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다고 표절이라니...어이쿠!

'안철수 후보 논문 표절 논란' 보도를 보며


"...이는 명백히 잘못된 지적이다. 즉 석사학위라고 하는 이른바 '회색문건'에 발표한 내용을 같은 저자의 주도로 전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표절이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관행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한 모든 선진국 이공계 대학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이런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표절 주장을 하는 것은 지독히도 무지하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00science.jpg » 출처 / 한겨레 사진과 위키피디아 그림의 조합
 

난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있었던 오래된 일이다. 한 지인을 통해 문의가 들어왔다. 내용인즉 영국에서는 1년 안에 석사 학위를 받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이었다. 알고 보니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어느 당의 후보가 다른 후보의 학력과 출입국 기록을 비교해보니 영국에 1년만 머물렀는데 어찌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느냐며 학력 조작 의혹을 조사하는 것 같았다. 우스운 것은 의혹을 제기한 쪽의 후보도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한 분이라 그곳 사정은 자신이 제일 잘 알 터인데, 그의 비서관은 상대 후보의 약점을 잡아보려고 뒤를 캐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치라는 것이 원래 치사한 경기이긴 하지만 부동산 투기나 탈세가 아닌 학력이나 논문으로 상대방을 흠집 내는 것이 일반화되는 것 같아 좀 우습기까지 했다.


이런 경향은 지난 몇 년간 더욱 강화되었는데 특히 대학 교수 출신이나 뒤늦게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정치인들에게는 논문 대필이나 표절, 논문 조작, 중복 게재, 부적절한 저자 문제들이 주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사실 과학이나 논문에 큰 관심이 없는 대중이나 정치인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이 큰 기여를 했다. 이후 신정아 스캔들 때 박사학위 논문 대필 문제도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논문과 관련된 윤리의 문제가 정치권으로 비화된 것은 지난 참여정부 때 김병준 부총리의 낙마가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이후 공직자는 아니지만 고려대 이필상 총장, 이후 박미숙 수석을 거쳐서 지난 광우병 파동 때는 정부에 반대하는 우희종 서울대 교수 논문에 대한 문제제기, 또 이 문제를 제기한 손숙희 의원에 대한 문제제기 등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에는 정운찬 총리 내정자와 백영희 여성부 장관 후보에게도 같은 정쟁이 지속되었다. 최근에는 문대성 의원과 김재우 이사장에 논문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더니, 이제 다시 안철수 후보에게 논란이 이르렀다.



학계 견해 반영 없이 정치 무대에서 요란한 표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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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란의 내용을 잘 모르는 국민의 눈에는 교수라는 작자들은 남의 논문이나 베끼다가 기회가 생기면 정치권으로 기어드는 인간들로 보이기 십상이다. 특히 전문성이 부족한 언론사 기자들이 흥미 위주로 마구 난도질을 해대는 탓에 ‘알고 보니 다 똑같은 놈’이라는 정치 불신까지 조장하고 있다. 또 언론과 네티즌들은 이런 문제로 들끓고 있는데, 정작 학계는 ‘윤리위원회를 열어 조사해보겠다’는 식의 반응만 보이고 있거나 논란의 물결이 다 지나간 한참 뒤에야 뒷북을 치는 일이 허다하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침묵하는 사이에 성실하게 살아온 수많은 학자들이 억울한 비난을 받고 있고, 거꾸로 비난받아 마땅한 학자들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학계를 누비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만일 논쟁이 되려면 정확한 사실 관계와 규정을 살펴봐야만 하고, 이는 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확인해야 한다.


표절(剽竊; Plagiarism)이라는 말은 한자나 영어의 라틴어 어원으로 볼 때에 모두 다 무엇을 훔친다는 뜻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발표된 내용을 그 출처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것인 양 가져다 쓰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경우는 다른 사람이 발표한 논문을 가져다가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문대성 의원의 경우처럼 주로 예체능계 학위나 수많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논란에서 보듯 야간 대학원 혹은 특수 대학원처럼 전일제(Full-time) 과정이 아닌 학위에서 주로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문제는 논의할 여지도 없이 잘못된 일이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 비난은 유권자가 표를 통해 보여줘야 할 문제이고, 학위 자체를 취소하거나 이런 학위를 승인해준 교육 기관이 더 큰 비난을 받을 사안이라 생각된다.


한국 일부 학자들의 노골적인 표절이 몇 년 전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된 표절 관련 기사를 장식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남의 논문을 훔치는 학자들은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보다는 중복 게재 혹은 자기 표절(Self-plagiarism)이라 부르는 표절의 한 형태가 학계 출신 정치인들의 핵심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이미 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다른 학술지에 다시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동일한 내용, 문장, 자료가 들어있는 문건만 발견하면 언론과 네티즌들은 표절이라고 아우성이다.



되레 학술지 발표 논문 묶어 학위논문 구성 의무화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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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서 잘못 알려진 사실 관계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이른바 '회색문헌(Grey literature)'이라 부르는 문건들에 관한 것이다. 회색문헌이란 정부, 학계, 산업계, 기업, 언론, 사회단체 등에서 주로 비영리를 목적으로 출판한 문헌들로, 전문적인 학술지에 게재되기 전에 제한된 숫자로 배포되며 일반적인 학술 데이터베이스에서 찾기 어렵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전문학술지 논문과 달리 동료심사(Peer review)를 거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연구 보고서, 실험 보고서, 회의록, 학회초록, 석박사 학위 논문, 연구계획서, 정부 보고서, 시장 조사서, 공고문, 자료집, 신문 잡지에 투고한 글, 인터넷 글, 가제본 글, 뉴스레터 등을 포함한다.


만일 어떤 학자가 이런 매체에 투고한 자신의 글을 다시 전문 학술지에 투고하여 심사 뒤 게재했어도 이는 표절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정리해서 전문 학술지에 게재해도 이는 중복 게재가 아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안철수 후보의 경우를 보자. 표절이라는 주장의 핵심 근거 중 하나는 석사학위 논문의 내용이 의학 관련 전문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거의 유사하게 실렸다는 점이다. 그 근거로 석사 논문과 학술지에 실린 동일한 그래프들이 제시되었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지적이다. 즉 석사학위라고 하는 회색문건에 발표한 내용을 같은 저자의 주도로 전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표절이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관행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한 모든 선진국 이공계 대학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미국에 있는 유수 연구중심 대학의 경우에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것 자체의 형식을 전문 학술지에 투고했거나 투고할 준비가 되어 있는 논문 3~4개를 묶어서 제출하는 식으로 의무화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사실관계는 관련 분야 전문가나 제대로 된 이공계 대학원에서 교육받은 대학원생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인데, 우리나라 최고의 일간지 기자가 이를 무슨 큰 발견인양 그래프까지 실어서 보도하는 것은 그 기자가 지독히도 무지하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치 기사의 잣대로 판단하는 학술논문 저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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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논쟁거리는 발표된 학술지 논문에 누구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이 문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 즉 이번 논문의 제1 저자인 석사학위 논문 제출자, 그리고 지도교수로 추정되는 제3 저자 이외에 안철수 후보가 이 논문의 작성에 기여를 했는지 여부이다. 그랬다면 제2의 공저자로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안 후보가 한 일도 없이 ‘숟가락 하나 얻은 격’으로 학자들 사이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제1, 제3 저자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논문 분석 결과도 안 후보의 기여가 있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이러한 저자권(authorship)의 문제는 제3자가 평가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고,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학자들 사이의 논란 거리지 학자의 정치력을 평가하는 문제가 될 수 없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유재석의 오스틴파워 풍 댄스나 노홍철의 저질 댄스가 싸이의 미국 진출에 기여한 여부를 정치부 기자가 예단해서 말할 능력이 있는가와 비슷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논문의 저자에 누가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학계의 주장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현대 과학이 진행되는 일반적인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여가 필요하다. 연구 아이디어를 내고 제안하는 단계, 실제 연구와 실험을 수행하는 단계,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고 토의하는 단계, 그리고 최종적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투고하여 심사를 받는 단계 등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국제 학계에서는 이러한 기여 중 3가지 이상에 참여하면 저자의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고, 따라서 제자의 학위 논문이라도 그 학위 논문이 작성되는 과정에 위와 같은 기여가 있었다면 지도교수나 관련된 다른 사람이 학술지 논문에 공동으로 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한국의 관례가 아니라 국제 학계의 윤리이다.


정치인의 개인적인 도덕성과 윤리성에 대해 꼬치꼬치 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또 이로 인해 우리 공직자의 윤리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관계나 정확한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정쟁적 비난은 정치를 혼란하게 만들 뿐이다. 또 더 나아가 학자들의 연구 활동이 위축되거나 우수한 인재가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모두 도로교통법 위반이긴 하지만 음주운전을 해서 인사 사고를 낸 운전자와 새벽 4시에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슬금슬금 지나간 운전자 모두를 다 똑같은 놈이라 비난하고 같은 정도로 처벌하는 것도 공정치 못하다.


제발, 주요 일간지 정치부 기자들은 어줍잖은 술자리 얘기들로 아까운 지면을 소비하지 말고, 대선 후보자들의 정책에 대한 정확한 분석, 비판, 실현성 여부 그리고 대안 제시로 내용을 채워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정치인도 바뀌겠다고 난리인데, 이젠 언론도 바뀔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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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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