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롭고 복잡미묘 감정의 세계” -27가지 지도로 그려보니
심리학 연구진은 서로 구분되는 감정 27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복합적인 감정들이 의미론의 공간에서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를 만들어 웹에 공개했다
» 다채롭고 복잡미묘한 감정들. 출처 / openclipart.org, 변형
심리학에서는 흔히 기본이 되는 감정으로 여섯을 꼽곤 한다. 기쁨, 슬픔, 혐오, 놀람, 분노, 공포가 그것들인데, 심리학자 폴 에크먼이 제안한 이래 널리 퍼졌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에선 주인공 소녀의 마음 속에 사는 다섯 감정, 즉 기쁨, 슬픔, 혐오, 분노, 공포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희노애락이나 칠정(기쁨[喜], 성냄[怒], 근심[憂], 두려움[懼], 사랑[愛]. 미움[憎], 욕심[欲])의 기본 감정들도 있다. 하지만 당연히 그게 다는 아니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감정들은 훨씬 더 많고 때로는 서로 뒤섞여 복잡미묘함을 보여준다.
최근 심리학 실험에서 실험참가자들이 직접 보고한 감정 경험들을 분석해보니 이 실험에서 적어도 27가지 감정이 식별됐으며 감정 상태는 물감처럼 여러 가지가 섞여 있음을 보여준다는 내용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보(PNAS)>에 낸 논문에서, 미국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 소속 심리학 연구진은 이들이 행한 실험에서 서로 구분되는 감정 27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각각의 감정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며 서로 얼마나 가깝게 멀게 분포하는지를 보여주는 공간 분포 지도를 만들어 웹에 공개했다.
» 감정의 지도. https://s3-us-west-1.amazonaws.com/emogifs/map.html
연구진은 먼저 다양한 감정을 일으킬 만한 5초 분량의 짧은 비디오 2185편을 수집해 실험참가자들한테 임의의 순서로 30편씩 보게 했다. 비디오엔 아기, 결혼, 고통, 죽음, 거미, 예술품, 자연경관, 폭발, 전쟁, 똥, 구토, 성행위, 춤, 음식, 퇴역군인과 같은 갖가지 장면이 담겼다. 실험참가자들은 일종의 온라인 인력시장인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Amozon Mechanical Turk)’에서 모아, 이들에게 온라인으로 비디오 단편들을 보면서 자기 감정을 표현하도록 했다.
실험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제1그룹에겐 비디오를 보며 떠오르는 감정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말하게 했다. 제2그룹에겐 그동안 여러 연구들에서 제시된 감정 34가지를 제시하고서 그 중에서 자신의 감정을 선택하도록 했다. 제3그룹에겐 자기 감정에 점수를 매기게 했다. 예컨대 평온과 흥분의 감정 사이에 14단계를 두어 실험참가자가 자신의 감정이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 그 정도를 표시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응답 자료는 세 그룹에서 모두 32만 4066건에 달했다.
연구진은 3개 그룹의 감정 경험 자료들을 비교분석해, 거기에서 27가지 다양한 감정의 카테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이번 실험에서 분류한 감정의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찬탄/admiration, 우러름/adoration, 미의 음미/aesthetic appreciation, 즐거움/amusement, 걱정/anxiety, 경외/awe, 어색함/awkwardness, 지루함/boredom, 평온/calmness, 당황/confusion, 갈망/craving, 역겨움/disgust, 공감고통/empathetic pain, 신바람/entrancement, 시기/envy, 흥분/excitement, 공포/fear, 전율/horror, 흥미/interest, 기쁨/joy, 향수/nostalgia, 로맨스/romance, 슬픔/sadness, 만족/satisfaction, 성적 욕망/sexual desire, 공감/sympathy, 승리감/triumph. 특히 감정 상태는 여러 감정이 서로 얽혀 나타났으며, 어떤 감정의 정도도 점이적이거나 겹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보고했다.
연구진은 이런 연구 결과를 감정의 지도로 만들어 웹에 공개했다. 어떤 비디오 장면을 보며 실험참가자들이 보고한 감정 경험들에서는 어떤 감정이 어떤 다른 감정과 어느 정도로 가까이, 또는 멀게 놓여 있는지, 감정 상태에는 어떤 감정들이 어떻게 복합되어 있는지를 지도에서 볼 수 있다 (마우스의 커서를 가져다 대면 비디오 장면과 경험된 감정 상태를 볼 수 있다). 이런 연구결과는, 어떤 사람의 감정 상태를 “저 사람 화 났어”, “지금 즐거운가봐”처럼 한 가지 감정으로 다 대표해서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감정 상태의 복잡미묘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 논문의 개요
실험참가자들이 보고하는 감정 경험들이 의미론의 공간(semantic space) 내에서 어떻게 기하학적으로 조직되는지에 관한 여러 주장들이 그동안 감정 연구 분야를 이루어왔다. 우리는 통계적 방법을 사용하여 다양한 상황을 담아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2185개 비디오 단편들을 실험참가자들에게 보여주고, 이들이 경험하여 보고한 감정 상태의 자료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보고된 감정 경험들에서 27가지의 감정 경험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카테고리들이 일관되고 강력한 방식으로 차원 평가를 구성하는 것으로 확인되지만, 불연속 이론(discrete theories)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카테고리들이 부드러운 점이(smooth gradients)를 이루어 서로 연결된다. 우리 연구결과는 보고된 감정 경험의 근사적인 기하학적 구조를 보여준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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