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배수 소용돌이 이용한, 블랙홀 물리현상 모사

물결 흐르는 수로 한복판에 배수구멍 만들어 관측실험

회전체 지나는 물결, 에너지 더 얻는 초방사 현상 관찰


00superradiance.jpg »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 치는 배수구를 지나 산란하면서 파동은 소용돌이의 에너지를 얻는다. 이로 인해 그림에서는 배수 소용돌이의 방향에 따라 위쪽과 아래쪽의 파동이 달라짐을 볼 수 있다. 그림에서 물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출처/ Nature Physics, Theo Torres et al.


‘이 모든 게 하찮은 데에서 시작했죠.’

욕조 배수구로 물이 빠질 때에 생기는 소용돌이에 착안해, 회전체인 블랙홀의 사건지평선 접경에서 일어난다고 알려진 이론적인 물리 현상을 욕조 배수구 닮은 실험 장치에서 구현해 보인 영국 버밍엄대학 연구진은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동 또는 입자가 블랙홀 사건지평선 주변을 지날 때 빨려들어가지 않고 지나쳐 산란할 때 오히려 블랙홀의 에너지를 얻는다는 이른바 ‘회전 초방사(초복사, superradiance) 효과’를 물리 실험으로 모사해 보여준 연구결과가 과학저널 <네이처 피직스>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이런 실험결과가 블랙홀 연구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00superradiance4.jpg » 실험장치. 물결을 만들며 물이 흘러가게 한 수로의 한 가운데에 소용돌이 치는 배수구가 있다. 사진에서 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물결 치며 흐른다. 아래 영상은 배수구(오목한 구멍 모양) 주변에서 일어나는 물결들의 모양. 출처/ 노팅엄대학 보도자료 동영상 갈무리와 자료 그림. http://www.nottingham.ac.uk 연구진이 배수 소용돌이가 생기는 수로 장치에서 구현하고자 한 이른바 ‘회전 초방사 산란(rotational superradiant scattering)’ 효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초방사는 산란을 거치면서 파동(물리학에서는 입자와 바꿔 쓸 수 있는 개념)이 에너지를 얻는 효과를 말한다. 이론적으로, 그 과정은 회전하는 블랙홀 같은 물체 주변에 일어나는 거대한 조수력(tidal forces)의 결과로서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 . . 이론적으로 블랙홀에 접근하는 어떠한 파동도 블랙홀의 회전과 그 효과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파동은 빨려들어가지 않고서 블랙홀에서 멀리 밀려날 수 있으며 이때에 추가 에너지를 얻어 다시 우주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다. 블랙홀 회전에서 추가 에너지를 획득하는 과정을 초방사라 부른다. 이 개념은 ‘호킹 복사’의 기초가 되었다.” (잡지 <천문학>에서)


“초방사란 무엇인가? 이 실험은 초방사 이론에 기반을 두어 이루어졌다. 즉 회전하는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바로 바깥 영역은 블랙홀의 회전에 빨려들어가는데, 그 영역에 들어서고도 사건 지평선을 지나치는 파동들은 산란될 것이며 또한 애초에 지닌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초방사라고 알려져 있다.” (노팅엄대학 보도자료에서)


이런 블랙홀 물리학의 이론적인 현상을 어떻게 실험실에서 실제로 모사해 보여줄 수 있을까? 연구진은 실험실에 블랙홀처럼 물을 빨아들이는 배수구 있는 수로를 만들었다.


수로 장치는 길이 3m, 폭 1.5m에 깊이 50cm 크기로 만들어졌다. 수로의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물을 흘러가게 했는데, 이때에 1초에 3-4번의 물결(2.9~4.1Hz)이 치도록 했다. 수로의 한복판에는 지름 4cm의 배수구를 두어, 흘러가는 물의 일부가 배수구에 빠질 자연스럽게 소용돌이가 일게 했다. 나머지 물은 배수구를 지나 수로의 다른쪽에 떨어지고, 수로에서 빠져나온 물은 다시 펌프로 길어올려 물결 치는 물로 실험용치 수로에 흐르게 하는 방식이었다(아래 동영상).


[ 유투브 https://youtu.be/RoWYyalriJ8 ]


연구진은 3차원 센서를 이용해 물결의 높이와 물 흐름의 속도를 측정하면서 배수구와 물결의 상호작용을 관찰하고 분석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결과는 물결이 배수 소용돌이를 지나면서 소용돌이의 에너지를 얻는 이른바 ‘초방사‘의 물리현상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입증해주었다.


00superradiance3_Silke.jpg » 책임연구자인 노팅엄대학의 웨인퍼트너. 출처/ 영국 노팅엄대학 보도자료. 연구진이 제시한 실험결과 그림 자료(맨위 그림)를 보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물결이 배수구를 지난 이후에는 소용돌이의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파동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용돌이 방향으로 흐르는 물결은 에너지를 얻고, 소용돌이 반대방향으로 흐르는 물결은 에너지를 잃었다. 연구진은 전반적으로 애초 파동의 에너지가 소용돌이를 지난 이후에 추가 에너지를 얻었다는, 초방사 효과를 이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연구진은 “배수 유체에서 일어나는 얕은 물결의 산란은 블랙홀의 유비(analogue)가 될 수 있다“면서 ”이 실험 결과가 유체역학뿐 아니라 블랙홀 물리학과도 연관성을 지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배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빨려들어간 물결의 에너지가 얼마나 되는지는 이 실험에서 확인되지 않았으나 후속 연구에서 다룰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 소용돌이의 블랙홀 모사 연구가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리 현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를 어엿한 실험과 분석, 시뮬레이션의 프로세스로 설계하고 실행해낸 국제 공동 연구진의 오랜 노력 덕분이었다. 연구책임자인 영국 버밍엄대학의 여성물리학자 실커 웨인퍼트너(Silke Weinfurtner)가 주역이었다.


“이 연구는 여러 해에 걸쳐 만들어졌다. 물을 이용해 초방사 효과를 구현해보자는 초기 구상은 양동이와 비데로 시작되었다. 웨인퍼트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연구는 한찮은(humble) 출발에서 비롯해 점점 커져왔지요. 제가 이탈리아 국제고등연구소(SISSA)에 있을 때에 물을 이용한 실험을 처음 구상했고 양동이와 비대를 이용한 실험을 구성했습니다. 그렇지만 물바다를 만들고 나서야 곧이어 이런 연구를 할 실험실을 찾았지요.’ [캐나다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마치고서 노팅엄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자신의 연구진을 만들고 기계설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자 이 연구를 가속화했다.]” (노팅엄대학 보도자료에서)



 ■ 논문 초록

입사파가 장애물을 지나 산란하면 부분적으로 반사되고 부분적으로 전파된다. 이론상으로는, 장애물이 회전하고 있다면, 파동은 그 과정에서 산란 유발자의 에너지를 가져와 증폭될 수 있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초방사(초복사, superradiance)로 알려진 이런 현상을 탐지하는 최초의 실험을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는 물 표면에서 퍼지는 파동이 배수 소용돌이에 의해 산란된 이후에 증폭될 수 있음을 관찰했다. 측정된 최대 증폭은 수심 6.25cm의 유체에서 3.70 Hz 파동일 때 얻은 14% ± 8%였으며, 그것은 급속 회전으로 인한 초방사 산란과 일치한다. 우리는 실험 결과가 과도한 반사 불안정성(over-reflection instabilities.)과 밀접히 관련되기에 유체역학뿐 아니라 블랙홀 물리학과도 연관성을 지니길 기대한다. 배수 유체에서 일어나는 얕은 물결의 산란이 블랙홀의 유비(analogue)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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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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