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의 "여덟 갈래 정책 산책"

과학기술정책은 과학기술인의 더 나은 연구환경에 중요하며 또한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발전에 중요합니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있는 여덟 명 필자들이 과학기술을 위한 정책, 더 나은 사회 정책을 위한 과학기술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스크린 위의 재난: 가상 재난으로 진짜 재난 얼마나 대비할까?

[5] 가상현실 재난 대응훈련



스크린 위의 재난 대응 훈련을 그만두자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그 어떤 가상 재난도 실제 재난과 완벽히 같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각 가상 재난이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을 제대로 알고서
 우리에게 스크린이 필요한지, 실화재 훈련장이 필요한지, 추모관이 필요한지를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과잉대표 된 가상 재난의 실효성을 재평가하고
과소대표 된 가상 재난의 가능성을 재조명하자는 제안이다.


5_1.png » 서울시 재난현장 지휘역량 강화센터에서 가상 훈련에 참여하는 소방관들. 출처/ 서울특별시 재난현장 지휘역량 강화센터 홍보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DvJ3Hjc1iM

 

난 9월 13일 서울시 은평소방서의 대원들은 영화관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스크린 앞에 섰다. 지난해 3월 은평소방서에 문을 연 소방 훈련 시설인 “서울시 재난현장 지휘역량 강화센터(ICTC)의” 설비를 활용해 일사불란한 재난 대응을 연습하는 날이었다. 소방관들은 각자에게 배당된 스크린을 마주하고는 게이머들이 주로 사용할 법한 조이스틱을 움직여 가상공간 속의 아바타를 조종했다.


스크린 위에서 만난 소방관 아바타들은 지하철역 화재, 항공기 추락사고, 유해 화학물질 사고 등 재난 현장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한 가상현실 안에서 주어진 시나리오에 따라 재난 대응을 연기했다. 화재 진압을 맡은 아바타가 현장으로 달려가 물을 뿌리는 동안 구조를 맡은 아바타는 시민들을 구조하는 식이었다. 이 훈련이 여러 재난 대응 부서들 사이에 "톱니바퀴와 같은 유기적인 긴급대응" 체제를 정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힘주어 밝힌 한 소방서장의 말에는 어떤 확신이 배어있었다.[1] 그가 재난 현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재난을 그가 있는 곳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는 믿음, 어떠한 종류의 위험도 스크린 위에 일목요연하게 띄워 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에게는 있었다.



스크린 위의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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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의 시설이 재난에 대응해야 하는 지휘관과 소방관을 위한 것이라면,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안전체험교육관 ‘365세이프타운’에는 일반 대중을 위한 기술이 있다. “안전 체험 테마파크”를 표방하는 이 시설에서 방문객들은 산불, 풍수해, 지진, 대테러, 설해 등 각종 사고를 대형 스크린을 통해 체험함으로써 재난에 대해 배운다. 예컨대 산불 체험관 안에 들어선 관람객은 소방 헬기와 비슷하게 생긴 기구에 탑승한 뒤 한 명의 소방대원이 되어 화재를 진압하는 1인칭 영상을 시청하게 된다. 어지간한 멀티플렉스 극장보다도 큰 스크린은 관객에게 재난 구조 과정의 긴박한 스펙터클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소방 헬기의 운용이라는 재난의 실제를 실내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고, 관객도 이런 체험을 통해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가정이 1790억원을 들여 건립한 이 시설의 뒤에 서 있다.[2]


5_2.png » 365세이프타운에서 가상 지진을 체험하는 관람객.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UHraGiTn82U


극적으로 찾아보면 재난을 스크린으로 옮겨보려는 시도는 이 두 가지 예시로 그치지 않는다. 2016년 9월 국민안전처는 ‘365세이프타운’과 유사한 국민안전체험관을 전국 여덟 곳에 새로 건립하기로 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전국의 중, 대형 안전체험관은 2020년까지 무려 59개에 이르게 된다.[3]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을 받아 맥스온 소프트가 개발한 소방관 직무훈련 시스템 ‘히어로즈 온 파이어(Heroes On Fire)’는 재난을 스크린 위 게임의 차원으로 진화시킨 예시다.[4] 200명에 달하는 소방관들이 모니터 앞에 줄 맞추어 앉고는 각자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하고 가상 재난에 대응하는 모습은 기묘한 기술 경관을 만들어낸다. 스크린과 VR을 활용한 재난 교육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재난 대비 및 대응 정책의 한 축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널리 퍼져  있다.


5_52.jpg » VR 재난 시뮬레이션 게임 ‘히어로즈 온 파이어’를 체험하는 소방관들. 출처/ AVING TV. 유투브 https://youtu.be/NVYPoAl9zKc

 

‘스크린 위의 재난’이라고 한데 묶어 부를 만한 이 재난 대응훈련 정책은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가상 현실과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재난에 대비하겠다는 야심 찬 시도가 점점 늘어나는 것에 반해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휘관, 소방관, 대중이 스크린으로 매개된 재난을 통해 유의미한 교훈을 얻고 있는지, 또 이 방식이 다른 종류의 재난 교육과 비교했을 때 어떠한 우위를 지니는 지와 같은 차분한 질문은 스크린과 가상 공간에서 정신없이 벌어지는 스펙터클에 비해 지루하게 느껴지기 쉽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검증 없는 행정이 ‘안전 정책’을 ‘안전 산업’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5] 더 많은 스크린을 세우고 펼치기 전에 과연 이 기술이 약속한 바를 성취하고 있는지 먼저 검토할 때다.



스크린이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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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과 규모는 조금씩 다르지만 ‘스크린 위의 재난’은 어떤 공통의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바로 정보통신기술(ICT) 기술로 재구성한 일종의 ‘가상 재난’으로 실제 재난에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약속이다. 이 가정은 얼마나 믿음직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기술로 만든 가상 재난은 재난 정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재난은 매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사고를 경험하며 충분한 훈련이나 교육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참사는 느닷없이 닥치며 대구지하철참사와 같은 화재 참사가 재난 훈련이나 교육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골프장에 매일 갈 수 없는 골퍼가 스크린 골프장을 찾아 연습과 훈련을 하는 것처럼 소방관들도 스크린 위의 가상 재난을 통해 더 많은 훈련과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5_444.jpg » 미국 텍사스 주의 소방 전문 훈련기관 TEEX(Texas A&M Engineering Extension Service)에서 소방관들이 모의 항공기 화재 진압 훈련을 하고 있다. 출처/ TEEX 홈페이지 https://teex.org/Pages/default.aspx

 

제는 왜 굳이 스크린이어야 하는가 라는 점이다. 실제 재난을 닮은 가상 재난을 만드는 방법에는 스크린과 가상현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 민방위 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 등 여러 재난대비 훈련도 역시 가상 재난의 한 형식이다. 국내에는 소수이지만 미국, 일본 등에는 건물이 붕괴된 현장이나 대형 화재를 물리적으로 재현하는 소방관 전문 교육 시설도 많다.[6] 스크린 위의 재난은 이런 대안적 가상 재난에 비해 어떤 점에서 다른가? 다른 재현의 양식과 비교했을 때 스크린 위 재난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않는가?



시각적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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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위의 재난이 가장 큰 강점으로 삼는 것은 시각적 재현이다. 스크린이나 VR 기기에 상영되는 재난 현장은 정교한 3차원(3D) 모델로 만들어지는데 이를 통해 재난체험관을 찾는 소방관이나 대중은 실제 사고 현장과 비슷한 광경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서울시 지휘역량 강화센터가 만든 가상 공간은 실제 화재 현장을 그대로 본 떠서 건물에 달려있는 ‘우리은행’ 간판 하나까지도 그대로 재현한다.


불길을 재현하는 데에는 이보다 훨씬 섬세한 노력이 들어간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VR 게임 ‘히어로즈 온 파이어’의 경우에 “화재에 의한 불과 연기의 확산에 대한 사실적, 과학적 모델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특수한 소프트웨어가 동원된다. “수학적 알고리즘에 의한 화재 유형별 표준 수치해석 모델”을 적용한 이 프로그램들은 연기와 화염이 더욱 사실적으로 피어 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돕는다. 덕분에 이 게임은 “사무용 피시(PC)의 사양에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실재감 있는 화면을 구현”할 수 있다.[7]


5_42.jpg » 스크린 위의 재난은 화재 현장을 간판 하나까지 극사실적으로 재현한다(왼쪽). 때로는 현실보다도 실재감 있는 불길을 만들기 위해 복잡한 수학적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도 동원된다(오른쪽). 출처/ 서울특별시 재난현장 지휘역량 강화센터 홍보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DvJ3Hjc1iM (왼쪽), 화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Pyroism’ https://www.youtube.com/watch?v=YDfkLl1ziL4 (오른쪽)

 

면, “극사실적”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은 대개 축소되거나 선택적으로만 재현된다. 소방 장갑의 두께감, 호스의 무게감, 화재의 열감과 같은 감각은 스크린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덕분에 스크린을 통해 재난 교육을 받는 소방관들은 거추장스러운 방화복을 입을 필요도, 물리적 힘을 쓸 필요도 없다. 스크린 위의 아바타는 클릭 한 번에 무거운 장비를 입고도 거뜬히 환자를 나르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건물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기도 한다. 스크린 위의 재난은 이러한 ‘부수적’ 감각이 제거된 가상 재난으로도 충분히 소방 교육이 가능하다는 가정을 품고 있다. 열과 연기가 없는 환경에서 습득한 무언가가 열이 있는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일까?


위태로운 가정 위에서도 화재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는 넘쳐나는 반면에, 물리적으로 불을 피우고 끄는 훈련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나무나 기름을 실제로 태워서 소방관들이 열감을 느낄 수 있게 돕는 ‘실화재 훈련장’을 갖춘 소방학교는 2015년까지만 해도 전국에 고작 한 군데에 불과했다.[8] 타이어 등으로 작은 불을 붙인 뒤 소화기로 진압하는 소규모 훈련마저도 “연기 발생 등에 의한 주변 민원 발생 우려”로 인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결국 대부분의 소방학교는 운동장에서 불이 난 것을 가장해 모의 진압을 하는 것에 그친다. 화재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데 쏟는 노력에 비해 이를 물리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는 현저히 저평가 되었다.


스크린 위의 불은 나아가 물리적 불을 대체하려고까지 한다. 여러 재난 시뮬레이션 업체들이 내세우는 스크린 위 재난의 가장 큰 장점은 “실제 특수 장소의 훈련 장소에서 훈련을 진행하는 데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과 비효율성을 가상의 공간에서 수시 훈련함으로써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9] 스크린 위라면 큰 불을 내기 위해 필요한 비상정지장치, 고성능연기배출장치, 특수온도센서 등 새로운 기술 장치를 개발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소방관이 훈련 장소에 갈 필요조차 없다. 스크린 위의 시각적 재난은 훈련을 진행하는 데 어떤 불편함도 생기지 않는 편리한 재난이다.    



시나리오적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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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위의 재난은 철저히 정해진 시나리오를 따라 전개된다. 스크린 앞에 선 소방관이나 일반인은 영상물 내에서 잘 규정된 역할을 수행한다. 정해진 역할을 반복적으로 훈련해서 표준적 행동 방식을 “체화”한다면 실제 재난에도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스크린 위에 펼쳐져 있다.


크린 위의 재난을 만드는 사람들은 교육적 효과를 지닌 섬세한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는다. 올해 서울시 지휘역량 강화센터는 5억 5000여 만원을 들여 10개의 재난 시나리오를 새로 만들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강남역 화재, 원효대교 붕괴, 공항 화재 등에서 멈추지 않고 시나리오를 계속 늘려 나가서 “모든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55개 훈련 프로그램을 확충하는 것이 목표다.[10] 365세이프타운 역시 설해, 지진, 산불, 테러 등 다양한 재난 시나리오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홍보한다. 모든 재난에 해당하는 시나리오를 갖춘다는 일은 얼마나 현실성 있는 약속일까?


그 수가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 사실은 각각의 시나리오에 아무런 해석적 유연성도 없다는 점이다. 스크린 위의 재난은 사건의 발단, 전개, 결말이 모두 명확히 정해져 있는 영화 같은 재난이다. 훈련에 임하는 소방관들은 시나리오를 요약한 일종의 ‘대본’을 참고해서 자신의 배역을 충실히 연기해야 한다. 가상 훈련을 감독하는 ‘퍼실리에이터’들은 마치 지미집 카메라가 재난 현장을 내려다보는 듯한 전지적 시점을 독점하면서 모든 배우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히어로즈 온 파이어의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배역을 충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를 훈련 말미에 수치로 평가받기도 한다. 진화 성공에는 추가 점수를, 물을 많이 사용한 경우에는 감점을 받는 식이다. 모든 행동이 지문으로 세세하게 규정된 가상 재난에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즉흥 연기’를 할 여유가 없다.


5_5.png » 스크린 위의 재난을 감독하는 퍼실리테이터들은 지미집 카메라 같은 전지적 시점을 독점하기도 하고(왼쪽), 개별 소방관들을 정해진 지표에 따라 세세히 평가하기도 한다(오른쪽). 출처/ 서울특별시 재난현장 지휘역량 강화센터 홍보영상(왼쪽) 맥스온 소프트 홈페이지 http://maxonsoft.com/?page_id=31 (오른쪽)


래서 스크린 위의 재난은 즉흥성으로 가득 찬 실제 재난 대응과 정반대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 화재 상황에서는 도로에서 비키지 않는 일반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늦게 도착하기도 하고, 소방 헬기가 물을 채울 곳을 찾지 못해 산불 진압의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11] 무전기 통하지 않아서 대원들이 위험에 빠지거나 심지어는 예산 부족 때문에 소방 장갑을 개개인이 직접 구매하는 경우까지 있다. 하지만 스크린 위에서 이런 예외적 상황은 재난 대응 정책이 상대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다. 예외적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가상 공간에서 재난 대응이 매끄럽게 일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예외를 배제한 시나리오에는 항상 명확한 시작 지점과 끝 지점이 있다.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불이 붙거나 홍수가 일어난 시점에서 시작해 사람이 극적으로 구출되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스크린 위의 재난은 여느 드라마가 그렇듯이 길어도 1시간 이내에는 종료된다. 재난 정책이 예방, 대비, 대응, 복구의 네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쓴 대부분의 학술 서적이 무색하게도, 스크린 위의 재난은 사고가 일어나기 전과 후의 시간에 무심하다.[12] ‘365세이프타운’에 방문한 관람객들은 산불을 끄고, 지진을 견디고, 홍수를 막는 장면을 생생하게 경험하지만, 산불의 체계적 예방을 위한 정치적 해법이나 지진에 더욱 견고한 도시를 만드는 기술적 방법, 홍수의 피해를 복구하는 사회적 과정에 대해서는 배울 수 없다. 세월호 참사와 같이 재난 대응에 실패한 ‘새드엔딩’ 사례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 결과 스크린 위의 재난은 구조가 모두 종료된 이후로도 진하게 남는 재난의 사회적, 정치적, 감정적 여파를 넓은 스크린 어디에도 재현하지 못한다. 전국 곳곳에 365세이프타운을 비롯한 온갖 재난 체험장이 들어서면서도 ‘4.16안전공원’과 ‘기억교실’ 등 세월호 참사 추모 공간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13] 화려한 시각적 효과는 없지만 4.16안전공원이나 기억교실은 배가 인양된 이후까지 아물지 못한 사회적 상처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가상 재난 체험장이다. 방문객은 단원고 학생들이 거닐었을 교실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을 걸으며 실제로 존재한 적 없었던 영웅적 구조 요원이나 선장이 되는 것이 아닌 세월호 유가족이 사고 이후 지난 3년 동안 지나쳐 온 아픔을 체험한다. 기억교실의 서사는 스크린 위의 재난이 상정하는 시나리오가 끝나는 지점 즈음에서야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을 재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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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사고를 완벽히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스크린 위의 재난은 사실 그것이 성취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 시각적 재현은 다른 종류의 감각을 배제한다. 시나리오화 된 재난은 예외 상황을 무시한다. 영웅적 해피엔딩은 재난 이후의 아픔과 슬픔, 지난한 복구의 과정을 외면한다. 이러한 선택적 망각 덕분에 스크린 위의 재난은 다루기 편리하지만, 편리하다고 해서 교육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크린 위의 재난을 그만 만들자는 주장이 아니다. (VR과 스크린을 활용한 재난 교육은 체험자의 흥미를 돋우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다만 그 어떤 가상 재난도 실제 재난과 완벽히 같을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각 가상 재난이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을 제대로 알고 우리에게 스크린이 필요한지, 실화재 훈련장이 필요한지, 추모관이 필요한지를 검토해보자는 주장이다. 과잉대표 된 가상 재난의 실효성을 재평가하고 과소대표 된 가상 재난의 가능성을 재조명하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난 교육의 목표와 방향성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지휘관, 현장 요원, 대중은 재난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워야하는가? 그것은 때로는 스크린 위의 재난이 주장하듯이 잘 규정된 행동규칙일 수도, 또는 일상생활을 더욱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사전적 예방책일 수도, 아니면 구조가 모두 끝난 뒤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보듬는 세심한 사회적 기술일 수도 있다. 이 질문의 답변이 늘어나는 만큼 우리가 만들어야 할 가상 재난의 수도 늘어난다. 정보통신기술을 비롯해 과학기술은 오직 스크린 위의 가상 재난만이 아니라, 여러 ‘재난들’을 재현할 필요에 응답해야 한다.


[주]



[1] 경기신문, “실전처럼… 일산소방서, 재난지휘역량훈련”(2016년 8월 7일).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6625
[2] 조선일보, “1790억 든 '태백 세이프 타운' 개장 한달… 하루 100명만 찾아”(2012년 11월 30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30/2012113000175.html

[3] 국민안전처, “지진 행동요령, 체험으로 배워요! 전국에 8개 「국민안전체험관」 신규 건립 추진”( 정책설명자료). https://www.mpss.go.kr/home/policy/policy/policydesc/?boardId=bbs_0000000000000047&mode=view&cntId=1248&category=&pageIdx=

[4] 전자신문, “200명 동시접속 가능...체감형 온라인 소방관 직무훈련시스템 등장”(2015년 12월 14일) http://www.etnews.com/20151214000190

[5] 김철, “박근혜 정부의 안전 대책 비판 :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중심으로,” 사회공공연구원 워킹페이퍼. http://www.ppip.or.kr/board_working/1589

[6] 송우승, 함승희, 윤명오, "화재진압 교육훈련시설 설치기준의 필요성 및 내용에 관한 연구." 한국화재소방학회 논문지, 28.3 (2014.06): 62-71.

[7]‘히어로즈 온 파이어’ 개발사인 맥스온 소프트 홈페이지를 참조. http://maxonsoft.com/?page_id=31

[8] 이데일리, “119의 민낯 '운동장서 화재진압 훈련•실전이 훈련인 구급대원'”(2015년 11월 25일). 실화재훈련시설의 경우 서울, 강원, 광주의 소방학교에서 2019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다.

[9] 이근주, “화재재난현장 팀단위 전술 및 도상훈련 시뮬레이션 개발,” 미래창조과학부 차세대핵심소방안전기술개발사업 최종보고서, 2014.

[10] TBS, “[유용화의 시시각각] 재난현장 지휘역량 강화센터 운영 조례.” https://www.youtube.com/watch?v=Pm9xtf-fy74

[11] 한겨레, “더 오래, 더 크게, 더 자주…산불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2017년 5월 13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794560.html#csidx40d1ec49306be31ba940147cedc0932
[12] 재난관리론 서적은 물론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 역시 예방, 대비, 대응, 복구의 4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13] 한겨레, “세월호 참사 3주기 지났어도 추모·안전시설은 제자리”(2017년 4월 18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91203.html#csidx7172aa3749773d096268e9f3145c255


김성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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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재난 이후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kim8278@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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