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

생물학 연구의 모델동물인 ‘예쁜꼬마선충(별칭 엘레강스)’을 연구하는 다섯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발생과 진화를 비롯해 생물학의 굵직한 주제를 담은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실험실 안과 밖의 진지하고 유쾌한 소통을 시작한다.

‘미토콘드리아의 의문사’ 용의자와 범행 동기는?

[1] 모계 유전과 부계 미토콘드리아 제거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이뤄지면 어머니 미토콘드리아만 유전되고 아버지 미토콘드리아는 실종한다. 아버지 미토콘드리아는 어디로 간 거지?


00Mito.jpg » 포유류의 허파 세포에서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미토콘드리아의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 http://remf.dartmouth.edu/images/mammalianLungTEM/source/8.html

[이번 글의 주제 논문]


Miuki Sato and Ken Sato, “Degradation of Paternal Mitochondria by Fertilization-Triggered Autophagy in C. elegans Embryos,” Science Vol. 334 no. 6059 pp. 1141-1144 (25 Nov. 2011). ("수정에 의해 유발되는 자가포식 작용이 예쁜꼬마선충 배아에서 부계 미토콘드리아를 제거한다")


Sara Al Rawi et al., “Postfertilization Autophagy of Sperm Organelles Prevents Paternal Mitochondrial DNA Transmission,” Science Vol. 334 no. 6059 pp. 1144-1147 (25 Nov. 2011). ("수정 후 자가포식 작용에 의한 정자 세포소기관 제거가 부계 미토콘드리아 DNA 전달을 막는다")


“좀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더 쉽게 논문을 낼 수 있었을 텐데.”

아마 이런 생각을 해본 연구자가 저만은 아닐 겁니다. 한 20년 전만 하더라도 연구자들은 유전자 클로닝(cloning, 유전자 DNA를 추출해 복제 가능한 운반체에 담는 기법)만으로도 좋은 논문을 내곤 했으니까요. 생명과학과 관련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연구자들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제는 유전자는커녕 유전체(게놈, genome) 전체를 분석해도 저명 학술지에 투고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매일 수 없이 쏟아지는 논문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무슨 연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중요한 연구 혹은 가능한 연구는 이미 완료됐거나 다른 실험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이를테면, 오늘날 과학이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른 것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그러다가도 어떤 논문들을 만나면 현대 생물학이 한 줌 설탕으로 만들어진 ‘솜사탕’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한 생명 현상이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혀 당연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마취는 천 년 가까이 된 처치이지만, 사실 마취제가 어떻게 신경계를 마취시키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큰 수술에 으레 따르는 마취에 대해 우리가 이토록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저는 어떤 ‘낯섦’을 느낍니다.


좋은 논문의 조건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독자로 하여금 당연히 여기던 생명 현상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문학 작품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세계를 ‘낯설게 하기’를 통해 곰곰이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번에 소개할 논문을 읽었을 때 바로 그 느낌, 한순간에 현대 생물학이 솜사탕으로 변하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습니다. 이런 논문을 읽으면 개인적으로 퍽 질투가 나는 것 같습니다. 자연을 조금만 더 낯설게 바라봤다면 얼마든 저도 할 수 있는 연구이니까요.



미토콘드리아 이브


모계 유전은 매우 오래 전부터 알려진 유전 현상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에게 각각 하나씩 유전자 사본을 전달한다는 ‘멘델(Gregor Mendel: 1822-1884)의 분리의 법칙’을 위반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1900년 멘델의 이론을 드 브리스(Hugo de Vries: 1848-1935), 체르마크(Erich von Tschermak: 1871-1962)와 함께 동시에 재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코렌스(Carl Correns: 1864-1933)가 그 옛날에 분꽃에서 잎 색깔이 오직 어미의 형질만을 따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현상은 ‘세포질 유전’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세포핵의 디엔에이(DNA)에 의한 유전 현상이 아니라 세포질의 엽록체나 미토콘드리아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 공생자로 불립니다. 먼 옛날 세포 안으로 들어와 공생하게 된 어떤 세균의 후예라고 추측되기 때문이죠. 이들은 여전히 그 세균한테서 물려받은 DNA를 가지고 있고, 독립적으로 복제를 할 수 있습니다. 식물에서 발견되는 엽록체는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합성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또 거의 모든 진핵생물에서 발견되는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세포가 하지 못하던 산소 호흡을 수행합니다. 이 산소 호흡을 통해 세포는 같은 영양분으로도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계 유전은 이러한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가 부모 모두가 아니라 어머니 한쪽에서만 자손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드라마의 제왕>에서 주인공 김명민이 진단받은 ‘레버씨 시신경 위축증(Leber Hereditary Optic Neuropathy)’이라는 희귀병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대표적인 모계 유전 질환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병의 유전 여부는 아버지와는 상관없이 어머니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정상인지 여부에 의해서만 결정됩니다.


토콘드리아의 모계 유전 현상은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도 불리는 연구 프로젝트는 전 세계 사람들의 미토콘드리아 DNA 정보를 수집해 인류의 모계 족보를 분석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오늘날 모든 인류가 아프리카에 살던 한 명의 ‘이브’에게서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 연구 결과로 인류의 기원을 두고 다지역 진화론과 대립하던 아프리카 단일기원설이 큰 설득력을 얻게 되기도 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핵 DNA와 달리 염색체 재조합 과정 없이 안정적으로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연구였습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오직 모계를 통해서만 전달된다는 전제, 이 전제는 당연한 것일까요. 제가 모계 유전에 대해 알게 된 게 10년 정도 되었는데, 저는 이 전제에 대해 한 번도 ‘낯설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 11월 <사이언스>에 발표된 두 편의 논문을 보고 그 전제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 전제를 의심해 본적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말이죠. 왜 나는 나의 아버지로부터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지 않았는지 한 번도 질문해보지 않았을까요.(질문한 적 없는 제 자신을 당혹케 한 논문 두 편은 이 글의 맨 위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미토콘드리아의 실종


엄밀히 말해 어머니한테서 전달 받는다는 뜻의 모계 유전은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와이(Y) 염색체를 제외한 다른 염색체들도 미토콘드리아와 마찬가지로 어머니한테서 자손으로 전달되는 모계 유전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현상의 본질은 어머니 미토콘드리아의 전달이 아니라 아버지 미토콘드리아의 미-전달(전달되지 않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포질 유전이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난자와 정자가 결합하는 수정의 순간에 난자와 정자의 세포질이 합쳐집니다. 이 때, 정자의 핵뿐 아니라 세포질과 그 안의 미토콘드리아도 함께 수정란을 형성하게 됩니다. 즉, 아버지의 세포질도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아버지의 미토콘드리아는 수정 당시엔 존재했으나 언제 어디선가 실종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실종의 원인으론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하나는 ‘희석’입니다. 수정란의 전체 미토콘드리아 중에서 정자에서 유래한 미토콘드리아는 0.1%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세포분열을 거듭하다보면 잃어버리거나 점차 희석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거’입니다. 수동적인 과정인 희석과 달리 수정란 혹은 배아 시기에 부계 미토콘드리아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기작이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종이 보고된 이후 수 십 년 동안 아버지 미토콘드리아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밝혀낸 연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2011년, 예쁜꼬마선충의 연구 결과가 긴 공백을 깨고 부계 미토콘드리아의 사인(死因)을 발표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그 긴 공백을 깬 연구팀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는 점입니다. 마치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두 연구팀이 동시에 실종자와 피의자를 추적했고, <사이언스>의 같은 호에 논문을 백투백(back-to-back)으로 나란히 게재하였습니다. 저한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두 팀이 모두 예쁜꼬마선충을 모델로 부계 미토콘드리아의 실종을 연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정확히 두 연구팀이 어떤 계기로 백투백 논문을 발표하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를 통해 과학철학자들의 관심 주제 중 하나인 ‘과학의 동시발견’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신기한 상황을 바라보는 저의 기분은 복잡미묘합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 하는 묘한 동질감이 드는 동시에 ‘내가 하는 생각을 누군가 하고 있겠지’ 하는 불안감도 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논리 구조에 큰 차이가 없고, 정보화로 인해 대부분 갖고 있는 정보도 비슷하기 때문에 동시발견의 압력은 예전보다 훨씬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운이 좋아 백투백으로 논문이 발표됐지, 만약 한 팀이 먼저 논문을 발표했다면 나머지 한 팀은 분명 ‘죽을 쒀야’ 했을 겁니다.



‘추적기’ 형광 분자 달기


두 연구팀이 수행한 실험은 거의 유사합니다. 논문의 결론뿐 아니라 논리 전개도 매우 흡사합니다. 이들은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한 여러 유전학적 실험을 통해 부계 미토콘드리아가 단순히 ‘실종’된 것이 아니라 ‘살해’된 것임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두 편의 논문 중에서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깔끔한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는 켄 사토 연구팀의 논문을 좀 더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실종자를 추적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작업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아마 ‘추적기’를 부착하는 작업일 것입니다. 지리산 반달곰에 지피에스(GPS) 추적기를 달아 서식지를 추적하듯, 부계 미토콘드리아에만 선택적으로 어떤 표시를 달아둘 수 있다면 그 행방을 조사하는 데 직접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연구팀은 미토콘드리아를 추적하기 위해 이른바 ‘미토추적자(MitoTraker)’라는 염색약을 추적기로 사용했습니다. 이 염색약은 세포소기관으로서 세포 내에서 산소 호흡을 수행하는 미토콘드리아의 특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형광을 내지 않는 염색약 분자가 미토콘드리아로 들어가 산화하면 형광을 내게 됩니다.


토추적자를 이용한 구체적인 실험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예쁜꼬마선충의 독특한 성별 체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은 성 염색체가 한 쌍(XX)일 때 난자와 정자를 한 몸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자웅동체가 되고, 성 염색체가 하나(XO)이면 정자만 만들어낼 수 있는 수컷이 됩니다. 자연적으로 암컷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자웅동체만이 자손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자웅동체의 난소에서 생성된 난자는 자신의 정소(spermatheca)를 지나면서 수정이 되거나, 수컷이 교미를 통해 주입한 정자에 의해 수정이 됩니다. 이 때 수정되는 정자는 포유류의 정자와는 다소 다르게 생겼습니다. 올챙이 모양의 포유류 정자와 달리 예쁜꼬마선충의 정자는 아메바 형태로 유사다리(위족, pseudopod)을 이용해 움직임을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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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부계 미토콘드리아만을 선택적으로 추적하기 위해서 자웅동체의 자가교배가 아닌 자웅동체와 수컷 간의 타가교배를 관찰하였습니다.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만을 선택적으로 염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컷을 미토추적자로 염색하면 몸 전체 미토콘드리아가 다 염색된다 하더라도, 어차피 정자만이 자웅동체로 전달되기 때문에 부계 미토콘드리아만을 선택적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관찰 결과 예쁜꼬마선충에서도 포유류와 유사하게 8-16세포기 때 부계 미토콘드리아가 사라진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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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면 수정 지점에 밝게 빛나는 붉은 점들이 배 발생이 진행될수록 점점 퍼지면서 신호가 약해지는 것이 관찰됩니다. 과연 부계 미토콘드리아들은 제거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희박해지는 것일까요. 만약 제거되는 것이라면, 어떤 방법을 통해 제거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만약 그 과정을 억제한다면 부계 미토콘드리아의 유실을 막을 수 있을까요?



미토콘드리아 삼킨 자가포식 작용


흥미롭게도 두 연구팀은 부계 미토콘드리아를 살해한 용의자로 세포의 ‘자가포식 작용(autophagy)’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자가포식 작용은 말 그대로 세포가 자기 스스로를 먹어치우는 현상입니다. 보통 양분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러한 자가포식 작용이 활성화되는데, 세포는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자신의 세포소기관을 소화해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긴급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제 살 깎아먹기’라고 할 수 있죠. 자가포식 작용이 용의자로 지목된 것은, 세포 내에서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세포소기관이 통째로 없어지는 일은 자가포식 작용을 제외하고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그렇다면 세포는 정말 긴급구호 도구를 이용해 부계 미토콘드리아를 제거하는 것일까요?


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미토콘드리아 혈통을 순수하게 유지하는 암살 무기로도 사용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는 흥미로운 상황입니다. 예쁜꼬마선충은 이 가설을 검토하기에 매우 유용한 모델 생명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예쁜꼬마선충은 투명합니다. 투명하다는 것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뜻이며, 발생이 진행되는 동안 미토추적자의 형광 신호를 계속 관찰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장점은 이 현상에 대한 유전적 분석이 용이하다는 점입니다. 예쁜꼬마선충은 초파리와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유전 연구의 모델동물입니다. 작고 키우기 쉽고 세대도 짧지만, 인간과 거의 40%의 유전자를 공유하며 핵심 유전자들은 아주 잘 보존돼 있습니다. 자가포식 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과 거의 동일한 유전체계가 자가포식 작용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부계 미토콘드리아의 제거와 같은 보편적인 현상은 그 유전 체계가 잘 보존돼 있을 가능성이 몹시 높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아마 예쁜꼬마선충에서 모계 유전 기작에 대한 동시발견이 이뤄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유전적 연구는 기본적으로 돌연변이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습니다. 특정 유전자를 망가뜨리거나 저해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관찰하면 그 유전자의 정상적인 기능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정상적인 상황에서 자가포식 작용을 통해 부계 미토콘드리아가 제거되고 있다면, 자가포식 작용 유전자를 망가뜨려서 이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유전적 연구의 강력함은 이처럼 단순하고 직선적인 논리적 추론과 검증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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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실제로 자가포식 작용에 관련된 다양한 유전자들의 돌연변이를 관찰한 결과입니다. rab-7, unc-51/atg-1, lgg-1/atg-8라는 이름이 붙은 유전자들은 모두 인간에서도 잘 보존돼 있는 자가포식 작용 관련 유전자입니다. 이들 유전자가 망가진 돌연변이체에서 정상 배아(WT)에서는 16세포기만 되어도 사라지는 붉은색 부계 미토콘드리아 신호가 계속해서 남아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알에서 깨어난 유충에서도 붉은 미토추적자 신호가 감지됩니다. 부계 미토콘드리아가 단순히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 자가포식 작용에 의해 능동적으로 제거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마찬가지의 일이 인간에게도 일어날까요? 이미 포유류에서도 수정 직후 자가포식 작용이 활성화된다는 보고는 있었습니다. 켄 사토 팀 논문과 함께 백투백으로 실린 빈센트 갈리 팀의 논문에 이에 관련한 증거가 실려 있습니다. 쥐의 수정 과정에서도 실제로 수정 직후 미토콘드리아 주변에서 자가포식 작용 인자가 관찰된 것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수정 직전(A, B)에서 수정 직후(C, D)로 넘어가면서 초록색으로 표지된 자가포식 작용 인자가 미토콘드리아 주변에서 증가한 것이 확인됩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이자 생물철학자이기도 한 자크 모노(Jacques Lucien Monod: 1910-1976)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계 유전 기작에 대해 “선충에서 진실인 것은 코끼리에서도 진실이다”라고 추측할 가능성이 상당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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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는 표적을 어떻게 선별하나


자가포식 작용의 진행 과정과 관련 유전자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잘 밝혀진 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모계 유전의 비밀을 모두 풀게 된 것일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또 한 번의 ‘낯설게 하기’가 필요합니다. 오히려 이 연구는 더 큰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세포는 부계 미토콘드리아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가?”


우선 ‘어떻게’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져 봅시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부계와 모계 미토콘드리아가 서로 다르게 표지돼 있을 가능성입니다. 만약 부계 미토콘드리아 혹은 모계 미토콘드리아만 특정한 분자적 표지를 갖고 있다면, 자가포식 작용 인자들이 선택적으로 부계 미토콘드리아를 제거하거나 모계 미토콘드리아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가설엔 큰 장벽이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 미토콘드리아는 할머니의 미토콘드리아라는 사실입니다. 즉, 모든 남자의 미토콘드리아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여자 미토콘드리아입니다. 만약 이 가설이 성립하려면, 남자들의 정자는 일일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미토콘드리아에 ‘남자’ 표시를 해두어야 합니다.


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쥐에선 유비퀴틴(ubiquitin)이라고 불리는 분자가 수컷의 미토콘드리아를 표지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가포식 작용이 이 표지를 통해 부계 미토콘드리아를 구별해 내는지에 대해선 아직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한편 이러한 유비퀴틴에 의한 표지가 모든 동물계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이번 연구는 예쁜꼬마선충에서 정자 미토콘드리아가 유비퀴틴으로 표지돼 있지 않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인자가 부계 미토콘드리아를 보편적으로 표지하고 있을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수정란은 다른 기발한 방식으로 부계 미토콘드리아를 구분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굳이 성별이 아니라 어떤 다른 특성을 부계 미토콘드리아만의 표지로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실제로 정자 미토콘드리아는 난자 미토콘드리아와 비교해 형태가 다소 다르며 활성이 떨어져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자 미토콘드리아는 수정 때까지만 필요한 일종의 소모품이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미토콘드리아가 정자가 헤엄치는 동안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품질까지 유지하기는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쉽게 말해 수정 과정에서 미토콘드리아가 팍 삭아버리는 건 아닐까요. 어쩌면 자가포식 작용 기구는 이렇게 삭아버린 부계 미토콘드리아의 ‘노안’을 표지로 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흥미로운 건 수정란이 아닌 일반 세포에서도 비슷한 기작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세포에서 자가포식 작용 기구는 무작위로 미토콘드리아를 제거하지 않고 손상된 미토콘드리아들을 선택적으로 인식해 제거할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하지만 이 때 어떻게 질 나쁜 미토콘드리아들이 구분되는지 알려진 바가 별로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상상으로는 보통 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의 ‘나쁜 질’을 구별해 내는 방식이 부계 미토콘드리아의 ‘노안’을 인식하는 방식과 동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포라는 짠돌이는 될수록 같은 기구를 여러 군데 변용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암살의 생물정치학


사실 제가 더 궁금한 건 ‘왜’ 부계 미토콘드리아를 제거해야 하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역사-정치적 관점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저서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Il faut defendre la societe)에서 ‘전쟁 관계’가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분석 지표가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관계들이 실은 정치적 투쟁의 역사적 결과물이란 뜻이죠. 매일 정쟁을 멈추지 않는 여야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분단과 한국 전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회 현상이 느닷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역사-정치적 기원을 갖고 있다는 이 관점을 수정란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먼저 수정란이라는 작은 사회의 ‘정치적 주체’를 찾아야 합니다. 정치적 주체는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생명체의 근본적인 욕망은 자기복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증식하려는 욕망을 추구하지 않으면 자연에서 도태되기 때문이죠. 이러한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주체는 보통 ‘복제자’라고 불립니다.


우리 세포 안에는 각자의 욕망을 갖고 있는 복제자들이 있습니다. 핵 유전체와 미토콘드리아 유전체입니다. 핵 유전체는 DNA에 담긴 정보로 세포 전체를 통솔해 성장하고 자신을 복제합니다. 미토콘드리아도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유전체 DNA를 갖고 있고 스스로 복제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해관계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핵 유전체는 미토콘드리아로 하여금 세포 전체를 위해 에너지를 생산하도록 요구하지만, 미토콘드리아는 세포를 위한 희생보다는 자기 복제에 힘써야 더 많이 증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세포는 각기 다른 복제자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정치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처음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이 숙주 세포 안에서 기생하기 시작했을 땐 특정 미토콘드리아 집단만을 제거하는 기작 같은 건 없었을 것입니다. 부계 미토콘드리아를 제거하는 기작은 진화의 과정에서 등장한 역사적 결과물인 것이죠. 먼 옛날 세포 안에서 복제자들 간의 전쟁 혹은 권력투쟁이 일어났고 부계 미토콘드리아는 패배의 결과로 수정 직후 암살되는 비참한 운명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떤 전쟁이 왜 벌어졌기에 부계 미토콘드리아는 이런 운명을 갖게 되었을까요? 오래 전인 1981년, 하버드대학 레다 코스미데스와 존 투비는 부계 미토콘드리아의 운명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 바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집단의 미토콘드리아가 한 세포 안에 존재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들 사이에서 과도한 경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많이 증식해야지만 다음 세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미토콘드리아의 증식을 제한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유전체의 크기입니다. 유전체가 크면 클수록 복제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가 늘어나기 때문이죠. 따라서 자기증식에 필수적인 유전자를 제외한 다른 유전자를 버린 미토콘드리아는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증식에 불필요한 유전자란 무엇일까요? 바로 세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생성하는데 필요한 유전자일 겁니다. 세포를 위한 노동을 포기하고 번식에만 골몰하는 이기적 미토콘드리아는 핵 유전체 입장에선 눈엣가시일 겁니다.


이기적인 미토콘드리아가 퍼지는 것을 막는 가장 근원적인 대처법은, 애초에 여러 미토콘드리아 집단이 한 세포 안에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단 경쟁이 발생하게 되면 이기적인 배신자들이 생겨나고 퍼지는 것을 막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레다와 존은 이런 이유로 수정란은 모계 미토콘드리아는 전부 살려두고 부계 미토콘드리아는 모두 제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렇다면 살아남은 모계 미토콘드리아는 마음껏 증식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종에서 핵 유전체에 미토콘드리아 복제 유전자가 있고, 미토콘드리아는 스스로 복제할 능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쁜꼬마선충에서는 오직 36개의 유전자만이 미토콘드리아 유전체에 남아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증식에 필요한 200개가 넘는 유전자들은 거의 전부는 핵 유전체에 들어 있습니다. 또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시작은 우연한 계기로 미토콘드리아 복제 유전자 사본이 핵 유전체로 이동한 사건에서 비롯됐을 것입니다. 미토콘드리아의 입장에선 일단 자기증식 유전자가 핵 유전체에도 존재하면, 이 유전자를 버리고 핵 유전체에서 빌려 쓴 미토콘드리아가 경쟁력이 더 높을 것입니다. 유전체 크기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사건들이 반복된 결과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많은 미토콘드리아들이 자립능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단기적인 경쟁력 강화 효과를 얻는 대신에 자기 존립기반을 통째로 핵 유전체에게 넘겨버린 것입니다.


아마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이 다른 세균 내부에서 공생하게 된 이후 복제자들은 처절한 생존 투쟁을 벌여왔을 것입니다. ‘부계 미토콘드리아의 죽음’은 그 역사-정치적 결과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모계 미토콘드리아의 삶도 그리 행복해 보이진 않습니다. 자기 욕망 추구에 필요한 모든 유전자는 핵에게 넘겨준 채 전체 세포를 위해 끝없이 노동하고 있으니까요. ‘모든 것이 정치다’라는 시인 심보르스카의 선언은 어쩌면 세포에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함께 참조한 문헌]

 

[1] Zarkower D. Somatic sex determination. WormBook. 2006 Feb 10:1-12.

[2] Al Rawi S, Louvet-Vallée S, Djeddi A, Sachse M, Culetto E, Hajjar C, Boyd L, Legouis R, Galy V. Postfertilization autophagy of sperm organelles prevents paternal mitochondrial DNA transmission. Science. 2011 Nov 25;334(6059):1144-7.

[3] Sato M, Sato K.Degradation of paternal mitochondria by fertilization-triggered autophagy in C. elegans embryos. Science. 2011 Nov 25;334(6059):1141-4.


닉 레인 지음. 김정은 옮김. 『미토콘드리아』. 뿌리와이파리. 356-357.

Cann RL, Stoneking M, Wilson AC. Mitochondrial DNA and human evolution. Nature. 1987 Jan 1-7;325(6099):31-6.

Lindahl KF. Mitochondrial inheritance in mice. Trends Genet. 1985. 1:135?139.

Gyllensten U, Wharton D, Josefsson A, Wilson AC. Paternal inheritance of mitochondrial DNA in mice. Nature. 1991 Jul 18;352(6332):255-7.

May AI, Devenish RJ, Prescott M. The many faces of mitochondrial autophagy: making sense of contrasting observations in recent research. Int J Cell Biol. 2012;2012:431684

Sato M, Sato K. Maternal inheritance of mitochondrial DNA: degradation of paternal mitochondria by allogeneic organelle autophagy, allophagy. Autophagy. 2012 Mar;8(3):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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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연구실, 박사과정
예쁜꼬마선충이라는 모델 생명체로 행동의 유전적 기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과학자보다는 성찰하는 과학자를 지향합니다. 글을 읽고, 쓰고, 나누는 데서 큰 기쁨을 얻습니다. 말하는 연구자, 글쓰는 과학자를 꿈꿉니다.
이메일 : phman11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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