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본부장 사퇴 파문 그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시 각   


글쓴이: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생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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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만들어지는 혁신본부가 장기적 안목과 긴 호흡으로
이런 복잡한 일을 하나씩하나씩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과학기술계 사이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여태까지 정부와 연구자들 사이의 관계가 연구비를 주는 측과 받는 측 사이의 관계였다면,
이제는 정부와 연구자가 함께 정책을 만들고 혁신을 해 나가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혁신본부는 본부장뿐 아니라 다수의 요직을 민간전문가가 맡도록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학기술계 전체가 파트너가 되어야 부처간 연구예산 확보 경쟁으로 왜곡된
연구비 배분을 바로잡고 과학기술 전체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는 정책 수립이 가능하며,
수립된 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감시하는 감시자,
문제가 보이면 비판하는 비판자가 있어야, 혁신본부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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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s-scienceweb.jpg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임명으로 우리는 10여 년 전에 일어났던 황우석 사태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우리의 두뇌가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형성된 기억이라도 기억과 재생의 과정을 반복하며 변형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니, 10년 넘게 세월이 지난 일에 대한 기억이 각자 처했던 입장에 따라 다른 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너무 큰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반 시민들과 연구자들의 기억에 박기영 교수는 황우석 사태의 책임자로 기억되고 있었던 반면에, 박기영 교수의 기억에는 자신이 논문 조작에 직접 참여한 건 아니고 그런데도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직에서 물러났으니 자신이 책임질 범위를 넘은 희생을 치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차이는 ‘기억의 불확실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차이라기보다는 공직자의 책임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보인다. 사람들은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의 책임을 물었는데, 박 교수는 자신은 연구부정에 책임이 없다는 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박 교수가 생명윤리의 문제를 조언했다는 이유로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대해 <네이처>가 제기한 문제는 데이터 조작이 아니라 난자 채취에 관련된 윤리적 문제였다. 이뿐만 아니라,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박 교수는 과학기술보좌관을 맡고 있었으니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 때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 조사를 했다면 2005년의 논문 조작 사태로 이어지는 걸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안타깝다.



‘황우석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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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어쩔 수는 없는 지나간 일을 다시 되짚는 이유는, 이미 사퇴한 박기영 교수에게 다시 잘못을 일깨우고 싶어서는 아니다. 지금 2017년의 우리나라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는 시스템과 역량을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의 발단이 논문 데이터 조작으로 인한 연구윤리 위반이었기에, 이후 우리 대학과 과학기술계는 연구윤리 문제에 대해 크게 반성하였고, 연구윤리 교육 도입과 연구진실성위원회 설치 같은 노력을 통해 연구윤리 측면에서는 진일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황우석’을 만들어 낸 시스템에 대한 반성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기영 교수의 얘기 중에, ‘황우석’이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미 유명해져 있었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예전 신문 데이터베이스에서 ‘황우석’을 검색하면, 황우석은 “시험관 송아지 국내 첫 성공”이라는 제목으로 1993년 11월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 수정란 핵이식 첫 복제 송아지, 영롱이와 진이의 출생, 돼지를 이용한 인간장기 복제, 배반포 단계의 체세포 복제 성공, 광우병 안 걸리는 소 3년 내 탄생 같은 제목을 단 신문 기사들이 연속해 나온다.


하지만 이들 기사에서 학술지에 발표되었다는 내용은 찾을 수가 없다. 이렇게 학술적으로는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 형성된 명성을 기반으로 황우석은 1999년 11월에 “올해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하고, 2003년 8월에는 대통령이 위원장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된다. 청와대가 앞장서서 황우석을 일반 과학자와는 차별화 되는 특수 위치에 올려놓는 일은 2004년부터 본격화 되는데, 그런 흐름을 주도한 것이 과학기술보좌관이었음은 “청와대, 황우석을 지켜라”, “최고 과학자 정부가 키운다”, “황우석 교수 특허비 정부가 낸다”, “황우석 교수 특별우표 나왔다” 등등의 뉴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렇더라도 2004년 이전에 황우석은 이미 유명해져 있었으니 모든 탓을 박 교수에게 돌리기보다는 그때까지 과정에서 과학기술인들이 반성할 점은 없는지 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과학기술계의 책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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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은 기자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언론을 장악하였고 언론을 통해 만들어진 유명세를 바탕으로 정치가들을 장악한 것으로 보이는데, 황우석이 사용한 핵심 무기는 “나라를 먹여 살리고 국위를 선양하는 과학기술인”이라는 이미지였다. 학문적으로는 실체가 불확실한데 국민 영웅으로 떠오르는 황우석을 바라보면서 불안해 한 과학자들도 많았으나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였고, 각종 과학기술인 단체나 학회들도 아무런 비판을 한 바가 없었으니 과학자들이 언론과 정치인 탓 만을 할 수는 없다. 애초에 학문적 검증단계를 거치지 않고 언론을 통해 국민적 영웅의 이미지를 구축해 갈 수 있었던 이유를 따진다면 언론인이나 정치가 등의 지식인 층에서조차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부흥’의 신화가 먹혀들 만큼 우리 사회 전체의 과학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과학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 할 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렇다면 10여 년이 지난 현재의 과학기술계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크게 달라졌다고 자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황우석 사태 이후에도 언론 플레이와 정치권 로비를 통해 각종 연구사업을 만들고 연구비를 확보하는 행태는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지속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더욱 뼈아프다. 가히 과학기술계의 적폐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관행을 청산하는 일은 정부의 제도 개선 노력만으로 되는 일도, 연구자들의 자정 노력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서로 신뢰를 갖고 소통하며 과학기술 지원체계의 혁신을 위해 같이 협력할 때 비로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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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황우석을 만들어 낸 시스템에 대한 분석과 반성을 하는 이유는 제2, 제3의 황우석 사태가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건전한 과학기술 지원체계 확립이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를 통한 교훈은 정부의 과학기술 지원이 경제발전 목적’에 치우쳐 조기에 성과를 내려고 하면 과다한 톱다운(top-down) 연구과제나 몇몇 스타 과학자에 선택과 집중하게 되며, 이는 건전한 연구환경을 파괴하고 혁신적 과학기술의 발전을 오히려 저해한다는 것이다.


지만, 황우석 사태 이후로도 정부의 과학지원 정책 기조는 달라진 적이 없었다.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기술 개발 성과를 요구하는 사업에 치우친 투자가 계속되다 보니 장기적인 지원이 요구되는 창의적 연구는 고사 위기에 처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정부 과학기술정책의 변화를 갈망하며 혁신본부의 출범을 기대하고 있던 과학기술인들에게 박 교수의 혁신본부장 임명은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기조가 황우석 시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켜 더 큰 반대를 불러일으켰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인사 실패는 박 교수뿐 아니라 정부와 과학기술인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긴 불행한 일이었지만, 황우석 사태를 돌아봄으로써 새 정부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한다면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혁신본부 구성이 늦어지며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구체적 그림이 잘 알려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기간 언급한 내용을 통해 짐작해 보면 과학기술이 산업과 경제정책의 부속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명확히 하고 있어, 과학기술 정책 기조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선 공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국정 운영 계획에는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비 확대, 연구자 중심의 연구개발(R&D) 시스템 혁신, 연구 수행 주체 간 상생 발전하는 연구생태계 조성, 청년 과학기술인 처우 개선 등, 건전한 과학기술 지원체계 확립에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는 그동안 과학기술계에서 꾸준히 요구해온 내용들이기도 하며, 이런 목표들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발전적인 연구환경이 만들어질 것을 기대하게 된다.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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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바른 목표를 세웠다고 저절로 현실화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이들을 실현하기 위한 일을 구체화 하고 내용을 채우는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중심이 되어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새로 올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과학기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이다. 과학기술계에서는 혁신본부장으로 정말 훌륭한 리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자격을 가진 리더라 하더라도 과학기술 자체의 복잡성과 미래의 불확실성, 정부의 거의 모든 부처가 관련된 연구비 구조의 복잡성, 오랜 숙련 기간에 비해 점점 짧아지는 기술 활용 기간에서 오는 인력수급의 문제점 등을 한번에 해결하는 요술방망이를 휘두를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혁신본부가 장기적 안목과 긴 호흡으로 이런 복잡한 일을 하나씩하나씩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과학기술계 사이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태까지 정부와 연구자들 사이의 관계가 연구비를 주는 측과 받는 측 사이의 관계였다면, 이제는 정부와 연구자가 함께 정책을 만들고 혁신을 해 나가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혁신본부는 본부장뿐 아니라 다수의 요직을 민간전문가가 맡도록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학기술계 전체가 파트너가 되어야 부처간 연구예산 확보 경쟁으로 왜곡된 연구비 배분을 바로잡고 과학기술 전체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는 정책 수립이 가능하며, 수립된 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감시하는 감시자, 문제가 보이면 비판하는 비판자가 있어야 혁신본부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과학기술계는 연구비 확보를 위한 연구자들 간의 경쟁, 분야별 경쟁으로 합의된 의견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를 확립하지 못하였다. 이제 새로운 역할을 위해서는 과학기술계의 혁신이 필요하다. 과학기술계가 특정인이나 특정 분야의 이익을 떠나 과학기술의 미래를 위한 자유롭고 진지한 토론을 바탕으로 집단지성이 형성되는 곳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고, 혁신본부는 이를 바탕으로 과학정책을 세우고 구현하는 콘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새로 임명될 혁신본부장은 과학기술인의 지지를 받으며 과학기술 발전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우물을 파는 연구부터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연구를 아우르며 과학기술계 전 분야의 균형적 발전을 이끌 혁신본부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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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생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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