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 주장은 세계 기독교 주류 신학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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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상태 목사  

"과학과 종교의 갈등, 무엇이 문제인가"를 말하다

"정직한 예수님은 정직한 과학을 부정할 리 없다"

00RST4.jpg » 류상태 목사는 ‘과거의 주류 목사’이면서 ‘현재의 비주류 목사’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는 과거의 주류 목사이자 현재의 비주류 목사가 말하는 ‘창조과학에 관한 비평’이다. 사진/ 오철우


난해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의 진화론 서술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그 논란의 배경이 되었던 ‘창조과학’은 어느덧 대중 언론매체에서도 익숙한 말이 됐다. 당시 교과서 서술 문제를 검토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진화론은 현대 과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이론 중 하나”라며 진화론의 과학적 지위와 가치를 다시 확인하며 일부 서술은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면서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뜻하지 않게 창조과학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정치권에서 논란을 키웠다. 대통령 선거 기간에 박근혜 당시 후보가 공약으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히면서 공교롭게도 ‘창조과학’이라는 말이 들어가 과학계 일부에서 우려가 제기된 데 이어, 실제로 한국창조과학회에서 활동했던 주요 인사가 대통령직인수위에 참여하면서 창조과학이 과학의 건강성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욱 커졌다. 우려 이상의 논란은 전개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창조과학은 더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되었다.


창조과학에 관한 관심이 다시 커지면서 과연 창조과학은 현실 기독교 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으로 존재하는지, 기독교 신앙인은 창조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창조과학에 관해 거리낌없이 말해줄 만한 기독교 신학자 또는 목회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류상태 목사가 종교 관련 누리집에 쓰고 있는 칼럼 한 편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성경, 특히 구약성경에는 신화와 전설, 그리고 역사라는 세 가지 기록 양식이 있다. 이 세 가지 기록 양식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의 진실을 아는 데 매우 중요하다”며 “성경의 기록을 과학과 역사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면 영적인 의미를 놓친다”는 내용이었다. 성경, 그리고 과학과 역사 사실에 관한 이런 해석은 과학을 보도해온 내게 신선하고 흥미롭게 읽혔다. 얼마 뒤 류 목사한테 인터뷰를 청했다.


그 무렵에 한국창조과학회가 대학 교재로 펴낸 <자연과학>이라는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상당히 탄탄한 구성으로 책을 구성했다고 느꼈으나 진화와 관련한 대목에서는 성경 구절을 직접 인용하며 과학 지식을 서술하는 방식을 보면서는 크게 실망하고 있던 터였다. 과연 이런 창세기 성경 구절이 본격적인 과학 교재에 인용되는 것이 21세기를 사는 수많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용인되고 있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은 더 커졌다.


인터뷰 일정을 미루다가 지난 2월 20일 낮에 약속을 잡아 류 목사 자택에서 1시간50분가량 류 목사를 인터뷰했다. 그는 한때 흔한 말로 ‘잘 나가던’ 목회자였다. 영락교회 전도사이기도 했고, 알아주는 기독교학교인 대광고 교목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녀 잘 알려진 소망교회에서도 교육목사 생활을 했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주류 문화는 충분히 경험한 분이었다. 이제 그는 주류 문화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그는 스스로 “이제는 나를 이단으로 여겨 멀리하며, 이 때문에 9년 동안 몸과 마음의 고생을 겪어왔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는 ‘과거의 주류’이면서 ‘현재의 비주류’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는 과거의 주류 목사이자 현재의 비주류 목사가 말하는 ‘창조과학에 관한 비평’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해관계 없이 창조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고 많은 부분은 귀기울여 들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목사 인터뷰는 아래에 길게 정리해두었는데, 그 중에는 몇 가지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종교 대 과학’의 대립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추상적인 표현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여기에서 '과학'은 구체적으로 집어 진화론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종교'가 의미하는 건 뭘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매우 특정한 교계를 지칭하게 된다. 진화론에 대립하는 종교는 곧 창조론을 말하는 기독교를 지칭하겠지만, 기독교 안에서도 가톨릭이나 성공회, 정교회는 이런 대립 구도에 어울리지 않는다. 개신교라는 범주도 또한 충분하지 않다. 유럽의 개신교가 이런 대립 구도에서 빠지고, 그러다보면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 개신교가 진화론을 부정하는 대립항이 될 만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류 목사는 “창조과학은 유럽 기독교에서는 엉뚱한 주장처럼 여겨질 것”이라며 “한국과 미국에서만 창조과학 주장이 강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의 말을 듣다보면, 종교와 과학의 대립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하지는 않아 보인다. 이미 기독교 주류 신학에서는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해석은 찾아보기 힘들며 천지창조를 비롯한 창세기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거기에 더 크게 담긴 종교적 의미를 파악하려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정직하신 예수님이 정직한 과학을 부정할 리 없다”고 말했다. 종교와 과학이 조화하지 못하는 영역이야 당연히 크겠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크지는 않을 수 있음을 전하는 그의 이야기는 종교와 과학의 갈등이 점차 커질 조짐을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작은 위안이 되었다.


아래는 류 목사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일부를 빼고는 대화 순서를 거의 그대로 따라 정리했다. 녹음된 인터뷰 내용을 초벌원고로 먼저 정리하고 이것을 류 목사가 한번 더 확인한 다음에 최종으로 다듬어 정리했다.


대화




00Q.jpg 목사님도 ‘창조과학’이란 말은 들어서 알고 계시지요? 목사님은 창조과학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00A.jpg “창조론이 과학적 사실이라는 거죠. 핵심은 그거에요, 창조론이 과학적 사실이다. 일반적으로는 세계는 진화된 것으로 바라보잖아요, 그런데 그걸 부정하는 겁니다. 진화론을 다 부정하는 건 아니고 소진화는 인정하면서 종을 건너뛰는 대진화는 인정하지 않고 있지요.”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이런 창조과학을 받아들이는지요?

“우리나라와 기독교 주류 국가와는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인의 80~90 퍼센트가 창조론을 받아들일 겁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본거지인 유럽 세계로 가면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창조과학을 얘기하는 기독교인은 10퍼센트 될까 말까 할 겁니다. 유럽에서 80~90 퍼센트의 기독교인은 창조론 얘기하면 ‘당신 어느 시대 사람이냐?’ 하고 되물을 겁니다.”


미국 기독교의 상황은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네, 미국은 달라요. 우리나라가 미국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독교에) 이렇게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것인데.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기독교인과 열린 기독교인이 아마 5대5 또는 4대6 정도 될 겁니다. 보수적인 기독교가 50퍼센트를 넘지는 않을 겁니다.”


말씀 중에 ‘열린 기독교’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건 어떤 의미로 쓰신 건지요?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기독교, 그런 의미로 제가 쓰는 표현입니다. 이와 달리 교리에 매달리는 기독교를 저는 교리 기독교라 부르죠.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교리 기독교를 기독교의 전부인 양 생각한다는 겁니다. 기독교에 관해 좀더 설명을 해야 하겠군요. (제가 분류하기로는) 기독교에는 크게 세 갈래가 있거든요. 영성의 기독교가 있고, 교리의 기독교가 있고, 운동의 기독교가 있습니다.”


영성의 기독교, 교리의 기독교는 어느 정도 이해하겠는데, 운동의 기독교라면 실천을 강조하는 기독교라는 의미로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사회실천을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원래 뿌리가 사회운동에서 시작했다고 보는 거죠. 예수님은 넓게 보면 사회운동을 하신 분이고 삶의 문제를 안고서 가르치며 살아오신 분이라는 거죠. 혹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라는 목사님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독일 히틀러 암살단에 가담하셨던 분인데 성공하지 못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에 체포돼 감옥에서 처형됐습니다. 그분이 요절하지만 않았다면 천재 신학자로 크게 이름을 떨치셨을 분인데, 아무튼 그분이 한 말이 있습니다. “예수는 결코 우리를 새로운 종교로 부르시지 않았다, 새로운 삶으로 부르셨다”고 하셨죠.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종교조직도 아니고 교리도 아니고, 그냥 삶이고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는 거죠.”


그래도 종교 나름의 정체성이 있지 않습니까? 시민사회운동과는 다른 차원의 종교적 의미가 더 있을 듯한데요.

“예수 시대 당시는 종교와 정치가 구분되지 않았던 제정일치 사회였습니다. 종교지도자가 정치지도자였고. 그러니까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 시대에는 사회 전체가 종교사회였고 종교를 떠나 있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종교인이냐 아니냐 이런 물음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던 시대이니까요. 그런 사회에서 예수는 종교적인 문제보다 사람들의 삶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사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원형은 사회운동이었다는 겁니다.”


얘기가 신학 쪽으로 흐릅니다만, 제가 듣고 싶은 말씀은 기독교인은 창조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또 다른 목소리는 없는지 그런 얘기여서….

“제가 하려는 말은 뭐냐 하면, 주류 신학을 하는 사람들한테 창조과학은 엉뚱한 거라는 거죠. 그러니까 우선…, 어디부터 얘기를 풀어나갈까요?”


그런데 창조과학회라는 개신교 단체는 꽤 역사를 지니고 있고 또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참여 규모를 갖추고 있는 듯한데요.

“그렇죠. 우리나라와 미국에서만 그래요. 유럽으로 건너가면 웃음거리이지만 우리나라와 미국에서만 그렇고…. 우리나라 기독교는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데, 미국 기독교라는 게 지금 주류 신학에서 볼 때에는 아주 보수화한 집단이에요. 이건 역사적인 배경을 길게 설명해야 이해하실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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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jpg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성경에도 나오는데, 주류 신학이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된 창조론을 엉뚱한 것으로 본다는 말씀은 좀 이해되지 않습니다.

00A.jpg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런 얘기는 예수님의 입에서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몇 백 년 전에 쓰인 구약성서인 거죠. 예수님이 직접 쓰신 글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문맹이냐 아니냐 하는 그런 논의도 있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전해져서 기록된 게 성경에 있는 겁니다. 그 말씀이 틀림없는 예수님 말씀이란 걸 어떻게 알아요? 몇십 년 동안 전승을 거쳐서 기록된 건데요.

그러나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틀림없이 하셨다고 가정하더라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창조론 자체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먼저 말씀드리고요.

 그리고 예수님이 ‘교리를 믿어야 한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이런 말씀을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교리 기독교의) 경향이 생겨났느냐 하면 이건 예수님 이후에, 300년쯤 뒤에, 요즘 말하는 정통 교리라는 게 정리된 것입니다. 결정적인 역할은 기독교를 통일한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가 했어요. 여러 견해가 많았던 기독교를 하나로 통일해야만 로마 제정과 교회를 안정시킬 것으로 생각해서 종교지도자를 전부 불러서 통일하고 정리해 사람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라 한 겁니다. 그래서 서기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예수의 신성’이 결정됐어요. 그러면서 중요한 교리들도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성경무오설이 만들어지고, 삼위일체설이 만들어지고, 이런 주요 교리들이 만들어집니다. 성경에는 오류가 없으니까 성경 기록을 그대로 사실로 믿기 시작한 거죠. 그 이후로 이게 기독교의 정통 교리가 된 거예요.

 이후로 서구 사회는 1000여 년 동안 정통 교리를 이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15, 16세기 르네상스를 겪고 종교개혁을 겪고, 대항해 시대를 거쳐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이 발견되니까 이제는 창조론이 문제가 되는 걸 알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던 거죠. 고민에 고민을 거쳐 지금은 창조과학을 믿는 기독교인은 서구 사회에 거의 없습니다.”  


미국 기독교는 왜 창조론을 강조하는 거지요?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운 기둥 중 하나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간 청교도 문화입니다. 청교도 문화가 그들의 기본이고, 정결함을 추구하는 깨끗한 신앙이 미국의 기초라는 거죠. 그런데 교회의 역사에서 보면, 청교도는 교리적으로 근본주의자들이에요. 이들은 근본주의라는 말보다 복음주의라는 말을 더 쓰지만, 사실 근본주의이며 장로교의 일파로 극단주의입니다. 우리는 정결한 사람이다, 때묻은 사람과는 타협하지 않는다, 이런 거거든요.

 개신교 태동 이후에 보수적 교리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장로교파를 이루는데, 그 중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보수적인 장로교가 청교도인 겁니다. 영국에서는 성공회가 국교로 채택되어, 가톨릭과 성공회의 큰 고래싸움에 낀 청교도들이 타협하거나 융합하지 않으면서 1620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게 미국 땅인 거에요. 이후에도 미국 기독교는 열린 신학을 허용하지 않은 채 굉장히 보수적인 신학을 이어온 거에요. 그러다가 유럽이 전반적으로 깨이고 성경도 새롭게 보고 신학도 새롭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생겨났지요. 헤겔이나 포이에르바하 같은 인물이 큰 역할을 했어요.

 이런 흐름을 보면서 미국 청도교의 후예들이 위기를 느낀 거죠. 아주 보수적인 교리들, 그러니까 창조, 부활, 성경무오설, 예수신성 같은 일곱 가지를 근본교리로 삼아 꼭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겁니다. 이것만은 타협할 수 없다, 그래서 근본주의자라는 별명이 붙게 된 거죠.

 그런데 근본주의라는 말 때문에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여기에서 근본이 예수님이 전하신 기독교 근본을 얘기하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이 뭔지는 사실 정확히 알 수 없고 300년 쯤 지난 뒤에 정리된 교리를 근본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그걸 지켜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게 근본주의에요. 그러니까 그 근본주의는 예수님의 근본 가르침과 크게 다를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예수님의 근본 가르침에 대해서는 열린 신학 연구를 하고 고고학이나 다른 연구를 통해 검증해 보니까 저의 결론은 여기까지 온 거죠, 이건 종교운동이라기보다는 사회운동이었구나 하는….

 그래서 예수님과 종교지도자에 갈등이 생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 종교지도자였어요. 성경 자체를 투명하게 연구해도 예수는 지금 같은 종교조직을 일으켜 세우려 했던 사람이 아니라 그런 종교조직과 싸우고 그 조직에 눌린 사람을 해방하러 온 사람이라고 현대 신학의 주류는 결론을 내리고 있죠. 전 세계 기독교권을 대상으로 할 때에 주류는 그런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아류이지만요, 주류와 아류가 우리나라에서는 뒤바뀌어 있어요.”


세계 기독교권에서 보면 주류 신학은 창조론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신성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고 주류 신학이 유신론을 부정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건 아니죠. 그 문제는 좀 복잡합니다. 저도 유신론자이고, 무신론자가 아니에요. 그런데 전통적인 ‘인격신관’에 대해서는 재해석한다는 거지요. 그게 주류 신학의 흐름이라는 겁니다. 인격신관이 뭐냐 하면 ‘신이 인격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신이 인간과 대화하며 인간사에 간섭한다는 거죠. 구약성서에서는 간섭한 흔적이 많이 나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죽여라 이렇게 명령했다고 나오는데, 그런데 우리나라 주류 목사들은 그걸 다 사실로 받아들여요, 정말로 모세가 이집트 왕 파라오와 싸울 때에 전부 다 죽였다는 거예요.”


그러면 인격신관이 아닌 유신론은 어떤 유신론인가요?

“유신론은 신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신이란 무엇인가?’ 이런 물음을 던져봅시다. 그 신을 말할 때 우리는 ‘성경의 신’을 생각해요. 그런데 그 ’성경의 신’이 진짜 신인가 물을 수 있지요. 성경의 신은 이천 년, 삼천 년 전에 유대인이 인식했던 신일 겁니다. 그러면 신의 참 모습은 무얼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음을 바꾸어보자고 합니다. 신은 인격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인격신이 아닐 수도 있어요. 사사건건 간섭하는 신이 아니라면, 우주를 섭리하는 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리(理), 기(氣), 도(道), 또는 어떤 법(法), 원리(原理)) 같은 것일 수도 있어요. 만일 그렇다면, 우주 근본원리나 법칙이 사람과 일일이 대화하겠습니까?


00Q.jpg 말씀을 듣다보면, 그렇다면 굳이 기독교를 믿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기 부정을 하고나면 구태여 기독교를 믿으려고 하지 말고 아예 다른 종교나 존재를 믿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00A.jpg “그게 진짜 기독교라면…, 그런 기독교에서는 저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기독교가 예수를 제대로 해석한 종교가 아니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라는 건 부정되어야 합니다. 그러고난 이후에 진짜 예수님이 남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니고 예수님이 중요한 것이죠. 그런 점에서 저는 여전히 예수사람입니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예수가 중요하고…, 그리스도라는 것은 구세주라는 말이거든요.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종교이거든요. 저는 여전히 예수가 저의 구세주라고 고백해요. 그런 점에서 저는 기독교인인 거죠.”


신학 쟁점을 파고들기는 부담이 되는군요. 과학 담당 기자로서 창조과학에 관해 더 여쭙고 싶습니다. 더 보수적인 기독교인 가톨릭은 창조과학에 관해 어떤 교리를 갖고 있나요?

“가톨릭에는 보수적인 교리의 입장이 거의 없어요. 왜냐면 통일체잖아요. 가톨릭 사제 중에는 떼이야르 드 샤르뎅(Teilhard de Chardin, 1881~1955)이라는 분이 있었어요. 고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인데 서품을 받은 사제였지요. 그분은 진화론과 창조론을 융합한 사람이에요. 일종의 유신론적 진화론이랄까, 진화적 창조론이랄까 그렇게 말해요. 진화론을 그대로 긍정하는데 신이 그런 진화를 이끈다고 보는 거죠. 그럼 진화는 뭐냐, 그건 창조의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성경에는 며칠만에 천지창조가 이뤄졌다고 기록돼 있는데요, 가톨릭은 그런 창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건가요? 가톨릭에도 성경무오설이 있지 않나요?

“가톨릭의 무오설은 개신교와 견해가 조금 다릅니다. 문자 그대로 조금도 오류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아요. 축자영감설이라는 게 있어요. 글자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이 담겨 있다는 거고, 성경무오설의 뿌리이지요.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건데, 그런데 성경 무오설도 여러 가지예요. 글자에 오류가 없느냐, 그 뜻에 오류가 없는거냐 하는 차이도 있고요. 그런데 무오설을 받아들이더라도, 신화는 신화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가톨릭 신학자 중에서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은 거의 못봤어요. 적어도 샤르뎅 이후로 가톨릭은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정리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진화론 자체를 창조의 과정으로 보는 거죠. 빅뱅설(우주대폭발설)도 다 인정하지요.”


우주대폭발 이론이 막 피어나던 때가 1940~50년대인데, 가톨릭 교황 피우스 12세는 1951년 비유기물인 우주 물질의 창조와 진화에 관해 현대 과학과 종교가 모순하지 않는다며 대폭발우주론을 두둔하는 연설을 발표했지요.

“가톨릭은 1962년과 1965년 사이에 재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어요. 이게 가톨릭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많이 달라졌지요. 이웃 종교를 존중하고 다른 종교도 구원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해요. 개신교도 이전에는 이단이었는데 분리된 형제로서 포용하고, 반목했던 과학과도 화해를 요청했습니다. 흐름 자체가 크게 바뀌었지요. 진화론도 주류 내에서는 문제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가톨릭 신학자들은 주류에는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 창조과학회가 아무리 크다 해도, 세계 기독교권 전체로 봐서는 아류에 불과해요.”


국내 창조과학회에 참여하는 학자들도 꽤 많고요, 거기에 참여하는 신앙인 과학자들도 나름의 신앙생활로 그런 활동을 하신다고 생각합니다만.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진정성은 인정하고 싶어요. 그분들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죠. 2000년 전의 신앙에 얽매어 있는 거죠. 미국 신학이 이런 근본주의 신학에서 시작하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뿌리가 청교도에요.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볼 때에는 그게 전부이고 청교도 신학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거죠. 당연히 거기에 애착을 갖고 주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오히려 서구 사회의 기독교가 다 엇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유럽에서 기독교는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제가 볼 때에는 기독교가 죽은 게 아니라 오히려 삶 속으로 스며든 것인데 말입니다.”


유럽은 대부분 가톨릭 아닌가요? 개신교도 많이 있나요?

“기독교는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다 합하면 기독교인은 세계 인구의 33 퍼센트나 되죠. 유럽을 보면, 유럽 남쪽은 주로 가톨릭이고 북쪽은 개신교가 강하고 동쪽은 정교회가 강하고 그래요. 유럽에 찾아가보면 근본주의 기독교는 거의 없어요. 유럽에서 창조과학 말하는 사람 찾아보세요. 거의 없을 겁니다.”


창조과학의 주요한 근거가 성경의 창세기인 거죠?

“창세기 1, 2장을 사실로 보느냐, 신화로 보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집니다. 주류 신학자들은 이것을 신화로 보는 거에요. 그러니까 단군신화와 같은 거에요. 단군신화를 사실로 보는 사람도 있기는 있잖아요. 근데 이건 기본적으로 신화인 게…, 하늘에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와서 곰과 결혼해 아들 단군왕검을 낳잖아요.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곰이 인간이 되고 우리 민족이 그 후손이 되는 게 사실일 수가 없잖아요. 신화죠.

 그러면 단군신화에는 사실이 전혀 없나? 있을 수 있죠.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신화는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이야기였을 것이고, 또한 어찌보면 사실보다 더 소중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던 틀일 수도 있습니다. 신화는 거짓말이 아니라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 도입된 이야기이거든요. 그래서 신화가 오히려 사실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00Q.jpg 그러면 신화적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창세기는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겁니까?

00A.jpg “저는 결코 성경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 그런 점에서 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에요. 저는 창세기를 믿어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믿거든요. 그건 조금 이따가 더 자세히 얘기할게요. 먼저 단군신화 얘기를 더 해볼게요. 그러면 단군신화에서 중요한 의미가 뭐냐 하면, 우리 민족이 하늘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자부심을 갖고 살았고, 그런 기개를 가지라고 후손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겁니다. 그런데 호랑이와 곰이 찾아와 사람이 되게 해달라 간청했잖습니까? 이 얘기는 뭘 말해주느냐 하면, 백 퍼센트 장담할 순 없지만, 당시 사회가 토테미즘 사회였고 호랑이를 숭배하는 족속과 곰을 숭배하는 족속이 있었는데, 둘이 갈등관계에 있었을 수 있는데, 결국에는 곰을 숭배하는 족속이 하늘의 후예라고 자부했던 족속과 연합을 했을 거다, 그래서 곰과 환웅이 결혼하는 신화가 등장했을 거다, 그렇게 해서 한민족이 이어져왔을 것이다, 그런 역사적인 의미가 단군신화에는 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학자들이 해석하는 겁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질서 속에서 창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명령을 해요. 너희가 에덴동산에 살며 이 세계를 다스리고 모든 걸 먹어도 되지만 선악과를 따먹지는 말라고요,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는 이야기가 이어져요.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인간이란 존재는 연약한 존재이며 엇나가기 쉬운 존재인데 그래서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당시의 인식을 담은 것이라고 봅니다.

 과학이 없는 시대에 사람들은 그런 신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어떤 뜻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셨다,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 앞에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 할 존재라는 거죠. 어떻게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책임감 있게 살 수 있느냐, 이런 문제를 가지고 신화 속의 이야기를 남긴 것이죠. 그게 그대로 사실일 수는 없지만 그런 뜻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화는 사실이 아니라 의미로 들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또한 옛사람들이 당시 세계관 아래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잘 모르면서 기록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 사람들 눈에 태양과 지구를 비교하면 시각적으로 봐서 지구가 엄청나게 더 크잖습니까? 분명히 그렇죠. 누가 봐도 태양은 굉장히 밝기는 하지만 지구보다 작은 겁니다. 조금 더 똑똑하다면, 아 거리가 멀어서 작게 보이는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지구라는 건 하루종일 가도 다 못가요, 엄청 크죠. 그러니까 태양은 지구 부속품일 수밖에 없는 거에요.

 이건 당시 사람에겐 거짓말이 아니고 진정인 거죠. 지구가 먼저 만들어지고 땅과 하늘이 분리되고 그 다음에 삼일째에 천체가 만들어지거든요. 삼일째에 해가 떠올랐어요. 이 사람들이 볼 때 이건 정직한 거에요. 날이라는 것도 과학적으로 정확히 하려고 쓴 게 아니고 의미를 주는 거고, 성경은 종교경전이니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올바로 살도록 깨닫게 할까, 여기에 관심이 더 있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맞느냐 아니냐에는 관심이 없었던 겁니다. 이 사람들은 과학 이런 거 몰라요.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 이건 과학적인 24시간이 아니고 이건 그냥 구분인 거에요.

 그러니까 신화라는 걸 알고 성경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알고 성경을 보면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이건 거짓말도 아니고, 과학적으로 틀린 것도 아니고, 단지 서술 방식일 뿐입니다. 그러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죠. 저도 창세기 1장을 그렇게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거에요. 당시 사람은 이랬으니까, 독실한 기독교인인 내가 그 신화의 의미에 충실하고, 현대인인 나, 21세기 기독교인인 나는 과학에 의해 밝혀진 과학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갈등이 없는 거에요.”


00Q.jpg 종교인들은 주류 신학자들한테서 교육을 받고 배우잖아요.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은 지금 말씀하시는 그런 시각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00A.jpg “그러니까 자꾸 한국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말씀하고 계시는 거에요. 한국에서는 세계 주류가 아류에요. 그리고 한국에서도 천주교 분들은 제 얘기를 거의 받아들여요. 천주교에는 창조과학 이런 거 안 해요. 천주교에서 창조과학자는 없을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없을 겁니다. 개신교에서 문제에요.

 우리나라 천주교도 1950년대까지는 그랬어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게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천주교를 살린 겁니다. 그야말로 180도로 바뀌었어요. 근데 천주교는 완전히 통일체이잖아요. 교황이 앞으론 이쪽으로 간다 하면 다 따라가잖아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만. 개신교에는 교파가 너무 많잖아요. 개신교에는 창조과학을 따르는 보수 (기독교)는 유럽에는 거의 없고, 미국에 한 40 퍼센트, 우리나라는 80~90 퍼센트, 이 사람들이 주류가 되니까 개신교는 우리나라에서 다 그런 것처럼 보이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교인들은 80~90 퍼센트 그렇다 치고 목사들은 어떠냐? 사실 목사들은 80~90 퍼센트 정도는 아니에요. 아주 보수적인 교단에서 오로지 이게 전부라고 배운 사람은 전부로 알겠지만 기장(기독교장로회)이나 감리교에서 제대로 배운 사람, 장로교에서도 예장(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 사람들은, 절반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얘기하는 거 대체로 공감해요. 개인적으로 만나면 저보다 더 한 사람도 있어요.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말을 못한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이니까요. 정직하게 말하면 어떻게 되느냐…, …저처럼 되는 거에요. 저 대광고 교목이었던 거 아시죠. 괜찮게 살았어요. 지금 뭐하냐? 지금은 글 쓰면서 백수 비슷하게 살아요. 수입? 거의 없어요. 아내가 돈 좀 벌고 자식들이 돈을 벌고 있으니까 지금은 조금 마음 편하게 여유가 생겼지만 얼마 전까지 많이 힘들었거든요. 대리운전도 하고 화물차 운전도 하고. 그러니까 딱 표본이 있는 거죠, 말 잘못 하면 이렇게 된다는.


창조과학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성직자는 우리나라 개신교에 없는 건가요?

“개신교에...있기는 있어요. 있기는 있는데 어디에서 말을 하느냐 하면, 학자들이 세미나 같은 데서 이걸 가지고 물어보면 얘기를 합니다. 창조론을 다시 봐야 한다, 진화론이 다 틀린 것은 아니다, 진화론을 받아들이되 하나님께서 진화적으로 창조할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저처럼 신랄하게 얘기는 안 하죠. 왜냐?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사례가 있으니까요. 교인들이 들을 때 무슨 얘기인지 모르게 얘기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 내용은 목사들도 조금 공부하고 아는 사람은 이 창조과학이라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주장인지 안다는 거죠. 말을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거에요, 우리나라 분위기 때문에. 여기에 세뇌된 사람들 외에는 완전히 비웃음을 받고 있는 거에요. 과학자들도 창조과학은 과학으로 인정을 안 해줘요. 성경이 맞다는 전제로 접근하는 건 과학이 아니라는 거죠.”


00Q.jpg 창조과학회 소속 교수들이 대학 교재용으로 만든 <자연과학> 책을 조금 들춰본 적 있습니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과학 교재의 본문에서 성경 구절을 그대로 직접 인용해 과학 지식을 설명하고 있더군요. 또 이런 창조과학 교재의 서술 특징이 뭐냐면, 먼저 절대지식이란 것은 없다, 현재 과학 이론도 틀릴 수 있고, 또한 지나온 과학의 역사를 보더라도 과학 이론이 받아들여졌다가 나중에 뒤짚힐 수 있듯이 지금의 과학 지식도 가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진화론 주장과 우주와 지구 나이 이론도 있는데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그렇기에 그것과 동등하게 성경에 나오는 이런 구절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식으로 서술하더군요. 어찌보면 과학에는 매우 강한 회의론을 불어넣으면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기계적인 서술 균형을 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00A.jpg “과학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건 맞아요. 근데 자신들은 또 다른 전제를 갖고 있어요. 성경은 절대적으로 맞다는 전제로 시작하는 거죠. 그러나 과학을 하려면 객관적으로 연구를 해야 하는데, 신앙인으로서 과학이 아니라 믿음을 갖고 접근하는 거죠.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과학을 하려는 겁니다.”


신앙인으로서는 나름대로 진정성 있는 활동이라고도 볼 수 있잖을까요?

00RST1.jpg “물론 그분들이 신앙인으로서 그런 주장을 하시는 진정성은 이해합니다. 진정성 없이 그런 일을 애써 나서서 하기는 쉽잖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건 결과적으로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과학을, 진실을 왜곡하니까요. 그런데 이 사람들의 동기는 순수하고 열정적일 거라고 믿습니다. 왜냐면 이거 한다고 돈 받는 거 아니니까요. 거의 다 이공계 석박사거든요. 이거 안 하면 오히려 비난 안 받고 얼마든지 자기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이걸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진정성 없이는 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데, 그런데 진짜 진정성을 의심받을 사람들이 있지요. 자신은 그렇게 안 믿으면서 따르는 분들이, 목사나 신학자 중에는 꽤 많이 있다는 거죠. 먹고 살기 위해서. 목사 중에서 이게 정말 맞다고 믿는 사람도 있어요. 저도 나름의 신념을 갖고 있듯이 그런 사람의 진정성, 신념은 존중해주고 싶어요. 그러나 이게 틀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직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문제죠. 물론 이해는 돼요. 목사들한테도 가정이 있으니까. 저도 대광고에 있을 때까지는 완전히 솔직하지는 않았고. 하지만 목사들이 할 말 못하고 있으면 목사한테 배우는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잘못된 걸 배우잖아요. 비과학적인 걸 과학적인 걸로 오해할 수 있고. 신화를 사실로 곡해함으로 발생하는 우리 실생활의 왜곡 현상이 있을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 것들이, 의도는 혹 나쁘지 않더라도 결과는 상당히 나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창조과학은 극복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교리기독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해도 긍정한다고 했지만, 본래의 기독교 정신으로 본다면 기독교인일 수밖에 없고, 저는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저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독실한 신앙인이 아니라고 양보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물론 성자처럼 사시는 분들보다는 못하겠지만요. 그러면서 저는 현대 과학의 흐름을 당연히 받아들이죠. 진정한 종교와 과학은 함께 갈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를 배반하는 거에요. 예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어요.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말라, 기록된 대로 믿어라, 이렇게 말하시는 분이 아니었어요.


00Q.jpg 주류 신학에서는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크지 않다면, 리처드 도킨스가 과학 대 종교를 대립적으로 보면서 여러 책도 쓰고 한 것은 왜일까요?

00A.jpg “우리가 서양 사람들의 한계도 알아야 해요. 서양 사람들한테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어요. 2000년 전부터 태생적으로 세뇌된 게 있어요. 종교 하면 곧 기독교인 거예요. 그리고 종교 하면 곧 신이 있어야 해요. 그 신은 성서가 말하는 신이죠. 그러니까 (서양 사람들은)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도킨스 책(<만들어진 신>)을 읽어봤어요, 정독하지는 않았지만. 거기에서 보면 불교나 이런 것을 종교로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도킨스가 얘기하는 종교는 유일신 종교라는 겁니다. 그런데 릴리즌(religion)이라는 영어는 라틴어 동사인 렐리가레(religare)에서 왔다고 해석되는데 렐레가레는 ‘다시 맺는다’는 뜻이에요. 신과 인간의 끈이 본래는 이어져 있었는데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타락하면서 끊어졌다는 겁니다. 이걸 다시 맺게 해주는 게 종교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릴리즌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교리 기독교의 소산이에요. 이걸 종교의 전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동양에서 말하는 종교(宗敎)는 으뜸 가르침이라는 말이거든요. 이 말을 일본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해서 이 말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것도 문화적 배타주의에요. 일본 사람이 정립했건 어쨌건 적절한 말이면 받아들여야죠. 아무튼 종교(宗敎)는 으뜸 가르침이라는 뜻이거든요. 또는 근원 가르침…, 우리 인생과 삶과 세계의 근원에 대해 가르쳐주는 것, 그래서 으뜸이 되는 가르침이 종교라는 거죠. 종교란 그런 거에요. 신이 있거나 없거나. 그래서 동양 종교에는 신이 없기도 있기도 해요.

 그러니까 도킨스가 말하는 것은 서양 유일신 종교를 기준으로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도킨스는 깊게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에요. 샤르뎅이나 헤겔 이런 사람들한테는 이미 신에 대한 개념이 유일신, 인격신을 벗어나요. 신이 인격적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는 거죠. 이렇게 본다면 과학과 충돌할 게 없어요. 아주 기분 좋게 과학과 동거합니다. 그러면서도 신을 찾고 신에게 감사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세계 기독교권 전체에서 주류는 근본주의(복음주의)라기보다는, 성서 창세기를 신화로도 해석하는 문화가 있고 그게 주류 신학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도킨스가 그런 책을 쓸 정도라면 실제로는 주류 신학이 인격신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지요. 제 말씀은 기독교의 주류가, 목사님 해석과는 달리 주류가 여전히 인격신관을 갖고서 창세기를 믿고 있는 건 아닌지요?

“그렇지는 않고요. 도킨스가 기독교 신학을 어느 정도까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일단 도킨스가 미국 기독교의 근본주의를 겨냥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도킨스의 책 <만들어진 신> 한 권만 읽어봤어요. 제가 생각하는 가능성은 둘이에요. 도킨스는 어쨌든 기독교 신학 분야에서는 아마추어라고 생각해요. 그가 정말 기독교 현대 신학을 제대로 파악하고서 하는 얘기라면, 이 분의 주장은 미국의 근본주의(복음주의) 기독교를 겨냥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가능성으로) 도킨스가 인격신관의 보수적 기독교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독교 전체를 두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라면, 미안하지만 도킨스는 기독교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사님 말씀을 듣다보니 리처드 도킨스가 강조하는 종교 대 과학의 대립 구도에서 종교라는 것은 모든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를 통칭하는 게 아니라 미국 중심의 근본주의 교리 기독교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도킨스가 이렇게 여러 갈래의 기독교 흐름을 다 파악하고 평가하면서, 종교를 이야기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인격신관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기독교를 대상으로 삼아 종교 대 과학의 대립 구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격신관을 재해석하는 말씀을 듣다보면 자연신관(자연신학)으로 빠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그것(자연신관)과 또 다른 게 자연신관 하면 그냥 자연에 머무를 수 있죠. 하지만 기독교의 신은 그냥 자연신관이 아니라 자연을 있게 한 존재, 원인이자 궁극일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점에서 자연신관과 구분이 됩니다. 그냥 범신론이 아니라, 그냥 자연과 섞여 있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있게 한 그런 궁극일 수 있는 거죠. 그러면 이건 인격이냐 아니냐를 묻기보다는 절대지성으로 이해하는 게 낫지요. 절대이성, 그런 게 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거죠.

 절대이성이라고 얘기한다면…, 동양철학에서는 리(理)라는 게 존재의 궁극을 논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법, 공, 이런 것도 비슷하죠. 그렇다면 (열린 기독교는) 동양철학과도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한 거에요. 열린 기독교는 모든 종교와 대화가 가능하고 과학도 아무런 갈등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요. 진정한 기독교라고 한다면.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다면 그렇죠. 왜냐하면 예수는 그런 편견이 전혀 없었던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예수님이 모든 걸, 과학을 다 아셨던 분은 아니고 그냥 사람을 사랑한 분이었어요. 하늘 공경, 인간 사랑…. 네 몸과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게 예수의 가르침의 전부라고 생각해요.

 예수는 당연히 과학을 모르죠. 2000년 전 사람이니까 모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그렇게 열린 예수님이시라면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사신 분이라면 이런 정직한 과학을 부정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거죠. 그게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이라면, 이 기독교가 과학과 충돌할 이유가 뭐 있느냐는 거죠,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종교와도 문화와도 충돌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00Q.jpg 그러면 이렇게 물어볼게요. 목사님, 독실한 기독교인도 충실한 진화생물학 연구자가 될 수 있나요?

00A.jpg “그럼요. 진정 깨어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면…. 그러니까 ‘독실하다’고 말할 때 ‘어떻게 독실한가’ 하는 게 문제가 되겠지요. 열린 신앙인 중에도 독실한 크리스찬이 있을 수 있고 사이비가 있을 수 있고, 보수 신앙인 중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일단 저는 진지한 신앙인은 열린 신앙인이나 보수 신앙인이나 다 존중하고 싶은데, 독실한 크리스찬 중에서 열린 신앙의 기독교인이라면 과학과 대립하는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독실한 신앙인인데 교리기독교에 매어 있다면 당연히 (진화론 과학을) 받아들이지 않겠지요. 이 사람들은 창조과학의 논리에 긍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만이 독실한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건 오류가 있다는 거죠. 독실한 신앙인이란 곧 성경만 찾는 교리 신앙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보수 신앙인 중에도 독실한 신앙인이 있고, 종교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열린 신앙인도 정말 예수 가르침을 따르려 한다면 독실한 신앙인으로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 사람은 (종교와 과학의 대립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죠.”


과학에서는 우주 빅뱅 이전은 과학이 얘기할 수 없는 영역이고 과학은 빅뱅 이후를 얘기할 수 있다고 해서 종교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여지를 남겨두고, 마찬가지로 종교에서도 특정한 성경 문구도 신화나 전설 같은 스토리텔링, 다른 메시지 전달을 위해 은유나 비유로 스토리텔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종교적 삶이 과연 뭐냐 성찰할 때 과학과 충돌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거군요.

“그렇죠. …얼마 전에 도킨스가 성공회 대주교(로완 윌리엄스)와 토론한 거 아십니까? 그런데 굉장히 싱겁게 끝났다죠. 왜 그러냐 하면, 이 사람이 보수 기독교에 대해서는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성공회에 대해서는 그다지 날을 세울 게 없었을 거든요. 제가 영국 성공회는 잘 모르지만, 한국의 성공회는 굉장히 열려 있어요. 대주교도 공부를 많이 한 분일 테고, 그렇다면 아마도 열려 있는 분일 겁니다. 그러니까 도킨스가 성공회 대주교와 토론하면서 날을 세울 게 별로 없었을 거에요. 오히려 도킨스가 ‘문화적으로는 저도 성공회 교인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굉장히 의미 있는 얘기라고 봅니다.”


흔히 우리가 ‘과학 대 종교’의 대립을 얘기하면서 종교를 생각할 때에는 흔히 근본주의, 창조론, 무오설 이런 게 전세계에서 과학과 대립하고 있는 듯이 연상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고요. 창조과학이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는 건 한국과 미국 외에는 못 봤어요.”


00Q.jpg 그래도 창조과학회의 자연과학 교재 집필진을 보면 이렇게 많은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창조과학회 조직도 지부를 갖출 정도로 꽤 많은 참여가 있고요.

00A.jpg “그렇죠. 저는 묘하게도 주류 교회에서, 그것도 괜찮은 곳에 많이 있었어요. 영락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고 기독교학교인 대광고에서 교목 생활을 했어요. 또 소망교회에서 교육목사 생활도 2년 동안 했는데…, 결국 제 신앙이 들켰어요.

['신앙이 들켰다'는 말씀은…?]  한번은 소망교회 지역모임에서 다른 종교를 비난하면 안 된다, 불교도 존중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이 얘기가 위에도 올라가 알려져 문제가 되고, 몇 달 뒤에 제가 소망교회 교육목사를 사직했어요. 대광고 교목으로는 훨씬 더 오래 있었지만요. 이웃 종교를 존중하자는 말도 못 받아들이는 거에요.

 목사님 중에 이런 말을 하는 분도 봤어요. 큰 교회에는 의사, 정치인, 법조인, 이렇게 꽤 쟁쟁한 사람들도 교인으로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자기 일만 할 줄 알지 천하에 무식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맞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굉장한 사람이지요, 자기 전공 분야에서는. 그러나 신학자가 아니라 과학자에요. 과학에서는 쟁쟁한 사람이지만 신학에서는 아마추어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이공계 석박사들이 몰려서 이걸(창조과학을) 하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과학자라면서 과학 아닌 신학의 문제에 뛰어들어서 신학의 문제를 논하니까 문제이지요.

[창조과학을 과학 아닌 신학으로 보시는군요]   제가 볼 때에는 그래요. 과학을 하려면 정직하게 과학을 해야죠, 전제 없이…. 그런데 이 사람들이 과학을 한다고 보기 힘든 게, 신학적인 전제를 갖고 있어요. 전제가 있으면 과학 성립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런 전제를 갖고서 하고 있거든요. 얼마 전에 보니까 우리나라 양궁 대표 선수들이 체력훈련 한다고 스케이트를 타더라고요. 그런데 나보다도 못 타요. 아무리 양궁에서는 프로라 해도 스케이트화를 신으면 절둑일 수 있는 거에요. 아무리 이공계 박사라 해도 신학 전문가는 아니거든요, 종교 문제에서는 아마추어라는 거죠. 과학의 영역에 무리하게 종교를 끌어다가 과학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전제를 다 내려놓고서 과학에 충실해야지요, 하나님 말씀을 전제로 하는데 이게 어떻게 과학일 수 있느냐는 것이죠.”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이 과학과 대립하지 않을 수 있다, 종교와 과학이 대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 그런 해석의 신학이 지구촌 차원에서는 주류라는 말씀은 종교와 과학의 대립을 우려하는 시각에서는 위안이 됩니다. 이만,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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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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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을수록 참기 어려운 ‘하품의 전염’…왜?참을수록 참기 어려운 ‘하품의 전염’…왜?

    뉴스오철우 | 2017. 09. 07

    ‘남의 하품 보며 나도 모르게 하품 따라하기’ 메아리현상참을수록 하품의 방식이 달라지긴 해도 하품충동은 커져 뇌의 1차운동피질 차이에서 전염성 하품 기질 차이 설명 나른하거나 무료한 이 시간에…. 마침 옆사람이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 “과학기술자, 역사관 필요없는 도구적 존재 아니다”“과학기술자, 역사관 필요없는 도구적 존재 아니다”

    뉴스오철우 | 2017. 09. 06

    창조과학자 박 장관 지명 논란 청와대의 해명 이후, 과학기술인단체 ESC 논평 과학기술인단체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최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지명 논란과 관련해 논평을 내어 “창조과학자의 국무위원 지명은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