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게놈 유전의 밑그림에 세밀화 덧칠하는 에피게놈

  한겨레 사이언스온 - 한국과학창의재단 공동기획

'미래를 여는 첨단과학' 현장을 가다

  (1) 후성유전학 김영준 교수 심층인터뷰


최신의 첨단 과학은 각종 매체에 중요한 열쇳말로 자주 오르내리지만 정작 그 과학 지식의 알맹이는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과학의 ‘결과’는 사회와 더 가까워지지만 과학의 ‘내용’은 더 난해해져 멀어지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에서 두드러진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자들을 직접 찾아가 몇차례의 집중인터뷰와 함께 실험실 현장 체험도 곁들이면서 그런 난해함의 의미를 풀어본다. 후성유전학, 대사공학, 현대기하학, 기후역학, 나노 반도체 등 8개 분야를 선정해 차례로 살펴본다.- 한겨레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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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영상 보기 00hanitv


리는 생명현상을 보여주는 간결한 한 장의 그림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의 중심엔 늘 유전자가 있다. 또 유전자 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만드는 아르엔에이(RNA)가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이 무궁무진한 생명 현상을 일으키고…. 그런데 이런 선명한 그림을 조금 흐릿하게, 더 복잡하게 만드는 여러 연구성과가 최근 과학계에 나오고 있다. 유전체(게놈), 유전자, 디엔에이(DNA)와 상호작용하며 생명의 발현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로 후성유전물질(에피게놈), 마이크로아르엔에이, 장내 미생물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 가운데 후성유전학은 기존의 유전학이 다 설명하지 못하는 유전자의 생명현상을 설명하려는 연구 분야로서 빠르게 성장해왔다. 먹을거리나 생활환경이 몸 안에다 후성유전물질의 패턴을 만들고 그것이 유전자의 작동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제시해온 후성유전학은 특히 “무엇을 먹느냐가 당신과 후손의 유전형질에 영향을 끼친다” “유전자 정보는 정상이어도 암에 걸릴 수 있으며 암도 치유될 수 있다” 등의 학설을 제기해 과학계 바깥에서도 눈길을 끌고 있다. 후성유전학자인 김영준 연세대 교수(위 사진)를 만나 이 분야의 연구 동향과 쟁점에 관해 물었다. 다음은 김 교수와 한 세 차례의 인터뷰(6월3일과 15일, 7월1일)를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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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결정론엔 없는 물음들


성유전학은 디엔에이 정보만으로 생명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몸을 이루는 10조개의 세포들에는 모두 같은 디엔에이 정보가 담겼는데도 어떤 세포는 피부세포로 살고, 어떤 세포는 신경세포로 산다. 또 일란성 쌍둥이도 다른 생활환경에서 산다면 디엔에이 정보가 같더라도 다른 질병에 걸릴 수 있다. 디엔에이 정보 자체가 생명현상에 직접 닿아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보’가 ’생명현상’이 되는 과정에는 여러 개입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건데, 후성유전물질은 그런 주요한 요소들 중 하나다.


후성유전학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갑자기 떠오르고 최근엔 국제 공동연구 컨소시엄(에피게놈 프로젝트)까지 조직되고 있는데요, 몇 년 새 부각되는 이유는 뭔가요?

”갑작스런 건 아니에요. 초기의 관심은 50년, 100년 전부터 있었어요. 세포발생학을 하시는 분들이 세포가 분열하며 어떤 세포는 머리가 되고 어떤 세포는 다리가 되고 하는 분화과정을 관찰하면서 ’어떤 물질’이 분화에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지요. 1940년대 워딩톤이라는 미국 과학자가 ‘세포의 운명’이 산 위에서 계곡에 바위를 굴리는 것과 같다는 비유의 학설을 제시했어요. 바위는 이쪽 계곡으로 한번 구르면, 다른 계곡으론 다시 가기 힘들겠지요. 누군가 끌어올려 다시 굴리기 전에는 말이죠. 워딩턴은 유전학적 요인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봤어요. 그걸 후성유전학이라고 이름 붙였지요.”


최근에 그 ‘어떤 물질’이 세세하게 확인되면서 부각되고 있는 거군요.

“네. 지금까지 후성유전물질로는 히스톤이라는 단백질, 그리고 메틸기, 아세틸기라는 화학물질이 꼽히고 있어요. 그것들이 디엔에이 정보를 세포들이 쓸 수 있도록 조직화하는 과정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보의 조직화’는 어려운 말이네요. 후성유전학이 주목받는 건, 생명현상을 큰 틀에서 설명해주는 기존 유전학이 세밀한 부분에선 다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일텐데요. 그런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보면 게놈, 유전자, 디엔에이의 정보는 레고 블록과 같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런 모양 저런 모양의 디엔에이 정보들이 있는 거지요. 하지만 그 자체가 어떤 의미를 보여주진 않아요. 설명서를 보고서 배 모양을 만들고, 로봇 모양을 만들고 할텐도, 후성유전물질은 그런 ‘설명서’ 구실을 한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세포들은 모두 똑같은 디엔에이 정보를 지니고 있지만 2만 몇천 가지 유전자 가운데 필요한 정보와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가려야 하는데, 그렇게 정보를 조직화하는 구실을 하는 게 바로 후성유전물질이지요.”




후성유전물질이 사는 방식


포핵 안의 후성유전물질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이중나선의 디엔에이 그림이야 익숙하지만, 후성유전물질은 너무 생소하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디엔에이의 모습은 다르게 그려져야 한다. ‘실패와 실’이 추가된 그림은 좀 더 복잡해진다. 후성유전학의 기본 개념을 알려면 먼저 이 그림을 이해해야 한다.


후성유전물질은 어떻게 존재합니까? 그 실체가 궁금하군요.

“음…, 디엔에이를 길게 펴면 2m가량 되지요. 그런데 이런 유전 정보를 어떻게 세포핵의 염색체 안에다 집어넣어야 가장 효율적일까요? 생명체는 ‘히스톤’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해요. 이 단백질을 실패로 생각해보죠. 디엔에이는 히스톤에 팽팽히, 또는 느슨하게 감기고, 그런 히스톤 실패가 무수히 많아요. 그것들이 다시 이렇게 집합을 이루고 저렇게 집합을 이뤄 아주 조밀하게 뭉친 꾸러미가 되지요. 또 메틸기라는 화학물질은 사람(포유류)의 디엔에이에선 시토신(C) 염기에만 붙는데, 이것들이 어떻게 붙느냐 하는 패턴에 따라 감기고 뭉치는 꾸러미의 모양이 달라지지요.”


00graphic » 한겨레 자료그림/ 디자인팀



그런데 이런 모양이 유전자 발현과는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죠?

”유전자 기능이 발현하려면 유전자 기능을 하는 디엔에이 염기서열 부위에 유전자 발현에 관여하는 효소가 달라붙어 반응을 일으켜야 겠지요. 하지만 꾸러미의 깊숙한 곳에 팽팽히 감긴 유전자에는 효소가 접근할 수 없겠지요. 그러니 세포가 자주 쓰는 유전자 부위는 효소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다 감아두겠지요. 겉으로 좀 더 드러나게 말이죠. 그런 차이들이 어떤 유전자 정보는 발현되고 어떤 유전자 정보는 발현되지 않고 하는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똑같은 디엔에이 정보라 해도 어떻게 꾸려졌느냐에 따라 유전자 발현은 달라진다는 거군요.

”그렇지요. 디엔에이 정보가 바뀌거나 다르지 않아도, 디엔에이 밖의 히스톤이나 메틸기에 의해 꾸려지는 방식이 달라지고, 그래서 발현에도 차이가 생기는 거죠.”


이건 비유인가요?

“실패와 실은 비유이지만, 실제로 이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지요.”

 

 
“먹는 것이 당신이다”


교수는 “유전자가 생명현상을 바로 결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먹을거리나 생활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고 강조한다. 후성유전학이 과학계 밖에서도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이 대목에 있다. 무엇보다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준다는 메틸기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서 생겨나는 대사산물이다. 그래서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는 속담 같은 말도 후성유전학에선 과학 원리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어떻게 먹을거리가 유전자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인가?


유럽의 후성유전학 사이트에 보니, “당신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후손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더군요. 먹을거리가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 또 그런 영향이 후세대에 유전될 수 있다는 점이 후성유전학의 핵심적 메시지 가운데 하나인데…, 어떤 연구결과들이 있나요?

“자주 인용되는 사례로 이런 게 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때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봉쇄정책’ 탓에 열악한 영양상태에 처해 있었지요. 그때 태아였던 사람과 그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을 조사했더니 태아였던 사람들이 뚜렷하게 키가 작았다고 합니다. 또 그 사람들의 자녀들도 키가 작았다고 하지요. 그건 후성유전물질의 작용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태아 때에 제대로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그건 그냥 역학조사 아닐까요?

“쥐 실험에서도 입증됐어요. 똑같은 유전자 정보를 지닌 여러 실험쥐들을 새끼를 배게 하고서 서로 다른 음식을 주었지요. 그랬더니 태어난 아기의 건강상태는 달랐지요. 아기들한테는 똑같은 음식을 주었어요. 그랬더니 그 영향은 후세대에서도 나타났다는 거지요. 그러곤 디엔에이와 메틸기 패턴을 비교 분석해보니까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는 거예요. 이건 태아 때 디엔에이에 달라붙는 메틸기의 영향이 무척 크다는 얘기이고, 그 영향이 유전될 수 있다는 걸 쥐 실험 수준에서 보여주는 겁니다. 이런 실험적 증거들이 많이 있지요.”


음식이 어떻게 후성유전학과 관련이 있나요?

“네, 메틸기의 예를 들어보죠. 우리몸에는 메틸기를 디엔에이에 갖다 붙이는 효소도 있고, 그걸 떼어내는 효소도 있어요. 물론 어떤 때에 어떻게 그것이 작동하는지 하는 메커니즘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연구들을 종합해볼 때에 우리몸이 음식을 섭취해 대사산물로 메틸기를 만들고 그걸 효소들이 디엔에이에다 갖다 붙이기도 떼기도 하니까 음식은 매우 중요한 연관 관계를 지니는 것이지요.”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어떻다, 이런 연구결과도 있습니까?

”아직 거기까지는 나가지 못했고요. 다만 메틸기를 만드는 엽산이 부족하거나, 또는 영향상태가 극히 나쁘거나 약물에 지나치게 노출돼 있거나 하다면 그런 영향을 받겠지요.”


어떤 논문 소개글을 보니, 후성유전물질이 정신건강에도 꽤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있더군요.

”자폐증은 디엔에이 메틸기에 달라붙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단백질이 망가졌을 때 생긴다고 밝혀졌고, 또 자살한 사람들의 뇌에서 감성을 조절하는 뇌 부위를 떼어 비교해보니 어린 시절에 아동학대를 경험했던 자살자들의 메틸기 패턴이 유난히 달랐다는 보고도 있었지요. 아동학대가 뇌 발달 기간에 일어나면 신경세포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얘기이지요. 그밖에도 여러 쥐실험 결과들이 있는데, 기억 같은 신경세포 기능에서도 메틸기의 차이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메틸기 같은 후정유전물질은 ‘새겨진 유전 정보’ 디엔에이와 달리, 되돌릴 수도 있는 건 아닌가요? 아동학대를 경험했다고 다 그렇진 않을텐데요.

“물론 그렇지요. 후성유전물질은 그런 점에서 ‘가역적’입니다.”
  


진화의 길에서 본 후성유전물질  


연히 생명체가 왜 이런 후성유전물질을 활용하는 쪽으로 진화했을까 궁금해졌다. 진화에 관해 디엔에이는 간결한 답을 주는데, 후성유전물질은 너무 복잡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후성유전물질은 한 사람의 생애에서 수시로 바뀔 수 있고, 또 세포마다 다른 후성유전물질의 패턴을 지니고 있으니까. 왜 생명체는 유기물을 최적으로 조직화하는 진화 과정에서 후성유전물질을 택했을까? 물음은 ’진화’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후성유전학에서는 진화가 어떻게 설명되나요? 흔히 진화는 우연히 일어나는 유전자 돌연변이 중에서 자연의 환경 변화에 최적으로 적응하는 것들이 살아남으면서, 즉 돌연변이, 적응과 생존, 자연선택 같은 개념으로 설명되는데, 그 중심엔 유전자가 있지요. 후성유전학에선 유전이 일아난다 해도 몇 세대 정도까지에 그치니까…, 진화 개념과는 무관한 건가요?

“후성유전물질은 환경에 의해 항상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하지만 유전자가 정보가 바뀌고 자연에서 선택되는 데에는 천년, 아니 수만년, 수백만년 걸리는 매우 느린 과정이지요. 그러니까 후성유전물질은 이런 유전자 정보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몸에 환경변화에 재빨리 적응할 때에 나타나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환경 변화가 매우 오랜 동안 지속되면, 우리몸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 후성유전물질이 임시로 했던 역할을 대신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젠 후성유전물질로 적응하는 건 필요없어지고요.”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유기체의 장기전략, 단기전략 이런 걸로 이해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생명의 청사진’에 새로운 정보를 새겨넣느냐, 아니면 그 청사진을 들고다니되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느냐 이런 차이일 수도 있겠고요.

“네, 그럴 수도 있겠고요. 유전자 정보는 자연이 선택해 변화하지만, 후성유전물질은 우리몸의 필요에 의해 환경 변화에 맞추는 것이고요.”

  


교수는 이런 후성유전물질이 포유류에서 발달해 있다는 점에서, 이것을 고등 생물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유전체 정보를 활용하는 방식이라고도 풀이했다.


“디엔에이 염기서열의 길이가 짧을 때에는 모든 정보가 접근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학급에 책이 30권뿐이면 정리 안해도 한번에 다 찾아 읽을 수 있지요. 아무리 뒤셖여도 조직화의 의미 없겠지요. 그렇지만 책이 수만권이라면 조직화 없이는 전혀 쓸 수 없는 정보가 됩니다. 에피게놈은 결과적으로 다세포 동물화되면서 그런 정보가 복잡해지고 (단세포는 거기에 있는 정보가 다 쓰일 수 있지만) 해서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세포들은 모두 다 같은 DNA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세포마다 다르게 써야 하고… 결과적으로 조직화 안되면 쓸 수 없다는 것이지요.”
  


 
복잡한 생명, 한 장의 그림은 가능할까? 


터뷰를 하면서 디엔에이·유전자·게놈 중심의 유전학을 ‘디엔에이 유전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새로운 유전학은 ’환경 유전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앞엣것이 디엔에이 정보를 강조하는 데 견줘 뒤엣것은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헷갈림은 여전히 남는다. 새로운 후성유전학이 우리가 몰랐던 생명 현상의 중요한 측면을 보여주지만, 그것 또한 도믄 것을 다 설명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현상을 한 장의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 점점 더 어려운 일이다.
  

후성유전물질이 유전자 정보를 제어하고 또 그런 패턴이 몇 세대 정도 유전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요, 그렇다고 유전자 정보 자체가 덜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게놈과 에피게놈을 어떻게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할지 어렵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지요. 모차르트의 피아노곡 ‘작은 별’은 피아노를 막 배우는 아이나 피아노의 인인 거장까지 다 연주하는 곳이지요. 우선 그 곡을 결정하는 건 멜로디이고 그건 모차르트가 작곡했어요. 곡이 없다면 연주는 할 수 없겠지요. 근데 그 곡을 아이가 연주하느냐, 거장이 연주하느냐에 따라 감흥은 크게 달라지겠지요. 그러면 그 곡이 뛰어난 것은 모차르트 덕분입니까, 아니면 거장 덕분입니까? 작곡에 관해 말하자면 모차르트라고 얘기할 테고, 연주에 관해 말하자면 거장이라고 얘기하겠지요. 그런 차이와 같아요. 어떤 유전형질에 관해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느냐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일단 유전 형질의 발현이나 그것의 유전에 관해 디엔에이만 얘기하던 때보다는 좀더 풍부한 설명이 가능해질 것 같아요.

“이어받은 유전 형질이 발현되는 데 유전자의 염기서열 정보 자체가 하는 역할이 40%를 차지한다면, 메틸기나 히스톤 단백질에 의해 그것이 달라지는 후성유전학적인 몫은 50~60%가 될 겁니다. 나머지는 세포질을 통해,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전해지는 유전 형질의 몫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전 형질의 발현이 다양한 경로로 이뤄지는군요. ‘환경이 유전자를 조율한다’는 얘기는 유전자결정론을 유연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지만 거꾸로 이런 얘기가 단순화하면 유전자 정보를 무시하는 결과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피폭을 받아 유전자 정보 자체가 망가진 경우나 집안 대대로 암 환자가 발병하는 것에서 보듯이 유전적 요소는 생명 현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일상의 경우에서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 후성유전의 영향도 크다는 것이죠.”
 

결국에 후성유전학은 우리가 타고난 유전자가 우리의 모든 생물학적 운명을 결정한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라고 얘기해주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새로운 인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무슨 얘기냐 하면 후성유전의 영역은 가역적인 거고 그래서 뭔가 잘못됐을 경우에도 고치고 되돌릴 수 있고 또 미리 알고서 잘못되지 않게 예방할 수 있고요. 환경이냐 유전이냐를 따질 때에 유전이 제공하는 것보다 환경의 영향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꼭 과학 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도 생명을 보는 태도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게 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도 우리는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는 히틀러 같은 사람이 내세웠던 우생학이 잘못됐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은 것이라 말할 수 있죠."

 

얘기를 듣다보면 후성유전학 연구가 이제 본격화하는, 아직은 어떤 체계로 굳어지지 않은  단계라는 느낌이 드네요. 그러니까 어떤 인풋(input)이 있을 때에 후성유전물질 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아웃풋(output)의 현상이 관찰되고, 또 그 중간에 우리가 모르는 블랙박스가 있고요, 물론 그 블랙박스의 일부는 규명되고 약간은 들여다볼 수도 있는데 아직은 명쾌하게 다 규명되지는 않은 단계가 아닌가 합니다. 어떤 환경이나 어떤 조건, 어떤 학대 경험이 있을 때에 메틸기나 후성유전학적 요인들이 작용한다는 여러 단서들은 확실히 나와 있지만 말입니다.

"네… 그렇게 보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앞으로 해야 할 연구들이 많은 것이지요."


명현상을 유전자 정보만으로 설명하려는 한 장의 간결한 그림은 밑그림이 되어, 그 위에 계속 덧칠이 이뤄진다. 유전자 정보가 단백질로 발현해 어떤 생명현상을 하기까지는 메틸기, 히스톤, 마이크로아르엔에이 같은 여러 생체 요인들이 작용하고, 그것이 또한 우리몸에 기생하는 미생물들, 그리고 환경의 자극에 의해 바뀌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현상이 엄숙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 장의 간결한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는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간결한 그림은 생명현상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수단일 뿐이지 실제의 생명현상을 투사한다고 여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김영준 교수는?  국내에선 아직 활발하지 않은 후성유전학 연구 분야를 이끄는 주요 연구자다. 특히 어느 유전자가 후성유전물질에 의해 조절될 것인지는 이미 유전자에 표지돼 있는 방식으로 유전자가 내재적으로 다양성을 유도할 수 있게 설계됐음을 규명해 주목받았다. 그의 실험실에선 간암과 비만 모델 실험쥐를 대상으로 후성유전학을 연구한다.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교수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국제 에피게놈 컨소시엄 국내준비위원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동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기획 지원: 한국과학창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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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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