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실험실의 끈끈한 인연, 졸업 그 이후에도

한아름의 “실험실의 좌충우돌 일상” (11)


졸업 뒤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까

00after.jpg » "2년 남짓한 시간, 그렇게 길지만은 않은 그 시간에 실험실에서 함께 생활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소중한 인연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금쯤이면 입학하기도 전에 실험실에 나와서 실험을 배우는 신입생들도 있을 것이고, 졸업 학기라 이미 회사 등의 일터에서 새로운 일을 배우고 있는 졸업생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푼 마음으로 열심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대학원 졸업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제 막 실험실에 들어온 새내기들은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도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한번쯤은 ‘졸업만 하면 나도…’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졸업만 하면 무거운 연구 과제와 복잡한 실험실 생활에서 해방될 것 같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해방감에 날아갈 것 같은 느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로 졸업을 해 보니, 졸업 준비 과정 등에 의해 실험할 때와는 또 다른 고민들로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미운 정도 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매일 드나들던 실험실, 내 자리, 내가 쓰던 실험 도구들 그리고 함께 고생한 동료들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커지기도 한다. ‘졸업 축하한다’는 지도교수님의 문자 메시지에, ‘졸업하면 날아갈 듯 기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르다’고 솔직한 답장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신입생들도, 졸업생들도, 그리고 한창 실험 중인 연구원들도 대학원 졸업 이후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써내려갈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기대한다.



미운정 고운정, 실험실의 절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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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교육과 연구실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은데, 먼저 우리 연구실 소개를 해야 할 것 같다. 화학교육과는 기본적으로 전공과목의 내용에서는 자연대학 화학과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교육학 관련 과목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고, 화학교육론 같은 과학교과 교육에 관련된 수업과 실습이 더해진다. 대학원 과정도, 크게 화학과에서 나누는 4가지 화학 분야(유기화학, 분석화학, 무기화학, 물리화학) 이외에 화학교육 분야의 연구실이 있다.


화학교육 연구실을 제외한 각각의 연구실은, 자연대학처럼 기초과학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실험팀과 각 분야의 교육에 관한 연구를 담당하는 교육팀으로 나뉘어져 있다. 나는 이 중에서 유기화학 실험팀에 속해 있었다. 실험팀 연구실에서 하는 일은 자연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범대학이라는 단과대학의 특성상 구성원들의 배경이 다양하다. 학부 과정을 마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직 교사로 일하다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도 많다. 또는 비사범대 출신 학생이 석사과정을 하면서 교직과정을 이수하여 교사의 꿈을 이루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실험실에서 함께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인연은 사회 어느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보다 특별하고 끈끈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작은 공동체에 함께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사범대학은 학부생 수도 적지만 연구실의 구성원 수가 적고, 다들 기본적으로 교육자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더욱 친근한 분위기이다. 게다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지도교수라는 ‘공동의 상사’ 아래에서 하루 종일 밀도 있게 생활하기 때문에 서로 더 친해질 수밖에 없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실험실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서 오죽하면 우리 실험실 사람들은 퇴근 인사가 ‘좀 이따 보자’였을까.


다른 실험실도 비슷하겠지만, 박사과정은 박사과정끼리 좀 더 친하고 석사과정은 석사과정끼리 좀 더 친하다. 우리 실험실도 역시 나를 포함한 내 나이 또래의 석사과정 여자 연구원 네 명이서 주로 친하게 지냈다. 실험실 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 함께 밥 먹고, 함께 웃기도 울기도 하였으며 때론 다투기도 하였다. 실험이 너무 안 풀리고 힘들어서 그만둬야 할 것 같다며 울면서 난리를 치는 것을 겨우 달래 놓으면 또 다른 사람이 못하겠다며 힘들어하고… 정말 실험실 생활 내내 연속되는 사건 속에서 우리들 사이에 명언이 있다. ‘겹치지 않아 다행이다.’


실험 이외의 문제는 어떠한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서 상념에 잠겨 있는 동료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실험 때문에 그렇게 바쁘다더니, 아는 주변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소개팅 할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주말이 지나면 당연히 구두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법. 그러나, 역시 남녀관계는 인력으로 되지 않는 것 같다. 실험에 찌든 자신의 몰골을 탓하며 졸업만 하면 예쁘게 꾸미고 당당하게 남자친구를 만들 것이라며 이를 갈던 그녀들…



실험실 선후배, 인생 선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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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네 명이 모두 졸업을 했다. 졸업을 하니 역시 백옥 같던 피부가 되돌아온다. 실험실이 유독 힘들어서인지 졸업을 하고도 우리 실험실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모두가 졸업을 하고 처음 모인 자리, 서로 다른 일을 하는 네 명이 다시 만났다. 원래 근무하던 고등학교로 돌아간 그녀, 이전에 하던 과학기자 생활을 뒤로 하고 제약회사에 취직한 그녀, 화장품 회사에 취직하여 각종 기념일마다 푸짐한 샘플을 선보이는 그녀, 또 치의학이라는 다른 학문에 겁없이 발을 담근 나까지.


매일 함께하던 우리가 이제는 각자 다른 곳에 속해서 하고 있는 다른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어색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상대방의 일이나 구사하는 전문용어도 약간의 부연 설명을 곁들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느꼈다. ‘과학’이라는 큰 뿌리를 아래에 두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뭇가지들처럼, 우리는 다른 듯 또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졸업을 하면 직장을 갖고, 또 결혼도 한다. 실험실에서 나에게 피펫(pipette) 잡는 법을 처음 알려주었던 수진이는 어느덧 결혼을 하여 아기도 낳았다. 결혼하고 집들이에 초대받아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기도 했는데, 푸짐한 요리를 어떻게 혼자 다 준비했느냐고 물었더니 화학 실험을 해서 그런지 계량컵 없이도 부으면 적정량이고 타이머 없이도 뚜껑을 열었다 하면 음식이 딱 맞게 익어 있더라고 해서 크게 웃은 기억이 있다. 또, 아기를 가진 실험실 동료의 배를 만져보고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했고, 다함께 아기 옷을 고르러 다니기도 했다.


이후, 다른 두 언니도 좋은 짝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고, 나는 부케를 받는 영광도 얻었다. 한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 언니들이 신혼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 연구실 선배이자 인생 선배인 수진이가 지역별 부동산 맞춤 특강을 열기도 한다. 각 지역의 부동산 시세와 교육환경, 직장과의 거리를 꼼꼼하게 따진 기록을 보고 있으면, 실험실에서 물려받았던 실험노트에서 본 필체가 그대로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는 실험실 선배이자 인생의 선배에게 육아 노트를 꼼꼼하게 작성하여 물려 줄 것을 당부하였다. 자로고 노트는 과정부터 결과까지 세세히 기록해야 한다며 실험실에서 무수히 들었던 잔소리를 잊지 않고 그대로 해 주었다.


실험실 생활을 경험하고 졸업한 선배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졸업 직전 후배에게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인수인계하고 모든 자료를 정리한 후 설명하고 실험실을 떠나게 된다. 오랫동안 실험한 사람이 없더라도 그 실험 기록과 샘플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꼼꼼하고 명확한 기록은 실험에서 매우 중요하다. 신경 써서 기록하고 충분히 알려준다고 알려주어도 막상 실험을 하다 보면 막히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졸업한 선배에게 전화를 하여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졸업한 선배 한 명이 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졸업 후 1년만에 실험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도 샘플 위치를 묻는 질문을 받자마자 교무실 냉장고가 샘플박스로 보이면서 냉동실 깊숙이 위치한 샘플의 정확한 위치가 떠오르더라는 일화에 모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동안 샘플을 많이 다루고 애착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실험실에 있는 후배들에게 과학 하는 사람들이 속한 사회나 직장 생활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고 가장 현실적으로 조언해 줄 수 있는 것도 졸업한 선배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



흰 가운에 피펫, 원피스에 하이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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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서 가운을 입은 채 각종 실험 기구에 둘러싸여 실험하던 그들. 졸업을 하고 생기발랄한 원피스와 하이힐로 무장하여 한껏 뽐낸 지금, 그들의 모습 뒤에 가려져 있는 예전 실험실에서 생활했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면 웃음이 새어 나온다. 서로 묵인하는 `올챙이 적 모습'이라고나 할까. 2년 남짓한 시간, 그렇게 길지만은 않은 그 시간에 실험실에서 함께 생활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소중한 인연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학교를 떠나 사회인이 되어서도 함께 담소를 나누고,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인생의 큰 행사에도 변함없이 서로 곁을 지켜주는 사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힘든 배움의 시간을 통해 사회로 진출하여 각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과학 연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앞으로,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도 늘 끊임없이 그래왔듯이, 일을 하면서든 개인적으로든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에도 우리는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험실 생활을 할 때보다 더 풍성하고 깊이 있는 조언과 격려를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의 자리에서, 그리고 졸업 이후 사회의 각 자리에서 날마다 새로운 연구와 과학적 발견에 힘쓰면서 스스로 담금질하고 있는 많은 과학인들도 또한 모두가 넓은 범위에서 선배, 후배이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사이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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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 경북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대학원생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에서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장래 희망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과학인이 되는 것.
이메일 : areumhan24@gmail.com       트위터 : @areumhan24      
블로그 : http://plug.hani.co.kr/areumhan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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