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남들은 말렸지만… 스페인어 '생물수업'에 도전하다

스페인대학 교환학생의 전공수업 분투기 ①


00spain1.jpg » 스페인 말라가대학의 생물학 수업. 자유로운 분위기이지만 대체로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 사진/ 김정현 (이하동일)


페인 말라가(Málaga), 한국 사람들에겐 생소한 지중해 해변의 휴양도시다. 이곳에 있는 말라가대학(Universidad de Málaga)도 이공계열 학문과 특별히 인연이 있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지난 2월 4일, 교환학생으로 이곳에 온 뒤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을 되뇌어본다.


“생물을 공부하면서 왜 이곳에 왔어?”

“스페인어를 못하는 데 그 어려운 과학을 들으려구?”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지금의 내가 신기하다. 이공계 수업은 이공계 전공자들한테도 사실 어렵다. 어려운 용어와 골치아픈 수식, 거기에 덧붙는 실험과 실습을 생각해보자. 다른 과목에 비해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어는 고사하고 영어도 아닌, 스페인어라니! 그렇지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공 학점이 모자랐고, 워낙 학점을 많이 지운 덕에 잘못하면 학기를 연장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등록금도 남다르게 비싼데, 부모님 등골을 더 빼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두 가지 고민, 두 가지 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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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spain2.jpg » (맨위부터) 생물학 수업 시간의 모습. 대학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간고사가 없는 대신에 중간중간에 시험이 많아 도서관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말라가대학의 자연과학대학.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스페인의 전공 수업은 어떨까 한번 경험해 보자’고 작정했다. 가끔씩 한국에 비해 놀랍도록 다르고, 버티기 힘든 난관을 겪는다. 그때마다 후회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신기하고 재밌다. 한국에 있을 때의 내 자신을 반성할 때도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이렇게 한다면 어떨까 하는 발칙한 상상도 든다. 모두 한국에서만 수업을 들었더라면 얻을 수 없었던 경험일 것이다.


대학에서 수강신청 할 때를 생각해보자. 교수의 강의 실력, 적절한 시간대, 그리고 평가가 까다롭지 않을까 등등을 생각할 것이다. 여기에 이공계 학생들이 고민하는 게 더 있다. 실험 수업이 있나 없나, 있다면 얼마만큼 힘들까(귀찮을까)? 하지만 스페인에서 수강신청 할 땐 수업과 관련한 정보를 얘기해줄 아는 사람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니, 이런 것들이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모든 수업에는 실험이 들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두 가지 고민을 하게 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국에 없는 수업은 없을까? 아니면 정말 쉬운 수업을 들어야 할 텐데, 한국에서 학점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다행히, 한국 학교에서는 너그럽게도 1학년 전공 수업도 전공 학점으로 인정해주겠다고 대답해 한 시름 놓았다. 쉬운 수업 두 개만을 들어 쉬엄쉬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김에 두 욕구를 전부 만족해보고 싶었다.


마침 눈에 띄는 과목이 있었다. 2학년 전공 ‘고생물학과 진화(Paleontología y Evoución)’였다. 한국 학교에서는 개설돼 있지 않은 수업이라 먼저 끌렸다. 무엇보다 ‘그래도 내가 생물학과 학생인데, 진화 관련 수업은 한번 맛이라도 봐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소한 과목이라 분명 크게 데일 거 같았지만,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다. 1학년 수업으로는 ‘식물학, 동물학 및 생태학 실험, 계측 및 방법(P.I.M. en botaníca, zoología y ecología)'이라는 전공을 선택했다.



스페인에선 부담 없이 공부하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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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목요일, 다음날은 스페인의 부활절 명절이 시작되는 날이다. 그런데 나는 도서관에 있다. 개강한 지 2달 만에 벌써 세 번째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것도 쉬엄쉬엄 할 줄 알았던 1학년 전공 수업이다. 당장 오늘 밤에 일찌감치 계획해둔 런던 여행을 위해서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데, 공부하느라 계획도 제대로 짜질 못했다. 속을 끓이며 중앙도서관(Bibloteca General)의 정면에 보이는 자연과학대학(Facultad de Ciencias)에 눈을 흘긴다. ‘언제는 부담 없이 공부하라 해놓고선, 이게 뭐야!’


지난 3월 7일, 자연대 생물학과 학과장인 베고니아(Begonia, 해양생물학) 교수를 만났다. 수강신청 희망 과목을 적은 서류에 학과장의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학장실 앞에서 만난 그는 정말 친절했다.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던 당시 내게 영어로 조곤조곤히 설명해주는 게 마치 엄마를 보는 거 같았다. 더군다나 그가 내가 신청한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했다. 질문을 하나 했다.


“제가 오기 전에 시험을 이미 본 게 없었나요? 평가는 어떻게 하나요?”

“너무 걱정 마세요.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에 보는 종강시험인데 70%를 차지합니다. 한국은 학업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고 들었어요. 여기는 그 정도는 아니니 안심하세요.”


마음이 확 풀어졌다. 수강신청을 하면서 꽉 조여 맸던 긴장의 끈이 툭 끊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스페인인데 좀 즐기면서 해야지. 나도 참 여기까지 와서 너무 심하네’ 하는 마음도 들었다.


실수였다.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1학년 수업은 제대로 뒤통수를 때렸다. 시험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던 나는 수업 분위기에 압도됐다. 모든 학생이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컴퓨터를 켜놓고 딴 짓을 한다는, 내가 들은 그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 과목은 다른 과목(대개 6유럽학점, 유럽 학생들은 한 학기에 30학점을 이수해야 한다)에 비해 9학점에 달하는 중요한 과목이었다. 출석 확인을 안 했지만, 결석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긴장했던 2학년 과목에서는 아직까지 이론 시험이 없었다. 그 덕인지 이론 수업 시간엔 200명 중 거의 100명이 결석한다. 컴퓨터를 켜놓고 게임을 하는 학생도 10명 남짓 눈에 띄었다. ‘이게 내가 듣던 그 스페인 대학이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쉬운 것도 아니다.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꽤 됐다. 이론 수업이 아닌 실험 수업은 상황이 또 달랐다. 실험복을 입은 채로 파이펫을 만지고 표본을 정리하는 수업이 아니었다. 컴퓨터실에서 통계학을 하고 듣도 보도 못한 실물 화석의 크기를 쟀다. 날마다 다르게 신선했지만 한편으론 당황스러웠다.



어려운 전공이 오히려 위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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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건, 내가 수강신청 한 수업이 전공이라서 지금은 오히려 위안이 된다는 점이다. 당초에 다른 분야에 관심이 있어 인문사회계열 수업을 들으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안 듣길 잘한 것 같다. 만일 다른 분야의 과목을 스페인어로 들었더라면, 지금 나는 시험 공부를 할 엄두도 못 냈을 것 같았다. 헤겔, 마르크스, 베버보다는 린네, 종속과목강문계, 학명과 행렬 통계가 그나마 더 이해하기 쉽지 않겠는가?


속이 터지는 것 같다. ‘부담 없이 부담을 주는’ 유럽 방식의 대학에 적응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유럽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이공계 학생을 위한 정보

[대학 선택]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이공계 대학생한테 도움이 될 만한 경험과 정보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유럽에는 세계적인 이공계통 연구소가 많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프라운호퍼, 파스퇴르 연구소가 유럽에 있죠. 유럽은 뉴턴, 아인슈타인, 다윈, 마리퀴리 등 서구 과학의 본산이기도 하며, 이를 이끌어 온 과학교육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운이 따른다면 스위스 로잔공대, 독일 아헨공대와 프랑스의 이공계 중심 명문대들인 에꼴 폴리테크니크 등에서 세계적인 석학들의 수업을 들을 기회도 얻을 수 있어요.


물론 유럽의 과학, 공학은 미국에게 밀려 빛이 바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영국이 아닌 경우 프랑스어, 독일어 또는 스페인어를 구사해야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등 언어의 장벽도 높습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여러 이유로 유럽은 이공계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여러모로 매력적인 곳이기도 해요. 물론 ‘난 전공과 담 쌓고 살겠다’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죠? 선택은 자유니까요.


유럽에 오실 생각을 하셨다면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속한 대학의 국제협력처(국제 업무 부서)에서 교환학생 지원 자격을 꼼꼼히 검토해보시는 건 기본이죠. 대학마다 다르나 대체로 스위스, 독일 등 전통적인 이공계 강국이나 영국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대학에서 이공계 학생을 많이 선호합니다. 물론 필자처럼 남유럽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대학에도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일반 대학(University)과 응용과학대학(University of Applied Science)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의 4년제 대학처럼 학문 전반의 내용을 가르치며, 대부분의 학과가 개설된 곳이 일반대학입니다. 반면 응용과학(Applied Science)이란 말이 붙은 대학은 실용적 분야에 특성화한 4년제 대학이에요. 지망하는 대학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셔서 개설된 학과와 전공, 교육과정을 확인하시는 게 필수죠.


경우에 따라서는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대학에서 수강신청을 해 일반적인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에 속해 과제를 수행하고 학점을 따는 방식의 학교도 있어요. 다른 교환학생과 달리 과제도 많고 수업도 정말 힘든 편이지만, 그만큼 공부 하나는 제대로 해볼 수 있답니다.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는 교환학생을 위해 교양과 일부 전공에 한해 영어수업을 제공하고 있어요. 하지만 전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있는 스페인은 물론이고, 영국을 제외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대부분 나라의 대학에서는 영어가 아닌 현지 언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언어가 통하는 나라에 지원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채로 교환학생에 합격하셨다면 파견되는 나라의 언어를 되도록 열심히 공부해 두실 필요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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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건국대학교 생명과학부 학부생
2009년 건국대 생명과학과에 입학해, 한때 연구자를 꿈꿨습니다. 지금은 진로를 바꾸어 군 복무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과학기술계에 보탬이 될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ddobaginote.tistory.com 또는 이 지면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고 싶습니다.
이메일 : jhkim33770@gmail.com      
블로그 : http://ddobaginot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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