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의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공부 잘 하는 법’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자 한국 사회의 주요한 정치적 의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잘못된 공부법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정치 논쟁에선 과학적 근거를 갖춘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뇌과학을 통해 우리시대의 공부법을 들여다 봅니다.

[연재] 공부의 피드백은 '빠르게, 좁게, 자주'

_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5)


 

 

00class » 서울시내 어느 중학교의 수업 풍경. 한겨레 자료사진

 

 

 

조금 오래된 농담 하나. 장군이 병사들을 이끌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열심히 산 정상까지 올라간 다음 장군이 말했다. "이 산이 아닌가보다." 다시 장군은 병사들을 다른 산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다시 장군이 말하길, "아까 그 산이 맞나 보다."


지난 글에서 공부에는 피드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럼, 피드백은 어떻게 주어야 할까? 학습에서 피드백은 '빠르게, 좁게, 자주' 주어야 효과적이다. 농담 속 장군을 생각해보자. 장군의 피드백은 느렸다. 산에 다 올라간 다음에야 주어졌기 때문이다. 넓기도 하다. 이 산이 아니라는 말만으로는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다. 좋은 피드백은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빠르고 좁게 자주 주어져야 한다. "300미터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이래야 병사들이 헤매지 않는다.

 

 


피드백의 원칙: 빠르게, 좁게, 자주


학습은 결국 신경망의 연결 패턴을 바꾸는 것이다. 신경세포들은 자극을 받으면 활성화되고, 함께 활성화된 신경세포들끼리 연결된다.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는 개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 종소리를 들려주었다. 개는 먹이를 보면 침을 흘리는데,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려주어도 침을 흘리게 되었다. 이것이 '파블로프의 개'로 알려진 실험이다. 종소리에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들과 먹이에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된 결과다.


따라서 학습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려면 각각의 개념들에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들이 잘 연결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이 근접성(contiguity)과 수반성(contingency)이다. 근접성은 말그대로 두 가지 사건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가까이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함께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들이 연결되니 당연한 이야기다. 수반성은 두 사건이 일관성있게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쉽게 생각하면 종소리를 들려줄 때마다 먹이가 나와야 종소리와 먹이를 연결시킬 수 있지, 먹이를 줬다가 채찍으로 때렸다가 하면 제대로 학습할 수가 없다.


'빠르게'는 시간적 근접성이 높아야 한다는 뜻이고, '좁게'는 수반성이 높아야 한다는 말이다. 종소리면 종소리, 발자국 소리면 발자국 소리로 정확하게 자극을 주어야 종소리와 먹이를 연결시킬 수 있다. 파블로프는 그의 실험을 위해 '침묵의 탑'이라는 연구시설을 만들었는데 다른 종류의 소음이나 자극을 차단하기 위해 건물을 물로 가득 채우고 그 안에 실험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슨 세포든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신경세포는 경험을 할 때마다 조금씩 바뀐다. 그래서 피드백을 '자주' 주어야 신경세포들이 튼튼하게 연결된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파블로프의 개' 이야기를 한 김에 동물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동물원에 가면 돌고래나 물개 같은 동물들이 묘기를 부리는 쇼를 구경할 수 있다. 신기하긴 하지만, 원리는 똑같다. 묘기를 부릴 때마다 먹이를 피드백으로 주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들이 어떻게 그런 복잡한 묘기를 부릴 수 있을까? 여기에는 조성(shaping)이라는 기법이 사용된다. 복잡한 묘기를 여러 개의 동작으로 나눈다. 만약 물개나 돌고래가 첫 번째 동작과 비슷한 행동을 하면 먹이를 준다. 나중에는 동작을 정확히 해야 먹이를 준다. 그 다음엔 한 동작에서 다음 동작을 이어서 해야 먹이를 준다. 이런 식으로 단순한 동작 하나에서 여러 동작으로 이뤄진 복잡한 묘기까지 서서히 늘려나간다.


원리상으로만 보면 동물 묘기나 공부나 똑같다. 차이라면 사람에게는 먹이를 피드백으로 주지 않는다 뿐이다. 기초적인 개념부터 피드백을 받으면서 차근차근 공부해서 점점 복잡한 지식까지 익혀나가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이렇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빠르고 정확한 피드백의 학습 효과


동물이 복잡한 묘기를 부리려면 조련사가 필요하고, 사람이 복잡한 지식을 익히려면 교사나 코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세밀한 피드백을 주려면 학생 한 명당 많은 교사와 코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벤저민 블룸이 완전학습을 제안한 이유도 적은 교사로 많은 학생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주기 위해서다.


00anderson » 인지과학자 존 앤더슨.

인지과학자 앤더슨(John Anderson)은 블룸의 완전학습에서 교사의 역할을 컴퓨터로 흉내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줄 수 있는 리스프 튜터(LISPTUTOR)라는 프로그램 만들었다.


리스프 튜터를 만들기 위해 앤더슨은 프로그래밍 수업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배워야 할 개념을 500가지로 분류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개념 하나하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파악해서 피드백을 주는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똑같은 교재로 똑같은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 피드백을 받으며 공부한 학생들은 피드백 없이 공부한 학생들보다 30% 더 적은 시간을 공부하고도 43%나 더 높은 성적을 얻었다.1)


앤더슨의 연구는 많은 교사나 코치가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결은 공부할 내용을 세밀하게 나누어서 학생들에게 빠르고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데 있다.


단어 암기처럼 애초에 공부할 내용이 나눠져 있는 경우에는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것조차 필요없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명함 크기만한 작은 종이 카드에 앞면엔 단어, 뒷면엔 뜻을 쓴다. 앞면을 보고 단어의 뜻을 떠올린 다음 카드를 뒤집어서 뜻을 확인해본다. 상자를 여러 개 만들어서 확실히 아는 단어, 잘 모르는 단어, 잊은 단어 등등으로 분류해가며 외우면 효과적이다. 이런 카드를 플래시카드(flash card)라고 한다.




동료교수법: 내 친구는 선생님


피드백은 꼭 교사나 코치, 또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플래시카드 등 교보재만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학생들은 서로 서로 피드백을 줄 수 있고 또 그렇게 한다. 뉴질랜드의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받는 피드백 중 80%는 다른 학생들로부터 온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학생 간 피드백 중에 80%는 부정확하다. 2)


00study12 » 학습 피드백에서 친구의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난다. 사진은 대안학교인 ‘다산학교’ 학생들이 책을 읽고 와서 발표 및 토론수업을 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공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도 아이들의 삶에서 또래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어떤 연구자들은 한 인간의 발달 과정에 부모보다도 친구들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3) 가끔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면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고 변명하는 부모들을 볼 수 있는데,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학생들이 적절한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조건을 잘 만들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를 동료교수법(peer tutoring)이라고 한다. 교사의 지도 아래 학생들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게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도 완전학습과 거의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학창 시절 자습 시간에 공부 잘하는 친구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왜 친구 공부를 방해하냐며 혼내는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동료교수법은 배우는 학생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학생에게도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4) 예전에 문제를 푸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 많이 공부가 된다는 연구를 소개했는데 같은 맥락이다.




"행동은 결과의 함수"


위 나라 중신 공어가 죽자 임금이 그에게 '문(文)'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은 그게 마뜩찮았는지 공자에게 물어보았다. "공어가 뭘 했다고 '문'이라고 부릅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좋아해서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니 '문'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느냐."

 

학습심리학에는 "행동은 결과의 함수(behavior is a function of its consequences)"라는 말이 있다. 피드백 없이는 효과적인 학습이 없다. 좋은 피드백을 주는 사람을 우리는 '스승'이라고 한다. 공자처럼 좋은 교사를 스승으로 맞을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 하지 말아야 한다. 프로그램이든, 종이 카드든, 친구에게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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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마음과 뇌의 작동 방식을 수학, 통계학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늉내는 계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euphoris@gmail.com       트위터 : @aichupanda        
블로그 : Null Model(nullmode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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