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

생물학 연구의 모델동물인 ‘예쁜꼬마선충(별칭 엘레강스)’을 연구하는 다섯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발생과 진화를 비롯해 생물학의 굵직한 주제를 담은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실험실 안과 밖의 진지하고 유쾌한 소통을 시작한다.

사랑에 빠진 꼬마선충, 큐피드 화살은 어디서 날아왔을까?

[2] 사랑에 빠진 예쁜꼬마선충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 예쁜꼬마선충에서 비슷한 기능을 하는 호르몬 네마토신이 수컷 선충의 짝짓기 행동에 관여하는 현상의 정체는 무얼까?


00elegance_Love1.jpg » 그림1. 선충의 짝짓기 행동. 출처/ Garrison, Jennifer L., et al.(2012)

[이번 글의 주제 논문]


Garrison, Jennifer L., et al. “Oxytocin/vasopressin-related peptides have an ancient role in reproductive behavior.” Science 338.6106 (2012): 540-3.




00elegance_Love4.jpg람의 감정 중에서 사랑만큼 낭만적인 게 있을까요? 사랑이라는 말은 흔히 이성보다 감성에, 우연보다는 운명에 가까운 것처럼 여겨집니다. 잘 어울리는 연인을 볼 때, 우리는 흔히 ‘천생연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사람한테 사랑할 운명이 있는 것이지 그것이 꼭 특정한 누군가일 운명은 아닙니다. 사랑이란 개인한테 특별하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지극히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아홉개 아미노산의 ‘사랑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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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보편적인 것.’ 이 명제를 좇아 사랑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신경과학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연구자인 미국 럿거스대학의 헬렌 피셔 박사(Helen Fisher)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특정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에 의해 세 단계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1단계는 이성을 대할 때 저도 모르게 끌리거나 그 사람에 대한 욕망을 가질 때로, 이 시기에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2단계는 그 사람이 자꾸 생각나고 이런저런 달콤한 상상도 하는 낭만적인 상태로, 페닐에틸아민이 작용합니다. 마지막 3단계는 상대 이상에 신뢰감을 가지며 그밖에 다른 이성에는 관심이 적어지는 단계인데, 이때는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옥시토신은 생물학 교과서에서 흔히 태아를 출산하는 산모의 자궁수축을 돕는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말 자체가 “빠른 출생(quick birth)”이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비롯했다고 하네요. 처음 발견한 것은 1906년으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기능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헨리 데일(Henry Dale)이 그 발견자입니다. 옥시토신은 자궁수축 외에도 여성·남성의 포괄적인 생식과 번식 행위를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옥시토신을 ‘사랑의 호르몬’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갖가지 기능을 하는 데 비해 옥시토신은 고작 9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굉장히 작은 단백질(호르몬)입니다. 비슷한 구조를 지닌 바소프레신과 함께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대표적인 신경호르몬이라 할 수 있지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물질은 하나인데 그 기능과 결과는 어떻게 이토록 다양할 수 있을까요?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의 작용은 대부분 그 호르몬을 인지하는 수용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런 수용체는 대부분 세포막에 존재하는 막단백질입니다. 막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잠깐 살펴볼까요? 세포의 안과 밖을 나누는 세포막에 있는 막단백질 중에서 세포막 바깥쪽에 노출된 부분은 리간드(수용체에 달라붙는 물질. 호르몬보다 좀 더 넓은 표현)라는 물질을 인지하는 기능을 합니다. 리간드가 세포막 바깥쪽의 막단백질 부위에 달라붙으면 세포막 안쪽에 노출된 막단백질 부분은 리간드가 달라붙을 때 생기는 신호를 세포 안에다 전달해 생체 기능을 일으키는 구실을 합니다. 옥시토신이 다채로운 기능을 하는 것도 아마 옥시토신 수용체의 발현과 수용체 밑단에서 일어나는 신호 전달 메커니즘의 다양성에서 기인할 거라 생각됩니다.


이제 옥시토신이 만들어내는 가장 환상적인 이벤트인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좀 더 살펴봅시다.

영상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줄 때 피실험자의 뇌 영역에서 활성화하는 부분은 옥시토신 수용체가 많이 발현되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연인끼리 자주 포옹하는 것만으로도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옥시토신이 사랑의 3단계를 관장한다는 헬렌 피셔 박사의 주장을 입증하기에 충분할까요? 저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험과학을 수행하는 대학원생으로서, 특정 현상에 관여하는 요인 중에 어떤 것이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지 따지는 일은 참 어렵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 가지 요인이 직접 원인-결과가 되지 않고 단순한 상관 관계일 뿐인 경우도 있지요. 즉,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사랑을 느끼는 것인지, 또는 사랑을 느끼기에 (다른 작용을 위해)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것인지 아직은 단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짝 찾을 생각이 없는 초식남 '돌연변이 nt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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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단백질이나 이를 암호화한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파악하려면 이 단백질(유전자)을 없앤 뒤에 일어나는 생물학적 현상의 변화를 살펴봐야 합니다. 특정 유전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생물학적 변화를 살펴, 그 유전자의 기능을 추적하는 것이지요. 또한 이렇게 특정 유전자 일부에만 집중해 살피려 한다면, 그밖에 다른 부분은 생물학적 변화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확실히 제어를 해두어야 합니다. 모델동물을 이용해 유전학을 연구하는 이유도 다름 아니라 실험용 모델동물들이 이런 유전학적 실험 조작을 하기에 간편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예쁜꼬마선충은 현재 많이 사용되는 유전학 모델 ‘동물’ 중에서 해부학적으로 가장 단순합니다. 겉모습만 놓고 보면 개불을 100분의 1 크기로 줄인 것처럼 생긴 선충은 사실 얼핏 보면 사람과 달라도 너무 다른 생명체입니다. 하지만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생물학을 연구해서 얻을 수 있는 ‘단순한 진리’는 역시나 단순하고 환원적인 시스템에서만 가능한 측면이 있습니다. 겉보기에 예쁜꼬마선충은 눈도 없고, 팔·다리도 없고, 심지어 뇌라고 불리는 신체기관도 없지만, 사람 몸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학적인 현상을 연구하기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던 것이죠. 선충과 사람의 유전체는 40% 정도의 유사성을 지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수치는 단백질을 만드는 데 관여하지 않는 디엔에이(DNA) 염기서열 부위까지 포함한 것이고, 알려진 인간 유전자만 따지면 약 70%는 예쁜꼬마선충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즉, 인간 유전자의 3분의 2 이상은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해서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글에서 소개하는 논문도 그런 예가 될 수 있습니다.


00elegance_Love4.jpg 미국 록펠러대학의 코넬리아 바그만(Cornelia Bargmann) 연구팀은 2012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람의 옥시토신을 만드는 유전자의 기능과 비슷한 유사성이 사람과 선충 사이에 나타난다는 요지의 연구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주제 논문]. 이들은 사람의 옥시토신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선충의 유전자를 찾아내어 ‘선충(nematode)의 옥시토신’이라는 의미로 그 단백질을 네마토신(nematocin)이라는 이름을 짓고, 유전자를 ntc-1로 명명했습니다. 옥시토신이 신경세포의 활성을 일으킬 때 세포막의 수용체를 통로로 이용하듯이 선충에도 네마토신의 수용체가 따로 있겠지요. 연구팀은 네마토신의 수용체로 여겨지는 유전자는 두 개를 찾아내어, 네마토신 수용체(nematocin receptor)라는 뜻으로 ntr-1ntr-2로 명명했습니다.


코넬리아 바그만 연구팀이 가장 먼저 한 실험은 네마토신 유전자가 발현되는 장소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전자가 발현되는 장소는 곧 그 유전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와도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유전자 발현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의 염기서열 앞쪽에 있는 프로모터(promoter)라는 부위를 이용합니다. 프로모터는 특정 유전자가 언제, 어디에서 발현될지 결정하는 DNA 부위입니다. 이제 프로모터에 형광 단백질(GFP)을 붙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 유전자가 발현할 때 형광을 띠어 연구자가 유전자 발현 지점을 관찰할 수 있겠지요. 선충의 몸이 투명하다는 점이 관찰을 더 쉽게 해줍니다. 특정 유전자에 형광 단백질을 붙여 형질전환 선충을 만드는 일은 의외로 쉬워, 실험실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흔히 체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네마토신을 만드는 유전자(ntc-1)와 네마토신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ntr-1, ntr-2)의 발현은 아래 그림과 같았습니다(그림2 위쪽). 기본적으로 자연상태에서 예쁜꼬마선충은 자웅동체로 존재하는데, 이런 자웅동체에서는 ntc-1 유전자가 열을 감지하는 감각신경세포(AFD)와 자기수용성 감각(proprioceptive)을 맡는 감각신경세포(DVA)의 장소에서 발현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수용체 유전자인 ntr-1, ntr-2는 더 다양한 여러 신경세포들에서 발현하는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 (☞ 자기수용성 감각: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인지하는 감각. 선충에서 DVA 감각세포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이다.)

00elegance_Love2.jpg » 그림2. 네마토신(ntc-1)과 네마토 신수용체(ntr-1, ntr-2)의 발현 패턴. 출처/ Garrison, Jennifer L., et al.(2012)

이런 발현 패턴의 결과를 보고서 연구자들은 아마도 처음엔 약간 실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옥시토신의 기능은 번식 행동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네마토신이 발현하는 신경세포들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번식과 관련하는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옥시토신의 기능인 자궁수축 작용이 선충에서도 보존되어 있다면, 선충에도 이와 비슷하게 알 낳기(egg-laying)와 관련한 신경세포에 네마토신이나 네마토신 수용체가 발현했어야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연구자들은 네마토신과 네마토신 수용체 유전자가 자웅동체 선충에만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신경세포에선 발현하지 않지만, 수컷 선충(XO 성염색체)에만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신경세포에서는 발현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그림2 아래쪽).


수컷에만 있는 특이적 신경세포가 담당하는 행동은 당연히 수컷 선충의 번식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자웅동체를 만나 짝짓기 행동을 수행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행동에서 네마토신 신호가 정상 작동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납니다.


야생형 선충의 짝짓기가 80% 이상의 성공률을 보이는데, 네마토신과 네마토신 수용체 유전자가 망가진 선충에서는 그 성공 확률이 30% 정도로 떨어집니다(그림3 왼쪽). 좀 더 살펴보면, 야생형 선충에서는 지나가다 마주친 첫 번째나 두 번째 이성에 바로 끌리는데, 돌연변이인 선충에선 몇 차례 이성을 놓친 뒤에 비로소 짝짓기에 성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림3 오른쪽). 사람의 연애에 비유하면 야생형 선충은 금방 사랑에 빠지는 경우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에 반해 네마토신 신호가 작동하지 않는 돌연변이 선충은 마주친 이성이 자신의 배필인지 아닌지 고민하며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인연을 지나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00elegance_Love3.jpg » 그림3. 야생형과 네마토신 돌연변이의 짝짓기 행동 성공률(왼쪽) 및 짝짓기 전 이성과 접촉하는 횟수(오른쪽). 출처/ Garrison, Jennifer L., et al.(2012)

당연히 선충과 사람의 이런 단순한 비유는 지나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논문의 연구결과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예쁜꼬마선충이 단지 옥시토신과 비슷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현상도 어떤 유사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네마토신이 만드는 사랑의 신경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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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선충에서 네마토신이 수컷의 짝짓기 행동에 관여하는 현상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네마토신이 하는 일은 네마토신 수용체에 일종의 신호를 전달하는 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수용체는 신경세포에 어떤 종류의 변화를 유발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사람의 신장에서 유래한 어느 세포주(‘HEK293T’)에다 네마토신 수용체를 과발현하도록 했습니다. 연구자들이 이 세포에 네마토신 단백질을 처리해주었을 때, 이 세포에선 칼슘 이온과 cAMP(사이클릭 AMP: 고리 모양의 아데노신 일인산으로 대표적인 세포내 신호전달 물질)의 농도가 변화한다는 것을 관찰하였습니다. 칼슘 이온과 cAMP는 일반적으로 신경세포의 활성을 변화시키는 기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특정 단백질을 다른 동물 몸에서 발현시키는 실험을 이종숙주 발현(heterologous expression)이라 합니다.)


네마토신 유전자는 선충의 성특이적 신경세포들(PDC, CP)과 특정한 감각신경세포(AFD, DVA)에서 발현됩니다(그림2). 이렇듯 네마토신 유전자가 여러 세포에서 발현하는 상황에서는, 네마토신을 발현하는 세포 전부가 짝짓기 행동의 조절에 관여한다고 결론내릴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선충의 성특이적 신경세포만 짝짓기에 관여할 수 있고, 특정 신경세포(AFD 혹은 DVA)만 이에 관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생물학자들의 대처법은 지극히 상식적입니다. 살펴보려는 유전자의 기능을 일부 세포에서만 망가뜨리거나 혹은 일부에서만 다르게 고쳐보는 식이죠. 앞에서도 잠시 얘기했지만, 마찬가지로 그렇게 한 뒤에 나타나는 생물학적 변화를 살펴서, 유전자 기능이 정상일 때와 아닐 때의 차이를 바탕으로 유전자의 기능이 무엇인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특정 세포에서만 네마토신이 회복되게 하는 실험을 수행하여, 연구자들은 DVA 신경이 남성 선충의 짝짓기 행동에 핵심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성특이적인 신경세포가 아닌 감각신경세포인 DVA에서 분비되는 네마토신이 어떻게 수첫 특이적인 짝짓기 행동을 조절할 수 있을까요? 연구자들의 설명은 리간드인 네마토신은 DVA에서 분비되지만 이에 대한 수용체가 수컷 특이적 신경세포에서 작동할 거란 예상이었습니다. (예상만 하고 실험은 안 했는데, 논문의 리뷰어들한테는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것 같네요).


00elegance_Love4.jpg 이 논문의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는 ‘선충의 옥시토신’인 네마토신이 짝짓기의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선충에서는 네마토신이 번식 행위의 부산물로서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두 번째로는 특정한 감각신경세포(DVA)에서 분비되는 네마토신만이 수컷 선충의 짝짓기 행동에 관여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DVA 외의 다른 장소에서 발현하는 네마토신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요? 이 논문의 연구자들이 조사했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에 관여할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논문과 함께 발표된 릴레인 스쿠프스(Liliane Schoofs) 연구팀의 논문에서 네마토신은 선충의 학습 행동에서도 중요함이 밝혀졌습니다(Beets, Isabel, et al., 2012). 그리고 네마토신이 학습에 관여할 때는 또 다른 신경세포(AVK)에서 분비되어 작용한다고 합니다. 이는 신경회로에서 네마토신의 기능이 생각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당연히 사람의 옥시토신은 선충의 경우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경로로 작동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옥시토신의 다양한 기능을 이해하려면 옥시토신과 수용체들이 신경회로 내의 어떤 장소에서, 언제 발현되는지에 대한 맥락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큐피드 화살은 누가 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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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에 쓰인 ‘사랑에 빠진 선충’이란 표현은 비유입니다. 특정 행동을 수행하게 하는 신경회로에 미세한 신경 조절 장치가 있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이런 연구 방향은 현대 과학이 마음을 연구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에 대해서도 그 감정의 물질적인 기반을 조금씩 밝혀내어 제시하고 있으니 말이죠. 신경과학자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밝히고, 진화생물학자 우리가 왜 사랑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연구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얘기하면, 저는 사랑이란 감정에는 물질적 기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사랑에 빠진 뇌에서 어떤 영역이 활성화한다거나 어떤 호르몬이 작용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사람들이 사랑 그 자체에 대해 품는 질문이나 걱정에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있게 될까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는 쉽게 관찰할 수 있어도, 그 바람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소설이나 영화들이 사랑에 대해 제기하는 낭만적인 물음은, 갈대가 아니라 바람이 어떻게 불어오고 잦아드는지에 대한 탐구에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선충의 짝짓기 행동과 네마토신에 관한 이번 연구에서도 상황은 크게 나아진 것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DVA라는 감각신경세포가 짝짓기 행동을 담당하는 상위의 감각신경세포로서 네마토신을 배출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번 연구는 이제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네마토신 조절 기작이 어떤 상황에서 중요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전혀 답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DVA 감각신경세포은 선충의 302개의 신경세포 중에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세포입니다. 유일하게 잘 알려진 기능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수용성 감각입니다. 이는 일종의 물리적 감각에 해당하는데, 특이한 점은 외부에서 충격이 오는 단순 자극에는 이 DVA 신경이 관여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이 어느 정도 몸을 꺾고 있는지 인지하는 데 관여한다는 것입니다. 몸을 꺾는 감각이 실제로 수컷 선충의 짝짓기 본능을 조절하는 데 어떤 영향이 있는 것인지, 또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DVA의 기능이 짝짓기 본능의 상위 신호를 주는 것인지. 선충을 사랑에 빠뜨린 큐피트 화살의 정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더욱 재미있어질 것 같습니다. (☞ 자기수용성 감각: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인지하는 감각. 선충에서 DVA 감각세포의 주요 기능 중 하나)



진화라는 마법사가 만드는 사랑의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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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진화의 역사에서 생명체들이 단순히 DNA뿐 아니라,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 기작들도 일부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오래 전에 우리와 예쁜꼬마선충의 공통 조상에서는 단순한 기본 원리이었던 것들이, 이렇게나 복잡하고 서로 다른 양상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진화라는 생명체의 역사에서 새삼 경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알아내는 레시피들이 극히 일부일지라도, 1 mm의 벌레를 이용해 생명체의 복잡한 원리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은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겐 진화의 산물만큼 경이로운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찌 보면 결국 우리 몸 속에서 일어나는 신경계의 변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환경은 우리가 의도치 않은 우연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지만 단지 우연이었던 일들을 결국 운명으로 바꾸고, 이를 개인의 삶에서 증명해 가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2013년 따뜻한 계절을 맞이하는 이 땅에서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행복하시길 빕니다.



함께 참고한 문헌


  • Beets, Isabel, et al. “Vasopressin/oxytocin-related signaling regulates gustatory associative learning in C. elegans.” Science 338.6106 (2012): 543-5.
  • Emmons, Scott W. “The Mood of a Worm.” Science 338.6106 (2012): 475.
  • Fisher, Helen E., Arthur Aron, and Lucy L. Brown. “Romantic love: a mammalian brain system for mate choice.”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 361.1476 (2006): 2173-2186. 
  • Bartels, Andreas, and Semir Zeki. “The neural correlates of maternal and romantic love.” Neuroimage 21.3 (2004): 1155-1166. 
  • Grewen, Karen M., et al. “Effects of partner support on resting oxytocin, cortisol, norepinephrine, and blood pressure before and after warm partner contact.” Psychosomatic medicine 67.4 (2005): 531-538.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2002. 청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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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연구실, 박사과정
선생님과 동료들 덕분에, 과학을 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초짜 과학도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오직 저 한 사람 재밌고 행복한 일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과학이 단지 편리한 세상만이 아닌,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보 전진이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이메일 : mgm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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