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먼지에 얼룩진 원시중력파 발표.."성급했군"

플랑크 위성 자료, 우주먼지 효과 가능성 확인


3월 "빅뱅우주의 급팽창 가설 입증" 발표 이후, 환호와 논란

현재로선 원시중력파 근거 미약...올해말까지 최종확인 연구

00gravitationwave_planck.jpg » 플랑크 위성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전 우주의 우주먼지 분포 지도. 왼쪽은 북반구 하늘, 오른쪽은 남반구 하늘. 파란색은 우주먼지가 적음, 빨간색은 우주먼지가 많음을 나타낸다. 원시중력파의 흔적을 관측했다는 바이셉2 연구진이 바라본 우주 영역은 오른쪽 지도에서 검은색 사각 모양으로 표시된 지역인데, 우주먼지가 상당히 존재하는 것으로 표시돼 있다. 왼쪽은 북반부 하늘, 오른쪽은 남반부 하늘.출처/ arXiv.org




주 대폭발(빅뱅) 직후에 ‘급팽창’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원시중력파의 흔적을 포착했다는 지난 3월 미국 연구팀의 발표는 우주먼지가 내는 비슷한 효과를 잘못 관측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 분석은 우주배경복사(우주 어디에나 배경처럼 퍼져 있는 마이크로파 빛으로 빅뱅의 흔적)를 정밀 관측해온 플랑크(Planck) 위성의 데이터에 바탕을 둔 것으로, 지난 3월 발표가 성급했으며 사실상 잘못된 해석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더욱 확실한 교차분석의 결과는 올해 말에나 나올 예정이다.


00gravitationwave_bicep.jpg » 남극에 설치된 우주배경복사 관측 시설. 출처/ NSF지난 반년에 걸친 논란의 시작점은 지난 3월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CfA) 중심의 ‘바이셉2(BICEP2)’ 연구진이 한 발표였다. 현재 알려진 우주이론에선,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간이 팽창한 빅뱅 직후 급팽창(인플레이션)의 순간에 엄청난 '시공간의 출렁임'(즉 중력파)이 있었으며 그 원시중력파의 흔적을 현재 우주배경복사의 특정 편광 패턴(B모드 또는 원형편광)에서 관측할 수 있다고 본다. 바이셉2 연구진은 이런 우주론에 바탕을 둔 원시중력파의 흔적을 남극 전파망원경을 통해 관측했다고 발표했다.


중력파 자체를 관측한 것은 아니지만 원시중력파가 만들어냈을 특정 편광을 매우 높은 확실성의 수준에서 관측했다는 발표는 빅뱅우주론의 급팽창 가설을 입증할 수 있는 직접적 근거로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세기의 발견"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대중매체에도 크게 보도됐다.


러나 의문은 곧이어 제기됐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우주 빛에서 특정 편광이 관측되는 경로는 대체로 세 가지가 꼽힌다. 은하 안에서 가속 전자가 내는 싱크로트론이나 우주먼지의 효과에 의해 관측될 수 있으며, 또한 아직 한번도 관측된 적은 없지만 이론적으로 원시중력파의 효과에 의해서도 관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겼다. 그러면 미국 연구팀이 본 것은 원시중력파의 흔적이 아니라 혹시 우주먼지의 효과일 수도 있지 않은가? 연구팀은 우주먼지의 흔적이 아니라 원시중력파의 흔적을 보았음을 명쾌하게 입증하고 있는가?

00gravitationwave1.jpg » 미국 연구팀이 지난 3월 우주에서 날아오는 우주배경복사의 빛에서 원시중력파의 효과로 생기는 특정 편광 패턴을 찾아냈다고 발표하면서 제시한 자료. 출처/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CfA)

영국 입자이론물리학자(Subir Sarkar)는 우리 은하의 싱크로트론이나 우주먼지에서는 마이크로파 복사도 일어나기에 “바이셉2가 검출했다는 ‘B모드 신호’에 상당한 오염이 초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론물리학자(Adam Falkowski)도 관측 장소인 지구에 가까운 우리 은하 내부와 다른 은하들의 우주먼지가 편광 신호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문의 근거로 제시했다.


우주먼지 효과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팀은 바이셉2가 바라본 우주 영역이 우주먼지의 효과가 거의 없는 구간이기에 관측 데이터의 오염은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으나, 지난 6월 발표한 논문에서는 우주먼지 효과가 관측 데이터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받아들이며 한 발 물러섰다.


란이 계속되면서 연구자들 사이에선 우주 공간에서 우주배경복사를 가장 정밀하게 관측해온 플랑크 위성의 새로운 자료가 논란을 풀어줄 잣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이번에 나온 플랑크 위성의 최근 데이터를 분석한 논문은 이런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프랑스 천체물리연구소의 장-루 퓌제(Jean-Loup Puget)가 이끄는 플랑크 공동연구진(229명)은 최근 물리학 공개 학술 데이터베이스인 아카이브(arViv.org)에 올린 논문에서, 전 우주에 분포하는 우주먼지의 지도를 제시하면서 바이셉2 연구팀이 바라본 우주 영역에도 은하의 우주먼지가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바이셉2 연구진은 자신들이 본 우주 영역은 우주먼지가 거의 없는 '깨끗한 창'이기에 관측된 편광은 결국 원시중력파의 흔적일 수 있다고 해석했으나, 플랑크 위성 자료의 공개로 인해 실제로는 우주먼지 효과일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바이셉2 연구진은 기존 관측 자료를 분석해 이 우주 영역에 우주먼지가 거의 없다는 결론을 얻고서 특정 주파수(150기가헤르츠)에서만 편광 패턴을 관측했으나, 플랑크 위성은 여러 주파수에서 관측해 그 데이터와 해석의 정확도는 훨씬 높다.


플랑크 연구진은 논문에서 “심지어 먼지 효과가 아주 희박한 우주 영역에서도, 먼지 효과 요소를 빼지 않은 채 우주배경복사의 B모드 편광을 관측할 수 있는, 그런 ‘깨끗한’ 우주의 창("clean" windows)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늘의 어느 방향, 어느 영역에서도 섬세한 신호인 편광 패턴의 관측에 우주먼지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직 논란 무대의 막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 바이셉2 연구진이 관측한 것 중에 원시중력파 효과로 생성된 우주배경복사의 편광 패턴이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에, 플랑크 연구진은 바이셉2 연구진과 함께 관측 자료를 교차분석하는 공동연구를 올해 말까지 벌여나가기로 했다. 한편, 최종 결론이 어떨지와 별개로 이번 플랑크 위성 관측자료가 나옴으로써 지난 3월 바이셉2의 발표가 성급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원시중력파 관측’ 발표부터 논란, 번복까지

▨ '원시중력파 관측 아니다' -최종결론                [201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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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초 우주 급팽창을 엿보다’…원시중력파 검출    [201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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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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