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

생물학 연구의 모델동물인 ‘예쁜꼬마선충(별칭 엘레강스)’을 연구하는 다섯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발생과 진화를 비롯해 생물학의 굵직한 주제를 담은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실험실 안과 밖의 진지하고 유쾌한 소통을 시작한다.

'논문 읽어주기' 엘레강스 펜클럽의 두드림

연재를 시작하며:: 말하는 연구실, 들어보실래요?


00elegans1.jpg

예쁜꼬마선충(학명 C. elegans, 별칭 엘레강스)을 연구하는 다섯 명의 박사과정생들(서울대학교 유전과발생연구실, 왼쪽부터 최명규, 서범석, 성상현, 이대한, 김천아)이 모여 파이펫 대신 펜을 들었습니다. 저희의 글을 통해 연구실에서 오가는 생각과 고민들이 저희만의 것으로 머물지 않고, 연구실 바깥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고 소통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00dot.jpg



구는 사회적인 활동입니다. 방대하게 얽히고설킨 학문 세계는 동료 연구자들의 도움 없이 헤쳐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연구가 ‘좋은’ 연구가 되기 위해선 동료 연구자들에게 ‘사회적 인정’을 받아야 하기도 합니다. 또 연구에 필요한 사회적·경제적 지원을 받으려면 연구실 바깥의 사회에 연구의 필요성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소통’은 핵심적인 도구이자 매개입니다.


연구실 안 혹은 연구실 간에 이뤄지는 소통에 비해, 연구실과 바깥 사회의 소통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연구자와 일반 대중이 소통할 기회는 많지 않으며, 대부분의 소통은 언론 매체들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언론 매체를 통해 제한적으로 매개되는 소통의 과정에선 연구의 참모습이 유실되기 쉽습니다. 많은 과학 기사에서 연구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은 축소되고, 기대에 가까운 전망이 과학적 성과로 비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 기사들을 보다 보면 암은 금방이라도 정복될 것 같고, 각종 희귀병들도 금방 해결될 것 같은 뉘앙스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우리는 암에 대해 여전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으며, 아주 단순한 진리들, 이를테면 인간은 왜 늙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합니다.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연구자들의 느낌과, 연구를 통해 아주 많은 것들이 밝혀진다는 대중의 이미지 사이의 괴리는 점점 커지는 것만 같습니다.



참을 수 없는 과학의 가벼움

00dot.jpg

"과학적으로 검증됐다”라는 말이 거의 종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입니다. “효능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식품” “과학적으로 검증된 다이어트 방식”과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빈약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근거에 기반을 둔 사례가 많습니다. 이렇게 언론을 통해 부풀려진 과학적 발견들은 상업화를 통해 각종 식품, 의료기구, 관련 서적 등에 끼워 팔리면서 몇 겹의 옷을 더 껴입습니다.


구실 밖으로 나온 과학은 종종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객관성을 점점 상실하고 수많은 논리적 비약과 성급한 일반화로 점철됩니다. 혹시라도 잘못된 전제로 그릇된 결론을 내릴지, 연구 과정의 실수로 왜곡된 연구 결과가 나올지 늘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하는 저희에게 이런 ‘과학의 가벼움’은 퍽 불편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치밀한 논리적 분석과 엄격한 실험 과정을 준수해야 하는 연구실의 과학은 꽤 무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구실 안의 무거운 과학과 바깥의 가벼운 과학, 그 무게의 간극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저는 이 거리감이 소통의 부족이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실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연구 결과가 학문적으로 어떤 지점을 확보하고 있는지, 연구 성과는 어떤 전망을 가져다주는지를 실체적으로 알려주는 소통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또 외부인들이 특정 연구결과에 대해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고 질문은 던지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이런 단절에는 충분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현대 과학은 고도로 전문화되어있습니다. 이웃 연구실의 연구 결과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한데, 비전문가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기자들도 쏟아져 나오는 연구결과들을 한정된 지면 위에서 심층적으로 다루기 어려울 것이고, 대중들도 복잡하고 머리 아픈 과학 기사를 읽기 버거울 것입니다. 이런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연구실 밖으로 나간 과학은 한없이 가벼워져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00elegans2.jpg » 예쁜꼬마선충은 생물학 연구에서 대표적인 실험용 모델동물 중 하나이다. 사진은 선충의 신경을 형광단백질로 관찰한 것이다.



과학도 통역이 되나요

00dot.jpg

소통의 핵심은 언어입니다. 연구실 안팎의 불통은 결국 ‘언어의 문제’입니다.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일반인들에게 외국어 혹은 외계어에 가까울 것입니다. (실제로 연구실에서 사용되는 많은 어휘가 외국어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통은 곧 통역이기도 합니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소통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통역은 양쪽 언어를 잘 아는 사람이 해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비전문가보다는 연구자가 해당 연구 분야에 대해 더 잘 통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구실 안팎의 소통이 부족해 보인 것은 아마 통역의 시도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바쁜 연구 활동 와중에 글을 쓰거나 대중 강연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회적·제도적 환경이 소통에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연구 성과를 내는데 집중하도록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런 만만치 않은 조건 속에서도 여기 통역자를 자처한 다섯 사람이 모였습니다. 저희는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작은 벌레를 연구하는 연구실에서 수년간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는 대학원생이자 연구원입니다. 사실 저희가 과학에 대한 전문 통역가가 되려는 거창한 의도를 갖고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아직 학생이고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연구실 안에서 오가는 고민과 이야기들을 글쓰기를 통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요.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르고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다르겠지만, 저희가 함께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소통에의 열망’ 때문입니다. 그 열망은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깊은 밤, 술집에 모인 다섯 남자들이 수다스럽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연구 이야기, 연애 이야기, 가족 이야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도, 해결되는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돈과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에 응답한다는 것은 즐겁고 따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의 통역은 곧 낭독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저희 스스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어설픈 통역이라도 진심이 담긴 이 낭독이 누군가에겐 들을만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연구현장의 저널미팅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00dot.jpg

00elegans3.jpg » 현미경으로 선충을 관찰하고 있는 모습. 낭독(朗讀)은 소리 내어 글을 읽는다는 뜻입니다. 저희가 읽어드리고자 하는 글은 바로 ‘논문’입니다. 논문은 과학 연구의 요체이자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의 논문은 논리적 완결성을 갖춘 결과물인 동시에 연구와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학문 발전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과학이라는 지식체계는 논문이라는 수많은 벽돌로 쌓아올려 진 거대한 건축물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논문은 벽돌처럼 딱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저희는 암호 같은 언어로 가득 찬 논문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친절하게 번역해 들려드리려 합니다.


루에도 수없이 많은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에 관한 과학 기사들이 보도됩니다. 연구실에선 어떤 논문이 정말 믿을만하고, 재미있고, 중요한지 분간하는 작업이 정기적으로 이뤄집니다. 대부분의 연구실에서 저널 미팅, 저널 클럽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논문 토의 모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모임은 주로 최신 논문을 중심으로 한 편 혹은 그 이상의 논문을 선정하여 발표자가 발표하고 다른 연구원들이 함께 논의를 펼치는 자리입니다.


특히 저희 연구실은 통일된 주제를 함께 연구하기보다는 각자 혹은 소규모 팀이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를테면 실험실 내에서도 서로의 주제에 대해 전문가/비전문가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저널미팅을 할 때 각자 관심분야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 경우, 다른 구성원들이 이 분야를 잘 모른다는 것을 가정하고 연구배경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논문이 던지는 생물학적인 질문이 무엇인지, 그 질문을 어떻게 풀어가는지, 이 질문을 푸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바로 저널 미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희는 이 저널 미팅을 새로운 소통의 창구로 삼고자 합니다. 연구실에서 이뤄지는 저널 미팅보다 더 친절하게, 더 흥미진진하게 꾸려볼 생각입니다. 동시에 실제 연구실에서 이뤄지는 논의들과 연구원들의 생생한 고민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해당 연구나 주제에 대한 저희들의 고민의 깊이가 담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논문을 열심히 읽고, 잘 번역해서, 즐겁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한번 들어보실래요? 

[글쓴이/ 엘레강스 펜클럽]




엘레강스 펜클럽의 논문 읽어주기는 다음주부터 격주로 연재합니다. 실험실 안과 밖의 소통을 바라는 다섯 명의 박사과정생은 이 기획 연재를 위해 오랜 동안 준비해왔습니다. 첫 번째 글의 가제목은 "어느 미토콘드리아의 죽음"입니다. 발생과 유전, 진화에 관한 최신 연구 동향을 접할 수 있는 이 기획 연재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사이언스온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최근기사 목록

  • 굶주리면 춤추는 꼬마선충의 비밀굶주리면 춤추는 꼬마선충의 비밀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이대한 | 2014. 12. 22

    다우어 유충의 춤사위, '닉테이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동화에서 애벌레들은 서로를 타고 넘으며 거대한 탑을 만들어 냅니다. 애벌레들은 탑 꼭대기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처절하게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죠. 실제로 야생에...

  • 잠자는 1mm 꼬마선충, '꿈'이라도 꾸는 걸까?잠자는 1mm 꼬마선충, '꿈'이라도 꾸는 걸까?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최명규 | 2014. 10. 06

    잠의 생물학잠을 자는 동안 신경들이 제각기 활성화하는 것을 보면, 이 현상은 예쁜꼬마선충에게 일종의 꿈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꿈은 프로이트 이후에 무의식과 욕망의 발현이라고 여겨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

  • 마음의 작동을 보는 '신경망 시각화 기법' 어디까지마음의 작동을 보는 '신경망 시각화 기법' 어디까지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이대한 | 2014. 09. 15

    '신경세포와 그 작동을 보다'칼슘은 우리 몸에서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기본 원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칼슘의 중요한 쓰임새는 그뿐이 아닙니다. 칼슘은 신경망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매개 물질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

  • 바이러스와 인간, 경쟁과 공존의 경계에서 만나다바이러스와 인간, 경쟁과 공존의 경계에서 만나다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성상현 | 2014. 08. 12

    인간유전체 속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의 비밀생명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인간은 바이러스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공격받고 있습니다. 인간은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단순한 질병학을 넘어 바이러스와 인간 사이에 벌...

  • '길들여짐'의 슬픈 유전학'길들여짐'의 슬픈 유전학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최명규 | 2014. 07. 07

    '실험실의 모델동물'사실 작물 재배나 목축을 통해 사람이 다른 생물의 유전체에 인위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목축업자가 아닌, 생물학자들도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실험실에서도 비슷한 종류...

자유게시판 너른마당

인기글

최근댓글

트위터 팔로우

sub2 untit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