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내 지도교수의 연구·교육 스타일 관찰기

오하나의 “식물 실험실의 생명 왈츠”


(10) 연구실의 사제 관계

00prof4.jpg » 일본 교토대학교의 우리 연구실 사람들(2012년).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마츠다와 히가시는 2012년 3월에 석사 졸업을 했다. 뒷쪽에는 교토대의 상징인 보리수나무가 있다. 두 딸을 안고 있는 분이 세토구치 히로아키 교수다. 사진제공/ 오하나


사학위 논문을 무사히 마무리하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 된 원인으로 지도교수의 교육과 연구 철학을 꼽고 싶었다. 석사 과정이 결실을 맺어가는 이때에….


석사학위 논문 제출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1월 18일이니까, 이 글이 실리는 주의 목요일이 최종 마감일이다. 졸업을 앞둔 모든 학생들처럼 정신 차리고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지금 마음에는 여유가 생긴 상태이다. 석사 1년차 때 “데이터, 데이터”를 입에 웅얼거리며 실험만 했던 시절이 보상으로 돌아오기라도 한 것일까, 다행히도 국제 저널에 다시 투고할 원고를 완성했고 영문 교정까지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권위주의 없는 따뜻한 사제 관계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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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석사학위 논문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여 흐뭇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지도교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근차근’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던 교수의 역할이 제일 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연구의 주제를 좁히고 구체화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함께해 주고, 실험 방법을 ‘하나하나’ 지도해주고, 실험 결과를 ‘꼼꼼하게’ 토의해 주고, 빨간색 글씨로 ‘일일이’ 지적하며 영문으로 논문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교수는 아무리 바빠도 누군가를 시켜 나를 지도하게 하지 않고 일대일로(그야말로 가정교사처럼!) 모든 것을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교수의 이런 지도 스타일을 달게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얼마 전에 나의 개인 블로그에다 누군가가 자기 사연을 담은 메시지를 남겼다. 그분은 한국의 어느 화학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에 있었던 모양인데, 국제 저널에 투고했던 논문이 거절되자 지도교수는 모든 것을 그 박사과정 연구원 탓으로 돌리며 연구실을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분과 교수의 갈등을 지켜본 적 없는 나로서는 사정을 잘 모르니 어느 쪽 편도 들 수야 없었지만, 확실했던 건 그가 써놓은 “나가라”는 표현을 읽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는 점이었다. 이른바 “나가라”는 말은 결정권자가 피결정권자에게 일방적으로 내리는 명령이고, 나는 그런 명령이 내려지는 한국 대학원의 권위주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표현은 놀부 같은 주인 밑에서 눈칫밥을 먹어가며 근근이 살아가는 똥강아지가 실수 한 번 저지른 일로 쫓겨나는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교수한테는 연구 능력만큼 중요한 게 학생을 키우는 ‘교육자’의 능력 아닐까 한다. 교육자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들을 제대로 성심성의껏 ‘교육’ 할 의무가 있다. 석사·박사과정에 있는 연구생을 하나에서 열까지 차근히 가르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학생들의 ‘한 번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엄격함이 아니라, ‘몇 번의 실수를 통해서라도 제대로 배우면 된다’는 따뜻함으로 채워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결국 완벽하지 못하고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하는 학문 활동이니까 말이다. 실수와 실패가 뒤따르는 진리 추구 과정에는 실수와 실패 자체를 근절하려는 분위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해결해 나가자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훨씬 도움이 되기 않을까?



상대적인 약자를 배려하는 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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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학원에서도 학생과 교수 간에 갈등이 자주 생기고, 긍정적 의미이건 부정적 의미이건 괴짜 교수가 있는가 하면 괴짜 학생도 있다. 그래도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내가 직감적으로 아는 한, 연구 능력이 있는 괴짜 학생이 연구 외적이고 사적인 이유로(취향, 신념, 성격, 외모 때문에) 지도교수에게 인격적인 모독을 당하는 일은 적어 보인다.


00prof3.jpg » 지도교수의 일하는 모습을 살짝.... 사진/ 오하나 다음은 지난해에 실제로 우리 연구실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다. 어느 날 철학과 석사생이라는 한 학생이 우리 연구실의 문을 두드렸다. 자신은 당시에 석사 1년차인데, 2년차부터는 식물 계통분류학을 연구하고 싶으니 연구실 생활을 한 달 정도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검은 구두에다 오래 입어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남색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고, 그는 목에다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우리는 한 눈에도 그가 괴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교수는 그 학생이 우리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거절할 수 없었다. 교토대학교 인간환경학 연구과의 학칙 그 어디에도 교수가 주관적인 이유로 학생의 전공이동 의사를 막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학생은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다다다음날도, 같은 옷을 입고 냄새를 풍기며 나타났지만, 실험을 배우고 연구 활동을 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교수는 우리와 똑같이 그를 대했다. 한 달이 지나고 그가 자진해서 철학과로 돌아가는 날, 나는 이런 상황이 한국이었으면 어떻게 돌아갔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권력 관계에는 반드시 상대적인 약자가 존재한다. 교수가 학생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사제 관계에서는 학위가 권력이 되기가 무척 쉽고, 학생은 ‘절대적인’ 약자로 자리매김할 확률도 높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속담이 있다지만, 왠지 이 속담 대로면 억울한 중만 늘어날 것 같고, 절은 언제까지고 변할 의사가 없는 것 같아 이치에 맞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주관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서, 지도교수의 교육법을 스케치해 봄으로써, 좋은 사제 관계를 위해서는 학생만이 아니라 쌍방이 노력해야 하는 것임을, 아니 어쩌면 교수의 변화가 더 필요한 것임을 피력하고자 한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 근데 내가 알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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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아침 8시30분에 학교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웬만하면 연구실의 교수 책상에 앉아 있으려고 한다. 회의로, 또는 대외적으로 맡은 직책과 관련한 일로 허구한 날 연구실을 비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나이는 올해 50세. 지난해에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했다. 같은 연구실에서 교수와 종일 함께 있는다는 것은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교수의 태도가 권위적이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스케줄에 맞춰 각자 연구실 생활을 한다. 즉, 우리 연구실에는 따로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누구는 아침 9시에 오고, 누구는 밤 9시에 온다. 자기 연구를 착실히 진행시키고 세미나를 통해서 진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한다면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소리다.


교수가 성실히 연구실에 출근하다 보니, 실험 결과와 연구 주제에 대해 날마다 토론할 수 있다. 이것은 실험이 샛길로 새기 전에 대안을 마련해 데이터가 나오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첫째 실험 결과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드물고, 둘째 실험 결과가 행여나 산으로 갔어도 그 중의 반은 교수가 책임을 진다.


연구에 대해 토론할 때 교수는 제자와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말투와 자세에 무진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교수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학생이 모르는 게 당연하고 틀릴 확률도 높을 테니, 그것을 어떤 말투로 깨우쳐 주느냐가 학생 교육의 관건이라는 점 말이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


“아, 그건 자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내가 알기론 이렇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더 검토해 보세.”


“오, 그건 나도 몰랐던 점인데? 고맙네. 그런 사실을 알려 줘서. 아무개 학생 덕분에 나도 오늘 좋은 것을 배웠군.”


“아무개 학생이 실험을 통해서 밝혀낸 결과는 처음 우리 모두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해석해보고 싶어. 아무개는 어떻게 보나?”



토론 시간에 교수의 반응은 대충 이러했다. 물론 이런 스타일만이 훌륭한 연구실 분위기와 훌륭한 사제 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스타일로, 수평적이지 않으면서도, 스승과 제자의 마음에 깊은 공명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학생은 교수가 조금 거칠게 나오더라도 많은 연구 업적을 성취할 수 있게 만드는 환경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대입 수능 공부를 할 때, 자습이 맞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학원에 가야 효율적이라고 느끼는 학생이 있듯이 말이다. 다만 그렇더라도 지금 연구실에서 이런 지도교수의 교육과 연구 스타일이 나의 마음에 깊은 공명을 불러일으킨 것만은 분명하다.



과학자 된 옛 제자와, 동료처럼 연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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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교수가 졸업한 제자들과 계속 연구 관계를 맺는 방식이 참으로 흥미롭고 배울 만하다. 교수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아 졸업한 학생들에게 교수는 졸업식날 이렇게 축하해준다. “무사히 학위 과정을 마친 것을 축하하네. 앞으로도 독립된 과학자로 협력해서 연구하자고. 계속 잘 부탁하네.” 그러고는 제자와 연구 관계로 다시 만날 때, 제자 대 교수로 만나지 않고, 연구자 대 연구자로 만난다.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에도 옛 제자에게 할당된 연구에 대해서는 통솔하고 지휘하려 들지 않으며, 교수는 교수가 맡은 부분만을 신경 쓴다. 그래서 과거에는 교수 밑에서 일했던 제자였어도 현재 지도교수의 프로젝트 진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느냐며 독촉 전화를 걸어 오기도 하고, 교수의 연구 해석을 비판하기도 한다. 교수는 독촉 전화를 받고 이렇게 외친 적이 있다. 


“아악, 분발해야겠어!”


어찌되었건 옆에서 지켜본 내 지도교수는 성격으로건, 연구 진행으로건 학생과 부딪히고 갈등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잊어 버리고 가장 좋은 대안을 찾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나도 지난 2년 동안 교수와 사이가 어색했던 적이 잠깐 있었다. 내 건강이 나빠졌을 때였다. 개인 연구 외에 손을 뻗고 있었던 프로젝트 업무에서 빠지고 싶다고 말했을 때였다. 교수도 처음에는 연구비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내가 반드시 해줘야 하는 역할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대화의 끝에 가서는 내가 건강을 먼저 챙기는 게 옳은 것이라고 판단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 편하게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고, 현재는 다시 프로젝트 일을 돕기 시작했다.


연구실의 한 친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석사 1년차 생활을 소홀하게 보냈다. 교수는 친구의 공무원 취직 소식이 들릴 때까지 간간이 연락을 하며 졸업에 대한 우려를 표했지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줬다. 취직이 결정된 친구는 연구실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교수는 두 번 정도 학생의 연구 태도를 꾸짖고 경고했다. 하지만 동시에 졸업이 가능할 수 있는 해결책도 제시해 줬다. 졸업 시기까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연구 테마는 이렇게 축소하자. 니가 어디어디 보충 채집을 해 오고, 이 정도 실험만 해 준다면 석사학위를 수여해도 좋을 만한 연구가 될 것이다, 등등….



마음에서 마음으로, 너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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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교육 철학은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 데리고 연구하기 진짜 힘들군’이 아니라, ‘학생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당연해. 연구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이 얻어 가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에 가까워야 한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경험해 본 바, 그런 교수의 마음은 신기하게도 학생들 모두의 마음에 가 닿더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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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나 일본 교토대학교 인간환경학연구과 석사과정
커피, 식물, 음악, 남자를 좋아한다. 부자가 될 자신은 없지만, 여윳돈이 생긴다면, 남미와 티벳은 꼭 가볼 것이다.
이메일 : hanaoh.plant@gmail.com      
블로그 : flowersneversa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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