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프리온 단백질은 뇌발달 과정에 중요 역할”

광우병 일으키는 ‘변형’ 프리온과 다른 ‘정상’ 프리온의 기능연구

이탈리아 연구팀, 발달중인 해마에서 ‘뉴런 연결 강화’ 효과 실험


00prion4.jpg » 나쁜 프리온과 착한 프리온? 잘못된 '단백질 접힘 구조'를 지닌 변형 프리온(오른쪽)은 광우병을 일으키만, 제대로 된 접힘 구조를 지닌 정상의 프리온(왼쪽)은 생체 내에서 순기능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출처/ http://www.bio.davidson.edu/Courses/Molbio/MolStudents/spring2003/WilsonE/home.prions.html  


전자의 염기서열 정보에 따라 수많은 아미노산의 긴 사슬로 만들어지는 단백질은 정해진 지점에서 이리저리 접히는 복잡한 ‘접힘 구조’를 하고서 생체내 기능을 한다. 단백질이 어떻게 접혀 있느냐 하는 ‘구조의 차이'는 단백질이 하는 일의 ‘기능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단백질 접힘 구조가 바뀌면서, 이롭던 단백질이 해로운 단백질이 되어 선과 악의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잘못 접힌 변형 프리온 단백질은 체내에서 제대로 접힌 정상 프리온의 접힘 구조를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병원체인 변형 프리온의 수를 늘려 광우병을 유발한다.


프리온은 광우병을 일으키는 나쁜 단백질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프리온도 제대로 접힌 정상 상태일 때에는 광우병과는 무관하게 생체에서 필요한 어떤 순기능을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정상 프리온이 과연 생체내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관해서는 그동안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참조: 광우병과 프리온]

“광우병이란 영국에서 소나 양을 도축하며 버려졌던 머리뼈와 내장 등 부산물을 1972년부터 소의 사료로 쓰기 시작하면서 생긴 질병으로서, 1986년에 정식으로 학계에 소해면상뇌증(BSE)이란 학명으로 보고됐다. 광우병의 원인이 변형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인간광우병은 광우병 소에 있던 변형 프리온을 사람이 섭취했을 때에 생기는 새로운 뇌질환으로서 1996년에 공식 확인됐다. 자연적으로 발병하는 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sCJD)과 비슷하면서도 발병 연령, 임상 증상, 뇌파 등에서 확연히 달라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이라는 정식 이름을 얻었다. 광우병 소에 있던 변형 프리온이 사람 몸에 전달될 때 체내의 정상 프리온과 만나 정상 프리온의 단백질 접힘 구조를 서서히 변형 프리온의 구조로 변형함으로써 뇌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 정설이다. 변형 프리온의 위험성은 매우 강해 여러 동물 실험들을 보면 미량으로도 인간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사이언스온, 2010년 5월12일)

근래에 들어서야, 프리온이 체내에서 하는 일부 순기능이 실험실 연구를 통해 밝혀지기 시작했다. 2010년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의 신경학 연구팀이 정상의 프리온 단백질이 신경조직을 보호하는 생체 물질인 ‘수초(myelin sheath)’를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을 처음 밝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보고했다. 즉, 정상 프리온은 신경 보호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최근 정상 프리온이 뇌 발달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탈리아 국제고등연구학교(ISAS)의 신경생물학자 엔리코 체루비니(Enrico Cherubini)의 연구팀은 최근 <저널 오브 뉴로사이언스(Journal of Neuroscience)>에 낸 논문에서, 발달 단계의 뇌에서 신경세포(뉴런)의 구조와 기능이 형성되는 과정에 프리온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쥐 신경세포 대상 실험에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과학저널 <네이처>의 뉴스 보도를 보면, 연구팀은 프리온이 발달 단계의 신경세포 세포막에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프리온 단백질을 지닌 실험쥐의 해마에서 추출한 신경조직과 프리온이 없는 유전자 조작 실험쥐의 해마에서 추출한 신경조직의 개별 세포들을 대상으로 전기 신호의 자극을 주어 그 효과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에서는 정상의 프리온 단백질이 기능을 하는 신경조직에선 뉴런 간 연결이 강화되는 이른바 ‘장기강화(long-term potentiation)’ 효과가 나타났으나, 프리온 단백질을 제거한 신경조직에선 정반대로 뉴런 간 연결이 약화하는 이른바 ‘장기억압(long-term depression)’ 효과가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해마 부위에서 뉴런 간의 연결을 강화하는 장기강화는 학습과 기억 기능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결과는 프리온이 있느냐 없느냐가 뉴런 간 연결을 강화하거나 약화하는 차이를 만들어냄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프리온이 적어도 해마의 발달 과정에 뉴런 간 연결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용어 설명]

장기 강화(long-term potentiation)는 신경과학의 분야에서 신경세포를 동시에 자극하는 것에 의하여 두 신경세포의 신호전달이 지속적으로 향상되는 현상을 말한다. 신경세포는 시냅스 결합을 통하여 신호전달을 하며, 기억은 이 시냅스에 축적되어 있다고 여겨지며, 장기강화는 학습과 기억의 주요 세포학적 메커니즘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한글 위키피디아)
장기 억압(long-term depression)은 신경과학 분야에서 몇 시간 혹은 그 이상 지속되는 형식적 자극에 대해 신경세포 시냅스의 활성 효율이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장기강화(LTP)는 장기억압에 반대되는 기작이다. (한글 위키피디아)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팀은 프리온 단백질을 지니는 신경세포에서 뉴런 간의 연결 강화, 즉 ‘장기 강화’ 효과를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특정 효소를 찾아냈으며, 프리온 단백질을 없앤 신경세포에서 뉴런 간의 연결 약화, 즉 ‘장기 억압’ 효과를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특정 효소를 찾아냈다.


네이처 보도에서, 연구팀은 “이는 프리온 단백질이 해마의 발달 과정에서 그 방향을 제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프리온 신호를 세포막에서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분자가 무엇인지 규명하는 게 다음 연구과제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해마의 장기강화 과정에서 프리온이 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밝혀냈다는 데 의미가 있는데, 연구팀은 정상 프리온 단백질이 뇌의 다른 부위에서도 비슷한 기능을 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네이처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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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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