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우물안 개구리의 해외학회 바깥세상 나들이

한아름의 “실험실의 좌충우돌 일상” (9)


해외 학회에 가다

000conference1.jpg » 한창 발표가 진행되고 있는 학회장 안의 분위기. 사진/ 한아름


전의 글에서도 썼듯이, 학회 참여의 경험은 대학원생에게 큰 의미가 있다. 농부의 시선으로 보면, ‘가을의 추수’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연구자들에게 학회 참여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더 나은 연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조언을 듣거나 평가를 받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주로 봄·가을에 국내에서 권위 있는 학회가 열리고 요즘에는 다양한 국제 학회들도 국내에서 많이 개최된다. 국제 학회에 참가하면 다양한 국적의 과학자들이 열심히 수행한 다양한 연구를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최한 국제 학회에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이 참가한 모습, 각 분야 권위자들이 강연을 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나 떨어진 한국까지 찾아와 연사로 나선 모습, 그리고 그들의 강연을 듣기 위해 강연 장소의 복도까지 다양한 인종의 과학자들이 가득 들어차 앉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과학계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든다. 화학, 생물학 등의 학회 각 분과에 참가해 보면,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나 할 정도로 기발하고 세부적인 연구 활동도 또한 인상적이다.



쳇바퀴 실험실 생활의 ‘공식적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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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conference2.jpg » 사진 맨위부터, (1) 일폰 펩타이드학회에서 연사로 초대된 지도교수님의 발표 모습, (2) 국제 학회의 강연 연사와 함께 기념 촬영, (3) 해외 학회에 처음 참여한 후배들, (4) 국제 학회의 만찬장에서, (5) 학회장 근처의 바닷가에서. 사진/ 한아름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국제 학회가 활발하게 열려 해외 학자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 만큼이나 우리나라 과학자들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해 다양한 연구 업적을 발표한다. 물론 우리 연구실 사람들도 해외 학회에 참석해 연구 성과를 발표하기도 한다. 비행기를 타고 이국 땅에 가서 나의 연구 내용이 담긴 자료를 다른 과학자들에게 보여주며 소개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학회’라는 것이 대학원생들에게는 단순히 학문 교류의 기회라는 의미만 지니는 게 아니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떠나지 못하던 실험실 공간을 떠나 바깥 세상을 구경하며 실험실 밖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적인, 허락된 ‘일탈’이기도 하므로, 대학원 생활 중에서 매우 특별한 이벤트로 여겨진다. 이런 일탈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하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지 않은가.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지는 귀한 일탈의 기회는 아무 때,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회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연구의 연장이고, 따라서 일체의 경비는 실험실에 책정된 연구비로 충당한다. 연구비는 연구 활동에 사용되는 분야에 따라 세부적으로 할당되어 있다. 예를 들면 실험에 사용되는 재료비, 실험하는 사람들의 급여로 사용되는 인건비, 외부활동비 같은 것들이 있다. 만약 해외 학회에 참석한다면, 교통비나 숙박비 등이 국내에서 개최되는 학회에 참여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이 들기 때문에 주로 교수님만 다녀오거나 박사과정 선배들, 더 여유가 있다면 석사과정 고학년 순으로 해외 학회 참여의 기회가 주어지게 마련이다.


우리 실험실에서 반드시 참여하는 해외 학회가 기본적으로 두 군데 정도 있다. 한 군데는 일본펩타이드 학회로 우리 실험실에서 주로 실험하는 내용과 같은 주제의 학회이며 실제로 그 학회 임원진의 연구실과 공동 연구를 종종 했다. 그렇다 보니 우리 지도교수님이 그 학회 임원진과 친분이 두터워 해마다 초청을 받으면 연구실 구성원 중 몇 명을 데리고 일본 학회에 꼭 참석하는 것이다. 다른 한 군데는 고든컨퍼런스(Gordon Research Conference)의 펩타이드 분과(Peptides, Chemistry & Biology of)이다. 이 학회는 우리 실험실 구성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가장 높은 학회로, 펩타이드 관련 연구 분야의 권위자들이 대거 모이는 자리이면서 학회 장소가 주로 북미나 유럽이기 때문에 더욱 선망의 학회가 되었다.


내가 석사과정에 입학해 처음 맞는 랩미팅 자리에서 석사과정 선배였던 수진이가 이 고든컨퍼런스에 참여한 내용을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캐나다에서 열렸던 학회를 다녀왔는데 논문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신기했다면서, 그때만 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섞어가며 신나게 이야기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학원에 다니면서 실험하다 보면 저렇게 멀리 해외 학회에도 다니는구나 하고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해외 학회에서 느끼는 과학 연구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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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년쯤 석사과정을 지내면서 막 새내기 모습을 벗어날 때쯤 일본 학회가 다가 왔을 때 박사과정 언니오빠들이 교수님과 함께 일본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몇몇 친구들은 잠시나마 교수님이 실험실의 자리를 비운다는 사실에 더욱 감격스러워 했으나, 나는 논문이나 이메일로만 보던 일본 교수들의 연구실을 직접 방문해 그곳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도 할 예정이라는 얘기를 듣고 더욱 언니오빠들이 부러워졌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비행기 타고 먼 길 다녀오면 피곤하기만 하다는 둥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던 박사과정 오빠가 ‘실험실 잘 지키고 있으라’며 작별 인사를 할 때, ‘좋겠다…’라고 중얼거리던 혼잣말을 교수님께서 들으셨나 보다. ‘아름이는 내년에 고든컨퍼런스 함께 가자!’ 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반갑던지.


그 뒤 일 년쯤 지나, 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에서 개최한 고든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되었다. 석사과정 마칠 때쯤 연구실 대표로 참석하는 것이라 우리 실험실에서 수행하는 연구를 모두 다 숙지해서 참석해야 했다. 꼭두새벽부터 발표할 포스터를 붙이고서 조식을 먹고 학회장 밖으로 나왔더니, 한국에서는 여전히 매서운 2월의 겨울이었는데,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리도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교수, 연구원, 대학원생들과 함께 강연을 듣고 식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국내 학회이건 해외 학회이건, 학회에 참석하면 ‘좀 더 열심히 연구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꼭 든다. 특히 고든 컨퍼런스에 모인 각국의 대학원생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실험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애착을 깊이 느낄 수 있었고,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이 실험하는 사람으로서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특별하게 다가왔던 한 중년의 여성 참가자가 있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서로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는데, 그 사람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실험에 필요한 시약의 영업 분야에 종사한다고 하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학문적으로도 깊이 있는 지식이 있는 것 같아 들어보니 미국 아이비리그에 해당하는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박사후연구원 과정으로 실험을 하던 중 특정 화학물질에 알러지가 생겨 더 이상 실험실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평생 하던 일을 그만 두어야 했을 때 너무 절망스러웠지만 곧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 영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오히려 이 일이 더 적성에 맞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에는 이유가 있더라는 명언을 남겼다. 흔히 과학자라 하면 자연현상을 파헤치는 분석적이고 냉철한 연구자로만 여겨지지만, 사실 누구나 그렇듯이 돌발적인 여러 상황에 부딪히며 원치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는 보통 사람이기도 하다. 연구 활동을 하는 과학자들이 실험을 하다 보면 학문적으로도 그렇지만 학문 외적으로 다양한 상황에 부딪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던 것 같다.


미국 학회에서 멋진 연사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강연을 들으면서 학문적으로도 큰 자극을 받았지만, 학회가 끝남과 동시에 미국에서 주어진 사흘여의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졸업도 다가오고 그동안 제대로 휴가도 보내지 못해서인지 교수님께서 며칠 쉴 시간을 주셔서 정말 기쁜 마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학회 참석 이후 온라인 교류의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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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온 이후 그 학회에 참석했던 대학원생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 각자의 연구에 대해 토론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정기적인 온라인 모임도 생겨났다. 모임을 통해 서로 안부를 묻고 다른 나라에서 주목하고 있는 연구 과제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연구의 흐름을 읽어나가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석사과정을 졸업한 뒤에도 가끔 사진을 꺼내 보며 해외 학회에서의 일을 되새겨 보니, 이런 일들만 보아도 대학원생 때의 해외 학회 참여가 얼마나 큰 경험으로 남는지 알 수 있다.


다른 연구실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 연구실의 경우는 졸업하기 전까지 다들 한 차례 이상 해외 학회에 다녀올 기회를 얻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해외 학회를 다녀와야 더 좋은 경험을 한 것이고, 더 나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연구 분야에 따라 학회의 종류가 다르고, 지도교수의 성향이나 연구실 재정 상황도 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각국의 유명 과학자들이 많이 참석하는 규모 있는 해외 학회에서 국내 학회와 다르게 얻을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실험을 하는 동안에는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시도하고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요즘은 실험실 밖에서 주최하는 행사나 도움도 많으므로 지도교수와 연구실 사람들과 의논하다보면 연구에 도움이 되는 많은 경험의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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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 경북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대학원생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에서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장래 희망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과학인이 되는 것.
이메일 : areumhan24@gmail.com       트위터 : @areumhan24      
블로그 : http://plug.hani.co.kr/areumhan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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