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

인간의 과학과 기술인 뇌과학과 인공지능은 다시 ‘나, 너,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뇌과학 박사과정 송민령 님이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의 모습을 전하면서 나, 너,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의 이야기를 독자와 나눈다.

뇌과학, 인공지능과 우리

[18] 연재를 마치며: 뇌과학은 어떤 학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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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과학과 인간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뤄지려면

시민과 소통하는 과학, 과학과 소통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뇌과학, 인공지능, 뇌과학이 현실과 부딪히며 생겨난 의문들,

윤리적 쟁점들을 하나씩 다져온 이 연재가,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과 인간을 성찰하는 여정이자,

시민과 소통하는 과학, 과학과 소통하는 시민을 위한 여정이었다.

시민과 소통하는 과학, 과학과 소통하는 시민을 통해 새로운 그림을 그려가는 것.

이것이 알파고가 무서워서 “나, 그냥 캄보디아 오지 같은 데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까?” 라는

질문과 함께 연재를 시작했던 내가 이번 여정 끝에 도달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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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jpg » 뇌. 출처/ Youtube.com


경해부학 시간에 관상면(coronal; 얼굴과 평행한 방향)으로 자른 뇌를 두 손 위에 올려본 적이 있다. 우리가 평생 동안 웃고, 화내고, 경험하고, 좌절하는 그 모든 것들에 비해 두 손바닥에 쏙 올라오는 뇌는 너무 작다는 느낌이었다. 평균 길이 16.7cm, 폭 14cm, 높이 9.3cm…. 성인 남자의 두 손을 오므려 맞붙인 것과 비슷한 크기다. 요 작은 녀석이 그 많은 걸 다 한다고 생각하면 예쁘고 고맙고 기특하기도 하고, 살면서 화내고 미워하고 좌절하는 일들이 다 뭔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뇌는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이며, 뇌에 대한 관심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자신에 대한 관심, 인간에 대한 관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뇌과학이 어떤 학문인지는 막연한 경우가 많다. 뇌과학이 너무 많은 분야들과 얽혀있다 보니 정체불명의 혼란스러운 학문으로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연재 전체를 마무리하며 뇌과학이 어떤 학문인지 살펴보았다.



뇌과학의 의의 (1) : 인간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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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은 뇌를 포함한 신경계를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이다. 과학의 모든 분야가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지만, 뇌과학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궁금하고 매혹적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과 달리, 물리적 토대를 가진 뇌에 대한 과학은 미더울 뿐만 아니라 흥미롭다. ‘내가/쟤가 저런 행동을 하는 건 혹시 이런 이유일까?’ 상상도 하게 되고, ‘아~ 내가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이해하고 편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뇌과학은 사람들의 마음을 훅 끌어당긴다.


가 기억, 생각, 감정, 언어, 감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뇌과학은 심리학 및 인지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뇌과학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리적 대상인 뇌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심리학 및 인지과학과 다르지만, 갈수록 이 분야들과 협력 연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뇌과학은 마음과, 마음에 긴밀하게 연관된 기관인 뇌를 연구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제공한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인간을 모사한 피조물에 반영된다. 예컨대 마음의 이성적인 측면을 중시하며 몸은 정교한 기계에 불과하다고 믿었던 근현대에는 인체를 닮은 정교한 자동인형과 논리적으로 계산하는 컴퓨터가 만들어졌다. 피조물들에 대한 연구는 다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켰다. 컴퓨터의 논리 연산을 연구하면서 인간의 기억, 인지, 사고는 컴퓨터와는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마음의 비이성적이고 무의식적인 측면을 포용하고 복잡한 네트워크인 뇌의 작용을 이해하게 되자 신경망을 모사한 인공지능이 만들어졌다.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기는 등 최근 들어 인공지능이 급성장한 것은 뇌 신경망을 모사한 심화학습(딥 러닝; deep learning)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뇌과학은 컴퓨터공학, 인공지능과 상호작용하며 발전해왔다.



뇌과학의 의의 (2) : 뇌과학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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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신경망을 모사한 인공지능은 이제 스스로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며, 다른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언어, 창조성 같은 영역에 인공지능이 침범해오자 사람들은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정신적 활동을 하는 동안 뇌 활동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자, 자유의지가 존재하는지, ‘자아’가 실재하는지 같은 의문도 품게 되었다. 그래서 뇌과학은 철학과도 관련이 있다.[1][2]


철학은 현실과 거리가 먼 추상적인 학문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회 제도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예컨대 자율적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인 자유의지는, 자신과 관련된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법적인 권한과 자기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여하는 근거가 된다.


렇기 때문에 자유의지에 대한 뇌과학 지식은 법과 사회 제도를 바꾼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높은 수준의 자유를 허용하는 대신, 중죄를 저지르면 성인과 마찬가지로 사형이나 종신형 등 중형을 선고해왔다. 그런데 뇌과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정을 조절하고 행동을 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은 20대 중반을 지나야 성숙한다. 이에 따라 10대와 20대 초반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강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뇌과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 근거해 사회의 가치를 구현하는 체계인 법과도 관련이 깊다. 그래서 몇 년 전에는 신경법학(neurolaw)이라는 융합 분야가 생기고 대학에 학과가 설립되기도 했다. 법의 집행 과정에 뇌과학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현실적인 필요와 맞물리면서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예컨대 포화 상태에 이른 감옥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미국에서는 도덕성과 관련된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여 범죄자들에게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알약을 먹이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높은 재범률이 문제가 되자, 감옥에서 출소하기 전에 뇌를 찍어서 출소자가 재범을 저지를지 예측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뇌과학은 인간의 마음에 호소하는 분야인 마케팅(신경마케팅 neuromarketing)에도 쓰일 수 있다. 의외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물건을 구매할지 잘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설문을 통한 시장조사는 부정확하기로 악명 높다. 반면에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와 관련된 뇌 반응은 비교적 정확해서, 광고와 마케팅의 기획과 평가에 사용될 수 있다. 그 밖에 뇌과학을 교육과 접목해서(신경교육 neuroeducation), 발달 특성과 개인 특성에 맞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뇌과학의 의의 (3) : 치료와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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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은 신경정신의학과도 관련이 깊다. 신경계와 관련된 질환 일체(알츠하이머병, 우울증,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약물 중독, 두통을 비롯한 일체의 통증, 불면증, 뇌졸증 등)의 작동 원리와 치료는 뇌과학의 주된 연구 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경정신 질환이 암과 심혈관계 질환에 버금가는 경제적 부담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뇌과학은 국제 보건에서도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3]


막 이상으로 맹인이 된 사람들은 인공 망막을 삽입해서 다시 세상을 볼 수 있다. 인공 망막은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 정보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신경세포에 공급하는 장치이다. 사고로 팔을 잃은 사람은 신경세포의 활동을 읽어 들이는 로봇 팔을 사용해서 다시 물건을 잡을 수 있다. 인공 의수(prosthetics)에 대한 이런 연구들 때문에 뇌과학은 로봇공학과도 상호작용한다.


뇌의 활동을 읽어 들이거나 뇌의 활동을 조작하는 신경기술(neurotechnology)들은 주로 치료와 연구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휴대성이 좋아지고 안전성과 성능이 향상되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것이다. 이 기술들은 시장성이 크지만 뇌 기능 향상에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또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있다. 기술을 활용해 마음을 조작하게 되면 정체성이 흔들리거나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2006년, 뇌과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국제 신경윤리학(neuroethics) 학회가 설립되었다.[4] 신경윤리학에서는 뇌과학의 현실 적용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를 연구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논의하며, 문제 의식을 공유해서, 뇌과학이 비전공자들에게 올바로 이해되도록 돕는다. 미국과 유럽에서 추진하는 거대 뇌과학 프로젝트에는 신경윤리학 분과가 포함되어 있으며,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시민과 과학자들이 뇌과학의 사회적 영향과 프로젝트의 방향, 제도적 대응 방안을 논의하도록 독려하고 있다.[5]


이처럼 뇌과학은 사회 곳곳에 영향을 끼친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학문인 만큼 흥미로울 뿐 아니라, ‘현실 분야에 적용(translation)하면 어떨까’ 하는 영감도 불어넣는다. 하지만 비전공자들이 뇌과학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기존의 불안이나 바람, 편견에 따라 왜곡된 정보가 뇌과학이라는 권위를 등에 업고 대중들 사이에서 유행하곤 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까지도 우생학에 따라 강제 불임 수술이 시행되었음을 생각하면, 인간과 관련된 과학 지식이 왜곡된 상태로 확산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래서 뇌과학은 과학기술과 사회(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TS), 과학기술의 대중화 방면에서도 가장 활발한 노력이 이뤄지는 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뇌과학의 의의 (4) : 현대 뇌과학과 시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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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은 각각 미지의 영역인 뇌를 탐구하기 위해 휴먼 게놈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거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국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Research through Advancing Innovative Neurotechnologies Initiative; BRAIN Initiative)는 신경 활동을 관측하고 조작하는 기술을 개발해 뇌 전체의 연결과 활동을 연구한다. 한편 유럽에서 진행되는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는 뇌 속 모든 신경세포의 연결 지도를 그려서 컴퓨터로 뇌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이다.[6][7]


이 프로젝트의 상당 부분은 가설에 따른 실험을 하고, 연구 데이터를 독점하던 기존의 과학 연구와 다르게 진행된다. 뇌의 특정 부분, 특정 기능에 대한 가설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뇌 전체의 회로와 활동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연구실에서 나온 데이터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빅데이터를 처리하며, 다양한 분야가 협력하고 융합하는 일이 중요해졌다.[8][9][10]


일 수백 테라바이트씩 쏟아져 나오는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인공지능이나 슈퍼컴퓨터로도 부족할 때가 많다. 그래서 컴퓨터로는 분석하기 힘든 일부 과정을 게임으로 만들어서 일반 시민의 참여를 도모하기도 한다.[11] 게임이긴 하지만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갖춘 다음에야 분석에 참여할 수 있는데, 덕분에 시민들은 뇌과학의 연구 현장에 참여하고 뇌과학을 배울 기회를 얻는다. 예컨대 ‘모자크(Mozak)’ (https://www.mozak.science/landing)라는 게임에서는 신경세포의 사진으로 3차원 신경세포를 복원하고, 신경세포를 종류별로 분류하는 등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사회 현장의 필요와 뇌과학 연구를 접목시킬 수도 있다.[12] 사람의 뇌를 연구할 때는 동물이나 컴퓨터 모델을 연구할 때처럼 다양한 실험 조작을 가할 수 없다. 하지만 연구하기에 적합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찾아가면 이들을 도우면서 뇌도 연구하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프라카시 프로젝트Project Prakash’에서는 치료할 수 있는 눈 질환을 치료하지 못해서 맹인이 된 가난한 인도 아이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며 장시간 관찰했다. 그 결과 오랫동안 시각 경험이 박탈되었던 뇌가 어떻게 시각을 학습하는지 연구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이처럼 뇌과학 연구가 진행되는 방식, 시민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시민들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경로도 온라인 게임을 활용한 크라우드 소싱, 흥미로운 연구에 후원하는 크라우드 펀딩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나와 연결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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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뇌과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며 삶의 곳곳, 사회의 곳곳을 바꾸고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최근 많은 이들이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신을 더 잘 알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기 일에 접목할 만한 아이디어를 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뇌과학의 사회적 파장을 보며 공부할 필요를 느꼈을 수도 있고, 단순히 뇌과학이 재미있게 보였을 수도 있다.


떤 동기로 시작하든 자신에 대한 이해는 삶에 영향을 끼치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사회가 변하기 시작한다. 현실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실험과 융합이 저절로 일어난다. 마음을 탐구하는 학문인 뇌과학은 재미있기까지 하니 금상첨화이다.


하지만 이런 매력에 끌려 공부하려고 보면 만만치가 않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단편적인 정보들은 틀린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체계적인 지식이 되지 못한다. 정보를 지식으로 꿰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여기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서는 저렇게 말하는 정보의 홍수를 헤매다 보면 우왕좌왕 혼란스럽고 불안해지기 일쑤이다. 처음 보는 종류의 과일이 유전자 변형 식품(GMO)이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그래서 이걸 먹어도 된다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자꾸만 헷갈리는 것처럼.


그렇다고 전문적인 자료를 찾아보자니 이 지식이 나하고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게 왜 중요한지 감이 안 온다. 자신과도, 주변의 세상과도 연결되지 않는 지식이 복잡하고 어렵기까지 하면 금방 손을 놓을 수 밖에. 어찌어찌 해서 공부했다 하더라도 세상과의 고리, 나와의 고리를 갖지 못한 지식은 떠올릴 일이 없고, 살면서 떠올리지 않는 지식은 쓰이지도 못한 채 잊히게 마련이다.


뇌과학의 전문 지식과 독자를 연결하기 위해서 자주 쓰이는 수식어가 ‘우리나라 연구자가 세계 최초로’나 ‘무슨 질환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인데, 이래서는 수박 겉핥기밖에 되지 못한다. 뇌과학에서 진짜 맛있는 과즙은 껍질 안에 들어 있는데 말이다. 지식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야, 없던 관심도 생기고 이해하기도 쉬워진다. 지식이 비로소 삶을 바꾸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연재는 “사람은 정말로 잘 안 변할까?”, “자아는 허상인가?”,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사랑은 화학 작용일 뿐일까?”처럼 기존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최신 뇌과학 연구에서 답을 찾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통념들은 자신이나 주변 세상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이미 작동하고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앞에서 언급한 뇌과학의 이모저모를 두루 다루어 뇌과학이 가져올 변화를 큰 틀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연재의 시작과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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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경기가 끝나던 무렵,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염려하던 시기에 시작되었다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 참고 http://scienceon.hani.co.kr/386696). 그로부터 1년 8개월,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 기술도 무럭무럭 발전해서 최근에는 인공 자궁, 최초로 시민권을 받은 인공지능 로봇, 뒤로 공중 제비를 하는 로봇까지 나왔다.[13][14][15] 두려워해야 하는 걸까?


간이 알 수 없는 미래로부터 흘러나와서 현재를 향해 밀어닥친다고 생각하면 두렵다. IMF 외환 위기처럼 거대한 사건이 예기치 못하게 덮쳐오면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과거로부터 나와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기도 하다. 시간을 이렇게 이해하면, 미래는 현재로부터 비롯되는 무언가이자, 어느 정도 내가 만들어갈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16]


실제로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과학과 기술이 사회를 바꿔가는 구체적인 모습에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여러 나라에서 지하철이라는 교통 기술을 이용해 왔고, 지하철 추락 사고도 겪었지만 여기에 대응하는 방법이 나라마다 다르다. 지하철이 노후화된 뉴욕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방치해 왔지만, 마찬가지로 지하철이 오래된 런던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구간이 제법 있다. 일본에서는 지하철 자살자의 유가족에게 고액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지만 한국에서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했다. 지하철처럼 오래된 기술에 대해서도 나라마다 구체적인 풍경이 다른 것이다.[17][18]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어도, 기술이 가져올 변화의 방향을 옆으로 살짝 틀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블록버스터급 에스에프(SF) 영화의 탓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들 영화의 배경은 대개 어둠침침하다. 도저히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빈부격차의 한 켠에는 최첨단 기술이, 반대 켠에는 거칠고 무식하고 가난한 자들이 음식 같지도 않은 것을 먹으면서 살아간다. <블레이드 러너 2019>에도, <블레이드 러너 2049>에도, <에이.아이.(A.I.)>에도,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도 그랬다. 이 가난한 자들은 초라하고 나약한 배경일 뿐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 서부영화에서 주인공이 멋들어지게 총질을 하는 동안 마을 주민들이 수동적인 역할에 머무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제국주의 시절의 열강들처럼 인간을 지배하려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터미네이터>, <아이, 로봇>, <매트릭스>, <어벤져스> 등이 그렇다. 서양 국가들이 그린 이 그림이, 인공지능이 발전한 미래 사회에 대한 유일하게 합리적인 그림일까?



새로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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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면서 헐리우드식 에스에프(SF)가 그리는 미래에 처음으로 의문을 품게 되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앞부분에 나오는 주방은 <인터스텔라>와 <허(Her)>에 나오는 주방, 1990년대 나온 시트콤 <프렌즈> 속의 주방과 너무도 비슷했다. 1990년대에서 2049년 사이 무려 50여 년 동안, <블레이드 러너 2049> 수준으로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주방만은 그대로라는 게 말이 되는 설정일까? 혹시 미국에서 나온 SF 작품은 서부영화처럼 미국인의 로망과 세계관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SF의 주 무대가 되는 공간도 주방을 제외한, 황량한 무법 지대 같은 공간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같은 기술로 다른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그린 그림을 두려워하면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의 그림을 그리고 남들이 그 그림에 따라오게 하는 것. 이 편이 훨씬 더 폼 나고 재미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결과, 나라마다 다른 지하철처럼 다른 풍경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남들이 따라오게 할 만큼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그림을 그리려면 과학을 정확하게 이해하되 나라는 맥락, 사회라는 맥락과 연결 지을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주방에 대한 상상력은 부족했을 망정, 헐리우드식 SF 영화의 저변에는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과학과 인간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었다. 그래서 관객들이 주방과 빈부격차 같은 클리셰를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설득력이 있었다.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과학과 인간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뤄지려면 시민과 소통하는 과학, 과학과 소통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뇌과학, 인공지능, 뇌과학이 현실과 부딪히며 생겨난 의문들(예: 사랑은 화학작용일 뿐일까), 윤리적 쟁점들(예: 신경 교육)을 하나씩 다져온 이 연재가,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과 인간을 성찰하는 여정이자, 시민과 소통하는 과학, 과학과 소통하는 시민을 위한 여정이었다.


시민과 소통하는 과학, 과학과 소통하는 시민을 통해 새로운 그림을 그려가는 것. 이것이 알파고가 무서워서 “나, 그냥 캄보디아 오지 같은 데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까?” 라는 질문과 함께 연재를 시작했던 내가 이번 여정 끝에 도달한 결론이다.


그동안 함께 해온 독자들에게도 즐거운 여행이었기를. 지금의 이 결론도 실험하고 고민하면서 계속 변해가겠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즐거운 여행이기를.


연재를 마무리하며 독자들과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감사 드립니다. 그동안의 연재 글들은 연재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들을 추가하고 구성을 보강해서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 (동아시아)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출처


[1] Farah MJ. Neuroethics: An Introduction with Readings. The MIT Press (2010)

[2] 닐 레비, 『신경윤리학이란 무엇인가: 뇌과학 인간 윤리의 무게를 재다』, 신경인문학 연구회(역), 바다출판사 (2011)

[3] ET Bloom et al. (2011) The Global Economic Burden of Non-communicable Diseases. Geneva: World Economic Forum.

[4] Greely HT et al. (2016) Neuroethics in the Age of Brain Projects. Neuron. 92: 637-641.

[5] Garden H et al. (2016) Neurotechnology and Society: Strengthening Responsible Innovation in Brain Science. Neuron 92: 642-646.

[6] Martin CL & Chun M, (2016) The BRAIN Initiative: Building, Strengthening, and Sustaining. Neuron 92: 570-573.

[7] Amunts K et L. (2016) The Human Brain Project: Creating a European Research Infrastructure to Decode the Human Brain. Neuron 92: 574-581.

[8] Neuro Cloud Consortium (2016) To the Cloud! A Grassroots Proposal to Accelerate Brain Science Discovery. Neuron 92: 622-627.

[9] Koch C & Jones A (2016) Big Science, Team Science, and Open Science for Neuroscience. Neuron 92: 612-616.

[10] Wiener M et al. (2016) Enabling an Open Data Ecosystem for the Neurosciences. Neuron 92: 617-621.

[11] Roskams J & Popovic Z (2016) Power to the People: Addressing Big Data Challenges in Neuroscience by Creating a New Cadre of Citizen Neuroscientists. Neuron 92: 658-664.

[12] Sinha P (2016) NeuroScience and Service. Neuron 92: 647-652.

[13] 조산 새끼양, 인큐베이터 아닌 ‘인공자궁’으로 살려냈다 (경향신문 2017.04.2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261642021&code=970100

[14] 사우디 시민권 받은 로봇 탄생…"사우디 여성보다 권한 더 많아" (조선비즈 2017.10.28)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7/2017102702320.html

[15] Be very afraid … robots can now do backflips (Guardian News 2017.11.17)
https://www.youtube.com/watch?v=WcbGRBPkrps

[16] 신영복, 2000, 「강물과 시간」, 《진보평론》 3: 191-202. http://blog.jinbo.net/comworld/296

[17] 뉴욕지하철 한국처럼 스크린도어 추진 (중앙일보 2012.12.30)
http://news.joins.com/article/10295591

[18] [월드리포트]누가 자살 좀 말려줘요 (주간경향 2006.01.03)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1180&code=117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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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빗소리를 좋아하고, 푸름이 터져나오는 여름을 좋아합니다. 도파민과 학습 및 감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뇌과학이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 되기를, 우리가 이런 존재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이기를 바랍니다.
이메일 : ryung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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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는 몸의 주인일까?뇌는 몸의 주인일까?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송민령 | 2017. 10. 20

    [17] 몸이 뇌에 끼치는 영향 뇌는 몸의 주인일까? 삶에서 마음은 중요한 부분이고, 뇌가 마음의 작용에서 특별히 중요한 기관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뇌는 에너지 대사를 전적으로 몸에 의존하고 있으며 몸이 전해주는 외부 환경에 대한...

  • 뇌영상 기술로 마음과 미래를 알 수 있을까?뇌영상 기술로 마음과 미래를 알 수 있을까?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송민령 | 2017. 08. 31

    [16] 신경부호 해독과 ‘마음 읽기’ 뇌를 연구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신경 해독 기술은 사회적인 필요와 만나서 거짓말을 탐지하거나, 성향을 파악하거나,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고, 질병에 걸릴 위험을 예견하는 쪽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뇌의 구조적...

  • ‘의식’은 뇌속 어디에 있는가? -신경망의 관점에서 보면‘의식’은 뇌속 어디에 있는가? -신경망의 관점에서 보면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송민령 | 2017. 07. 25

    [15] 뇌가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생겨난 특징들 ②       [ ①편 읽기 ] ‘뇌는 네트워크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한 말인데도 막상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뇌가 네트워크이면...

  • “내 탓 아닌 뇌 탓” 주장의 오류“내 탓 아닌 뇌 탓” 주장의 오류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송민령 | 2017. 06. 26

    [14] 뇌가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생겨난 특징들 ① ‘뇌는 네트워크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한 말인데도 막상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뇌가 네트워크이면 어떤 특징들을 갖기에, 네트워크 네트워크 하는 걸까? 뇌가...

  • 기억의 일생: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하는가기억의 일생: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하는가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송민령 | 2017. 05. 29

    [13] 기억의 형성, 변형, 회고 우리는 많은 것을 빨리 외우고 오래 기억하기를 바란다. 대개는 시험을 잘 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익과 취직 걱정이 없는 동물들도 기억을 한다. 기억은 왜 필요한 걸까?기억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