 싶다. 위에서 소개한 책에서 저자가 역시 강조하는 것처럼, 1만 시간이라는 기회를 누구나 갖게 되는 것은 아니며, 그 기회를 갖게 만들어주는 가정적, 사회적인 기반도 무시할 수 없다. 대학원생은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선택받은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다. 박사과정 5년이라는 긴 기간에 한 명의 대학원생은 연구를 수행하고, 지도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나라에서는 연구비를 받는 등, 연구를 위한 최선의 환경을 제공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학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원해준 사회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공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사’라는 호칭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천문학의 연구 분야
![]()
» 지난해 6월, 미국 릭 천문대에 있는 3m 망원경을 사용하기 위해 방문했다. 이런 연구장비를 이용하여 연구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운 좋게도 4일 간의 관측시간 거의 내내 깨끗한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천문학 연구를 하고 있으면서도 연재하는 중에 천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아낀 게 아닌가 싶었는데, 이번이 천문학의 매력을 펼쳐놓기에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그래서 간략하게나마 천문학의 연구 분야를 살펴볼까 한다.
먼저 천문학은 우주의 시작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 있는 모든 천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그 방대한 크기가 머리속에 그려진다면, 천문학에서 연구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뒤이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자연과학 학문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천문학은 천체에서 오는 빛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서 오는 빛을 볼수록 더욱 더 과거의 우주를 ‘직접’ 보는 것이고, 결국 우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진화의 과정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내가 처음 천문학에 매력을 느낀 첫 번째 이유는 우주의 방대한 공간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천문학만이 유일하게 살아 있는 과거를 볼 수 있는 학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수십억 년 전 과거의 우주에 대해 토론하고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천문학의 연구 분야는 다음의 기준으로 다양하게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로, 그 연구가 이론을 중심으로 하는가, 혹은 관측(혹은 실험) 중심으로 하는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요즘에는 이론과 관측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좋은 연구로 인정받지만, 여전히 어느 한쪽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연구자의 성격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 같다. 어떤 연구자들은 실험을 통해 경험법칙을 찾은 뒤 이를 발전시키는 것을 선호하지만, 또 다른 연구자들은 기본적인 물리법칙 하에서 실험을 해석하는 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연구하는 대상의 차이이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자들은 태양과 같은 별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어떤 연구자들은 이런 별들이 모여 있는 은하를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천체들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역시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진다. 어떤 천문학자들은 태양계와 같은 행성계를 주로 연구하고, 또 어떤 이들은 외부은하나 그 속에 있는 블랙홀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기도 한다.
세 번째, 연구하는 파장의 차이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천문학은 천체에서 오는 빛(전자기파)을 ‘검출’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어느 파장을 갖는 빛을 주로 보는가에 따라 연구 분야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같은 천체라 하더라도 파장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눈이 보는 것과 같은 광학 영역이나 그 바깥의 적외선/자외선을 통해 연구하기도 하고, 더 짧은 파장(엑스선이나 감마선)이나 긴 파장(전파)을 이용하기도 한다.
천문학은 다른 자연과학 분야와는 다르게 지상 실험실에서 하는 실험이 거의 불가능한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가 지상 혹은 우주에서 이뤄지는 관측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를 해석하는 이론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이런 특징 때문인지 몰라도, 천문학자가 된다는 것은 마치 범죄 현장을 살펴보는 형사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또 다른 사건(?)현장 조사를 위해 은하들을 심문할 계획이다.
[알림] 대선 과학기술정책 토론방이 열렸습니다 (바로가기)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