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물질에 다가갔지만, 결정적 증거는 아직 미흡
국제우주정거장 암흑물질신호 검출장치(AMS-02)의 1차 관측결과 발표
반물질(양전자)초과 현상 포착했으나 아직은 다른 원인가능성 배제 못해
» 암흑물질에서 유래한 신호의 검출장치 '에이엠에스-02'(아래 사진 참조)를 탑재하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제공/ AMS-02 실험그룹
'암흑물질은 아직 자신의 꼬리를 다 보여주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고 직접 검출할 수도 없지만 우주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찾아나선 우주 입자신호 검출실험 '에이엠에스(AMS-02)'의 1차 관측결과가 발표됐다. 실험그룹의 보도자료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보도자료, 그리고 해외 매체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18개월 동안의 데이터를 분석한 1차 검출실험의 결과는 대체로 ‘암흑물질 입자의 존재를 보여줄 만한 검출 신호가 수집됐으나, 현재로선 다른 원인에서 나온 신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는 쪽으로 요약할 수 있다
▶ 참조/ "'암흑물질 입자 포착했을까...우주 검출실험 분석결과 곧 발표", 사이언스온)
» 국제우주정거장의 바깥에 설치된 우주 입자 검출장치인 '에이엠에스-02'. 제공/ AMS-02 실험그룹 2011년 국제우주정거장(ISS) 바깥에 설치된 우주 입자신호 검출기 '에이엠에스-02'의 관측실험 책임자인 새뮤얼 팅 교수(Samuel Ting, 미국 매사추세츠공대)는 스위스 제네바 부근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연 발표회에서 ‘그동안 250억 건의 우주 입자 신호를 수집했으며 그 중에 680만 건에 달하는 전자와 양전자(반물질) 신호에서 전자-양전자 비율을 분석해보니 10 기가전자볼트(GeV) 에너지 영역부터 양전자 비율이 계속 증가하는 독특한 현상이 관측됐다고 발표했다 (아래 그래프 참조). 평시보다 많이 관측되는 양전자('양전자 초과')도 40만 건이나 됐다.
이런 결과는 고에너지 양전자가 암흑물질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아직 다른 원인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배제하기에는 충분하지는 않다고 실험그룹 쪽은 밝혔다. 이번 실험결과를 다룬 논문은 물리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 (Physical Review Letters)>에 발표됐다. 이 검출장치가 지난 18개월 동안 모은 양전자 데이터는 지금까지 우주 공간에서 수집된 데이터 규모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양전자는 전자와 질량은 같으나 전기적 성질은 정반대인 '전자의 반물질'로서, 암흑물질 입자들끼리 충돌해 소멸('쌍소멸')할 때에도 생성되기 때문에, 출처를 알 수 없는 고에너지 양전자의 수가 이례적으로 늘어나는 ‘양전자 초과’ 현상이 관측되면 암흑물질의 존재를 보여주는 간접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물리학 이론들은 예측해 왔다.
그러나 이런 양전자가 암흑물질에서 왔음을 입증하려면 여기에는 결정적인 관측 증거가 하나 더 보태져야 한다. 고에너지 영역에서 에너지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많은 양전자가 관측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특정한 에너지 영역을 넘어서면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특징이 포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암흑물질 입자에서 생긴 양전자가 고에너지를 지닌다고 해도, 암흑물질 입자 자체의 질량보다 큰 에너지를 지닐 수는 없기에 그런 에너지 영역 이상에선 관측 수가 급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에서, 이 분야 권위자인 마이클 터너(Michael Turner)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는 “암흑물질 존재를 입증하는 데에는 두 가지 결정적 근거("스모킹 건")가 있는데, 하나는 '양전자의 증가에 뒤이은 급격한 감소'이며 다른 하나는 '양전자가 모든 방향에서 포착돼야 한다는 점"이라며 “이번 데이터는 암흑물질의 존재가 확실성의 부근까지는 도달했음을 보여주지만 양전자의 급격한 감소가 관측돼야 할 (250 기가전자볼트 이상의) 고에너지 영역 데이터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증거의 조각'이 다 맞춰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 에너지 영역별로 다른 전자-양전자 비율의 변화. 가로축은 양전자의 에너지 크기(기가전자볼트 단위)이며, 세로축은 양전자의 수를 전자+양전자의 수로 나눈 전자-양전자 비율을 나타낸다. 10기가전자볼트 지점부터 양전자 비율 값이 계속 상승하는 현상이 관측된다. 이론이 예측하는 암흑물질 존재를 입증하려면 고에너지 영역대에서 양전자 비율이 계속 상승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급격히 감소하는 특성이 관찰되어야 하는데, 250기기전자볼트까지 관측된 데이터만 발표한 이번 관측에서는 그런 급격한 감소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250기기전자볼트를 넘어서는 고에너지 영역에서 그런 감소 현상이 나타날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제공/ AMS-02 실험그룹
과학저널 <네이처>는 에이엠에스가 350 기가전자볼트의 고에너지 영역까지 관측할 수 있는 성능은 갖추었으나, 매우 높은 에너지 영역의 관측 데이터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데다가 지금까지 충분하게 수집되지 않아 이번 발표에선 250 기가전자볼트까지 관측된 데이터만 발표됐다고 보도했다. 관측 결과를 한 장에 압축한 그래프 자료(위)를 보면, 양전자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에너지 영역에서는 점차 줄다가 10 기가전자볼트를 기점으로 에너지가 커질수록 많이 관측되는 패턴을 보여주지만 250 기가전자볼트를 넘어선 데이터는 나타나 있지 않다. 250 기가전자볼트 넘어 어느 영역에선가 양전자 비율이 '정점'을 찍으면서 곧바로 ‘급격한 하락’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확인된다면 암흑물질 존재의 유력한 증거가 되겠지만, 1차 관측 결과에서는 그런 데이터가 확보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암흑물질 존재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에 관해 1차 관측 결과는 낙관도 비관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매체마다 이를 보도하는 태도에도 약간의 차이가 나타났다. <가디언>은 지금까지 관측된 결과 중에서 암흑물질의 존재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증거를 발견했다며 "암흑물질의 강력한 단서"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으며, <네이처>는 암흑물질 증거 발견의 가능성을 기대하면서도 지금 당장의 관측 결과는 양전자 초과의 원인이 암흑물질이 아니라 고에너지를 지닌 천체인 펄사일 가능성도 있음을 들어 "깊어진 암흑물질 수수께끼"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20억 달러의 개발·제작비로 여러 첨단 검출장치를 탑재하면서 12년에 걸쳐 제작된 에이엠에스-02 검출기의 관측 실험에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새뮤얼 팅 교수를 중심으로 미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한국 등 연구자 200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은 경북대, 이화여대에서 1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손동철 경북대 교수는 “에이엠에스는 수명이 20년이나 되기에 이번에 발표된 관측자료의 양은 앞으로 관측될 엄청난 데이터의 8 퍼센트에 불과할 정도여서 앞으로 나올 관측 결과들이 더욱 기대된다"면서 "몇 개월 안에 암흑물질과 관련해 더 정확하게 얘기해줄 수 있는 분석 자료가 발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 AMS가 주목하는 '전자-양전자 비율'이란?
“전자와 양전자의 비율은 현재 입자 및 천체물리의 큰 의문인 우주의 24%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은 어떤 입자들인지에 관한 의문과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추정되는 암흑물질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뉴트랄리노’라는 입자로 예측하고 있다. 이 입자 두개가 쌍소멸하면서 전자와 양전자를 생성하게 되고 이 때문에 특정 에너지의 전자와 양전자의 비율이 변하게 된다. 이 비율을 측정함으로써 뉴트랄리노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양전자는 전자와 질량은 같지만 전기적인 성질이 반대인 입자이다. 양전자는 전자와 전기적인 성질이 반대이기 때문에 강력한 자석을 이용하여 전자와 구분하며, 검출기의 여러 성질에 의해 다른 입자들과 구분된다.” (경북대 보도자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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