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졸업...삶의 한 단락을 끝내고 새 단락을 시작하는

한아름의 “실험실의 좌충우돌 일상” (10)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시작, 졸업

00gradation.jpg » 한겨레 자료사진


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이어 대학원까지. 20대 중반의 나이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우리 대부분은, 특히 이 글을 읽고 있을 많은 연구원들은 그 중 약 20년 정도를 학생의 신분으로 공부를 하며 살아온 것을 알 수 있다. 석사과정 졸업을 앞둔 때,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학교와 인연이 깊은지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석사과정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대학 동기를 비롯해 선배, 후배, 심지어 교수님들까지 모든 주변 사람들은 의문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공부를 잘 하지도 않았고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여러 대외 활동에 오히려 더 적극적인, 한 마디로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성실하고 공부를 잘하던 동기들은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 나처럼 오히려 학과 공부를 다소 소홀히 하던 학생은 늦은 나이까지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다. 신기하다.



내가 바라는 삶,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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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대단한 목표,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대학원에 입학한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급 책장에 꽂힌 많은 책 중에 과학책을 골라 읽고, 새 학기에 교과서를 나눠주면 가장 먼저 과학 교과서를 펼쳐보고, 고등학교 때에도 아무런 고민 없이 이과를 선택했듯이 나에게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실험을 하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임용고시에 집중하던 동기들이 “그럼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선 뭐할 건데?”라고 묻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는 못했고, 그렇게 뒤늦은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실험실에서 젊음을 불태우고 있는 과학인들 중에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진로를 결정하여 하루하루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젊은 과학도들의 열정에 비해 그들의 열정을 제대로 발산할 이정표, 혹은 메뉴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졸업: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 글의 제목만 보면, ‘졸업’이라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실제 대학원생들이 맞이하는 졸업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동안의 힘들고도 보람된 연구실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감상에 젖어 지난 날을 회상할 여력이 없이, 졸업을 통해서야 비로소 학교 밖의 매서운 사회,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실험실에 있을 때, 졸업하는 선배들을 보면 나도 빨리 멋진 논문을 써서 빨리 졸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얼른 실험실 생활, 학생 신분을 정리하고서 돈도 벌면서 사회생활을 하고 싶기도 하다. 특히 이렇게 공부를 오래 한 경우라면 주변에 일찍 취직해서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내가 시기적으로 조금 뒤쳐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석사과정 2년차쯤 되면 기업에서 진행하는 취업박람회에도 관심이 가고 슬슬 졸업 이후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석사과정 2년이라는 시간, 일이 고되고 힘들어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또 더디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참 짧은 시간이다. 1년간 열심히 실험을 배우고 나면 그 이듬해에는 어느덧 졸업 준비를 시작해야 하니 말이다. 요즘은 기업에서 연구장학생으로 석사과정의 우수한 인재를 졸업 1년 전부터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어 우리 연구실 식구들도 취업 준비를 더욱 서둘렀던 기억이 있다.



책임감 있는 연구자의 삶을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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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graduation2.jpg » 졸업은 한 단락을 끝내고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는 일이다. 사진/ 한아름 하지만 막상 졸업이 다가올수록 졸업을 하고 난 이후의 내 모습은 그리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할 때보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가장 심각하게 내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성적이나 점수라는 수치와 그에 따른 안내(이른바 ‘배치표’)가 자세히 나와 있어서 기껏 해야 몇 가지 보기 중의 선택에 대한 고민이 전부였다면, 대학원 이후의 길에는 무한한 선택지가 있었고 그뿐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가치들까지 판단해야 하기에 더욱 힘이 들었다. 게다가 부모님이나 어떠한 ‘책자’도 더 이상 결정에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석사과정 이후에 박사과정을 통해서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 생각도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석사과정을 하는 동안 힘들게 실험하고 논문 쓰고 하다 보니 ‘과학 하는 일’에 대해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박사과정 진학에 오히려 더 신중해졌다. 요즘은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연구를 계속할 학생들은 연구의 단절 없이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이 과정은, 내가 학교 다닐 당시 석사과정 1년이 지나면 신청을 할 수 있었고 정해진 심사를 거쳐 통과하면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통합하여 5년 내외로 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학생들은 학위과정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연구실에서는 박사과정까지 인력을 확보하여 장기적으로 연구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졸업 때가 다가오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나의 진로를 걱정하나 보다. 지도교수님도 박사과정에는 뜻이 있는지, 그렇다면 석박사 통합과정은 어떤지 의견을 물어오셨다. 그러나 박사과정부터는 내 분야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일을 평생의 업(業)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석사 하고 박사 하지 뭐’ 하면서 쉽게 얘기했는데 말이다.



다양한 진로, 다양한 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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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graduation3.jpg » 졸업은 누구에게나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다. 사진/ 한아름 우리 실험실은 주로 펩타이드를 연구하는 생화학 연구실이었기 때문에 회사로 취직한 선배들은 주로 화장품회사, 제약회사, 식품 관련 회사 등에 취직했다. 또한 사범대학 소속 연구실이었기 때문에 현직 과학 교사 중에서 대학원으로 파견을 나와 학위과정을 수료한 뒤 이전에 근무하던 학교로 복직하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연구를 하고 사회에 나가 있는 선배들이 나와 가장 처지가 비슷하고 내 상황을 잘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현재 몸소 이 분야에 몸담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는 선배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길에도 장단점이 있다. 과학 교사 하는 친구들이나 고시공부 했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각자 다 장단점이 있다. 그러니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갈팡질팡이었다. 심지어는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한 실험상자, 실험 관련 책을 만드는 사업을 해볼까도 생각했다. (글쎄, 미리 졸업 이후 계획을 세워두었거나 큰 고민 없이 진로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학원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나 진로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 ‘잿밥’에 관심이 유독 많았던 성격상 일반적인 진로 고민을 넘어선 고차원적인 고민에 빠졌다고 생각되기도 하니 독자님들은 이 점을 감안해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졸업이 다가올수록 이렇게 졸업 후의 모습을 고민하다가도 막상 발등에 떨어진 불을 무시할 수 없다. 바로 졸업 논문이다. 석사과정 내내 연구했던 내용을 차곡차곡 기록하여 졸업 논문으로 써서 한 권의 책으로 고통의 신음소리와 함께 세상에 내놓는 일을, 10개월 가까이 몸에 품으며 키운 아기를 낳는 출산 내지는 산고에 비유했던 나의 지난 글을 기억하신다면, 일반인도 실험실 졸업논문을 쓰는 연구원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해주실 수 있으리라. 실제로 석사과정 내내 주말도 없이 실험했는데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아 결국 논문을 완성하지 못하고, 예정된 취업도 취소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니 졸업 논문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논문이라는 것이 쓰면 쓸수록 어딘가 부족해 보이고, 실험 하나만 더 해서 데이터를 실으면 더욱 근사한 논문이 될 것 같아 속이 탄다. 수많은 시행착오들, 실험결과들, 그리고 몇 권의 실험노트에 빼곡히 적힌 실험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좀 더 정신 차리고 똑바로 배웠다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을까?’, ‘이때 이 방향으로 전환하여 실험을 진행했다면 더욱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을까?’와 같이 언제 해도 할 뻔한 후회와 자책들 말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실험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와 열정이 클수록 이런 아쉬움도 큰 것이라 위안해보는 수밖에.



졸업을 앞두고 돌아보며 내다보는 내 삶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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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졸업논문과 진로 결정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던 시기가 어느 순간 지나가고 졸업식 날 마음의 짐을 던 채 석사모를 쓰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 드디어 졸업이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까 싶을 정도로 까마득하던, 졸업이다. 아무리 힘들고 괴롭던 시간도 제대로 마무리가 되고 모두의 축하를 받으면 모든 것이 눈 녹듯 녹아 희뿌연 추억으로 변하게 되는 것 같다. 석사과정의 힘든 기억들은 연구하며 배우기 위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보람되고 가슴 뿌듯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리라.


아이러니하게도 졸업은 마무리의 의미와 동시에 시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졸업식 사진을 다시 보면서, ‘아, 이렇게 인생의 한 단락이 끝나고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같은 뿌리의 다른 공부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졸업하는 날 한아름 끌어안을 품 속 꽃다발만큼, 이번 겨울 졸업을 맞이하는 모든 졸업자들의 마음에 새로운 꿈과 미래를 가득 품고서 아름다운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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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 경북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대학원생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에서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장래 희망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과학인이 되는 것.
이메일 : areumhan24@gmail.com       트위터 : @areumhan24      
블로그 : http://plug.hani.co.kr/areumhan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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