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고 깬다는 건 뇌가 겪는 엄청난 변화” -선충 관찰

신경세포 302개 모델 동물인 선충 대상 ‘재우기-깨우기’ 실험

잠들면 대부분 신경세포 고요모드로…“잠은 기저상태(디폴트)”


nematode2.jpg » 실험에서 예쁜꼬마선충은 낮은 산소 농도 조건에서 수면에 빠져들 때 일부 신경세포를 빼고는 대부분 신경세포들이 자발적으로 활성을 잃고 고요 상태에 빠져들었으며(그림 위), 산소 농도를 높이는 외부 자극 조건에서는 신경세포들이 다시 활성을 띠었다(그림 아래). 출처 / 오스트리아 분자병리연구소


이 들 때와 깨어날 때, 몸 전체의 신경세포들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필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잠과 깨어남이라는 것이 신경세포 수준에선 대체 어떤 일인지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체 신경세포들의 전반적인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모델동물이 있다.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의 전체 신경세포는 고작 302개뿐이며 게다가 선충의 신경학에 대해선 그동안 많은 연구들이 쌓여와 각 신경세포에 대해서도 많이 밝혀져 있다. 그러니, 선충이 잠들 때와 깨어날 때 전체 신경세포 302개를 하나하나 관찰할 수만 있다면, 비록 아주 원시적이며 단순한 신경계이긴 하지만, 수면과 각성 단계의 전반적인 신경세포 변화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분자병리연구소의 연구진(연구책임 마누엘 짐머, Manuel Zimmer)이 모델동물 선충이 잠들고 깨어날 때 그 전체 신경세포의 전반적인 변화를 볼 수 있는 실험 시스템을 고안해 그 관찰과 분석의 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연구진은 선충이 잠에 빠져들 때 대부분 신경세포들이 자발적으로 활성을 잃고 고요 상태에 빠져들었으며, 이런 수면 상태는 적어도 선충의 경우에 외부 자극이 없을 때엔 그대로 유지되는 수동적인(passive) 상태이고 일종의 기본값(디폴트) 상태와도 같다는 연구결과를 밝혔다.    


수십억 개 신경세포를 지닌 인간 뇌나 10만여 개 신경세포를 지닌 초파리의 뇌와 비교하면, 이런 연구결과는 매우 단순한 선충의 신경계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수면과 각성 단계의 신경세포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변화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연구책임자인 신경과학자 짐머는 생물학잡지 <더 사이언티스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면에서 각성으로 가는 그 중간의 상태는 아마도 우리 뇌가 겪는 가장 철저한 변화 중 하나일 겁니다.” “뇌가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어떻게 이처럼 철저하게 전환할 수 있는지는 정말 이해되지 않고 있지요.”


그런데 수면과 각성 단계의 신경세포 변화를 직접 보려는 연구자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는 예뿐꼬마선충을 어떻게 필요할 때 잠재우고 깨우면서 그 사이에 선충의 전체 신경세포를 관찰할 수 있었을까? 이들이 찾은 ‘스위치’는 산소 농도 조절이었다.


“연구진이 풀어야 할 문제는 선충이 언제 잠들고 언제 깨어날지를 제어하는 일이었다. 박사과정 연구자 아니카 니콜스(Annika Nichols) 등은 산소 농도 변화를 그 스위치로 활용하는 흥미로운 실험 시스템을 구축했다. 자연의 서식지에서 예쁜꼬마선충은 흙속에 사는데, 거기에는 미생물이 풍부해 산소 농도가 낮게 유지된다. 연구진은 선충들이 선호하는 이런 조건에서 선충들은 편안함을 느끼기에 피곤할 때에는 잠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대기중 수준의 산소 농도는 잠자는 선충을 놀라게 하여 빠르게 깨어나게 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니콜스는 ‘그 덕분에 (산소 농도를 조절함으로써) 우리가 실험하는 동안에 선충을 잠들거나 깨어 있는 상태로 효과적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분자병리연구소의 보도자료에서)


선충이 잠에 들 수 있는 흙속의 산소 농도(10%가량)와 대기중 산소 농도(21%)의 차이가 선충을 잠재우거나 깨우는 스위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이렇게 선충이 잠들거나 깨어나는 과정에서 선충의 신경세포들을 ‘뇌 전체 기능 영상화 기법(brainwide functional imaging)’을 이용해 단일세포를 식별할 정도의 해상도로 관찰했다.


신경세포 내에서 높은 칼슘 농도에 반응해 신경세포가 활성이 될 때 형광 표지를 나타낼 수 있도록 만든 유전자 변형 예쁜꼬마선충이 실험에 쓰였다.


worms-sleep-iloveimg-resized-1.gif » 산소 농도를 조절할 때 잠에 들거나 깨어나는 선충 신경세포들의 전반적인 블활성/활성 패턴. 출처/ 오스트리아 분자병리연구소


구진이 관찰해 보고한 바에 의하면, 낮은 산소 농도 조건에서 수면에 빠져들 때에 일부 신경세포를 빼고는 대부분 신경세포들이 자발적으로 활성을 잃고 고요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는 적어도 모델동물 선충의 경우에 잠이라는 것이 뇌가 수동적 상태(passive state)에 놓임을 의미한다고 <더 사이언티스트>는 보도했다.


이런 실험 결과는 ‘잠은 어떻게 조절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특정 가설 또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논문 초록에서 연구진은 “우리 데이터는 잠과 같은 전반적인 상태 동안에 신경망이 기저 모드(baseline mode)로 끌려간다는, 그리고 자극 회로(arousing circuits)의 신호에 의해 다시 활성을 띠게 된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더 사이언티스트> 뉴스의 일부 대목이다.


“각성에서 수면으로 가는 전이는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한 이론은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수면이나 각성을 촉진할 수 있는 특정 신경세포들 같은 어떤 ‘하향식(top-down)’ 메커니즘에 의해 수면이 제어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수면의 발현이 자극 입력이 없을 때 이뤄지는 수동적 과정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후자의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를 제시한다. 수면을 일으키는 신경세포들은 수면을 적극 제어하기보다는 그저 뇌를 수면에 빠져들기 더 쉬운 상태 쪽으로 가져가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 사이언티스트> 보도에서)


수면은 ‘그저 뇌를 수면에 빠져들기 더 쉬운 상태 쪽으로 가져가는 것’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연구책임자인 짐머는 그런 상태를 계곡에 놓인 돌에 비유한다. 돌을 위쪽으로 밀어올리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돌은 저 혼자 내버려두면 아래쪽으로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이다. 잠자는 선충을 깨우고, 그래서 선충의 뇌를 각성 상태로 밀어넣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충이 여전히 피곤하고 선충을 방해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면 선충은 다시 잠에 빠져들 것이다. 복잡하고 역동적인 시스템을 다루는 과학자들은 그런 과정에 대해 ‘끌개(attractor)’라는 용어를 쓴다. 짐머는 ‘우리는 이런 끌개 메커니즘이 수면이나 각성과 같은 포괄적인 상태들이 뇌 전체에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보여주는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제안한다’라고 말한다.” (오스트리아 분자병리연구소의 보도자료에서)


같은 비유의 설명이 생물학매체 <더 사이언티스트>에서도 다뤄졌다.


“연구진에 의하면, 이런 관찰 결과는 잠이 ‘끌개 상태’ 메커니즘(‘attractor state’ mechanism)으로 불리는 무언가에 의해 조절됨을 보여준다. 짐머는 이렇게 설명한다. ‘계곡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돌멩이를 생각해보세요. 저혼자서 바닥 상태로 나아가지요. 여러분이 그걸 계곡 바깥으로 밀어내려면 어떤 행동 또는 에너지가 필요하겠지요.’ 저 혼자 둔다면 돌멩이는 궁극적으로 바닥 상태에 머물게 될 거라고 그는 덧붙인다. 선충이 피로할 때 잠을 유도하는 신경세포들이 하는 역할은 그런 계곡 구멍을 깊게 하여 더 쉽게 그 안으로 떨어지게 하며 또한 거기에서 벗어나는 걸 더 어렵게 하는 것이다.” (<더 사이언티스트> 보도에서)


수면 현상을 연구하는 다른 신경과학자는 이 매체의 뉴스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수면이 사실상 감각 입력 없을 때에 나타나는 수동적이거나 초기화 된 상태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해준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연구책임자 짐머는 선충과 인간의 차이와 관련해 “잠자는 선충 뇌와 잠자는 인간 뇌의 정확한 활성 패턴은 세부내용에서는 다를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선충과 인간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바는 잠에 빠져들 때 뇌가 복잡한 활성 패턴에서 단순환 활성 패턴으로 변환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 <사이언스> 에디터의 논문 안내

각성과 수면 상태, 이 둘 사이에서 뇌는 어떻게 전환할까? 니콜라스 등 논문 저자들은 예쁜꼬마선충 신경세포 낱낱을 식별할 정도의 해상도로 뇌 전체의 칼슘 영상화 기법(brain-wide Ca2+ imaging)을 사용해 이런 물음을 연구했다. 산소(O2) 농도를 변화함으로써, 연구진은 거동에 나타난 고요 상태와 활동 상태 사이에서 선충의 상태를 빠르게 전환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뇌의 전반적 고요 상태(global quiescence)를 관찰했는데, 여기에선 신경망 역동성이 체계적으로 하향 조절되는 특징이 나타났다. 산소 감지 신경세포에서 나온 신호는 활동적인 신경망 역동성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런 상태를 유지했다. 이와는 반대로 그런 자극 계기가 없을 때 신경망 역동성은 고요 모드(quiescent mode)로 수렴되었다.


 ■ 논문 초록

뇌는 수면과 각성과 같은 전반적 상태 사이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환하며 그 상태를 유지할까, 이런 물음은 아직 규명되지 못했다. 우리 연구진은 단일세포 해상도를 갖춘 뇌 전체 기능 영상화 기법(brainwide functional imaging)을 사용해, 불활성(lethargus)의 전개 단계에서 예쁜꼬마선충 뇌가 신경 활성의 체계적 하향 조절이라는 특징의 전반적 고요 상태로 쉽게 빠져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효과는 단지 몇 개 특정 신경세포를 빼고 전반적으로 나타났다. 외부 자극 계기가 없을 때, 이런 뇌의 고요 상태는 [‘온도 0도’처럼 기준이 되는 고정점과 같은] 고정점의 끌개(fixed-point attractor) 쪽으로 신경 활성이 수렴됨으로써 나타난다. 끌개는 [수면 상태가 아닌] 다른 조건에서는 역동적 신경 상태 공간에 내장돼 있다. 우리는 효율적으로 자발적이며 감각에 의해 유발되는 고요 상태 출구들(exits from quiescence)을 확인했다. 우리 데이터는 잠과 같은 전반적 상태 동안에 신경망은 기저 모드(baseline mode)로 끌려간다는, 그리고 자극 회로(arousing circuits)의 신호에 의해 효과적으로 다시 활성을 띠게 된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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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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