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호의 "과학뉴스 ‘사용설명서’"

복잡다난한 미디어 환경에서, 과학을 소재로 삼는 뉴스 정보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내고 유통하고 활용해야 세상에 도움이 될까? 기자, 과학자, 시민이 참여하는 과학 저널리즘의 사용설명서에 관해 이야기한다.

[연재] 학술지에서 트위터까지, 과학의 다양한 유통경로

과학뉴스 '사용설명서' (2)




00sciencejournal » 한겨레 시각물 자료

 



음식을 가장 건강하게 찾아먹는 비법 아닌 비법이 있다. 어떤 음식이 어떤 성격의 경로로 유통되는지 인식함으로써, 잘 선택하고 배합해서 맛과 영양과 주머니 사정에서 최선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길거리 꼬치 포장마차와 분식집에서 고급 레스토랑과 유기농 야채까지, 각각의 특성을 알고서 그 음식을 먹을지 말지 판단해야 한다. 부담 없는 간식거리로 입을 즐겁게 하는 포장마차에서 귀하게 먹을 수 있는 고급 요리를 기대할 수 없지 않은가.


과학 정보, 지식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과학 지식이 어떤 경로에서 유통될 때 어떤 식의 내용이 되는지 인식해야 비로소 그것을 자신에게(그리고 아마도 사회적으로도)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과학 뉴스를 잘 받아들이기 위한 길잡이라면, 무엇보다 과학 지식의 경로를 설명하며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실험·연구실에서 나온 과학이 사회에 유통될 때


00우선 간단하게나마 짚고 넘어갈 것은, 과학 자체에 대한 인식이다. 과학은 검증 가능성을 중시하는 엄밀한 지식 축적 방법론을 지칭하는데, 측정에 의거한 체계적 비교와 작동 과정의 세부 규명 등을 강조한다. 나아가 체계적 관찰에 기반한 분류 작업, 수학적 논리 구성에 의한 이론 정립 등도 여기 포함된다. 일상적으로는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특정 분과 학문, 예를 들어 물리학이나 생물학 같은 것을 상상하곤 하지만, 과학적 방법론이 철저하게 적용된 지식 결과물이라면 경제를 다루건 정치를 다루건 사람들의 소소한 판단 기제들을 다루건 상관없다.


과학으로서 ‘심리학’이, 인간에 대한 모든 기본적 통찰을 통합하고 있던 ‘철학’에서 독립할 수 있던 방법은 바로 비교와 반복이 가능한 측량술의 개발이었다. 즉 어떤 통일된 ‘과학’의 덩어리나 명확한 경계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으로 지식을 축적하면 과학의 범주에 들어간다. 종교 같은 믿음 체계, 철학 같은 사유 체계, 예술 같은 표현 체계와 다른 부분이 이것이며, 과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여 응용하거나 반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만들어진 지식 결과물이 사회적으로 유통될 때에는, 믿음, 사유, 표현 등이 함께 작용하는 복합적인 사회적 앎으로 변환된다. 과학적 검증 자체를 가장 강력하게 강조하는 학술 논문부터 믿음 체계가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입소문까지, 유통 경로에 따라서 배합의 속성은 달라진다.


과학의 전문성에 중점을 둔다면 그 세부 내용이 강조되어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수용자 층이 좁아지는 대신에, 실제로 거기서 다루는 지식에 대한 왜곡은 적다. 반면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대중적 접근성에 중점을 두며 믿음, 사유, 표현 체계들을 강조할수록, 더욱 많은 이들이 과학 지식을 자신의 평소 관심사와 쉽게 접목해 받아들인다(가장 쉬운 예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재앙 보도다). 그래서 세부 내용이 뭉개지거나 왜곡되는 일조차 빈번하게 일어난다.




학술저널, 전문뉴스, 대중뉴스, 온라인 게시판...


00이처럼 과학 지식의 유통 경로에는, 엄격한 방법론에 바탕을 두어 과학 지식을 축적하는 학술, 과학 지식을 뉴스로 다루는 과학저널리즘, 다시 일상에서 화젯거리로 퍼뜨리는 입소문,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여러 지식 유통의 층위들이 공존하면서 우리의 과학 지식에 영향을 끼친다. 좀 더 자세하게 전문성이냐, 접근성이냐를 강조하는 순서대로 과학 지식의 유통 경로를 살펴보면, 개별 사례들에서 겹치거나 순서가 바뀌는 경우는 있겠지만, 대체로 이런 식이다.


◇ 학술 저널:

동료심사 (peer review, 연구논문의 저자가 아닌 해당 분야의 다른 전문가들이 논문 내용의 완성도를 검사하여 출판 여부를 결정하고 때로는 저자에게 내용의 보완을 요청하는 학술 논문 심사제도)를 거친 학술 논문을 게재하며, 가장 과학적인 방법론을 엄밀하게 담아내는 매체다. 해당 분야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학술적 관심사를 추구하는 종사자들만을 독자층으로 삼기 때문에 다른 독자들한테는 아예 해독 불가 수준인 경우가 많다.


◇ 과학저널의 뉴스 보도:

학술 저널의 편집팀이 운영하는 뉴스 공간으로, 최근 발표된 주요 논문의 내용이나 논란 중인 과학 안건을 요약하거나 취재해 보도한다. 다루는 과학 지식의 의미를 하염없이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학술 논문이나 보고서 등 더 자세한 내용으로 연결시켜주는 것을 강조한다. 과학저널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실리는 뉴스 등이 대표적이다.


◇ 연구기관 보도자료:

과학 지식을 만들어낸 대학 또는 연구기관이나 거기에 속한 부문(예컨대 대학 홍보처)에서 연구 집단 바깥, 특히 언론을 상대로 소통을 하기 위해 활용하는 매체 경로이다. 종종 연구업적의 사회적 효용을 강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 재원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담겨 있다. 연구 내용 가운데 세부 조건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지만 대체로 생략되며, 더 많은 정보를 위한 링크를 해당 논문이나 다른 논문들로 연결하기보다는 홍보 담당자나 해당 연구자한테 연결한다.


◇ 대중 과학잡지:

전문적 내용을 추구하면서도, 대중을 독자로 삼는 매체다. 따라서 세부 조건과 방법론의 엄밀성보다는, 어떤 과학적 발견의 이야기 성격에 주목한다. ‘테크놀로지 문화’라는 주제에 대체로 초점을 맞추는 <와이어드(WIRED)>, 특정 분과 학문에 초점을 맞추는 <사이콜러지 투데이(Psychology Today)>, 교양 전반으로 접근하는 <과학동아> 등, 그 폭은 다양하다.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으로 사업 모델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 과학인 블로그:

과학자, 과학전문기자 등 과학과 관련한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신문, 방송 등 매체의 경직성은 피하면서 지식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매체 공간이다. 엄격한 매체들보다는 주관적 견해가 자유롭게 섞여 들어가는 편이지만, 해당 분야 전문가로서 필자들이 전문성을 유지하고자 하므로, 어느 정도 지식의 정확성이나 세부 조건들이 유지된다. 조나 레러 같은 과학 저널리스트들의 공간부터, 한겨레의 <사이언스 온> 같은 과학자와 저널리스트의 공동 공간, <브릭(BRIC)> 같은 과학자 게시판 커뮤니티의 자유 토론까지도 이 범주로 묶어볼 수 있다.


◇ 일반 언론매체의 과학 지면:

일반 대중매체의 지면에서 과학 소식에 할애하는 지면을 말한다. 어느 정도 지식의 틀을 갖춘 정보로서 파급력의 측면에서는 가장 뛰어난 효과를 지니는 경로다. 하지만 게재되는 정보 분량의 제한과 넓은 독자층의 추구 때문에 과학적 전문성 면에서는 축약이 심한 편이고, 특히 세부 조건보다는 결과의 발생 여부만을 강조하기 쉽다. 나아가 대중적으로 관심을 끌만한 함의를 찾다가 자칫하면 과장된 위험, 과장된 경제 효과, 과장된 미래 발전상을 제시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과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계속 가꾸어나가는 담당 기자가 부족한 경우에는, 종종 실제 연구결과보다는 연구소 보도자료와 해외언론 과학면을 정리하는 수준으로 운영된다.


◇ 과학 소식을 활용한 일반 보도:

해외 토픽, 경제면, 사회면의 기사에서 과학적 발견을 다루는 경우다. 기사의 내용을 ‘과학적으로 정확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보조 자료로 과학 지식을 사용하며, 실제 연구의 과학적 방법론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 토론 공간의 소식 전파:

대중 일반의 관심사을 좇아 전파되는 경로를 말하며, 언론매체의 과학 보도나 과학 지식을 활용하는 다른 보도들이 널리 애용된다. 여기에서 과학 지식은 대중적 화젯거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동원되기도 하며,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의 엄밀함보다는 이야기 주체들의 신념을 뒷받침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잘라져 삽입되는 경우도 많다. 신념을 위해 내용이 왜곡되는 것의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몇 줄의 설명과 강렬한 이미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편집한 것(이른바 ‘짤방’ 형식)인데, 대체로 강렬한 파급력과 미미한 과학성을 담는다.




대중성만 좇다보면 선정적 허풍 속에 과학은 실종


00대체로 ‘전문성’은 과학적 발견의 가치 기준이고, ‘접근성’은 저널리즘의 가치 기준을 따른다. 과학적 방법론을 통한 지식 축적이라는 견지에서, 서술하고 유통할 가치는 더욱 새롭고 중요한 지식을 많이 만들기 위한 영향력, 발견 자체의 중요성 등에 달려 있다. 하지만 대중적 파급력과 일상의 관련성을 노리는 저널리즘적 가치는, 전복적 자극성(저널리즘 업계에서 흔히 말하듯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되지 않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이나 사회적 이용 가치 등에 달려 있다.


몇 년 전에 한국 과학계에 붐을 일으켰던 배아줄기세포 연구 분위기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과학적 전문성의 논리에서 유통 가치가 높은 부분은 배반포 11개를 만들어냈다는 것이고, 저널리즘의 논리에서 보면 가치가 높아 주목할 내용은 333조 시장이 열리고 앉은 자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얄궂게도 양쪽 모두 거짓이었지만 말이다. 다만 앞에서 보았듯 순수하게 어느 하나만 추구하기보다는, 과학 지식이 유통되는 경로에 놓인 매체의 성격에 따라서 이런 두 가지의 배합이 달라지는 식이다. 실제로 둘 중 어떤 한 쪽만이 절대적으로 더 좋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전문성만 있으면 나머지 사회의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자기만족이 되기 쉽고, 접근성만 있다면 선정적인 허풍 속에서 과학이 아예 사라진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과학적 사안들이 여러(!) 층위의 매체 경로를 동시에 경유하며 충분히 서로 연동되어 유통되도록 만들기, 그리고 사람들도 필요에 따라서 그런 것들을 자유롭게 연결해 참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닥칠 위험에 대한 인터넷 게시판의 입소문만을 듣고 광우병에 관심이 생긴 사람이 좀 더 제대로 알고 그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정립하고 발언하기 위해서, 언론 지면에서 더 정제된 정보를 얻은 뒤 과학자 블로그의 정리 포스팅을 읽고, 전문잡지의 심층 기사를 찾아보고, 또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관련 보고서를 찾아보는 것이 아주 간단하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우선 그런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부터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서, 쉽게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각 지식의 층위가 쉽게 연동되지 않는다면 ‘짤방’에서 얻은 지식을 ‘짤방’으로 유포하며 과학 사안에 대한 견해는 오로지 신념 체계로서만 공고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과학에 대한 사회적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과학이 사라진 상태의 판단만이 남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과학저널리즘 뭘 해야 하나?


00그런데 매체 경로 또는 지식 층위를 연결 짓는 작업에서, 전문성과 접근성의 양 극단이 아닌 중간 지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학 저널리즘이 해야 할 역할이 특히 크다. 과학 저널리즘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각의 패러다임은 여느 전략 커뮤니케이션 분야와 비슷하게, 정보 전달 모델. 브랜딩 모델, 그리고 결국 참여 매개 모델로 변모해왔다.


정보 전달 모델은 정보의 전달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라는 인식으로, 과학의 경우는 "과학 기술의 대중 (재)교육"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보의 전달만으로는 실제 효과가 부족하다고 보아, 개별적 과학지식보다는 과학 자체에 관한 대중의 인식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 등장했다. 즉 마치 기업의 피아르(PR)처럼 과학이라는 '브랜드'를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패러다임은 과학이 대중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거나 홍보하는 타자가 아니라, 아예 함께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참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 자세한 논의는 김영욱 교수의 사이언스온 기고 글 참조)


위 규범들 중 앞의 두 개(정보 전달 모델, 브랜딩 모델)는 모두 전반적으로 과학이라는 전문가들의 영역에 경계를 긋고 대중에게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상정한 것인데, 요즘은 패러다임은 경계를 열고 쌍방향의 참여 폭을 확대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참여 매개의 방식에 대해서는 흔히 과학계에 대한 감시 역할, 그것을 통한 투명성의 제고, 나아가 지식 생산 방식의 개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경로만 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참여 매개를 위해 과학 커뮤니케이션, 특히 과학저널리즘이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과학적 사고 자체의 보편화다. 과학의 일상화 이상으로, 일상의 과학화를 추구해야 한다. 과학의 기본인 “지식의 방법론”이라는 측면을 다시 강조하여, 개별의 과학지식을 넘어서는 과학적 교양(scientific literacy)의 확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역시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매체 경로의 지식 층위들을 엮어주어, 필요할 때마다 과학적 전문성을 더 강조하는 쪽으로 사람들을 유도해주는 매개의 역할을 좀 더 집요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가장 쉬운 예로, 더 전문적인 원천 자료에 대한 하이퍼링크 정도라도 말이다. 혹은 과학 데이터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데이터 시각화 작업도 유용하다(이 경우에도 원자료(raw data)를 찾아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각각의 저널리즘 매체들이 될수록 전문지식을 갖춘 과학 전문기자들을 두고서 그들이 자신의 과학 지식을 계속 갱신할 수 잇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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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 미국 위스콘신대학 언론학 박사과정
충분히 복잡한 세상에서 합리적 담론형성을 조금 더 가능하게 해주는 미디어 환경이 주된 관심사이다. 만화연구가 김낙호와 동일인.
이메일 : scienceon@hani.co.kr       트위터 : @capc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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