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연구성공의 절반' 좋은 천문관측 데이터를 찾아서

홍주은의 ‘천문학 연구생의 동서남북'


[1] 우즈베키스탄에서 시작한 나의 천문학 연구

00astronmy2.jpg » 우즈베키스탄의 마이다낙 관측소. 꼭대기에 1.5 미터 망원경이 있다. 사진/ 홍주은


음 만난 사람과 형식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주로 “전공이 뭐에요?” 또는 “무슨 과세요?”라는 질문을 듣는다. “천문학과에요”라고 답하면 가끔은 ‘어쩌다 그런…’, ‘왜 하필…?’ 하고 물을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엔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루하고도 긴 이야기를 해볼까 하다가도 대충 얼버무리며 짧막하게 답하곤 한다. 고교 시절의 지구과학 수업 시간에 떨림이 있었고 조금씩 배워갈수록 우주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주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은 존재인 것만 같았고,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로 여행을 가듯이 지구를 떠나 다른 은하에서 더 광활한 우주를 만나보고 싶었다.


이렇게 처음 천문학에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지극히 감성적이고 이상적인 태도에서 시작했다. 정작 이 학문에서는 어떤 것을 어떻게 이용해 어떤 것을 연구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러했듯이 천문학(비단 천문학만이 아니겠지만)이 실제로 어떤 학문인지, 어떻게 연구하는지를 천문학 밖의 사람들이 생생하게 접할 기회는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나는 천문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왔지만 석사과정을 돌이켜보면 내가 이룩한 것은 별로 없었다. 다만 나는 그 과정을 거치며 천문학은 무엇을 어떻게 연구하는 학문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혹시라도 천문학과에서는 실제로 어떤 연구 활동이 이뤄지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지난 3년 동안 배우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이 연재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인디아나 존스'와 천문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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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주말의 명화’에서 방영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고고학은 참 재밌는 학문이겠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연구하는 분야인 천문학에서는 아주 오래 전에 천체에서 출발한 빛을 단서로 천체의 나이가 얼마인지, 그 천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등을 연구한다. 그러고 보면 탄소연대측정법을 통해 유물의 연대를 추정하고 그 유물을 분석해 당시의 문화를 추적하는 고고학은 천문학과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재미있게 느껴진 것은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는 ‘실험’이라는 것을 행하지만, 천문학은 우주를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관측’을 하고 천체의 이미지 또는 분광 스펙트럼을 분석해 연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디아나 존스가 세계 각지의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듯이, 관측 천문학자들은 여러 관측소를 다니며 조금이라도 질 좋고 풍부한 관측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시작이 반이듯, 좋은 데이터를 얻었다면 연구의 절반은 성공했다고 할 정도로 관측 자료는 더없이 중요하다. 이런 관측 자료의 질은, 같은 동안에 관측을 한다면 망원경의 크기와 직결되기 때문에 미국·일본·유럽 등 여러 나라 천문학자들은 우주를 관측하기에 좋은 장소인 하와이, 칠레 등에 지름 10 미터급 대형 망원경들을 줄줄이 세워 놓았다. 우리나라 땅에 있는 가장 큰 망원경은 지름 1.8 미터짜리 보현산 망원경이다.


이름도 ‘갤럭시’인 스마트폰이 아이폰과 대등한 정도로 경쟁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진짜 ‘갤럭시’인 은하를 찍기에는 열악한 국내 관측 시설이 국가의 경제 수준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지금은 25 미터급 거대 마젤란 망원경(Giant Magellan Telescope, GMT) 사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몇 년 뒤이면 관측 연구시설이 훨씬 좋아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할 수 있는' 연구 주제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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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 시설의 사정이 좋지 않으면 관측 데이터에도 제약이 뒤따르기 때문에, 우리는 하고 싶은 연구나 필요한 연구보다는 ‘할 수 있는 연구’를 더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세계에 무료로 공개되는 관측 자료도 많기 때문에 그런 자료를 이용해 여러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고 또 충분히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공개 자료에만 의지해서는 자기가 애초에 하고 싶었던 연구를 할 수 없을 때도 생기고 세계 천문학자들과의 경쟁으로 인한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천문학 연구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아이디어를 실제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현재 여건에서는 수행할 수 없다면 그건 좋은 연구가 아닌 그저 좋은 아이디어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에 처음 들어와 석사과정 연구 주제를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연히 나는 소형 망원경으로도 오래 관측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연구 주제는 지금까지 나와 인연을 맺고 있다.


망원경의 크기만큼 중요한 것은 관측하는 날의 날씨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비나 눈이 오거나 흐린 날이 많고, 대기에 수증기가 많다. 대기에 수증기가 많으면 빛이 굴절해 천체의 상이 퍼지게 되어 좋은 자료를 얻을 수 없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망원경은 보현산에 있는 망원경보다 더 작지만 내가 우즈베키스탄까지 날아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기후는 건조하고 수증기가 거의 없으며 날씨가 맑은 날이 많아 옛소련 시절에 이곳에 천문관측소가 지어졌다.



험난했던 관측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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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도 고생은 사서 해야 한다. 고생스러웠던 지지난해 여름의 기억은 나에게 아직도 생생하다. 2011년 8월, 비행기를 탄 지 약 7시간째, 우즈베키스탄 수도인 타슈켄트에 잠시 뒤 도착한다는 여객기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현재 기온은 섭씨 43도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비행기에서 첫 발걸음을 떼자마자 현재 기온을 곧바로 실감할 수 있었고 건식 사우나 같은 더위에 숨이 턱 막혔다.

00astronmy3.jpg » 관측 일정을 마치고 마이다낙 관측소를 떠나기 전에 우즈베키스탄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런 더위를 안고 다음날 새벽 5시, 관측소를 향해 출발했다. 점심쯤 되니 도로는 탈 듯이 달아올라 있고 ‘지옥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날 최고 기온은 섭씨 50도였다고 한다. 연료 계기판이 고장난 자동차에서 힐끔힐끔 보이는 속도계의 바늘은 시속 150 킬로미터. 사막 기후인 듯한 도시를 지날 때에는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안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모랫바람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물티슈로 얼굴을 가리고 겨우 숨을 쉬면 몇 분도 안 돼 물티슈가 바짝 말라버렸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천문대장님이 차를 멈춰 세우고는 자동차 엔진에 물을 붓기 시작했다. 아마도 엔진이 너무 뜨거워 냉각수가 금방 마르는 모양이었다. 차를 세우고 냉각수를 채우는 작업을 10번 정도 반복하니, 해발 약 2600미터의 마이다낙관측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고생을 왜 사서 하는지’라고 12시간 동안 마음속으로 되뇌였으면서도 높은 산에서 느낄 수 있는 선선한 공기와 멀리서 보이는 산맥을 보며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연구하려면 고생은 사서해야지!’ 하며 다시 생각을 고쳐먹는다.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끝에 도달했을 때, 그 끝은 새로운 연구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고 나는 무사히 도착했다는 다행스러운 감정과 연구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관측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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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1.5 미터짜리 망원경이 있는 관측소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빛을 저장하는 장치인 시시디(CCD) 카메라를 냉각시켜 놓는다. 시시디(Charge-Coupled Device: 전하결합소자)는 광전 효과를 이용해 빛을 전하로 바꿔주는 장치로, 이 장치에 저장된 천체의 상은 2차원 이미지로 볼 수 있다. 디지털 카메라에도 시시디가 들어 있다. 관측 망원경에서는 천체에서 오는 빛 이외에 다른 잡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약 -100도 상태로 유지하고 온도와 압력이 안정화할 때까지 1시간 정도 지켜본다.


대형 망원경은 자동화가 잘 되어 원격으로도 관측을 수행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직접 관측을 하러 가더라도 전문 엔지니어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것의 망원경과 돔을 방문 연구자가 직접 수동으로 조작하지 않는 곳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관측소의 돔을 열고 닫고, 손맛이 필요한 수동 버튼으로 망원경이 천체를 향하도록 직접 조정하며, 이미지를 찍어보고 초점을 다시 맞추면서 관측을 본격 시작한다.


결국 관측이란 것이 돔을 열고서, 망원경과 돔, 컴퓨터를 수동으로 조작하는 게 전부인 셈이다. 하지만 관측 자체를 수행하는 일보다 구름의 위치, 바람의 방향, 천체의 위치, 다음번 관측 가능성 등의 관측 상황을 고려하면서 우선 순위를 미리 정해둔 관측 대상을 중심으로 다음 관측 대상을 실시간으로 그때그때 찾아가는 일이 진정한 의미의 관측이라 할 수 있다.

 

수동 관측은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연구자가 지금 자신이 실제 관측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생생한 실감을 주기 때문에 재미와 희열을 함께 느끼게 해준다. 굳이 힘들었던 점을 꼽으라면 음식과 화장실, 식수, 언어 때문에 조금 고생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것도 몸이 힘든 것이지 마음이 괴롭다는 뜻은 아니었다. 마음이 가장 힘들 때는 관측을 하러 가서 관측을 할 수 없을 때이다.   

 

날씨가 흐리고 구름이 많은 날에는 관측소에서 애꿎은 하늘만 원망하며 하염없이 대기 상태에 있어야 했다. 구름이 지나가고 나면 잠시 찍었다가, 다시 구름이 몰려올 때에는 좌절하는 일을 내내 되풀이했다. 더욱 안타까울 때는 전기가 끊기는 정전 상황이었다. 발전소에서 공급하는 전기가 부족하면 관측소에 들어오는 전기를 끊어버린다. 그럴 때에는 관측소에 있는 디젤 발전기가 자동으로 돌아가지만 연료가 부족해 장비가 강제종료되는 최악의 상황만을 막아주거나 음식을 조리하는 데 필요한 정도만 쓸 때가 많다. 얼마 남지 않은 노트북 컴퓨터의 배터리로 겨우 정전이 났다는 상황만 한국에 보고한 채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만을 밤새 기다린 적이 있다.

 

이렇게 장비 문제, 날씨, 정전 등을 겪으면서 관측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속도 많이 상한다. 날씨는 어쩔 수 없다지만 열악한 시설 때문에 관측을 하지 못하는 날이면 너무 답답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일주일 동안 얻은 한 가지 깨달음은 연구가 잘 되고 안 되는 것보다 연구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것….

00astronmy1.jpg » 마이다낙 관측소의 부근에 있는 짓다만 망원경 시설의 모습.



짓다만 관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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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다낙 관측소에는 지름 1.5 미터의 망원경 외에도 다른 망원경들이 있다. 여러 망원경을 구경하고 다니다가 짓다만 관측소가 보였다. 그것도 연이어 두 곳이나. 짓다 말았지만 언뜻 보기에도 완성되었으면 꽤 큰 망원경이었을 것 같았다. 듣자하니 하와이에 있는 쌍둥이 케크(KECK) 망원경을 따라잡기 위해서 옛소련 시절에 야심 차게 준비한 망원경이었다고 한다. 건설이 진행되던 와중에 소련 체제가 붕괴했고 이후에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의 나라 실정으로는 쌍둥이 망원경을 계속 진행할 여력이 없었기에 결국에는 프로젝트가 중단되었고, 그래서 이제는 한때 번영을 구가했던 공룡의 발자국처럼 남아 있다.

 

짓다만 망원경의 흔적을 보면서 국가의 기초과학에 대한 단기적인 지원으로는 제대로 된 연구 한 번 못해보고 멈춰버린 망원경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장기적인 지원 없이는 기초과학의 기본 터전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점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은 많이 편해졌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천문학도 그런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하와이에 있는 망원경을 한국 땅에서 원격 조정해서 관측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힘든 여정 없이도 편리하게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편하게 관측했다면 그 자료는 실제 값어치와는 다르게 내 마음에서는 그리 값비싼 것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힘들게 관측했기에, 그래서 그 자료가 내게는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고, 힘들었던 여정은 열정이란 이름으로 평생의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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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은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활동성 은하핵의 기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천문학도. 퀘이사의 환경, 초거대 블랙홀의 성장과 은하진화에 관심이 많다. 죽기 전에 이집트 피라미드는 꼭 직접 보고 싶다.
이메일 : jueunhong.astro@gmail.com      
블로그 : http://ju-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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