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해외 방문연구 경험과 기회,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서

배현진의 “연구실에서 만난 꿈, 고민, 미래”


(11, 마지막회) 카네기천문대에서 보낼 방문연구 생활

00Magellan.JPG » 카네기천문대는 칠레의 라스 캄파나스(Las Campanas)에 있는 구경 6.5 미터짜리 쌍둥이 마젤란 망원경(사진)을 비롯하여 다수의 첨단 관측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은 칠레 라스 캄파나스에 있는 마젤란 망원경과 밤하늘 은하수의 모습. 두 대의 6.5미터 구경 망원경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방문 연구 기간에 망원경 관측 제안서를 제출해볼 계획이다.


난 2월 중순. 짧았던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나는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앞으로 1년 간 미국 패서디나에 있는 카네기천문대에서 진행할 방문 연구를 위해서다. 과정이 험난하긴 했지만 어렵사리 집은 구했다. 그런데 그 안에 가구도, 타고 다닐 차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나 혼자 먼저 가서 준비를 해놓고 아내와 아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아이가 너무 어려서 공항이나 비행기와 같은 시설을 이용하는 것에 부담이 있기도 했다.


가족과 잠시 떨어진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며칠간 밤낮으로 아이를 달래고 온 터라 비행기에 앉자마자 피로가 몰려온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몰라도 비행기에 여유 좌석이 넘쳤다. 그리고 아주 운 좋게도 내가 앉은 좌석 옆 두 자리가 모두 비어 있었다. 당장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하게 될 미국 생활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제쳐놓고 나는 옆으로 누워 오랜만에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



비행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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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비행기에 타자마자 그동안 갖고 있던 많은 긴장이 오히려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방문 연구가 계획되었던 순간부터 많이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장거리 비행이란 것은 아주 신기하게도 새로운 시작에 대한 좋은 분기점이 되어준다. 몸과 함께 마음도 반강제적으로 새로운 곳으로 실려 보내지는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또 다른 새로운 시작에 기분 좋게 몸을 맡겼다.


먼저 내가 가는 곳, 카네기천문대(Carnegie Observatories)에 대해 잠시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카네기천문대가 속한 카네기과학연구소(Carnegie Institution for Science)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1835-1919)가 자신의 회사에서 퇴임한 직후인 1904년에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종합 과학 연구소다. 초기 설립 비용이 당시 돈으로 1000만 달러, 그리고 이후 5년 사이에 1200만 달러가 더 들었다고 하니 그 액수가 정말 천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소의 행정본부와 천문학 외에 다른 과학 분야 연구소 건물은 미국 수도인 워싱턴 디시(D.C.)에 함께 있는데, 천문대 본부는 이곳 패서디나에 따로 위치하고 있다. 패서디나의 카네기천문대 본부에는 대략 50여 명의 연구원들과 10여 명의 행정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내가 연구하는 '은하의 생성과 진화' 분야를 비롯해 천문학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여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얼핏 보면 좀 작은 규모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연구 실력은 세계적 수준임에는 분명하다. 이러한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천문대에 속한 최상급 연구진들이겠지만, 카네기천문대가 갖추고 있는 독자적인 천문 관측 시설의 덕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카네기천문대는 칠레의 라스 캄파나스(Las Campanas)에 있는 구경 6.5 미터짜리 쌍둥이 마젤란 망원경(사진)을 비롯하여 다수의 첨단 관측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 대형망원경 프로젝트인 ‘거대 마젤란 망원경’ 프로젝트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이곳 카네기천문대에 대한 소개는 어느 정도 된 것 같다.       



좋은 경험과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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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번 방문 연구가 한국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하고 있는 대학원생에게 아주 좋은 기회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방문 연구를 통한 과학적인 성취도 중요하겠지만, 연구원들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나에겐 무척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교과서에서 보던 분들이 직접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박사과정 4년차를 시작하는 이 마당에도 아직 그런 분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아마도 그들이 더 이상 신기하게 여겨지지 않을 즈음에 졸업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는 나에게 ‘어떻게 그곳에 갈 수 있게 되었나요?’ 라고 물어보실 수도 있겠다. 사실상 이번 방문 연구는 내 주변의 여러 가지 새로운 상황이 겹치고 겹치면서 가능해졌다. 짧게 이야기하면, 운이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침 지도교수님이 안식년을 맞아 카네기천문대에 가시려는 마음이 있었고,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제안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마침 대학원 수업도 모두 들었기 때문에 장기 출장을 갈 수는 있는 상황이었다.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이곳에 발도 못 붙여보고 졸업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마침 그 즈음에 학교 자체에서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해외 연수 장학생을 모집하는 공고까지 올라왔다. 딱 2명 모집일 뿐이었지만 ‘이건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운 좋게도 선발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미국에 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하지만 운이라는 것만으로 어찌 이런 진행과정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사소해 보이던 순간들이, 훗날 돌이켜보면 중요한 순간이더라.’는 식의 이야기는 식상하지만 좋은 말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다시 그 전에 일어난 선택의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연구도 하고, 놀기도 하고, 심지어 방황하기도 했다. 분명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 방문 연구가 어쩌면 다시 마음을 잡고 시작하라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돌이켜보니 후회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생존 위한 준비를 마치고 연구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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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내리자마자 캘리포니아의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가 반겼다 (나는 캘리포니아의 이런 날씨를 ‘뭐든지 잘 자랄 것 같은 날씨’라고 부른다). 걱정은 잠시 접어두세요~ 라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에 이런 날씨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의 올 겨울도 유독 추웠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북극 한파만 할까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바쁜 일정의 시작이었다. 집 계약을 마치고 나자 이제 가구를 들여놓고,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인터넷도 설치해야 했다. 먼저 와 계셨던 교수님 댁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고 아주 기초적인 살림살이 쇼핑을 했다. 챙겨온다고 챙겨왔지만 막상 베개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 안에 놓을 가구들은 값싼 중고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딱 3일 동안만 차를 빌린 터라 일일이 매물을 보러 다니고 흥정할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식탁이 없어서 다음날 아침밥을 서서 먹었더니 서러운 느낌이 들어서 그냥 빨리 식탁이라도 구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 유학생들이 자주 이용한다는 ‘이케아(IKEA)’에 방문해 가장 저렴한 가구들로 모아서 구입했다. 그날 주문한 배달이 당일 저녁에 도착했는데, 혼자서 거의 이틀 내내 조립했더니 진이 다 빠져서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차가 있는 기간에 여러 가지 ‘생존 장비’들을 사다 날라야 했기 때문에 쉴 시간이 없었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집이 어느 정도 구색을 갖췄다. 모두 갖추고 처음 해먹은 된장찌개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이정도 맛이라면 아내가 온 다음에도 칭찬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쁜 주말과 월요일을 보내고 다음날인 화요일, 연구소에 첫 출근을 했다. 간단한 행정 수속을 마친 뒤에 앞으로 1년간 머물게 될 방 배정을 받았고, 연구소의 비서 분께서 건물 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설명해주셨다. 방문과 우편함에 붙은 이름표가 방문연구생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소속감을 주면서 뿌듯한 기분이 들도록 만들어줬다. 오후에는 건물 안전을 관리하는 직원을 만나서 건물 전체를 돌아다니며 응급 상황시에 취해야 할 조처들과 탈출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캘리포니아는 단층대 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종종 지진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부디 긴급히 대피할 일은 없기를 바랄 수밖에. 그래도 그런 위급한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됐다. 또 다른 직원을 만나 어딘가 걸리게 될 얼굴 사진을 찍은 다음에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산 직원이 천문대 네트워크에서 사용할 계정과 프린터에 대한 세팅을 해줬다.


모두 마치고 방에 돌아오니 왠지 흐뭇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분명 이곳의 행정직원들이 천문대 연구원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마치 연구원들에게, ‘골치 아픈 것들은 신경 쓰지 마시고 연구에만 집중하세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한국의 연구소에 속한 연구원 분들에게 듣는 그곳의 이야기들과는 사뭇 달랐다. 어쩌면 이런 사소한 부분들이 연구 성과에 영향을 끼치는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오전 11시, 티타임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내 소개를 할 수 있었고, 연구하고 있는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대부분 박사들인 이곳에서, 동양에서 온 대학원생을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고마웠다. 또한 연구소에는 함께 방문한 지도교수님 이외에도 한명의 한국인 박사님과 그 아내분이 함께 계셔서 다행히도 새로운 환경에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이것 역시 나에겐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젠 정말, 내가 잘하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미국에 오기 전에 느꼈던 약간의 불안감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스스로 다지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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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연구소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정도 걸린다. 차는 필요할 때만 빌려서 사용할 계획이기 때문에 출퇴근용 자전거를 하나 구입했다. 그런데 웬걸, 첫날 출근하면서 보니 집에서 연구소까지 약간 오르막길인 것 아닌가. 어쩐지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 엉덩이도 아팠다. 안 그래도 그동안 운동 부족에 과체중이었으니 이번 1년간 살도 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어쩔 수 없이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각오를 한 것이 있다. 어느 때보다 부지런하게 살아보는 것이다. 그 시작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기, 이른바 나인 투 파이프(9-to-5)를 지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분명 올빼미형 인간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야간 생활을 즐겨왔다 (사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이다). 군대에 가면 바뀔까 싶었지만 군대마저도 24시간 3교대 근무를 하는 보직이어서 시간 조절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젠 변화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이고, 게다가 나는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며 집에는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심심했을(혹은 시달렸을) 아내를 위해서라도 내 저녁 시간은 비워줘야 할 의무가 생겼다.


부지런해지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여러 모로 2013년은 분명 나에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학원생으로서, 가장으로서 좋은 모습으로 변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분 모두 부디 응원해주시리라 믿는다. 이 연재는 여기서 마치지만, 조만간 더 좋은 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자고 스스로 약속한다. [끝]


배현진님의 청춘 스케치 연재 "연구실에서 만난 꿈, 고민, 미래'를 마칩니다.

그동안 배현진 님의 글을 애독해주신 독자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연구실에서 만난 꿈, 고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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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진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천문학에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연구하고 싶은 천문학도. 현재는 주로 은하와 그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사이의 진화적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 며, 빛공해와 같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이메일 : hjbae.astro@gmail.com       트위터 : @gowithsky      
블로그 : http://firststar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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