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연구실 스트레스’ 정면으로 응시하기

한정규의 “자연과학 공부의 안과 밖” (7)


[안] 연구자와 스트레스





고 마감은 코앞에 닥쳤는데, 졸업논문 준비로 할 일도 또한 태산이다. 아무리 일할 시간을 계산해도 답이 잘 나오질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내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해 적고, 정해진 시각까지 원고 마감을 마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는 내게 부분적으로는 힘과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다. 지나친 스트레스가 아니라 적정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 또는 그 스트레스를 조절할 줄 안다면 거기에서 생활의 동력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대체 ‘스트레스’라는 건 뭘까?


[메리앙-웹스터Meriam-Webster]

1. 힘이나 영향력을 참아내는 것 2. 강조, 중점 3. 강력한 효과나 노력


[의학사전 어바웃닷컴 About.com]

물리적, 정신적, 감정적 적응이나 반응을 요구하는 신체적 반응의 변화. 좌절, 분노, 과민, 근심을 느끼게 해주는 상황이나 생각으로부터 온다. 스트레서(stressor)라는 요인이 존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생체에 가해지는 여러 상해 및 자극에 대하여 체내에서 일어나는 비특이적인 생물반응으로 캐나다의 내분비학자 H.셀리에가 처음으로 명명하였는데 자극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나 다른 호르몬이 혈중 내로 분비되어 우리 몸을 보호하려고 하며 위험에 대처해 싸우거나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제공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내용이 생물학적인 배경에 비교적 가깝고 다른 출처의 내용도 어느 정도 스트레스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렇지만 이런 정의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흔히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트레스의 유발 요인도 사람, 일, 돈, 미래 등등으로 정말이지 너무 많다. 행여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아 병을 얻더라도 그 스트레스의 원인을 파악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사실 스트레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른다. 생리학적 기전에 기초해 생각해보면, 자극과 반응(싸움-회피), 항상성의 붕괴라고들 설명하지만 아직도 스트레스에 관해서는 우리가 이해하는 부분보다는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스트레스란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항상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실험실에 떠도는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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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stress.jpg » 좋은 스트레스 (mild stress)는 면역력과 기억력을 증진시킨다는 일종의 모델. 출처: Yirmiya, Immune modulation of learning memory, Brain Behavior Immunity (2011) 지난 글(“‘실험실의 제자백가?’ 다름과 어울림의 공존 문화”)에서 나는 연구실에서 생활하며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나름대로 스트레스의 원인에 관한 작은 해석도 제시해 보았다. 실험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닫힌 인간관계를 오랜 동안 형성하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이다. 바로 이런 환경이 내가 노출돼 있는 직접적인 스트레스의 배경인 것 같다. 물론 이는 실험실의 나뿐 아니라 비슷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면 누구나 그렇게 비슷한 반응을 할 것이다. 그러나 연구실·실험실 안으로 들어가서 그 독특한 문화를 인정하고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개인이 받는 스트레스는 언뜻 보기에 사소하지만 미묘한 말 한 마디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하면, 아무런 의도 없이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에 상대방이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만일 한두 번 보고 헤어질 사람이라면 무시 전략이 통할 수 있겠지만, 연구실·실험실에는 경험 많은 박사와 박사과정생이 있고, 혈기왕성한 석사과정생들이 어울려 일상의 생활을 하고 있다. 연구실에 모여 공부하는 동안에는 어느 한 사람의 말도 무시할 수 없고 신경을 써야 한다. 한 사회의 충실한 일원이 된다는 것은 어렵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더욱이 ‘비판적 시각’을 키울 것을 교육받기 때문에 말투마저 어느 정도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넘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든지 어떤 것을 평이하게 설명하고 마무리를 짓게 되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유를 캐묻는다든지 하는 행동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이런 상황이 지나치게 되면, 자신의 단점을 지적해주는 사람에게는 은연 중에 불만이 생기기도 한다. 지적의 핵심 내용이 어떤 이에게는 사소로운 것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중요한 것이 되어 서로의 온도차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세세히 따지는 태도는 과학자의 소양으로서 꼭 필요하지만, 그 목표가 과학적 탐구물이 아니라 사람이 되버리면 실험실의 스트레스를 키우는 곤란한 상황이 되곤 한다.



세미나에 드러나는 미묘한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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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받는 또 다른 스트레스는 학업과 관계된 것이다. 공부하는 과정을 거쳐 직업 연구자로 변신해가는 가운데 나의 연구 내용은 분신처럼 받아들여져 동료들의 평가를 받는다. 과학적 사실을 밝히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청사진을 찾는 연구 내용은 한 편의 논문으로 마무리된다. 다시 말해 “연구자는 논문으로 말한다” 는 말이 있듯이, 훌륭한 식견의 소유자는 논문을 통해서만 뛰어난 아이디어와 과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내가 속한 학과에서는 매주 그런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낸 분을 강연자로 초빙해서 발표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세미나를 진행한다. 각 실험실에서 관련 연구 분야의 강연자를 초청해 강의를 듣는 방식인데, 간혹 외국에서 연구 활동을 벌이는 분이 오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세미나 시간에 벌어지는 나의 생리학적 신체 반응은 새로운 연구결과나 기법에 대해 놀라고, 나중에 저걸 어떻게 배우고 이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그리고 마지막은 “느낀다”.

00stress_seminar.jpg »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조지 어거스틴(George Augustine) 교수가 발표자로 나선 학과 세미나에서.

마지막에 “느끼는” 감정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국내외에서 오래 연구하신 석학급인 경우에는 존경심이 우러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도 저 정도의 수준에 언제쯤 이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지금의 나를 반성하곤 한다. 물론 반성 시간은 세미나가 끝나는 시점에 함께 끝나버려 늘 안타까움이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 연구와 비슷한 분야이거나 동년배 또는 비슷한 세대에 속한 사람이 남들이 인정해주는 저널에 투고해 출판·발표하거나, 또는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좋은 실험 결과를 발표하면 그때에는 내게 뭔가 모를 스트레스가 찾아온다. 물론 성인들의 말씀에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말라는 금언도 있지만, 평범한 인간으로서 드는 생각은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이런 감정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세미나가 끝나면 실험실 안팎의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그때에는 늘 반성과 자조가 뒤섞인 말들이 한마디씩 오가곤 한다.



연구성과 압박감이 주는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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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시간을 둘러싼 스트레스를 사례로 들었지만, 일반 학회에 참석해도 연구자들은 종종 시기 어린 눈으로 다른 연구자의 결과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실 아무도 이런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물론 훌륭한 발표를 한 분에 대해서 이런 동료 경쟁심만이 아니라 일단은 존경의 마음이 더불어 생기지만 말이다. DNA 구조를 규명한 제임스 왓슨의 최근 저서인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에서 보면 과학계는 경쟁이 극도로 심한 연구자 간의 매우 사교적인 세계라고 이야기한다 (5장, 과학은 극도로 사교적인 행위이다).


대학원생의 눈으로 보더라도, 대학원생의 연구 스트레스는 사실 직업 연구자인 교수 또는 연구원보다 덜한 듯하다. 배우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책임의 측면에서 약간은 더 자유롭다. 자신에 대한 책임만 지면 된다. 교수가 되지 못한 박사급 연구원이야말로 사실상 연구 스트레스가 가장 클 것이고, 다음으로는 평가와 승진을 앞둔 교수의 연구 스트레스가 클 것이다. 물론 통계나 객관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미국의 어느 조사결과를 보니, 미래에 갈수록 선호도가 떨어지는 직업군 중에 연구원, 그리고 교수직이 포함돼 있었다. 일자리는 적은데 수요는 많고, 또한 임용이 됐다 해도 거의 최고경영자(CEO)급으로 연구실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압박감이 크다는 설명이 덧붙여진 것으로 기억한다. (“박사 마치고 뭘 하지?” 미 연구진, 박사과정 학생 4000명 설문조사 결과)


미래에 직업 연구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대학원생의 입장에서 이런 현실은 꼭 짚고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고민은 하지만 표면적으로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따라서 언젠가는 직면할 문제를 붙잡고 있기보다는 직업 연구자인 교수, 연구원들이 받는 스트레스와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 연구를 잘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스트레스와 음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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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들은 과연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까?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추정해본다면 그것은 주로 ‘음주’를 통해서 이뤄진다. 사실 한국 대학생의 경우에도 높은 음주율이 문제로 지적되곤 한다. 최근에 대학 내 음주를 금지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대학 내 음주금지, 어떻게 봐야 하나"). 음주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과도한 음주는 문제가 되고, 특히 교내 음주는 법률적으로 규제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이다.


그런데 사실 대학원생의 음주 문화도 생각해봐야 할 수준이다. 대학생의 음주 문화에 관한 자료는 많지만 대학원생의 음주 문화에 관한 자료는 찾기 어려워 정확한 통계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내 주변의 연구실·실험실에서는 술자리가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있는 것 같다. 개인 경험과 다른 연구실 친구의 사례에 기초해 판단해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반면, 실험실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술자리를 전혀 갖지 않는 ‘금주 연구실’도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런 경우에는 교수님 혹은 구성원들이 술 마시기를 내켜하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요약하면, 음주 자체를 꺼리는 구성원이 많을 경우에 술자리의 빈도수는 낮으나 평균적으로 높은 수준의 음주율을 보이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술자리는 피하기 어려운 자리인 것은 틀림없다.


사실 음주는 술자리가 잦은 한국 사회에서 상당히 보편적인 공동체 문화인데, 그 정도로 ‘마시고 잊자 주의’ 식으로 강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풀기 위해 술자리가 자주 마련되는 것 같다. 대학원생들 사이에 술자리가 잦다면 그건 대학원 생활에도 강한 압박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음주가 스트레스를 푸는 ‘좋은’ 방법일까? 아무도 이에 동의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한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 건강에 안 좋을 것이고, 단기적으로도 다음날 연구 일정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강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술을 찾는 이유는 값싸게 빠른 시간에 잠시나마 ‘스트레스 망각’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연구 스트레스 풀기, 나만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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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선호하는 ‘연구 스트레스를 푸는 법’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충격요법에 가까운 음주와 같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지양하고, 다른 방식을 좋아한다. 현재까지 내가 내린 결론으로는, 연구자가 스트레스를 잘 푸는 법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맘껏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심리상담에서 좋은 치료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사실 술자리에서 사람들 간에 자기 이야기들이 시끌벅적하게 오가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다. 다만, 나는 술이라는 도구를 빌리지 않고, 술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연구실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나쁜 스트레스를 자연스럽게 좋은 스트레스로 바꾸는 방법으로서 ‘자기 이야기하기’를 추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고, 티타임 같은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너무 당위적인 이야기 같지만 내가 직접 연구실 사람들과 커피 한 잔을 하며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하면,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다들 좋은 기분으로 연구실로 돌아가곤 했다. 실험도 잘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은 연구실 사람들 사이에 벽이 견고하게 생기기 전에 ‘자기 이야기하기’를 해야지,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관계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연구실은 가족 같기도, 회사 같기도 한 곳이며 한 개인 연구자의 인생에서 중요하지만 다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실은 일시적인 공동체이고, 그래서 이 짧고 굵은 만남의 시간에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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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규 서울대학교 대학원 뇌인지과학과, 신경과학 전공
인간의 의식이 궁금하던 차에 우연히 사람 뇌를 만져보다가 뇌와 신경에 매료되어 공부하게 된 Ab혈액형의 소유자. 생물학을 공부했으나 큰 틀로 마음, 의식을 공부하기 위해 MEG를 이용한 이미징을 하다가 다시 현미경에 빠져 작디작은 시냅스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의식의 생물학적 기반을 찾는 것을 평생과업으로 삼고 있다.
이메일 : jkhan97@naver.com       트위터 : @jayhan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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