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의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질병의 원인을 인구집단 수준에서 찾는 학문을 역학(epidemiology)이라고 합니다. 이 분야 전문가인 김승섭 교수가 사회•공동체와 관련해 질병 원인을 추적하는 '사회역학'의 역사를 짚으며 흥미로운 연구 사례를 들려줍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병들게 되는지, 어떻게 해야 더 건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와 우리의 무지를 깬 트랜스젠더 건강연구 10장면

[12] 사명감, 좌절, 깨달음…2013-2017년을 돌아보며


15_1.jpg » 2016년 트랜스젠더 인권유린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김승섭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

-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중에서


#1.

우리의 무지를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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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는 단어는 낯설었다. 텔레비전에서 본 한 연예인을 통해 막연하게 트랜스젠더는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연구를 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 지정 받은 성별과 스스로 생각하는 성별이 다른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흔하게는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본인의 성별을 여성으로 여기는 트랜스 여성, 엠티에프(MtF: Male to Female)와 그 반대의 경우인 트랜스 남성, 에프티엠(FtM: Female to Male)을 일컫는다. 그러나,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남성과 여성 어느 쪽으로도 규정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도 있다.


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하는 과정은 모든 게 새로웠다. 내가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단어와 익숙해지고 그 뜻을 배워야 했던 면도 있지만, 나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사람은 남성과 여성으로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그 고정관념을 나는 오랫동안 의심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동안 연구자로서 쓴 수많은 논문에서 성별이라는 변수는 남과 여로 고정된 것이었으니까. 트랜스젠더의 목소리에는 내게는 더없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어떤 것들로 인해 매일 고통을 견디는 누군가가 살아가는 세상이 있었다.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 부여 받은 성별이 아니라 자신이 정체화 한 성별로 살아가기 위해 의료적 조치와 법적인 성별정정을 필요로 한다. 그 과정을 성별 트랜지션(Transition)이라고 부른다. 정신과에서 진단을 받고, 호르몬 치료를 꾸준히 진행하고 여러 가지 외과적 성전환 수술을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의료적 트랜지션의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성전환 수술을 거친 트랜스젠더의 경우 수술 이후에도 제거하지 않은 생식기나 신체 조직에 대한 주기적인 암 검진이 필수적이고, 꾸준히 호르몬요법을 받을 경우 그에 따른 생리적 변화를 감안한 위험 질환에 대한 검진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체적 건강만이 아니다. 트랜스젠더에게 가해지는 편견이나 차별을 감안할 때 정신건강의 측면에서도 특수한 고려가 필요하다. 6,456명의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한 미국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26%가 신체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었고, 41%의 응답자가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것으로 응답하여 정신건강에 취약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그런 폭력이 덜할 리 없었다. 분명 한국의 트랜스젠더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한국 트랜스젠더의 건강에 대한 연구는 전무했다.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학자들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건강에 대해 논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우리의 무지와 무책임함을 인정하는 것이 이 글에서 말하는 모든 연구의 시작이었다.



#2.

트랜스젠더 병역면제 소송에 참여하며: ‘무언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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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인 ‘희망을 만드는 법’의 한가람 변호사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여성이라고 정체화 하는 MTF 트랜스젠더 ㄱ씨의 군입대 관련 소송에 대한 글이었다. ㄱ씨는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해 병무청이 정한 여러 병원에서 심리검사를 받고 정신과 의사로부터 성별정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 진단을 받았지만, 2010년부터 2014년까지 9차례 징병신체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신체등급이 변경되다가 결국 병무청에서 2014년 현역입영 처분을 받았다. 한가람 변호사의 이메일은 ㄱ씨의 현역입영 처분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는 소송에 소견서를 제출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가 해석한 소송의 핵심은 ‘트랜스젠더가 병역면제를 받기 위해 본인의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의학적 근거의 수준은 얼마만큼인가? 고환절제술과 같은 외과시술이 필수적인가?’였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트랜스젠더는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고, 한국 사회에서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은 어떤 의미인가?’를 먼저 알아야 했다.


출판된 논문과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지만,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된 트랜스젠더 건강 관련 연구들을 기반으로 전문가 소견서를 법정에 제출했다. 제출한 소견서의 핵심은 3가지였다.


첫째, 한국에서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호르몬 치료와 성전환 수술 비용은 20대 초반인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 큰 부담이 된다. 트랜지션 관련 비용 부담은 개인에게 온전히 떠넘기면서,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에게 국방의 의무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에서는 트랜스젠더에게 성전환 관련 진료와 수술을 제공할 수 있는 의료진이 매우 부족하다. 의과대학은 물론이고, 산부인과나 성형외과 레지던트 수련과정에서도 트랜지션 관련 의과교육을 받지 않는다. 현재 한국 트랜스젠더는 높은 비용과 수술 후 여러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도 태국 등 외국으로 나가 수술을 받고 있다. 셋째, 한국과 같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만연한 사회에서 당사자가 충분한 준비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성전환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면제를 위해 강제로 수술을 받게 되면,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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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히 2016년 9월 서울고등법원은 이 소송에서 트랜스젠더 ㄱ씨의 현역 입영처분이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이 재판에 전문가 소견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 건강에 대한 연구 자체가 부재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한국 트랜스젠더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료 자체가 없다는 점을 알게 된 후 보건학자로서 무력감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인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

열다섯 명의 트랜스젠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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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설문조사나 행정 자료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의 분포와 원인을 이해하는 역학(Epidemiology)이다. 트랜스젠더에 관한 행정자료가 부재한 상황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당장 설문조사를 시작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트랜스젠더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결국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다가가는 수 밖에 없을 텐데, 그 분들이 그동안 특별한 활동 없이 의지만 충만한 우리 연구팀을 신뢰할 리 없었다.


큰 문제는 연구팀이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2014년 이혜민 학생과 <보건과 사회과학>에 출판한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체계적 문헌고찰’에서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지도를 그린 적이 있었다. 2013년까지 한국에서 논문으로 출판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 건강에 대한 모든 연구를 검토했는데, 한국의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는 턱없이 빈약했다. 몇 안 되는 기존 연구들은 외과적 수술사례를 보고한 의학 논문이었고, 트랜스젠더들이 병원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그리고 의료적 조치에 드는 비용과 관련해서 건강보험 적용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연구는 없었다.


나는 연구실 학생들과 연구를 기획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할 때 충분한 사전 검토와 고민이 없으면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가르쳐왔다. 그동안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실태조사나 전공의 근무환경 조사 같은 여러 연구를 진행하면서 애초 계획이 실패한 적은 많지만, 한번도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막연히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설문 문항에 포함시키도록 허용한 적은 없었다. 트랜스젠더 건강에 대해서는 아직 설문조사를 진행할 만큼 우리의 고민과 공부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민 끝에 일단 트랜스젠더를 만나 의료 이용 경험에 대해 듣고자 했다. 그런데, 그 기회를 막연하게 듣고 배우는 시간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은 최대한 논문 출판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분석하는 질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는 통계를 이용해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내가 알지 못하는 방법론으로 이 예민한 주제를 접근할 수는 없었다.


당시 연구실에는 질적 연구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으신 손인서 박사님께서 연구교수로 일하시며 차별과 건강에 대한 체계적 문헌검토 논문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책임연구원으로 연구의 행정을 내가 책임질 테니, 박사님께 이 연구를 진행하고 분석하는 일을 부탁드렸다. 연구실 박사과정 박주영 학생, 석사과정 이혜민 학생이 함께 팀을 이뤄 2014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열다섯 명의 트랜스젠더를 만나 연구를 진행했다.


15_3.jpg » 2017년 <한국사회학>에 출판된 심층 인터뷰 분석 논문. 물론 섭외부터 쉽지 않았다. 성소수자에 대한 온갖 편견이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낯선 이에게 자신의 예민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가까이 지내던 트랜스젠더부터 인터뷰를 시작하고, 그 분이 다른 이를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트랜스젠더를 진료하는 병원을 찾아가는 일부터, 호르몬 치료와 성전환 의료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겪는 차별과 어려움에 대해 들었다. 이 연구는 1년이 넘는 분석과정을 거쳐 2017년 5월 <한국 사회학>에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트랜지션과 의료서비스 이용: 사회적 낙인과 의료적 주변화’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논문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논문의 제1저자는 당연히 손인서 박사님이었지만, 내가 본래는 교신저자를 맡으려 했다. 내가 연구를 처음 기획하기도 했고 실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도 당시 석사과정 학생인 이혜민 학생이 이 연구를 훨씬 더 열심히 진행한 것은 물론이고, 연구 내용에 대한 이해도 나와 비할 수 없이 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전공인 통계적 기법을 이용한 역학 연구가 아니었기에 생겨난 일이었다. 결국 석사과정 이혜민 학생이 교신저자가 되어 이 논문이 출판되었다. 학생이 교신저자인 논문에 지도교수인 내가 공저자로 들어간 첫 논문이었다. 남들이 볼 때 별게 아닐 수 있겠지만 난 그게 자랑스러웠다.



#4.

트랜스젠더 의료접근성 연구: ‘교수님, 이 논문 받아줄 학술지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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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인터뷰를 통해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의료 이용 경험에 대해 서술하고 분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충분치 않았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했다.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 접근성과 관련해서 현재 상황이 어떠하고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국내외 현황을 정리하고 외국의 연구를 정리한 글이 절실했던 것이다.


마침 2015년에 10대, 20대 트랜스젠더 인터뷰를 진행한 경험이 있던 이호림 학생이 연구실에 박사과정 학생으로 들어오게 됐다. 성소수자 건강에 대해 공부하고자 연구실에 들어온 이호림 학생과 함께 이 주제로 논문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세상에 쉬운 논문이 없지만, 이 연구는 조금 다른 면에서 어려웠다. 내가 기존에 출판한 논문은 직접 수집하거나 정부기관이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그 결과를 해석하는 연구이거나 그 동안 이루어진 논문들을 검토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문헌고찰 논문이었다. 그런데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 접근성에 대해서는 데이터도 없었고, 기존 연구도 없었기에 이 중 어떠한 길도 선택할 수 없었다.


래서,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형식의 논문 쓰기를 시작했다. 한국의 여러 인권단체가 출판한 보고서 중 조금이라도 관련한 내용이 담긴 것들을 정리하고 관련한 외국 논문들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논문의 주요 내용을 3가지로 잡았다. 첫째는 한국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의료적 조치와 비용을 정리하고, 둘째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건강보험과 같은 공공자금을 통한 의료적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알아보고, 셋째로는 의료공급자의 측면에서 의학교육과 의료진 수련과정에서 트랜스젠더를 진료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이 무엇이고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서술했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내게 물었다. “교수님, 이 글을 논문으로 받아줄 학술지가 있을까요?” 학생들은 불안했던 것이다. “이 글에 담긴 내용이 한국사회에 학술적으로 꼭 필요한 내용이라는 점은 확신하지? 그러면 믿고 가자. 꼭 필요한 글은 학술지가 분명 알아볼 거야.” 나 역시 자신이 없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할 테니 학생들에게 걱정 말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조심스레 한 걸음씩 나아갔다.


논문을 투고하기 전에는 학술지 담당자에게 문의를 했다. 내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시론 논문을 썼는데 이런 주제의 논문도 심사대상이 되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일단 투고를 하시라고, 논문을 보고 편집팀에서 회의를 하고 결정하겠다고 답을 했다. 한국에 꼭 필요한 논문이라고 생각해서 썼으니 게재불가 판정을 받더라도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15_4.jpg » 한국 성소수자 건강연구를 진행하는 Rainbow Connection Project 연구팀, 왼쪽부터 박사과정 박주영, 이호림, 최보경, 이혜민 학생, 김승섭 교수.


2015년 <보건사회연구>에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접근성에 대한 시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이 논문 초록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의 의료접근성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


엄격한 학술언어로 쓰는 논문에서 ‘기존 연구가 전무하다’는 표현을 쓸 만큼, 황무지에 덤벼든 논문이었다. 이 논문이 출판되고서 가장 기뻤던 것은 그 막막한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준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정말로 필요한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쓴다면, 부족하지만 현재 가능한 자원을 최대로 활용해서 최선의 설명을 제공한다면 학술지가 논문으로 인정해줄 거라는 우리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함께 배웠으니까. 다행이었다.



#5.

좌절 속에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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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라는 주제로 연구를 지원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문헌고찰, 심층인터뷰, 제도적 분석 논문을 쓰면서 무엇을 조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점차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 연구실의 전공인 역학 연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연구재단에 트랜스젠더 건강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연구비를 받기 위해 지원했다. 학생들은 걱정했지만, 나는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논문 출판 경력이 좋았고, 이 주제를 연구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를 했다고 믿었으니까.


‘미선정’이었다. 일차적인 이유는 당연히 내 연구 제안서가 부족한 것이었겠지만, 심사평 중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트랜스젠더가 의료 이용 과정에서 차별을 겪을 거라 전제하고 들어간다는 게 학자로서 중립적이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학술연구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여러 사회단체의 보고서에서, 또 외국의 연구에서 트랜스젠더가 의료 이용 과정에서 다양한 차별을 겪고 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심층 인터뷰로 만났던 트랜스젠더 모두 의료환경에서 뚜렷한 차별을 경험했었다. 우리 연구에서 한국 트랜스젠더가 의료이용 과정에서 어떤 차별을 겪는지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목표는 내게 합리적인 것이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또 다른 비판은 우리가 수집하는 연구 데이터가 트랜스젠더 집단을 대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2017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트랜스젠더를 대표하는 연구집단을 구성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한국에 트랜스젠더가 몇 명이 있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표성 있는 연구집단을 구성할 수 있겠는가. 그 이유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로 인해 트랜스젠더가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 때문만이 아니었다. 한국 정부와 학계는 이 주제에 대해 그동안 철저하게 무관심했었고, 한국 트랜스젠더의 규모를 추정하기 위한 연구조차 한 번도 진행된 적이 없었다. 한국 트랜스젠더 건강에 대한 연구는 우리 연구팀의 논문이 유일한 상황이었다. 나는 총 연구비5천만원이 안되는 트랜스젠더 건강연구 기획서를 연구집단의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30편이 넘는 역학 연구를 학술지에 출판했는데 그 대부분의 데이터는 국가기관이 수집한 대표성을 지닌 대규모 데이터였다. 그런 데이터로 분석을 하면, 논문을 심사 받는 과정에서 다가오는 여러 비판들을 방어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방법론적으로 보다 튼튼한 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데이터로는 트랜스젠더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의 삶에 대해 연구할 수 없다. 국가기관의 대규모 연구는 사회적 낙인 속에서 불안정한 삶을 사는 이들의 삶에 관심이 적고, 그런 사람들이 대규모 패널 데이터에 들어가는 경우도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럼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대답은 둘 중 하나이다. 하나는 좀 더 준비를 하며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이 부족함을 감수하며 현재 가능한 수준에서 최선의 연구를 할 것인가. 내 대답은 후자였다. 만약에 내 주제가 물리학 연구였다면 다른 결론을 내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학문인 보건학은 인구집단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응용 학문이었다. 한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더 건강해질 수 있을지에 대해 논할 때, 가장 중요한 집단은 그 공동체의 모든 혜택으로부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다. 현재 시스템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방법론적으로 보다 엄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날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나는 2017년 한국에서 가능한 자원을 최대로 활용해서 무엇이 한국 트랜스젠더를 아프게 하는지에 대해 최선의 설명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한국 트랜스젠더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며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싶었다. 주변의 훌륭한 과학자들로부터 나는 과학이 변치 않는 올바른 결론의 집합체가 아니라, 합리적 사유양식을 기초로 한 당대에 가용한 자원을 활용한 최선의 설명이라고 배웠다.


정부기관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ESC)’에서 크라우드펀딩으로 연구를 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좋은 사회와 좋은 과학을 함께 꿈꾸는’ 이 모임의 회원이었다. ESC크라우드펀딩 위원위에 연구 기획서를 제출했고 심사과정을 거쳐 승인되었다.


15_5.jpg » 트랜스젠더 건강연구를 위한 연구비 마련을 위해 시행했던 스토리펀딩.



#6.

마켓에 나온 백면서생: ‘정말 시민의 도움으로 연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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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펀딩으로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위한 연구비를 모으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접근성이 가장 좋다고 알려진 모 인터넷 회사의 플랫폼을 이용하기로 결정 했다. 우리는 요구 받았던 연재 글과 후원한 사람들에게 드릴 리워드를 준비해서, 담당 매니저와 약속을 잡고 한남동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깔끔하고 예쁜 회의실에 연구실 박사과정 이혜민 선생, 크라우드펀딩 담당 매니저가 함께 앉아 있던 그 장면을 지금도 기억한다. 후원해주는 분들께 리워드(보상용 기념물품)를 어떻게 드릴 거냐는 질문에, 나는 “1만원 내는 분들께는 저희가 쓰는 책에 후원자로 이름을 넣어드리고, 3만원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강연회에 초대를 하고...” 이렇게 답을 하는데, 마주 앉은 담당 매니저의 표정이 점점 어색해졌다.


시 침묵이 흐른 뒤,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교수님께서 하시는 이야기는 실제로는 아무런 리워드도 주지 않겠다는 것과 같아요.’ 책에 후원해준 분들의 이름을 넣는 걸 리워드라 할 수 있겠냐고, 그리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강연에 초대하면 과연 몇 명이나 올 것 같냐는 질문을 했다. <시사인>의 주진우 같은 스타 기자도 오프라인에서 강연을 하면 100명 이상 모으기 쉽지 않다며.


준비해간 연구팀 소개 글과 연재 글을 보여줬을 때, 담당 매니저는 '대학에서 연구하시는 분들이시죠'라고 말하곤 우리의 눈을 피했다. 함께 그 자리에 갔던 박사과정 학생과 나는 어찌할 바 몰랐다. “저희 글이 그 정도로 이상한가요?” 나쁜 건 아닌데, 많은 분들이 핸드폰으로 볼 텐데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라고 했다. 나름 부드럽게 대중적으로 글을 쓴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는 연구자스러운 글이었던 것이다.


그 미팅을 마치고 옆 건물 1층의 카페에 갈 때까지 이혜민 학생과 나는 아무 말도 서로 나누지 못한 채, 침묵 속에서 나란히 걷기만 했다. 크라우딩펀딩을 한다는 게 결국 시장에서 영업을 하는 일인데, 내가 막연히 사람들의 호의에 기대어 일을 하려고 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대학에서 연구만 하던 백면서생이 아무런 준비 없이 영업에 투입된 신입사원이 된 셈이었다.


일단 아이스 커피를 시켰다. “혜민아, 우리 정신 차리자. 여기서 조금만 잘못하면 우리 연구 망하겠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순진했다는 점을 인정하기로 했다. 매니저의 말씀대로 리워드로 돈을 낸 사람들이 후원을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할 수 있는, 보여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했다.


15_6.jpg » 다음스토리펀딩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시작합니다’의 리워드인 배지와 에코백, 텀블러. 음날 연구실에서 연구팀 학생들과 다시 회의를 했다. 디자인을 도와줄 수 있는 분께 약소한 수고료를 드리고, 연구팀 로고를 디자인했다.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Rainbow Connection Project)”의 영문 로고가 예쁜 무지개 색깔을 입고서 나왔다. 그 디자인으로 에코백과 뺏지를 찍기로 했다. 크라우드펀딩을 도와주는 ESC 측에 텀블러 디자인을 부탁했고, ESC 회원인 엄윤설 작가님의 도움으로 정말 예쁜 텀블러가 나왔다.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다음 스토리펀딩 첫 번째 글이 올라가기 전에 리워드 사진도 올려야 해서 에코백을 급하게 제작했다. 그런데, 제작하고 보니 에코백의 천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얇았다. 뭔가 허술한 느낌이었고, 나라면 이 에코백을 받고서 기쁠지 그걸 일상에서 실제로 사용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고민 끝에, 크라우드펀딩이 진행되는 동안에 학생들과 회의를 하며 에코백 한 개당 원가를 1,000원 정도씩 더 주고 더 좋은 천으로 새로 찍기로 결정했다. 이미 찍은 에코백은 선물하거나 따로 판매할 때 사용하고, 3만원 이상 후원하는 분들께 드리는 에코백은 더 두꺼운 천으로 만든 다시 만들었다. 그렇게 새로 찍은 에코백을 후원자들에게 보냈다. 나는 이 연구에 후원해준 모든 사람들이 리워드를 받고서 자부심을 느끼고 기뻐했으면 했다.


15_7.jpg » 네이처(Nature)에 대안적 연구형태로 소개된 연구팀의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스토리펀딩 (2017년 3월 22일) https://goo.gl/IVx8th 라우드펀딩은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목표 금액의 절반을 모금했고, 7일이 되던 날 연구에 필요한 금액을 모두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펀딩이 성공했다고 축하한다는 문자를 받았던 그 순간이 지금도 기억난다. 감사했다. 어떤 사람이 볼 때는 1000만 원이라는 연구비가 고만고만한 돈일 수도 있다. 이 1000만 원에는 돈이 되지 않는 이 연구를, 사회적 소수자인 트랜스젠더의 건강 연구를 응원하는 수백 명의 응원이 담겨 있었다. 감사했고, 미안했다. 분명 누군가는 넉넉치 않은 형편에 마음을 내서 만원씩 보탰을 것이다. 트랜스젠더도 세금을 내는 시민인 만큼 가능하면 그들의 건강에 대한 연구도 국가기관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면 이 사람들의 이 아까운 돈을 내 연구에 쓰지 않아도 될 텐데 라는 마음이 있었다. ‘정말 시민의 도움으로 연구를 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2017년 3월 23일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는 우리가 진행한 크라우드펀딩에 한국사회에서 나타난 대안적인 연구 형태로 소개된 기사가 출판되었다.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부딪쳤던 그 막막함을 다 함께 손잡고 이겨낸 과정이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7.

설문지를 만들며: 계속해서 좌절하고 배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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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설문지를 디자인 하는 과정에서 연구팀 내부에서 여러 논쟁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의견충돌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를 설문 대상에 포함할 것인가 여부였다. MtF, FtM과 같은 트랜스젠더 만을 대상으로 하면 데이터 분석이 더 간단했다. 그런데, 태어날 당시 부여 받은 법적인 성별을 부정하지만, 성별 정체성이 여성이나 남성 둘 중 하나로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는 대부분 스스로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여부를 모르거나 판단을 유예하는 경우가 아니라, 그 중 어느 쪽으로도 스스로를 정체화하지 않기로 결정한 경우였다. 이러한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에 대한 건강 연구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연구팀 모두가 동의를 했지만, 그 분들을 이번 연구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두고서는 논쟁이 있었다.


구팀은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당사자들을 만나 자문회의를 했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세 명을 모시고, 설문지의 문항 하나하나를 함께 검토하는 회의를 진행했다. 그 미팅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중요한 여러 질문들이 나왔다. 일단 그 분들은 트랜스젠더가 받는 성정체성장애 정신과 진단을 받는 과정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태어난 성별을 부정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남성과 여성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 그 진단서가 없으면 성호르몬을 처방 받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호르몬 조치를 원하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들은 병원 처방 없이 성호르몬을 구하는 길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자문회의가 끝나고 설문지를 모두 수정하기 시작했다.


자문회의를 통해 설문문항이 바뀐 것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커밍아웃 한 트랜스젠더 변호사 1호인 박한희 변호사님과 자문회의를 하고 나서야 민간보험 가입과 관련해서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에 대한 질문을 설문에 포함시킬 생각을 했고,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활동가 세 명과 회의를 진행하고 나서야 트랜스젠더의 성 노동에 대해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트랜스젠더 호르몬 치료를 진행하는 살림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의 추혜인 선생님과 트랜스젠더 성전환 수술을 진행하는 녹색병원의 윤정원 선생님이 의료적 트랜지션 설문에 대해 검토해준 내용은 더할나위없이 중요한 것들이었다.


리 연구의 또 다른 목표는 트랜스젠더 연구가 활발한 외국에서 개발된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한 주요한 설문지를 번역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로즈 대학(Rhodes College)의 트랜스젠더 건강연구자인 라이란 테슬라(Rylan Tesla) 교수가 개발한 젠더 소수자 스트레스 및 레질리언스 측정도구(The Gender Minority Stress and Resilience measure) 중 ‘내재화된 트랜스젠더 혐오(Internalized Transphobia)’였다. 조심스레 보낸 공동연구 제안 이메일에 테슬라 교수는 흔쾌히 응해줬다. 우리 연구팀은 이 질문지를 한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쳤다. 일단 영어 설문지를 두 명의 외부 전문가가 한국어로 번역했고, 그 두 개의 한국어 번역본을 놓고서 회의를 한 후에 하나의 한국어 번역본으로 만들었다. 한국어 번역본을 또 다른 두 명의 독립된 연구자가 영어로 재번역해서, 회의를 통해 그 둘을 조율해서 합친 최종 영어 재번역본을 만들어 라이언 테슬라 교수에게 보냈다. 이 영어본과 당신이 애초에 만든 영어 설문지가 실제로 유사한지, 그 의미가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를 묻고 코멘트를 받았다. 그 코멘트를 기반으로 최종 설문지를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어느 과정 하나 빼놓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설문지에 영향을 준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은 해외사례 연구였다. 예를 들어, 2016년 12월에 <청소년 연구(Journal of Adolescent)>에 출판된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과 하버드 대의 공동연구를 읽고서 놀랐다. 10대 청소년 트랜스젠더 73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 치료를 받기 전에, 난자/정자 보관(Fertility Preservation)을 하는지에 대해 조사한 것이다. 아이를 갖는 것은 삶의 행복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성전환 치료를 시작하고 나면 자신의 난자와 정자로 아이를 갖기 어려우니 그 전에 난자와 정자를 추출해서 보관해 놓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인지를 조사한 것이다. 연구 대상 73명 중 72명이 정자/난자 보관 상담을 했고, 2명은 실제로 정자/난자 보관을 했다. 45%는 나중에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 논문을 읽기 전에 나는 트랜스젠더가 아이를 갖고 싶어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연구팀은 2014년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 건강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 논문과 2016년 트랜스젠더 열다섯 명을 인터뷰해서 그들의 의료이용 경험에 대한 심층인터뷰 논문, 트랜스젠더 성전환 관련 의료보장과 교육에 대한 정책논문까지 총 3편의 논문을 출판한 상태에서 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한국에서 우리 연구팀보다 이 분야 연구를 많이 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설문지를 만들고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알게 되었다. 학자로서 왜 계속 출판되는 논문들을 철저히 공부해야 하는지도, 동시에 왜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계속해서 귀 기울여야 하는 지에 대해 또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8.

설문 참가 트랜스젠더에게 다가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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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7년 진행하는 우리의 연구가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가장 많은, 다양한 트랜스젠더가 참여한 연구이길 바랐다. 그래서, 우리가 트랜스젠더에게 접근 가능한 통로를 가능한 많이 확보하고자 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의 도움으로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 광고 배너를 올릴 수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인터넷 설문조사는 이미 내가 소방공무원 인권조사, 병원 전공의 근무환경 조사를 진행할 때 했던 익숙한 형태였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는 이것으로 불충분했다. 그렇게 하면,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는 트랜스젠더가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15_8.jpg » 2017년 대구 퀴어 퍼레이드에서 트랜스젠더 건강연구를 위한 부스를 차리고 설문조사를 홍보 중인 연구팀.

 

래서 무엇보다 트랜스젠더가 호르몬 치료를 위해 방문하는 병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런데, 병원들이 우리 연구를 도와줄 이유가 마땅치 않았다. 병원은 환자 진료가 최우선인 공간이고, 그곳에 설문조사를 부탁드리는 게 과연 가능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일단은 직접 만나서 상의하는 수 밖에 없었다. 연구팀의 박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서울에서 트랜스젠더가 자주 방문하는 병원 세 곳을 찾아갔다.


연구에 대한 설명과 설문조사 링크가 담긴 미리 준비해간 인쇄된 브로셔를 보여드리며 부탁드렸다.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 트랜스젠더에게 연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그 브로셔를 나눠 주실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몇몇 분들이 ‘그냥 브로셔를 보내시지, 부담스럽게 교수님이 직접 오셨어요?’라고 내게 물었을 때, 나는 대답했다. ‘부담 드리려고요. 도와주세요’. 데이터 수집이 끝난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볼 때, 병원을 포함하지 않았다면 반쪽짜리 설문조사가 될 뻔했다.


그 다음 고민은 서울과 대구에서 진행되는 퀴어문화축제에서 어떻게 설문조사를 진행할지였다.  일단 성소수자들이 다 함께 광장에 모이는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처음 계획은 종이로 설문지를 인쇄해서 그 날 오신 분들에게 그 자리에서 설문에 응답해 달라고 부탁하자는 것이었다. 막상 설문지를 인쇄하자 20페이지가 넘었는데, 그 떠들썩한 축제의 현장에서 설문에 응답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울증상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지난 1주 동안의 우울증상 관련 경험에 대해 20가지 질문을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1년 중 거의 유일하게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대중 앞에 당당하게 드러내는 그 날에 응답하는 내용은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퀴어문화축제에서 연구팀이 부스를 차리고 설문을 진행하는 대신, 에코백과 뺏지를 판매하는 일을 하면서 온라인 설문 링크가 담긴 브로셔를 나눠줬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신 분들께는 며칠 뒤에 설문조사 링크를 문자로 보내 드리기로 했다.


4개의 병원과 2번의 퀴어문화축제에서 나눠준 브로셔는 모두 달랐다. 기본 디자인은 같았지만, 포함된 온라인 설문 링크 주소를 모두 다르게 했다. 연구팀은 설문조사를 진행할 때 주소가 다른 10개의 온라인 링크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래서 설문조사가 끝난 지금, 우리는 어떤 응답자가 퀴어문화축제에서 나눠준 링크를 통해 답했는지, 특정 병원에서 나눠준 브로셔를 보고 설문에 응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번거로운 작업을 했던 것은 통계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같은 병원에 다니는 트랜스젠더는 거주 지역을 포함한 여러 특성을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통계학에서 회귀분석을 할 때, 기본적으로 모든 응답자가 각각의 독립적인 상황에서 별개의 존재로서 응답한다고 가정하는데, 같은 병원에 다니는 이들끼리는 어떤 점에서 서로 비슷할 수 있어 이 가정이 깨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가정이 무너지면, 표준오차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감안하는 여러 통계 기법들도 있지만, 그를 위해서는 누가 같은 병원에 다녔는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9.

숨어 있던 이야기들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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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과 8월 30일까지 2달 동안 285명의 한국 트랜스젠더가 우리의 연구에 최선을 다해 응답해주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진행된 연구 중에서 가장 많은 트랜스젠더가 응답한 데이터이다. 의료이용, 법적 성별 정정, 군입대, 직장 생활 관련한 광범위한 질문과 우울증상, 자살생각 등을 포함한 여러 예민한 질문에 대한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목소리가 그 안에 담겨져 있다. 이제 데이터 분석을 시작한다.


회가 새롭다. 2013년 문헌고찰 논문에서 시작했던 연구가 심층 인터뷰를 통한 질적 연구, 해외사례를 검토한 정책연구를 거쳐 내 전공인 연구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는 역학 연구를 진행하는 시점까지 온 것이다.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팀을 보며 사람들은 왜 그리 연구비 지원도 안 되고 논문 쓰기도 어려운 주제를 잡아서 고생하느냐고 묻곤 했다. 물론 그 모든 어려움도 사실이었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 달리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은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이 길을 걷지 않았다면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질문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하고 10일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다. 연구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낯선 목소리가 김승섭 교수님이냐고 물었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망설이는데, 수화기 저편에서 조심스런 목소리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본인이 트랜스젠더 당사자인데, 인터넷 크라우드펀딩을 보고 너무 고마워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연락했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진단서 받고 다음주부터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려는데, 우리가 진행하는 연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전환 수술을 건강보험으로 받을 수 없는 것도 사람들이 낯설게 보는 것도 많이 괴로운데, 어려운 연구를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몇 번씩 했다.


성소수자 건강 연구를 시작하고서 이메일로는 고맙다는 말을 한 사람은 여럿 있었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스스로가 성소수자라고 밝히거나, 자식이 게이여서 아이가 받을 사회적 차별이 걱정되는데 연구자로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화를 통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이제 막 20살 정도일 텐데, 내 연구실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하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전화를 끊으며 했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제가 이름을 밝힐 처지가 아니어서 죄송하다’는 말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떻게든 전하려고 했던 그 응원이 내게는 연구하는 내내 큰 힘이었다.


15_9.jpg » 016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국제심리학회(International Congress of Psychology)에서 한국성소수자 건강연구를 발표하는 연구팀 박사과정 이혜민 학생.


다른 날이 기억난다. 트랜스젠더를 진료하는 의사를 만나 물었다. 한국에서는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 요법을 보통 몇 살부터 시작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대답을 하셨다. 외국에서는 성전환을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그들을 어떻게 진료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주로 그 나이 때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한국은 20대 후반이 넘어서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외국의 권고사항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건강보험을 사용할 수도 없어 온전히 개인의 돈으로 지불해야 하고,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망설이다가 성전환 치료를 시작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나이 60세가 넘은 ‘남성’이 찾아온 이야기를 하셨다. 그 분은 오래 전부터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성전환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 몰랐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바빠서 엄두도 못 냈었다. 이제 아이들도 모두 결혼을 했고 배우자와도 이혼을 했으니, 남은 시간이라도 여성으로 살아야겠다고 병원에 찾아온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60살이 넘으면 여성도 폐경을 하게 되고 남성의 경우도 남성 호르몬의 분비가 급격히 감소하기에, 이제와 호르몬 치료를 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 치료 효과가 크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합병증이 증가할 수 있다고 간곡하게 말씀을 드렸는데, 소용이 없었다. 본인의 인생사를 털어놓으면서 이제 하루를 살아도 여성으로 살아야겠다고 구구절절 말씀하셨다고 한다. 의사는 의학적 근거를 기준으로 치료를 권하지만,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은 그 근거만으로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환자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자신의 고유한 역사 위에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결국 호르몬 요법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그 분의 삶에 대해 종종 생각했었다. 그 분에게 지난 60년이 넘는 시간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구를 하며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생겼다. 특히 에디 님은 여러 면에서 감사했다. 연구를 기획하던 시절부터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까지 그녀의 도움이 컸다. 트랜스젠더가 아니면 답해줄 수 없지만 혹시라도 무례하게 들릴 까봐 마음에만 담고 있었던 여러 질문들을 나는 그녀에게 마음 편히 물어볼 수 있었다. 트랜스젠더가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만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한국의 성전환 과정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2017년 대구 퀴어문화축제에서는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라는 이름으로 부스를 차리고 설문조사를 홍보했는데, 에디가 큰 역할을 해줬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낯선 이들이 지나갈 때 쭈뼛 거리며 말 걸기를 망설이는 나와 달리, 그녀는 웃으며 장난을 치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 모습이 예쁘고 멋졌다.


‘희망법’의 박한희 변호사도 고마운 존재였다. 그녀가 트랜스젠더로서 살아온 시간을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온전히 드러내며 자신을 둘러싼 편견들에 맞서는 것을 보며 연구자로서 용기를 얻었고, 내 연구의 가치를 확실할 수 있었다. 특히, 법적 성별정정을 포함한 여러 설문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변호사이자 당사자인 그녀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되었다.


또 그들을 만나며,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이들에게는 숨막히게 높은 장벽인지 알게 되기도 했다. 함께 맥주를 마시는 동안 건너편 테이블에서 이쪽을 힐끔거리면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부터 느끼는 불쾌감과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한 후 성전환을 한 그들이 예비군 훈련시기마다 겪는 괴로움을 나는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다.



#10.

나는 ‘그 질문’에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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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성소수자 부모모임 분들을 상대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토록 절실한 눈빛으로 강의를 듣는 청중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심장에 유리조각이 있어서 조금만 몸을 건드려도 상처받을 것 같은 어른들이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끝까지 함께 하셔서, 죄송했다. 이 분들이 성소수자 당사자들보다 더 많이 아프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인지라 잘 안다. 내 자식 몸에 작은 생채기가 나면, 그보다 몇 배 큰 상처가 가슴에 새겨진다.


연이 끝나고 나를 찾아온 한 부모님이 내 손을 붙잡고 물으셨다.


“교수님, 교수님은 연구를 많이 하시니까 아실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인 내 아이가 이토록 불안하고 힘든 게 트랜스젠더로 태어나서 어쩔 수 없는 건가요, 아니면 이 사회가 내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서 그런 건가요? 저는 그걸 꼭 알아야겠어요.”


나는 그 질문에 한동안 답을 하지 못했다. 무엇이 올바른 답인지 궁리하기 전에 그 질문에 가슴이 먹먹했다. 당연히 사회적 차별과 혐오가 트랜스젠더를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사회적 차별이 그들의 고통을 얼마만큼 설명하는지를 답하는 것은 실은 통계적으로 복잡한 질문이기도 했다.


지만, 나는 이 연구가설을 정확하게 검토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영유아 사망의 원인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그 상품의 판매가 중단되고 나서 같은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비과학적 혐오와 차별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한국 사회가 트랜스젠더의 삶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질문에 답하고 싶다.


15_10.jpg » 2017년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발표하는 Rainbow Connection Project 연구팀.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부교수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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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 부교수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경험과 고용불안 등의 사회적 요인이 비정규 노동자, 이민자,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 지에 대해 연구한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메일 : ssk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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