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질환'과 더불어 살아가는 여행자들: 질병의 은유 (4)

  시 각   | 질병과 은유 ④ |


☞ 먼저 읽기: 햄버거병, 전쟁, 춤: 질병과 은유 ①

영웅과 희생양: 질병의 은유 ③



른네 해, 평범하다면 평범할 삶을 살아가던 로체 서덜랜드의 인생은 그날 밤을 기점으로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한밤중 갑자기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찾아와, 로체는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그저 집 밖으로 나가야 했다. 겨우 집 옆 호텔 로비에 도착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다음 날 아침, 남매간 우애를 자랑하며 매일 안부를 묻는 짧은 메시지를 빼놓지 않던 동생이 로체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았고, 이상하게 여긴 동생이 집에 찾아갔지만 집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구토 분비물, 어질러진 물건들, 하지만 정작 로체는 집에 없었다. 가까스로 경찰의 도움으로 신원미상의 환자였던 로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로체는 뇌동맥류 파열로 응급 뇌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은 출혈을 막고 추가 손상을 막기 위해 뇌 조직 일부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건진 로체의 세상은 달라졌다. 말은 다시 할 수 있었지만, 글을 알아볼 수 없었다. 시야의 왼쪽은 전과 같았지만, 오른쪽 절반은 왜곡과 환상으로 뒤덮였다.


요양소에 입원하고 경두개 자극술(transcranial stimulation, 위해를 가하지 않을 정도의 낮은 전류를 머리에 삽입한 전극을 통해 흘려보내 뇌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방법)이라는 실험적 기법의 치료를 받으면서, 로체는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로체와 무척 가까웠던 동생조차 그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열정적이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즐겼던 로체는 이제 쉬이 피로에 빠지고, 대인 관계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 계속 시야를 어지럽히는 환상 때문에 오래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로체는 이전에 하던 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니, 로체가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친구도 많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어요.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했죠. 책 읽는 게 너무 좋았고요. 이 모두가 사라진다면, 난 뭐죠?"


실험적 치료법이 무리였는지, 로체는 다시 한번 쓰러졌다. 언어능력 자체가 손상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타자를 칠 수 있는 능력은 회복되었지만, 시각영역과 언어영역 사이의 연결이 손상되었다는 의사의 진단처럼 여전히 글자는 뒤섞여서 알아보기 어려웠다. 로체가 바라보던 세상은, 더는 전과 같지 않았다. 친근하던 골목길을 걸어가는 것도, 환상을 마주해야 하는 로체에게는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로체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난 누구지?”


글을 쓸 수 없던 로체는 이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자신을 동영상으로 찍기 시작했다. "당신 안에 보물이, 온전한 행복의 바다가 있다"라는, 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글에서 힘을 얻은 로체는 점차 이 시간, 상태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특별한 상황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나섰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소피 로빈슨에게 연락하여 자신의 투병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한 로체는, 끔찍한 투병의 시간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빚어냈다. 그렇게, 로체는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대신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받아들였다.


유투브 https://youtu.be/VSfpA3AEKmY | 로체가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후유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나의 아름다운, 망가진 뇌(My Beautiful Broken Brain)>.

영상은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소피 로빈슨이 로체와 함께 만들었으며, 로체에게 영감과

힘의 원천이 된 감독 데이비드 린치(<트윈 픽스>, <블루 벨벳>)가 제작에 참여했다. 다큐멘터리는 2014년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필름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으며 다섯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다.


로체가 완성한 다큐멘터리 <나의 아름다운, 망가진 뇌(My Beautiful Broken Brain)>에는 이야기의 매혹뿐만 아니라, 영상과 음향을 통해 로체가 경험하는 시각적 환상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울린 것은, 런던에서 열린 ‘인지, 소통 콘퍼런스'에 모인 여러 치료사 앞에서 로체가 자신의 경험을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한 치료사가 "회복 과정에서 우리 치료사가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지 조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로체는 답한다. "환자가 길을 찾아낼 수 있도록 집중해 주세요. 치료사님들은 항상 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내려고 해요. 하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을 발견할 수도 있어요. 그게 저한테 일어났던 일이고요."



도대체 ‘정상’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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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로 정의된다.[1] 등록 장애 인구 비중(등록 장애인 수/주민등록인구 수)은 2009년 4.9%에 이른 이후, 대체로 4.8~5.0% 선을 유지하고 있다.[2] 2016년 기준 지체 장애인이 50.5%로 가장 많고, 청각/언어, 시각, 뇌병변, 지적 장애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장애 인구 중 20.8%가 경기도에, 15.6%는 서울시에 산다. 이들 중 경제활동인구는 941,051명으로, 취업자는 880,090명, 실업자는 60,961명이다. 1996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1998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출범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각기 장애인 자기결정권 확대와 장애인 권익증진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요약하면, 20명 중 한 명은 장애인이며, 장애인 고용률(취업자 수/15세 이상 인구)은 36.1%, 즉 다섯 명 중 두 명 만이 현재 고용 상태에 있다. 한편, 영국과 미국은 각각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장애를 지니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3][4]


런 장애에 대한 의료의 시각은 치료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 예컨대 미국 국립과학원(NAS) 의학연구소(Institute of Medicine)와 국립보건원(NIH)은 장애를 네 단계로 정의한다.[5] 병리 생리학적 이상(pathophysiology)이 특정 역치에 도달하면, 신체적 기능 이상인 지장(impairment)이 발생한다. 지장이 기본 활동을 제한하면 기능 상실(functional loss)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기능 상실이 심각하여 개인의 과업 수행을 제한한다면 장애(disability)로 귀결된다. 의학적 개입은 각 단계의 이상이나 제한을 치료하거나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을 장애의 의학 모형(Medical Model of Disability)이라고 부르며, 이 모형은 생물의학적(biomedicine) 관점에 기반을 두어 개인의 삶의 질을 저하하는 장애를 의학적 개입으로 줄이거나 교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6]


한편, 세계보건기구(WHO)는 장애에 관한 모형을 이야기할 때 사람(person)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활동(activity)하기 위해 생물학적, 신체적, 정신적 무결성에 의존한다. 사람은 활동을 통해 공동체, 그리고 사회 일반의 참여자(participant)가 되고자 한다. 사람, 활동, 참여, 이 세 단계에서 발생하는 제한이나 부자유가 장애로 정의된다. 예로, 규칙적인 신체 활동은 만성 질환의 발생 가능성을 낮춘다. 반대로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어떤 사람의 신체 활동이 극도로 제한되어 쇠약해진 상태를 가정해보자. 그는 장애 상태에 있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신체적 자유를 허락해 주어야 한다. 이를 확장한 것이 장애의 사회 모형(Social Model of Disability)이다.[7] 장애의 사회 모형에서 장애를 만드는 것은 사회이다. "정상인" 만을 고려한 환경 요소로 인한 방해, 부정적 태도, 사회의 배제 등이 장애를 구성한다. 신체, 감각, 정신적 변이가 개인에게 한계를 부여할 수 있으나,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고 차이를 수용하는 한 그것은 장애가 아니다.


유투브 https://youtu.be/9s3NZaLhcc4 | 장애의 사회 모형을 설명하는 이 애니메이션은

"외눈박이 세상엔 양눈박이가 장애"라는 말을 시각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휠체어 사용자가 다수인 세상, 그들을 위해 설계된 건물에서 "정상인"이 문을 지나다니다가

틀에 계속 부딪히는 걸 본 휠체어 사용자들이 "정상인"을 돕기 위해 헬멧을 씌워주고,

몸을 굽혀서 다닐 수 있도록 교정기를 만들어 준다.


예컨대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 참가 의사를 밝혔던 마르쿠스 렘은 독일의 멀리뛰기 선수이다. 그의 별명은 '블레이드 점퍼(blade jumper)'로, 15세 때 사고로 오른 무릎 밑을 절단한 뒤 탄소섬유 재질 의족을 사용하고 있다.[8] 장애인 세계선수권 3연속 우승에 빛나는 그는 2015년에 장애인 멀리뛰기 세계기록(8m 40cm)을 세웠는데, 이것은 런던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8m 31cm)보다 더 뛰어난 기록이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thletics Federations)은 렘이 도구의 도움을 받고 있으므로 다른 선수보다 부당한 이익을 누리는 셈이라고 판단해, 출전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과거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반대를 딛고 런던올림픽 400m 단거리 경주에 출전한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와는 달리, 독일은 렘의 출전에 큰 도움을 주지 않았고 그의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9] 하지만 그의 출전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무엇이 정상이냐’는 질문에 다시 불을 붙였다.


아리뼈가 없이 태어나 1세 때 무릎 아래를 절단한 에이미 멀린스는 육상 선수, 배우, 패션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미국 대학체육연맹(NCAA)의 육상 경기에 참여한 최초의 절단 환자로 기록되었다.[10] 이후 패션모델로 나서 영국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패션쇼를 시작으로 여러 사진작가의 모델로 활약했으며, 2009년 <피플>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이름을 올렸다. 2015 세계여성 경제포럼 기조연설을 앞둔 서면 인터뷰에서 멀린스는 "인류가 만든 가장 큰 역경은 '정상'이라는 개념"이며 "보통이나 전형적인 것은 있어도 정상적인 것은 없다"고 말했다.[11]


4_1.jpg » 1996년 애틀랜타 장애인 올림픽에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에이미 멀린스는 이후 배우, 패션모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TED 강연, "내 열두 쌍의 다리(My 12 pairs of legs)"는 TED 강연 중 가장 많은 시청 수를 기록한 강연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 출처/ CNN. TED 강연= https://www.ted.com/talks/aimee_mullins_prosthetic_aesthetics?language=ko


물론 그들의 성공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은 너무도 성급하다. 렘과 멀린스의 초인적인 노력은 그 자체로 갈채의 대상이며, 모두가 그 자리에 설 순 없다. 하지만 그 둘이 제기한 질문, "과연 정상이란 무엇인가"는 장애의 사회 모형과 공진하여 큰 파장을 만들어냈다. 장애의 사회 모형은 신체, 정신적인 지장, 그리고 공평한 관심과 융화의 실패를 의미하는 장애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로, 웹 접근성(web accessibility)은 장애인을 포함한 모두가 인터넷 사이트에 접근하고 그 내용을 확인하며 상호작용하는 데에 공평한 접근과 기능성을 보장해야 함을 말한다.[12] 적절히 구성된 웹 페이지는 문자 음성 변환(text-to-speech), 문자 점자 변환(text-to-Braille) 소프트웨어가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글자와 그림은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의 인공지능 기술 발달은 이런 장애의 사회적 포함과 보조에 관한 희망적 전망을 보여준다. 인공지능 스마트 안경은 시각 장애인에게 눈앞의 장면을 음성으로 설명해준다.[13] 외골격(exoskeleton) 기계가 척수 손상으로 걷지 못하는 사람을 다시 걷게 만든다.[14] 좀 더 손에 잡히는 예를 찾아보면, 저시력 시각 장애인이 글씨를 읽는 데 필요한 1000만 원대의 고가 장비를 스마트폰 앱이 대신한다.[15] 자폐증으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 할 줄 몰랐던 소년이 태블릿과 앱을 통해 학교 친구들과 대화하고,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 연설을 한다.[16] 이런 기계들이 저렴하게 보급되어 접근을 가로막는 벽들을 손쉽게 넘는 날이 오길 바라 마지않는다.


하지만, 그 날은 아직 멀었다. 또, 기술이 신체적 제한의 보조수단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정신적 부자유에 도움을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아무리 놀라운 기술들이 신체적, 정신적 제한을 보완해준다고 해도 우리의 포용과 허용, "정상"에 관한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문턱이 조금 낮아진 것뿐, 여전히 사회는 장애와 정상을 구분하며 그 위에 우열의 위계를 새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결 과제가 있다. 우리의 관점, 또는 "은유"에 관한 변화가 그것이리라. 장애의 의학 모형과 사회 모형이 보여주는 것처럼, 장애를 어떤 모형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것은 치료와 호혜의 대상도, 아니면 변화와 참여의 촉매도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아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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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장애인 단체들은 서울 광화문 지하 보도에서 농성을 벌여왔다.[17] 오랫동안 정부와 사회 눈 밖에 있던 그들의 노력은 다행히 새 정부 들어서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외친 것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의 폐지였다.[18] 현 제도 아래에서 장애인은 1~6등급의 등급으로 나뉘어 복지서비스를 받는다. 부양의무는 가족의 몫이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격리된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공동행동'은 의학적 판단보다 장애인의 필요를 우선할 것을 주장하며 농성을 시작했다.[19] 농성의 취지를 한 활동가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자면, 현 체계는 '주어진 만큼만 살' 것을 장애인들에게 강요하고 있으며 이는 고쳐져야 한다.[20] 변화를 촉구한 1842일의 긴 농성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농성장 방문, 장애인 사망자 18명 영정 헌화, "장애등급 폐지 등을 논의하는 민관 협의체" 구성 약속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제 협상이 시작되었을 뿐 아직 바뀐 것은 없다. 이제 넘어야 할 산의 초입에 막 들어선 것일지도 모른다.


컨대, 서울시교육청은 2013년 이후 강서구 가양동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해 왔다.[21] 그러나 지난 선거에서 지역 선거구의 국회의원이 해당 용지에 한방병원 건립을 공약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결국, 지난 5일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 토론회'에서 한방병원 건립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들 앞에서 장애아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는 일까지 벌어졌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집값 하락이다. 하지만, 1997년 반대를 무릅쓰고 개교한 서울 강남구 특수학교인 밀알학교는 집값 하락이 기우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교육부의 조사에 따르면 특수학교 설립이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구는 특수학교가 들어선 뒤 인접 지역 주택 가격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지표들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아니, 오히려 반대다. 인지과학과 진화심리학은 우리의 인지는 편향될 수 있으며, 사람들이 때로는 사실을 끌어와 "주관적 현실"에 짜 맞춘다는 것을 보여준다.[22] 그렇다면 장애의 현실을 알리고 개선을 촉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를 이해하는 틀을 넓히고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 또한 절실한 일일 것이다.

조그만 사례를 들자면, 전공의 시절에 나는 장애인 클리닉을 가까이할 수 있었다.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장애인을 치료하는 일은 내가 전공하던 과에 속한 장애인클리닉의 책임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치과 관리에 헌신적이었던 교수님을 도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당시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장애우로 대체하자는 의견이 나타났지만, 곧 이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23] 아직 별다른 생각이 없던 나는 장애우라는 표현이 더 부드럽고 사용하기 좋다고 느꼈기에, 왜 장애우라는 표현을 불편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히, 당시 참석했던 학회에서 어느 패널의 발언으로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장애우는 정상인에 대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에, 장애인을 의존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자신을 장애우라고 부르는 장애인을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장애인인 자신을 친구라고 부르라니, 그것은 누구를 대상으로 한 표현이란 말인가. 더 나은 방향은, 정상인 대신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장애인은 정상에서 벗어난 존재가 아니다. 그저 장애인과 장애인 아닌 사람이 있을 뿐이다.


같은 궤도에 놓여 있는 관점을 최근 번역되어 잔잔한 반향을 얻고 있는 캐나다 캘거리대학 아서 프랭크 명예교수의 <아픈 몸을 살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몸의 증언>, <이야기에 숨 불어넣기> 등의 저서에서 사회서사학(Socio-narratology, 사람들의 이야기, 즉 서사를 중심축으로 사회 현상을 탐구하는 방법론)을 통해 질환의 의미를 탐구한 것으로 저명한 프랭크 교수는 1991년 저술한 이 책에서, 39세에 그를 찾아온 심장마비, 그 이듬해의 고환암 진단, 그 치료과정을 통해 질환의 의미를 묻는다. "아프다는 것은 그저 다른 방식의 삶이고, 질병을 전부 살아냈을 즈음에 우리는 다르게 살게 된다."[24] 그리고 그는 말한다. "질병이 없는 인생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삶의 어느 순간 환자이다.


간을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이기에 그 필멸성을 받아들일 것을 결단(Entschlossenheit)하라고 촉구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앞에서 감히 말해 본다.[25] 우리는 모두, 아픈 (아팠으며, 아플) 존재이다. 하이데거는 서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과 나의 공통 조건으로 존재하는 것은 모든 일을 불가능으로 돌리는 죽음이라고 보았다. 한없는 침묵 앞에서 같은 존재로 만드는 절대성이 인간의 조건을 마련하기에, 죽음을 향해 간다고 하는 이 피할 수 없는 실존의 조건에서 존재의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결단은 처음 들었을 때도, 다시 살펴보고 있는 지금도 무척 멋지다. 그러나, 왜 이해 불가능성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차라리, 우리 모두 똑같이 아픈 존재라는 동일성에서 출발하자고 말하고 싶다. 우린 모두 아프다. 우린 모두 장애를 지닌다. 단지, 지금 누군가는 다행히 아프지 않고, 장애가 없을 뿐. 나는 아픔의 현전에 관한 인식이 서로 너무나 다른 나와 너의 아픔의 차이, 그 경험의 다름에 귀 기울이는 다양성의 인정과 포용을 가져오는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게 아마도, 뇌동맥류 파열을 통해 로체가 겪은 것, 렘과 멀린스가 의족을 달고 달리면서 삶으로 나타낸 것, 광화문에서 장애인 단체들이 5년 동안 줄기차게 부르짖은 것,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에서 부모들이 무릎 꿇고 호소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서로 무척 다른 경험을 하는 중일 뿐인 같은 사람들이라고, 이것은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작은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영웅”과 “저항”을 넘어, 같은 방향으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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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아픈 몸에 의학은 위안과 위로의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학, 건강에 관한 관점, 관념은 어느 한쪽이 주도권을 쥘 것인가의 다툼으로 점철되어 있다. 가장 뿌리 깊은 예가 이전에 살폈던, 권력의 관점에서 바라본 의학의 은유이다. “햄버거병, 전쟁, 춤: 질병의 은유 (1)”와 “영웅과 희생양: 질병의 은유 (3)”에서 살펴본, 질병과 싸우는 "전쟁" 속의 "영웅"인 의료인의 불만, 그리고 “백신, 죽음, 의료화: 질병의 은유 (2)”에서 살펴본, "삶을 삼키고" 있는 의료화에 대한 환자의 저항 속에는 고삐를 쥐려는 바쁜 손놀림이 엿보인다.


료인과 환자는 서로의 가치를 놓고 충돌하며, 사이에서 양보의 틈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점에서 현대 의학을 비난하는 책을 찾아보면 그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로 시작해서 "의사를 믿지 마라",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로 이어지는 제목의 향연. 얼마 전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도 빼놓아선 안 될 것 같다. 반대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의료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비과학적 행태를 비난하는 글이나 댓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곰곰 생각해보면 의료인과 환자 모두의 관심은 같다. 환자 고통의 경감과 치료가 그들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정상이냐를 놓고 벌이는 판가름이 계속 벌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의과학과 대안 문화의 '정상' 중 누가 맞느냐는 질문은, 솔로몬 왕을 찾아와 이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호소하는 두 여인의 질문처럼 들린다.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듣는 버릇이 있는 나는 솔로몬의 명판결로 유명한 원 고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지혜의 상징 대신 잔혹극의 한 장면으로 읽어버리는 탓이다. 심지어 남의 아이라 해도, 막 울고 있는 귀여운 아기를 반으로 가르라는 왕의 명령을 의심 없이 따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판결의 훌륭함을 떠나, 먼저 죄를 물어야 하는 건 아닐까. 누가 맞느냐를 가리려다가 아기를 죽일 위험을 불러서는 안 되는 탓이다. 마찬가지로, 누가 맞느냐를 놓고 싸우다 공통의 목표였던 환자의 건강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다음 이야기가 앞서 말한 갈등의 원인을 잘 정리해서 보여줄 것 같다.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교실의 주임 교수이자 종양학자, 의료윤리학자인 에제키엘 이마누엘은 "왜 나는 75세에 죽고 싶은가"라는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다.[26] 그는 75세가 되면 완성된,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았을 것이며 그 시점이 되면 더는 생을 연장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20세기가 되면서 기대여명(life expectancy, 어느 나이에 도달한 사람이 그 이후 몇 년 동안 생존할 수 있는가를 계산한 평균 생존연수)은 점차 길어졌다. 1980년 제임스 프라이가 주장한 병적 상태의 압축(compression of morbidity,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면 삶의 마지막에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질병이 한꺼번에 찾아와 빠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론)은 요새 흔히 말하는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만에 죽고 싶다는 소망)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대여명의 증가는 질병과 기능 상실 기간의 증가를 동반한다. 의료는 사망을 늦췄지만, "노화를 늦추진 못했다." 의료는 신체의 수치를 조절하여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의료가 삶의 질을, 내 가치를 지켜주지는 않는다. 더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마누엘에게 (그리고 나에게) 삶의 지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삶이 주는 가치이다. 그러나 의료의 가치와 환자의 가치가 같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다.


다행히 환자의 가치를 중시하는 견해가 점차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21세기 들어 효과만을 강조했던 증거 기반 의학(Evidence-base medicine)에 환자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통합하려고 하는 가치 기반 의학(Value-based medicine), 지난 기사(“의학과 사회 중간에서, '의료인문학'의 길”)에서 다룬 공유 임상 의사 결정(shared clinical decision making), 과거 이론적, 철학적 답을 내놓던 의료윤리 자문 위원회 대신 의료인과 환자, 가족, 의료윤리학자가 함께 모여 서로의 상황을 나누고 주어진 환경에서 현실적인 답을 찾아 나가는 의료윤리 중재(bioethics mediation) 등이 그 반향이리라.[27][28] 어떻게든 생명을 살리는 데에만 모든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의학은, 점차 환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최선의 결과를 줄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제, "영웅" 의료인에게 반기를 든 "혁명가" 환자 대신, 환자의 가치를 앞에 놓고 더 나은 방향이 무엇일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환자와 의료인의 "동행"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점차 마련되고 있는 신호라는 생각이 든다.

환자와 의료인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그림에 나는 "로드 무비"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그들이 함께 떠난 질병의 여행길, 그 긴 여정은 때로 서로에게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 끝이 언제나 행복과 결실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여행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삶을 배워갈 것이며, 같은 목표를 위해 나아가면서 서로의 가치와 바람을 존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아픈" 삶이 우리가 함께 살아나가야 할 토대이자 우리를 끊임없이 겸손하게 만드는, 우리의 발이 머무는 땅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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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주인공 맥스(톰 하디 분)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분)는 적대 관계로 만났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나가는 오월동주의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그들이 같은 목표를 품고 고난 끝에 승리했을 때, 둘은 서로를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대로 여기게, 또는 서로의 삶과 가치를 인정하게 되었으리라.

저명한 의료인문학자인 캐서린 몽고메리는 여러 환자-의료인 관계 모형을 탐색하다, 결론적으로 '이웃의 의료(medicine of neighbors)'를 제시한다.[29] 의료인이 금전 만을 목적으로 해서도 안 되겠지만, 의료인과 환자가 서로 친구가 되는 것도 어렵다. 아픈 몸을 이끌고 가는 고된 여정을 헤쳐 나가는 길은 결코 즐겁기만 한, '우정'의 여행이 될 수는 없는 탓이다.

질병의 여정에선 우정의 친밀감이나 교환 관계의 냉혹함은 지속되기 어렵다. 대신, 성경의 사마리아인 비유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이웃에 대한 의무가 의료인과 환자를 "같은 배"에 태운다. 그렇게 같은 방향을 향해 가며 역경을 지나 도달한 그곳에서, 환자와 의료인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진 출처/ IMDb


[참고자료]


[1] 장애. 네이버 국어사전. Available at: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2317900

[2]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한 눈에 보는 2017 장애인통계. 2017년 8월. Available at: https://www.kead.or.kr/common/comm_board_v.jsp?no=387&gotopage=1&search=&keyword=&data_gb=007&branch_gb=B01&station_gb=000&main=4&sub1=4&sub2=0&sub3=0&option=
[3]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Disability in England and Wales: 2011 and comparison with 2001. Jan 30, 2013. Available at: https://www.ons.gov.uk/peoplepopulationandcommunity/healthandsocialcare/disability/articles/disabilityinenglandandwales/2013-01-30 Accessed Sep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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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Wikipedia contributors. Medical model of disability.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un 6, 2017. Available at: https://en.wikipedia.org/wiki/Medical_model_of_diasbility Accessed Sep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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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유교. 노력인가, 장비 효과인가... 세계 육상 또 '의족 논란'. 조선일보. Feb 6, 2016. Available at: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2/06/2016020600104.html?Dep0=twitter&d=2016020600104 Accessed Sep 11, 2017.

[9] Trevelyan M. Blade jumper Rehm sees Rio dreams fade. Reuters. Jun 17, 2016. Available at: http://www.reuters.com/article/us-olympics-rehm/blade-jumper-rehm-sees-rio-dreams-fade-idUSKCN0Z323L Accessed Sep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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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임성영. [WWEF2015] 에미미 멀린스 "인류가 만든 가장 큰 역경은 '정상'이라는 개념". 이데일리. Oct 7, 2015. Available at: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B11&newsid=01115206609530624&DCD=A10101&OutLnkChk=Y Accessed Sep 11, 2017.

[12] Wikipedia contributors. Web accessibility.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Aug 28, 2017. Available at: https://en.wikipedia.org/wiki/Web_accessibility Accessed Sep 11, 2017.

[13] 안정락. AI 안경 낀 시각장애인, 눈앞 광경 음성으로 훤히 알 수 있다. 한국경제. Jun 20, 2017. Available at: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7062090601 Accessed Sep 11, 2017.

[14] Brewster S. This $40,000 robotic exoskeleton lets the paralyzed walk. MIT Technology Review. Feb 1, 2016. Available at: https://www.technologyreview.com/s/546276/this-40000-robotic-exoskeleton-lets-the-paralyzed-walk/ Accessed Sep 11, 2017.

[15] 김경필. 삼성C랩, 低시력 장애인에 빛을 선사하다. 조선일보. Aug 21, 2017. Available at: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0/2017082001789.html Accessed Sep 18, 2017.

[16] Dillet R. Apple's short film on autism proves that accessibility features matter. TechCrunch. Apr 4, 2016. Available at: https://techcrunch.com/2016/04/04/apples-short-film-on-autism-proves-that-accessibility-features-matter/ Accessed Sep 11, 2017.

[17] 홍진수. 마침내 지상으로 올라온 날... 5년만에 끝난 서울 광화문역 장애인 농성. 경향신문. Sep 5, 2017. Available at: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051626001&code=940601 Accessed Sep 11, 2017.

[18] 정세희. [현장 리포트]"1842일 외침 끝났지만... 장애인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 이제 시작". 헤럴드경제. Sep 6, 2017. Available at: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6&aid=0001286788 Accessed Sep 11, 2017.

[19] 김호경. 5년만에... 광화문역 '장애인 농성' 푼다. 동아일보. Aug 25, 2017. Available at: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3089673 Accessed Sep 11, 2017.

[20] 이진희. [NGO 발언대]5년의 외침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경향신문. Sep 3, 2017. Available at: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815607 Accessed Sep 11, 2017.

[21] 김현주. [팩트 확인] 장애인학교 들어서면 집값 떨어진다? 강서구 특수학교 논란에도 아파트 매매값 1위 '질주'. 세계일보. Sep 11, 2017. Available at: http://www.segye.com/newsView/20170911005451 Accessed Sep 11, 2017.

[22] Haselton MG, Nettle D, Andrews PW. The evolution of cognitive bias. Buss DM ed. The handbook of evolutionary psychology. Hoboken, New Jersey: John Wiley & Sons, Inc.: 2005.

[23] 서상범, 이영돈. 장애우 아닙니다. 장애인이 맞습니다. HOOC. Apr 20, 2016. Available at: http://hooc.heraldcorp.com/view.php?ud=20160420001084. Accessed Sep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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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박이문.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적 사유의 발자국. 서울: 미다스북스; 2017.

[26] Emanuel EJ. Why I hope to die at 75. The Atlantic. Oct 2014. Available at: https://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14/10/why-i-hope-to-die-at-75/379329/ Accessed Sep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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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Dubler NN, Liebman CB. Bioethics mediation: a guide to shaping shared solutions. Nashville, Tennessee: Vanderbilt University Press; 2011.

[29] Montgomery K. How doctors think: clinical judgment and the practice of medicin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김준혁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대학원생(의료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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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대학원생(의료윤리학)
소아치과 전문의가 된 것이 오히려 고민의 시작이 되어 의료인문학을 공부했다. 의학교육의 다음 방향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의료윤리를 통해 길을 찾기 위해 유학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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