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어느덧 마주친 생물공학, 내겐 낯선 신세계 앞에서

오하나의 “식물 실험실의 생명 왈츠”


(7) 일본식물학회 발표를 마치고



00genome.JPG » 우리 연구실이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목표는 여러 생물의 전체 유전자를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기를 통해 해독하여 진화와 발생 과정을 규명하는 것이다. 자료/ http://staff.aist.go.jp/t-fukatsu/SGJHome.html 76회 일본식물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찾은 히메지 시(姬路市)는 일본 효고 현에서 고베 다음으로 큰 지방 도시로, 인구는 50만 명 정도다. 히메지 시에는 관광 명소로 유명한 히메지 성이 있다. 14세기 중엽에 축성되어 16세기에는 무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17세기에는 성주가 된 무장 이케다 데루마사에 의해 중축과 개축이 되었다 한다. 백로가 날개를 치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시라사기(백로) 성'으로 불리며, 1931년에는 국보로, 1993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다음 날 오전 일찍 발표해야 했기에 나는 히메지 성 관광은 뒤로 미루고 역 근처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에 짐을 풀었다. 히메지 역 주변에는 백화점을 비롯해 고층 빌딩, 유흥업소들이 밀집해 있었다. 특히 비즈니스 호텔 주변은 홍등가와 비슷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향수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아가씨들이 여기저기에서 샐러리맨들을 접대하고 있었고, 교토와 비슷하겠거니 생각하고 찾아간 대중탕 `하와이 사우나`는 이런, 남성 전용업소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심난하기도 하여 동네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히메지 시에서 출생했다는 천상병 시인의 본가는 어디였을까, 상상을 하며... (지난 글 ""해는 다시 떠오르고" 국화꽃 싯귀의 위안" 참조)



긴장의 연속, 학회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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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체크아웃을 하고서 호텔을 나서니, 지난 밤의 어수선했던 홍등가는 연극이 끝난 무대의 세트장처럼 철거를 기다리는 듯이 낡아 보였고, 대신 공기 맑고 한산한 전원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학회가 열린 효고 현립대학교의 히메지쇼샤 캠퍼스는 시내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시골 마을의 한 복판에 있었다. 친구와 나는 렌터카를 빌린 덕분에 좁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비교적 쉽게 학교를 찾아갈 수 있었다. 학회장의 분위기는 조용한 편이었으나 그렇다고 정적이 흐르는 곳은 아니었다. 일본 식물학자들이 조용하게 말을 하는 것일 뿐, 가만히 들어보면 서로 연구에 대해 묻고 대답하고 토론하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나는 지난 3학기 동안 축적해 온 데이타를 정리해서 발표했다. 식물종 벌노랑이의 개화 관련 유전자들을 추정해서, 염기서열 분석법을 통해 그것들이 야생집단 내에서 어떤 유전적 변이 상태로 존재하는지 밝히고, 그 유전적 변이가 벌노랑이의 개화기 적응과 관련이 있는지를 고찰하는 내용이었다. 내 연구는 지도교수가 야심차게 진행하는 벌노랑이 연구 프로젝트의 하나이기도 했기에 발표를 준비하는 내내 어떤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 발표 직후에 받은 청중의 일본어 질문을 알아 듣고(휴우~) 대답할 수 있었고(휴우~), 나중에는 흥미로운 발표였다는 공동연구자들의 이메일을 받기도 했다. 발표를 마친 뒤에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연구 발표를 하나 듣고서 발표회장에서 나왔다. 고베대학에서 진행 중인 '농작물의 세슘 흡수율'에 관한 보고였다. 2011년 3월에 발생했던 동북 대지진으로 방사능 피해를 입었던 농작물이 연구 대상이었다. ‘땅, 공기, 물이 오염되어 버린다는 건 무(無)보다도 악화된 상태이진 않은가...다시 시작한다 해도 0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없기 때문에’라는 생각을 하며 학회장을 빠져 나왔다. 학회장을 나오니 초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안도감이 밀려 왔다. 



세포시계 되돌린 야카나마 교수 화제로 뜨거운 교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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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학교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의 공동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미 분화를 마친 세포라도 몇 개의 유전자를 이식하면 분화 이전의 세포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음을 입증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래서 요즘 교토대학 안의 카페나 휴게실 등 어디에 가도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이름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가 신야 교수인 척 허위로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노벨상 와따~”라는 말을 퍼뜨렸다가 틀통이 나는 바람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튼 아이피에스(iPS)연구소가 있는 교토대학교 종합병원 주변을 비롯해 교토대학교 전체가 떠들썩하다. 연구실의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마주친 적이 있는 친구들은 '그저 평범한 아저씨던데?' 하며 이공계생답게 깔끔하게 한 마디로 정리했다. 우리 연구실에서 가장 말이 많은 오츠키씨가 컴퓨터 화면에 얼굴을 묻은 채 오른손으로 창문 밖을 가리키며 말을 덧붙였다.


“저기 중앙식당 쪽에서 어슬렁대는 교수가 야마나카 교수예요. 하나씨도 아마 마주친 적 있을 걸요? 대단해요, 대단해. 연구비가 우리 연구실의 100배라구요. 100배.” 


흐음, 그렇단 말이지. 교토대학교 중앙식당의 4천원짜리 로스트 치킨을 먹으면서도 생리의학상을 받을 만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단 말이지…. 연구 내용이 궁금해져서 관련 보도를 찾아 읽어봤다. 세포의 시계를 ‘역’으로 돌린다? 이번 생리의학상은 불로장생의 꿈을 현실화한 발명가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발명가인가? 다른 말로 하면 창조자? 



나의 과학적 호기심과 애정은 어디쯤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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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스로 우울한 상태에 빠져 있음을 느낀다. 마지막 학기는 시작됐지, 졸업을 위해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도대체 나는 뭐가 불만인 걸까?


그건 내 연구가 ‘생물공학’과 직결되는 연구라는 점에 있었다. 농업생물자원연구소의 전임 연구원이었던 하라다 큐야(原田久也)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대두 연구그룹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과 게놈 지도 기술을 이용해 대두에서 개화 관련 유전자를 밝혀내었고(Xia et al.,2012), 그 연구 내용은 나의 벌노랑이 연구에 직결되었다. 대두는 콩과의 농작물로 세계 사람들의 먹을거리이자 가축 동물의 사료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대두에서 오일을 추출한다.


지도교수는 콩과 모델식물인 벌노랑이의 개화 관련 연구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콩이라는 것은 세계인의 식량 자원이며, 이 때문에 우선적으로 유전자 조작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벌노랑이 연구의 파급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개화 관련 유전자들이 나에 의해 밝혀진다면?


개화 시기를 앞당기는 유전자를 콩과 작물에 간단히 이식한다. 개화가 초특급으로 빠른 개체가 만들어진다. 금방 꽃이 피고 금방 꼬투리를 생산해서, 결과적으로 콩의 산출량은 급격하게 늘어 난다…. 지도교수는 벌노랑이의 전체 유전자를 해독해 방대한 양의 유전자 지도에서 개화 관련 유전자를 찾아내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어쩌면 나는 평소에 거부감을 느껴 구매하지도 않는 지엠오(GMO) 식물을 창조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건 아닐까? 세포의 ‘역’ 분화와 벌노랑이의 ‘해체’ 그리고 '재창조’.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연구와 나의 연구에서 느끼는 낯섦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이 모든 게 좀 억지 같아(It seems UNNATURAL).


나는 내 자신의 연구가 어느 틈엔가 내가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며 교수와 상담을 했다. 벌노랑이의 야생 집단의 생존 전략을 연구하려고 했던 애초의 의도에서 벗어나 벌노랑이의 게놈 지도를 그리고 있는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솔직하게 지도교수한테 털어놓았다. 지도교수는 지도교수 나름의 생각을 설명했다. 더 많은 연구비를 위해서는 시대에 앞서는 연구주제가 필요한 게 사실이며, 유전자 해독과 데이타베이스화 작업은 피할 수 없는 현재 생물학 연구의 큰 흐름이라고 했다. 이대로 박사 과정에 진학한다면, 단시간에 논문도 많이 낼 수 있을 것이며, 박사 이후 진로도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했다. 교수는 네가 무엇이 못마땅한지는 알겠으나, 시간이 지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나를 나무라는 듯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박차려 하다니요. 하나 학생, 복에 겨워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생리의학도 크게 보면 생물학의 한 영역이고, 21세기 생물공학의 시대를 역행할 수는 없다. 이대로만 간다면, 간암에 걸린 사람도 신생아의 간처럼 깨끗한 간으로 교체할 수 있을 것이다. 초콜릿 맛이 나는 보라색의 토마토를 먹으며 여자들은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생물공학의 선두주자가 될 수도 있다. 이대로 박사과정에 진학하면 생물공학의 세계로 더욱 깊숙이 발을 담그게 될 것이다.  


자기 연구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 연구자는 우울함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연구자가 (갖은 역경을 무릅쓰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은 아무래도 연구주제를 향한 호기심과 애정,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체질에 맞는 다른 연구주제와 방법을 모색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 방법을 적용해서 보전생물학을 할 수 있다면? 젊은 분자생물학도의 운명이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생물공학이라면, 여기에서 나의 과학적 호기심에 걸맞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2012년 10월. 과학자가 창조자가 되어버린 21세기에 신으로 성장할지, 인간으로 남을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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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나 일본 교토대학교 인간환경학연구과 석사과정
커피, 식물, 음악, 남자를 좋아한다. 부자가 될 자신은 없지만, 여윳돈이 생긴다면, 남미와 티벳은 꼭 가볼 것이다.
이메일 : hanaoh.plant@gmail.com      
블로그 : flowersneversa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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