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학원생은 가난하지 않다
배현진의 “연구실에서 만난 꿈, 고민, 미래” (4)
대학원생의 연구비와 생계비
» 요즘에는 대학원생 연구비 지원 사업도 여럿 시행되고 있다. 사진은 2010년부터 파격적인 연구비 지원사업으로서 시작된 ‘미래 기초과학 핵심리더 양성 사업’의 워크숍 한 장면. 2011년 8월 촬영. 사진/ 배현진
대학원생도 먹고 산다
대학원생도 사람이기에 먹고 살긴 해야 한다. 내가 학부생이었을 때에는 대학원생 선배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며 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선배들한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고는 단지 대부분 대학원생이 지도교수한테서 연구비를 받는다는 정도였는데, 구체적으로 얼마를 받는지 물어보기는 난감했다. 대부분 선배들이 말하는 건, 적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다는 식이었다. 석사과정생으로 처음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뒤로 (다행히)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연구비를 받기 시작했다. 또한 조교 생활 등으로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대충 생계는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 벌이를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궁금했던 것은 이런 연구비라는 것이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관리가 되는지 하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내가 호기심이 너무 많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뒤 2년 간의 석사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와서야 마침내 그 답을 알게 됐다. 단지 박사과정에 올라와서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석사과정과 박사과정 동안에 몇 개의 연구비 제안서를 작성해 보았고, 그 결과 운 좋게도 일개 대학원생에게는 꽤 큰 연구비를 받게 되면서 이제 대략적으로 연구비가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많은 대학원생이 먹고 살 걱정은 안 할 수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아마도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는 분 중에는 이런 내용이 궁금하긴 했지만 시원하게 물어보기 힘들어서 답답했을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그런 답답함을 풀어보려고 한다.
자연과학 대학원에 다니면서 받을 수 있는 인건비는 대부분 국가에서 나오는데(물론 다 세금이다), 국가 연구비가 대학원생 쪽으로 흐르는 방향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학과 단위로 지원하는 사업들이며, 둘째는 전임 연구원(대부분의 경우, 교수) 단위로 지원하는 사업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가장 최근에 시작한 대학원생 지원 사업들이다. 또한 이런 국가 연구비 외에도 학과 내에서 수업조교 등을 하며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이 있고, 그밖에 여러 기관이나 개인이 주는 장학금도 상당히 많이있다. 이런 지원들은 학과 혹은 학교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국가 연구비에 대해서만 살펴볼까 한다.
학과 단위의 지원
대학원 생활 중에 해외 학회에 한번이라도 갈 수 있다면 행운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불과 10여 년 전 국내 대학원의 사정은 이랬다. 하지만 1999년부터 ‘두뇌한국21(줄여서, 비케이21/BK21)’이라는 이름의 대학원 육성 및 고등인력 양성사업이 정부 주도로 진행되면서, 대학원생의 생활 여건이 좋아진 동시에 국내 대학원의 연구 수준도 함께 올라갔다. 이 사업 덕분에 대학원생에게 해외 학회나 여름학교 참가 등이 예전에 비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고, 연구 성과도 역시 급증했다. BK21 사업과 관련된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2011년 기준으로 약 6000여 명 이상의 과학 분야 박사과정 학생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2000년대에 대학원 생활을 한 사람들은 바로 윗선배들에 비해 큰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이 시작된 계기는, BK21 사업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듯이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 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사태와 관련이 있다 . 이 사태와 관련해 다수의 기업들이 도산했으며, 살아남은 기업들은 IMF가 구제금융을 대가로 요구한 내용에 따라 많은 직장인을 정리해고 했다. 그 결과로 당시 대학을 막 졸업하던 학생들은 졸지에 취업할 곳이 없어진 처지가 되고 말았는데, 이 때 상당 수의 학생은 졸업을 일부러 늦췄고, 남학생의 경우에는 이 때에 맞춰 군입대를 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위기를 피할 수 있던 방법은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대학원이라는 곳이 학부 졸업 후 취직을 하지 못한 학생이 택하는 일종의 피난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대학원에는 고급 인력이 많이 몰리게 되었고 정부에서는 이들을 구제하면서 동시에 인력을 양성할 정책이 필요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BK21 사업이다. BK21 사업은 연구소 간의 성과 경쟁을 통해 지원할 곳을 선발했기 때문에 일부에서 성과 부풀리기 등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국내 대학원을 양적, 질적으로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9년부터 14년 간 진행된 BK21 사업은 올해로 마무리되며 내년부터는 이를 이어나갈 새로운 대학원 육성사업이 진행된다고 하니, 곧 대학원에 진학할 분들은 또다른 기대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BK21 사업 외에 또 다른 대표적인 대학원 육성사업은 '세계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WCU: World Class University)라는 이름의 사업이다. 이 사업은 2008년부터 시작했으며 BK21 사업보다 적은 수의 학과에 한정되어 있지만, 그 학과에 소속된 대학원생에게는 학비와 생활비가 지원되는 등 최고 수준의 혜택을 주고 있다. 대학원생으로서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이 사업에 참여하는 학과와 관련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최고의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은 당연히 모든 학과가 이런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학원생 자신이 연구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과가 이러한 사업들에 참여하고 있는지 미리 알아두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BK21의 경우 경쟁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참여 대학원생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진 않으며, 매학기 지원받을 대학원생을 선정한다. 선정은 주로 지도교수에 의해 이뤄지게 된다. BK21 후속사업도 이런 경쟁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연구실 단위 지원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 먹으면 가장 먼저 생각해보는 일이 바로 지도교수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과정은 누가 뭐래도 가장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임에 분명하다. 물론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와 지도교수의 연구 내용에 공통된 부분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바로 ‘돈’에 대한 문제다. 만약 지도교수가 학생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 지도교수는 학생을 고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부분의 학생 역시 무일푼으로 연구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지도교수로서 대학원생에게 줄 수 있는 돈은 대부분 국가에서 받은 ‘개인 연구비’이다.
BK21과 같은 대규모 사업이 국가 연구 개발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개개인의 연구자에게 지원되는 개별 사업들은 좀 더 세밀한 부분을 그린다고 말할 수 있다. 과학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매년 국가에서 수행할 과학 사업들의 목록을 결정하고 이 과정에서 기존 사업들을 수정하거나 보완하고 혹은 새로운 사업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결정을 바탕으로 사업들이 진행된다. 대부분의 개인 연구비의 경우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진행된다. 연구재단에서는 사업별로 정해진 기간에 사업에 대한 공고를 내고 개인 연구자들은 이 내용을 바탕으로 연구제안서를 제출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제안서가 받아들여지면 연구비 지원을 받게 된다. 물론 교원이 신청한 연구비에는 박사후연구원(Post-doctor)과 대학원생에 대한 인건비도 포함되어 있고, 그 인건비가 연구에 참여하는 대학원생들에게 분배되어 들어오는 것이다.
다양한 사업들로 상당히 많은 과제들을 지원하고 있긴 하지만, 개인 연구비를 받는 일은 당연히 경쟁률이 매우 높으며 모든 교수가 이런 연구비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같은 학과 내에서도 누가 지도교수인가에 따라, 즉 어떤 연구실에 소속되었느냐에 따라 대학원생들 사이에 다소 ‘소득격차’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개인 연구비가 있는 교수를 쫓아가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모쪼록 대학원생은 자신의 연구 인생에서 지금의 선택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항상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대학원생에게 먹고 사는 일, 즉 돈은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연구 자체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는 없다. 만약 박사과정 연구에서 지도를 받고 싶은 교수가 있고, 그 교수가 지도를 허락했다면, 적어도 당신의 생계에는 지장이 없도록 해주겠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학원생 단위 지원
2010년에 들어서면서 정부에서는 그동안 없었던 파격적인 연구비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른바 ‘미래 기초과학 핵심리더 양성 사업’이다. 이 사업은 매년 국내에서 20명의 자연과학 분야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을 선발하여 최대 6000만 원까지 연구비를 지원한다. 또한 한번 선정되면 3년 동안 연구를 진행할 수 있고, 추가 심사를 통해 2년 간 연장할 수도 있다. 석사과정에 선발된 경우에는 국내 박사과정으로 진학할 경우 그대로 연계된다는 편리함도 있다. 제1기를 선발하던 2010년에 나는 운좋게도 2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선정자 대다수는 생물 분야를 전공하고 있었고 지구과학(천문학) 분야에서는 유일하게 혼자였다.
현재는 3기까지 선발해 대략 60명의 대학원생이 혜택을 받고 있다. 이 사업에 선정된 이후에 나는 좀 더 많은 대학원생들이 이 사업에 지원해볼 것을 독려하게 됐다. 그 이유는 이 사업이 논문 숫자만 따지는 정량적 평가가 아니라 개인에 대한 정성적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원생이라는 상황을 고려해서 그들의 잠재성을 먼저 보고자 한다는 점이 이 사업의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잠재성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인 게 분명하지만, 연구자로서 비전을 갖고 있는 대학원생이라면 도전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지 않을까?
이 ‘미래기초 핵심리더 양성 사업’의 지원 내용은 지금도 여전히 파격적이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20명이라는 숫자에 있었다. 조금 더 많은 수의 대학원생이 혜택을 받는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2011년부터 ‘글로벌박사펠로우십’이라는 새로운 사업이 시행되면서 이러한 아쉬움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이 사업은 매학기 150명가량의 박사과정 대학원생을 선발해 2년 간 매년 3000만 원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또한 2년이 끝난 뒤에 추가 심사를 통해 3년 간 추가로 지원받을 수도 있다. 앞의 사업과는 달리 인문계 박사과정 학생도 선발하고 있으며 이공계와의 비율은 2:8 정도라고 한다. 참고로 두 사업은 모두 지원할 수 있지만, 둘 다 선정될 경우에는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포부를 지닌 대학원생이라면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마치며
처음 대학원생과 돈 이야기를 하고자 했을 때 조금 꺼려지는 부분도 있었다. 사실 과학자들은 왠지 돈에 대한 생각은 멀리해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을 받기도 하며, 심지어는 과학자사회 바깥에서 보기에도 이 집단은 돈벌이와는 멀다고 여긴다. 실제로 내가 느끼기엔 과학자들은 돈벌이에 관심이 많다. 아니, 많아야만 한다. 여기서 말하는 돈벌이라는 것은 개인 사업을 크게 벌리거나 하는 부류의 것이 아니라, 연구비를 따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심 덕분에 대학원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면서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돈으로 동년배의 직장인들처럼 적금을 부어서 목돈을 만든다거나 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꿈을 키워나가는 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직장인들이 보기에 여전히 우리 대학원생은 가난해 보일 수 있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다. 누가 뭐래도 분명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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