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팽창 속도, 알려진 것보다 느리다" -플랑크위성

최고 해상도로 우주배경복사 관측 플랑크위성의 1차 관측결과 발표


우주론의 표준이론 뒷받침하면서도, 국지적 온도요동 세밀히 보여줘

우주팽창 허블상수 수정..암흑에너지 구성비, 우주 나이도 수정 제시

00planck1.jpg » 매우 높은 해상도로 전 우주 하늘을 관측한 플랑크 위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된 우주배경복사(CMB) 지도. 앞으로 우리 우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상으로 자주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출처/ ESA, Planck Collaboration


주가 거대한 공이라면 그 우주 전체는 얼마만한 복사열을 내고 있을까?

우주 대폭발(빅뱅) 이후에 식으면서 지금 우주는 골고루 절대온도 2.7K (0K는 섭씨 -273 도)를 지니고 있음이 1960년대 지상의 우주 관측으로 처음 확인된 바 있다. ‘태초의 빛’ 또는 ‘빅뱅의 잔여물’이라고도 불리는, 전 우주에 골고루 퍼져 있는 이른바 ‘우주배경복사(CMB)’의 온도이다. 영하 270도가 현재 우주의 온도이다. 이후에 우주배경복사를 정밀하게 측정하려는 여러 관측 실험이 이어졌고, 최근에는 마이크로K (μK, 마이크로는 100만 분의 1) 단위의 정밀도로 우주 곳곳의 온도차를 관측해보니 우리 우주에는 2.7K보다 더 따뜻한 곳과 더 차가운 곳이 섞여 복잡한 온도 구조를 지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00planck_CMB2.jpg » 우주배경복사 지도의 변천. 1960년대에 처음 관측됐을 때에는 전 우주에서 절대온도 2.7도가 균일하게 관측됐으나, 이후에 관측 단위를 작게 하면서 국지적으로 다른 미세한 온도 변화(요동)들이 관찰되었다. 맨 위는 1965년에 이뤄진 지상 관측이며, 그 아래로는 코비 위성, 더블유맵 위성, 그리고 플랑크 위성이 관측한 것이다. 출처/ NASA, ESA. Nature에서 재인용(재구성, 변형) 이는 2001년 미국항공우주국(NASA, 나사)이 지구에서 150만 킬로미터 떨어져 태양계 바깥 우주를 볼 수 있는 우주 공간('L2'라고 불린다)에다 뛰운 더블유맵(WMAP) 위성의 크나큰 성과였으며, 이 위성의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된 전 우주의 배경복사 지도(오른쪽 그림 세번째)는 우주를 보여주는 대표 이미지가 됐다. 알록달록한 이 지도는 우리 우주가 아주 미세하게는 복사열(온도, 빛)의 차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상도 낮은 1960년대 지도로 보면 우주는 그야말로 균일하고 단순하지만(오른쪽 그림 맨위), 더블유맵 위성의 지도로 보면 우주는 수천 또는 수만 분의 1도 단위로 세밀하게 차이가 나는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제, 더블유맵 위성보다 훨씬 더 선명한 관측 해상도를 갖춘 유럽우주국(ESA, 에사)의 플랑크(Planck) 위성이 2009년에 마찬가지로 'L2' 지역의 우주 공간에 오르자, 또 다시 어떤 새로운 발견이 전해질지에 관심이 쏠렸다. 우주 탄생과 급팽창(인플레이션), 그리고 중력의 작용과 우주 구조의 진화라는 과학적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표준 우주론에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변화와 수정이 생길지 여부는 플랑크 위성의 관측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주론을 연구하는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더블유맵이 새로운 관측 결과를 많이 내놓은 터라 플랑크 위성에서 획기적인 발견이 나오리라고 보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플랑크 위성의 관측 정밀도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관측 결과 발표는 큰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최근인 3월21일(현지 시각) 유럽우주국은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15.5개월 동안 플랑크 위성이 수집해온 관측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한 첫 번째 결과물을 30편가량의 논문으로 내놓았다. 논문들은 물리학술 데이터베이스인 아카이브(arXiv.org)에 올려져 공개됐다.



표준우주론 급팽창가설 뒷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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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크 위성의 1차 관측 결과를 요약해 발표한 유럽우주국미국항공우주국의 보도자료를 보면, 큰 틀에서는 이번 관측 결과가 표준우주론의 모형에 잘 들어맞음을 다시 확인해주는 것이다. 유럽우주국은 “대부분의 경우에, 데이터는 표준우주론 모형과 매우 잘 일치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경우에, 데이터는 표준우주론 모형과 매우 잘 일치하며, 우주론의 매개변수(패러미터)에 대해 훨씬 좋아진 측정 결과를 보여준다. 표준모형에 의하면, 우주는 거대 척도로 볼 때 균일하고 등방적인(어떤 뱡향으로 보아도 똑같은) 성질을 지니며, 우주 구조는 빅뱅 직후에 일어난 작디작은 밀도 요동이 서서히 성장해 이뤄진 결과물이다.”


우주 전역의 전자기파를 관측함으로써 파악되는 우주배경복사는 과연 무엇이기에 7억 유로나 들인 우주 관측 프로젝트의 초점이 되었고, 그 관측에서 우리는 우주론과 관련해 무엇을 추론할 수 있을까?


우주배경복사는 흔히 태초의 빛, 빅뱅의 흔적이라고 얘기된다. 표준 우주론의 과학적 시니리오에 의하면, 우주 탄생과 거의 동시에 믿기 힘들 정도로 짧은 10-32 초 동안에 우주 공간의 급팽창(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급팽창 덕분에 질량과 에너지는 전 우주 공간에 골고루 퍼질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 우주는 거대 규모에서 볼 때 어딜 가나 같은 균일성과 등방성을 지닐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이후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같은 물질과 빛은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뒤엉킨 상태(플라스마)로 38만 년의 시간이 지났다. 많은 연구자들이 추론하기로는, 당시에는 빛(광자)은 자유전자들에 이리저리 부딛히느라고 제대로 직진하지 못했고, 그래서 밝기로 보면 마치 매우 짙디짙은 안개가 낀 상태에도 비유된다. 그러다가 자유전자가 양성자와 결합해 원자를 구성하면서, 빛은 자유로워졌다. 빅뱅과 급팽창 이후 38만 년이 지난 뒤에야, 세상에 모습을 제대로 드러낸 빛이 바로 우주배경복사의 시원이었다. 우주는 계속 팽창했고, 그러면서 빛의 파장도 길어지며 에너지는 작아졌으며, 140억 년에 가까운 기나긴 시간이 흐른 지금, 우주에 퍼진 빛의 온도, 즉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는 이제 절대온도 2.73 K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참조: 유럽우주국의 플랑크위성 임무 설명자료 "The Planck Toolkit", 해당화면 오른쪽에서 링크).

00universe2.jpg » (a) 우주배경복사의 세기를 온도로 표현하고 가장 낮은 곳을 파란색(0K)으로, 높은 곳(4K)을 빨간색으로 표현했을 때 지구 전체 하늘에서 관측되는 우주배경복사를 세계지도와 같이 2차원상에 나타낸 것이다. 대략 2.7K인 우주배경복사는 초록색으로 아주 균일하게 표현된다. (NASA) (b) 플랑크 위성이 촬영한 고해상도의 우주배경복사 지도. 가장 높은 곳과 낮은곳의 온도차이를 4K에서 600 μK로 줄여 나타내면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이 보인다. (European Space Agency) * 설명 재인용/ 백성혜, "우주 암흑 시대, 그 시작과 끝", 사이언스온, 2012.08.29 (http://scienceon.hani.co.kr/52771)

그러니 지금 전 우주에 우주배경복사가 거의 균일하게 퍼져 있다는 관측 결과는 급팽창 과정이 없었다면 나타날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급팽창 가설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관측 증거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일찌감치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했던 코비(COBE) 위성과 더블유맵 위성도 그랬지만, 이번  플랑크 위성은 그보다 훨씬 더 선명한 그림으로 표준 우주론의 급팽창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00planck7.jpg » 관측된 전 우주의 지도를 남반구와 북반구로 나눌 때에 상당한 비대칭이 존재한다는 게 이번 플랑크 위성 관측에서 분명해졌다. 출처/ ESA, Planck Collaboration 이와 더불어, 우주배경복사가 전 우주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여준다는 관측 결과는 태초의 급팽창이 아주 단순한 그림으로 끝나지 않음을 얘기해준다. 플랑크 위성이 작성한 우주배경복사 지도를 보면, 코비나 더블유맵 위성이 이미 보여주던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차이들이 훨씬 선명하고 자세하게 드러난다. 유럽우주국은 이런 자세한 지도를 통해, 작은 영역에서 보면 온도 차이(요동)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지만, 큰 영역에서 보면 온도 요동은 표준모형 예측에 그리 잘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특히 우주 지도를 북과 남으로 나눈다면 북반구와 남반구에서는 비대칭이 상당하다는 점도 확인된다 (오른쪽 그림). 이는 급팽창과 그 직후의 짧은 우주 역사에서 국지적으로 에너지의 차이가 생기는 ‘요동’이 특이한 방식으로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는 태초의 원시 우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이런 온도 요동의 존재 자체는 표준우주론에서 이미 예측하는 바이다. 원시 우주의 작디작은 요동이 이후에 길고 긴 우주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중력의 작용으로 질량의 이합집산을 이루었고, 이를 거치며 은하 단위가 생기고, 별들이 만들어지고, 행성이 생겼다고 추론할 만한 충분한 관측 증거들이 발견돼 왔기 때문이다. 송용선 박사는 "이 때문에 가장 정밀하게 전 우주 하늘를 측정한 플랑크 위성의 상세한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고 거기에서 상세한 특이점들이 간추려진다면, 원시 우주가 만들어지던 시기에 있었을 특이 사건들을 추적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허블 상수.."누적 데이터 더 지켜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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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하는 우주는 지금 얼마나 빠르게 팽창하고 있을까? 풍선 위에 사인펜으로 검은 점들을 그려놓고서 풍선을 불면 점들이 서로 멀어지듯이, 현재 은하와 은하 간의 거리가 멀어지는 '관측된 사실'은 우리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과학 증거가 된다. 우주 팽창의 비율 또는 속도는 첫 관측자의 이름을 붙인 ‘허블 상수(단위 [km/sec]/Mpc)’로 표현되는데, 그동안 그 값은 계산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최근 더블유맵의 정밀 관측에서는 '70' 안팎의 값이 제시돼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플랑크 위성의 관측 결과에선, 그동안 알려진 값보다 낮은 값(67.15 ± 1.2)을 허블 상수로 제시해, 관련 분야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는 허블우주망원경이나 더블유맵 위성의 관측 값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그만큼 우주의 팽창 속도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느린 것으로 관측된다는 것이었다. 송용선 박사는 “개인적으로 이번 결과에서 가장 당혹스럽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이런 허블 상수의 수정”이라고 말했다.


우주 팽창 속도가 알려진 것보다 느리다면, 지금 우주는 더 느리게 팽창한 것이므로, 우주 나이는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플랑크 위성의 관측 결과에서는 우주 나이를 현재 추산되는 137억 년보다 많은 138억 년 정도로 계산했다. 또한 우주 팽창을 견인하는 일종의 척력인 ‘암흑에너지’의 값도 작아진다. 유럽우주국의 보도자료를 보면, 플랑크 위성의 관측 결과에서 암흑에너지는 이전(72.8 퍼센트)보다 작은 68.3 퍼센트로 나타났으며, 암흑물질과 보통물질의 구성비는 각각 26.8 퍼센트(이전엔 22.7 퍼센트)와 4.9 퍼센트(이전엔 4.5 퍼센트)로 측정됐다(아래 표).

00planck2.jpg » 우주 질량-에너지의 구성비. 플랑크 위성 관측 결과로 구성비가 다르게 측정됐다. 출처/ ESA, Planck Collaboration

그러나 연구자들 사이에선 이런 수정된 값을 바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일단 지켜보자는 식의 신중한 분위기가 많다고 송 박사는 전했다. 송 박사는 “예전에 더블유맵 위성의 첫 번째 관측 결과가 발표됐을 때에도 놀라운 내용이 포함돼 갖가지 이론 논쟁도 이어졌으나 후속 관측 결과에서는 애초 발표된 새로운 내용이 다시 원래대로 뒤집힌 적이 있다”며 “허블 상수의 수정도 당혹스럽지만 일단은 장기 관측 결과까지 기다려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흑에너지 구성비, 우주 나이의 변화도 허블 상수의 변화와 연계되어 있으므로, 앞으로 허블 상수 값이 더욱 확실해져야 다른 값들도 더 분명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 많은 데이터가 쌓이는 2차 관측 결과는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유럽과 미국 우주국의 보도자료, 그리고 과학저널 <네이처>와 물리학 전문매체인 <피직스월드>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플랑크 위성의 관측 결과에서 눈에 띄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다.


  • 최고의 관측 정밀도를 갖춘 플랑크 위성의 15.5개월의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전 우주의 우주배경복사 지도가 작성됐으며, 이는 기존 더블유맵 위성의 지도를 재확인하고, 표준우주론의 급팽창(인플레이션) 가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 우주 팽창의 비율 또는 속도를 표현하는 허블 상수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낮은 것으로 측정됐다.
  • 우주 팽창을 이끄는 힘인 암흑에너지의 우주 구성비도 알려진 것보다 작게 나타났다. 암흑물질과 보통물질의 구성비도 조정되었다.
  • 우주 나이는 기존에 알려진 137억 년보다 1억 년 가까이 더 늘어난 138억 년 정도로 측정됐다.
  • 우주 팽창이 더 빠른 우주에서 존재할 것으로 예측됐던 중성미자(뉴트리노)의 제4형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못했다. 현재 중성미자에는 세 가지 형이 있다.


[취재에 도움주신 분: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우주론)]

00planck3.jpg » 플랑크 위성의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구와 관측할 수 있는 우주 끝 사이에 있는 물질의 분포를 거대 규모로 그린 지도. 질량이 많은 지역을 밝게, 질량이 적은 지역을 어둡게 표시했다. 가운데 띠는 우리은하에서 나오는 잡신호들을 제거한 부분이다.출처/ ESA/NASA/JPL-Caltech http://www.nasa.gov/mission_pages/planck/news/planck201303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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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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